왕가위 감독 <아비정전>(1990)에 출연한 배우 고 장국영

왕가위 감독 <아비정전>(1990)에 출연한 배우 고 장국영 ⓒ 엔케이컨텐츠

 
매년 4월 1일이 다가오면 유독 생각나는 한 남자가 있다. 2003년 4월 1일 만우절 거짓말처럼 떠난 장국영은 8,90년대 홍콩영화를 사랑했던 영화팬들의 우상이었고, 여전히 그를 기억하는 사람들의 가슴 속에 영원히 살아있다. 사스(SARS, 중증급성호흡기증후군)가 중국, 홍콩을 덮쳤던 시기에 세상을 떠난 장국영이었기에 코로나19로 전세계가 혹독한 몸살을 앓는 2020년, 유독 그가 더 생각나는지도 모르겠다.  

장국영 기일에 맞춰 재개봉 하기로 되어있던 그의 대표작 <패왕별희>(1993)은 코로나19 여파로 재개봉일이 5월로 미뤄졌다. 장국영 팬들 입장에선 아쉬울 수밖에 없다. 하지만 <천녀유혼>, <영웅본색>, <아비정전>, <백발마녀전> 등 장국영 출연작 일부를 왓챠플레이에서 감상할 수 있으니, 방구석 1열에서 그 시절 우리가 사랑했던 장국영을 추억해보는 시간을 가지는 것이 어떨까. 

이번 기사에서는 장국영의 대표 출연작이 아니지만, 장국영을 좀 더 색다르게 추억할 수 있는 영화 두 편을 소개하고자 한다. 이 중 <친니친니: 안나마덕련나>(이하 <친니친니>)는 왓챠플레이에서 볼 수 있고, <찬실이는 복도 많지>는 극장에서 관람할 수 있다. 

<친니친니>, 예나 지금이나 가질 수 없는 장국영 
 
 영화 <친니친니>(1997)에 카메오로 출연해 인상깊은 활약을 펼친 고 장국영

영화 <친니친니>(1997)에 카메오로 출연해 인상깊은 활약을 펼친 고 장국영 ⓒ 효능영화제작사

 
금성수, 진혜림, 곽부성 주연의 홍콩 멜로 영화 <친니친니>(1997)의 후반부에 등장 하는 장국영의 분량은 5분 남짓, 카메오 출연이다. 그럼에도 이 영화가 장국영 팬들 사이에서 줄곧 회자되는 이유는 적은 분량에도 불구하고 영화의 핵심을 관통하는 중요한 역할을 수행하기 때문이다. 

<친니친니>에서 장국영은 주인공 가후(금성무 분)가 쓴 소설을 발간하는 출판사 편집장으로 등장한다. 편집장(장국영 분)의 반대에도 가후의 소설이 책으로 나올 수 있는 것은 유부남인 편집장을 짝사랑하는 출판사 직원(원영의 분)의 노력 덕분이었다. 실연의 아픔을 소설로 승화시킨 가후의 작품에서 자신의 슬픈 사랑을 돌아보게 된 출판사 직원은 가후의 소설이 출판될 수 있도록 힘쓰고, 소설이 세상이 나오는 날 출판사를 그만 두었다. 

만약 가후의 소설을 좋게 본 출판사 직원이 아니었다면, 가후의 글은 만이(진혜림 분)와 이루지 못한 사랑에 대한 자기연민으로 가득한 일기장에 그쳤을 것이다. 하지만 가후의 글에 자신의 아픔을 대입시킨 직원 덕분에 소설로 출판될 수 있었고, 특정 개인이 겪은 사적인 경험에서 다른 누군가의 공감을 얻을 수 있는 이야기로 확장된다. 

흥미로운 점은 주인공의 소설이 세상에 나올 수 있도록 힘쓴 출판사 직원의 짝사랑 대상이 장국영이라는 점이다. 장국영은 생전 만인의 연인으로 추앙받았고, 예나 지금이나 그를 사랑했던 사람들의 '가질 수 없는 너'였다. <친니친니>에서 극중 장국영을 짝사랑하는 원영의는 장국영과 눈을 마주치지 못한다.

극 중 원영의 뿐만 아니라 국적, 성별 불문하고 실제 장국영을 한 번 이상 봤던 사람들은 그의 독보적인 아우라 때문에 그와 쉽게 눈을 마주치지 못했다고 회상한다. 그만큼 장국영은 이름만 들어도 뭇 사람들의 가슴을 설레게 하는 존재였고, 우리 곁을 떠난 지 십수 년이 지난 지금도 여전히 아름다운 사람으로 남아있다. 

<찬실이는 복도 많지>, 씨네필들의 영원한 친구 장국영 

"보이는 사람한테만 보이는 그런...장국영입니다." 

그런데 17년 전 세상을 떠난 장국영이 2020년 3월 스크린에 출현했다는 소식이다. 진짜 장국영이 살아 돌아왔으면 좋으련만, 안타깝게도 스스로를 장국영이라 주장하는 귀신이 그의 부재를 대신한다. 

지난 5일 개봉한 <찬실이는 복도 많지>에서 집도 없고 돈도 없는데 일마저 끊겨버린 영화 프로듀서 찬실이(강말금 분)는 장국영이라 우기는 남자 아니 귀신(김영민 분)과 마주친다(그는 찬실이에게만 보인다).

추운 날씨에도 트레이드 마크인 흰 러닝셔츠와 트렁크 팬티만 입고 활보하는 그는 영화를 계속 해야 할지 고민하는 찬실이의 친구이자 조언자가 되어준다. 

"찬실씨가 정말 원하는 게 뭔지 알아야 행복해져요. 당신 멋있는 사람이에요. 그러니까 좀만 더 힘을 내봐요. 알았죠?" 
 
 영화 <찬실이는 복도 많지>에서 장국영으로 우기는 귀신으로 출연한 배우 김영민

영화 <찬실이는 복도 많지>에서 장국영으로 우기는 귀신으로 출연한 배우 김영민 ⓒ 지이프로덕션 , 윤스코퍼레이션

  
 영화 <찬실이는 복도 많지>에서 장국영으로 우기는 귀신으로 출연한 배우 김영민과 그의 응원과 지지를 받는 찬실이 역을 맡은 배우 강말금

영화 <찬실이는 복도 많지>에서 장국영으로 우기는 귀신으로 출연한 배우 김영민과 그의 응원과 지지를 받는 찬실이 역을 맡은 배우 강말금 ⓒ 지이프로덕션 , 윤스코퍼레이션

 
생전 낯을 많이 가리고 수줍음이 많았다는 장국영과 달리, 말많고 수다스러운 귀신 장국영의 정체는 의심스러울 만하다. 그러나 연이은 실직과 실연에 마음의 상처를 입은 찬실이가 영화마저 포기하려고 할 때, 다시 영화를 할 수 있게끔 격려와 지지를 아끼지 않는 장국영은 그를 통해 영화의 세계에 입문했던 사람들의 가슴을 뭉클하게 만든다. 

"제가 멀리 우주에서도 응원할게요." 

찬실이가 영화에 대한 초심을 찾을 수 있도록 도움을 주는 장국영 캐릭터에 대해, <찬실이는 복도 많지> 김초희 감독은 "영화를 처음 사랑하게 된 순간에 장국영이 있었고, 영화에서라도 그를 소환하고 싶었다"며 장국영에 대한 애정을 드러낸 바 있다. 돌이켜보니 기자 또한 영화를 처음 사랑하게 된 순간에 장국영이 있었고, 장국영과 닮은 꼴로 유명 했다던(?) 김영민을 통해 그 시절 장국영을 추억할 수 있었다. 

한 때 장국영을 좋아했다는 '씨네필' 찬실이의 고백처럼, 장국영은 영화를 좋아하거나, 좋아했던 사람들의 가슴 한 켠에 남아있는 존재다.

매년 4월 1일이 되면 많은 사람들이 그를 떠올리는 것은 만우절 거짓말과 같았던 비극적인 죽음도 크지만, 영화에 대한 낭만을 일깨워주고 때로는 사랑과 현실에 아팠던 상처를 위로해준 존재이기 때문 아닐까. 세상을 떠난 지 17년이 지난 지금도 우리 곁에 살아 숨쉬는 것 같은 장국영이 오늘 유독 그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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