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12 >는 2009년에 개봉한 롤랜드 에머리히 감독의 아포칼립스 재난 액션물입니다. 2012년이 되면 강력한 태양풍의 영향으로 지구의 핵이 유동화되고, 그로 인해 지구의 지각과 자기장이 크게 변화하면서 천재지변을 일으킨다는 설정이죠. 

사실 이 영화는 스릴 넘치는 재난 장면만큼은 수준급이지만, 나머지 부분은 그다지 재미있지 않습니다. 하지만 이 영화에 나오는 각국 정부와 권력자들의 재난 대책은 코로나19라는 유례없는 재난에 직면한 2020년의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가 있습니다
 
 영화 < 2012 >의 스틸컷

영화 < 2012 >의 스틸컷 ⓒ 한국소니픽쳐스릴리징브에나비스타영화㈜

 
정보 독점한 권력자들의 석연치 않은 대책

재난 영화에서는 흔히 과학자의 경고를 듣지 않은 정치가들이 재앙을 초래한다는 식의 전개가 일반적입니다. 롤랜드 에머리히 감독작 중 손꼽을 만한 작품인 <투모로우>(2004)에서도 그랬죠. 하지만 < 2012 >에선 권력자들이 과학자의 경고를 적극적으로 받아들여 재난에 대비합니다. 

그런데 이 재난을 대비하는 과정에 좀 문제가 있습니다. G7을 위시한 40여 개국 지도자들은 지구 멸망 가능성이라는 고급 정보를 자기들만의 비밀로 남겨 두거든요. 비밀이 폭로되는 것을 막기 위해 살인도 불사할 정도죠. 

그렇다고 이들의 대책이 대단히 뛰어난 것도 아닙니다. 성서의 '노아의 방주' 이야기를 참고하여, 유전적으로 우월하다고 판단되거나 권력과 금력을 가진 40만 명의 선택받은 사람만을 여러 대의 '방주'에 나눠 태운다는 거니까요. 만약 방주가 불의의 사고로 난파한다거나 방주 내부에서 전염병이라도 퍼지면 꼼짝없이 몰살당하기 좋은 계획입니다.  

하지만, 각본을 직접 쓴 감독 이것이 어쩔 수 없는 현실이라고 생각한 것 같습니다. 영화 내내 이의가 제기되고 크고 작은 돌발 상황이 생기지만, 그때마다 인류애를 강조하는 에피소드를 등장시키면서 어떻게든 무마하고 넘어가려 하죠. 문제점이 뻔히 보이는데도 근본적으로 나은 대안을 제시하지 못하고 땜질식으로만 넘어가니 이야기는 점점 맥이 빠집니다. 

투명한 정보 공개와 자발적인 참여가 답이다
 
 영화 <2012>의 스틸컷. 이 영화의 재난 장면은 아주 흥미진진하다.

영화 <2012>의 스틸컷. 이 영화의 재난 장면은 아주 흥미진진하다. ⓒ 한국소니픽쳐스릴리징브에나비스타영화㈜

 
< 2012 >가 내세운 지구 멸망 대책 밑바탕에 깔린 것은 일종의 우생학입니다. 유전적으로 우월한 인간을 선발한다는 발상이 그렇습니다. 게다가 현실 세계에서 권력과 금력을 획득한 사람도 우월한 것으로 은근슬쩍 인정해 버립니다. 인류의 미래를 위해서는 이것이 어쩔 수 없는 선택처럼 느껴지도록 몰아가죠.

하지만 이런 사고방식은 별 과학적 근거가 없습니다. 우생학이 뿌리를 둔 사회적 진화론은, 다윈의 진화론에서 '우월한 유전자를 가진 개체가 살아남는다'라는 명제를 맥락과 상관없이 뚝 떼어서 현실의 사회 질서에 갖다 붙여 왜곡한 것입니다. 그래서 현재의 기득권층을 옹호하는 논리로 자주 사용됩니다. 

진화론에서 이야기하는 '자연 선택에 의한 적자생존'은 이 영화에 나오는 것처럼 당대 인간의 지식과 판단에 따라 인위적으로 이뤄지는 것이 아닙니다. 진화가 일어나려면 환경 변화에 적응하는 기간이 필요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어떤 사람이 앞으로 있을 재난 상황에서 효과적으로 적응하고 살아남을 것이냐는 누구도 확신할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 2012 >의 재난 상황에서 인류의 생존율을 극대화할 방법은, 모든 정보를 투명하게 공개하고 가능한 많은 인구를 살리는 쪽으로 지혜를 모아 나가는 것입니다. 정확한 정보를 공유하고 사람들의 자발적인 참여를 유도해야 가장 좋은 대안이 나올 수 있습니다. 재난의 결과로 지각이 급변하는 곳을 보다 정교하게 특정할 수 있을 것이고, 그에 따라 안전한 곳으로 사람들을 이주시킬 수 있습니다. 어떤 대책이라도 전 세계 인구의 0.1%도 안 되는 인원을 방주에 태운다는 계획보다는 나을 겁니다.
 
 영화 <2012>의 스틸컷.

영화 <2012>의 스틸컷. ⓒ 한국소니픽쳐스릴리징브에나비스타영화㈜

 
현재진행형 재난 코로나19가 증명한 것

재난 대책을 세울 때 투명한 정보 공개와 자발적인 참여 유도가 효과적이라는 사실은 바로 우리나라 정부의 코로나19 바이러스 대응으로 증명됐습니다. 감염자 정보와 상황을 최대한 신속하게 공개하여 국민에게 자발적으로 전염병에 대응할 태세를 갖추게 하고, 부족한 부분을 지적받으면 최대한 개선하려 노력해 왔습니다. 이런 부분이 바로 세계보건기구(WHO)에서도 '교과서 같은 우수 사례'라고 인정한 이유 중 하나입니다. 

< 2012 >에 나온 지도자들의 생각처럼, 괜히 정보를 공개했다가 사회 혼란만 일어나고 재난 상황이 더 심각해질 수 있다는 주장도 언뜻 일리가 있는 것 같습니다. 코로나 19로 인해 세계 곳곳에서 사재기가 일어나고 정부의 권고가 먹히지 않는 경우가 종종 보이니까요. 하지만 이런 혼란은 애초부터 정보를 제대로 공개하지 않은 정부에 대한 불신에서 출발했습니다.

코로나19 사태에서 정보 공개를 꺼렸던 지도자들은 사회 혼란을 걱정하는 것이 아니라, 상황이 급변해서 자기들이 지닌 주도권이 사라질까 걱정했습니다. 시진핑 주석이 바이러스 발병 사실을 뒤늦게 인정한 것도, 트럼프 대통령이 코로나19에 대한 초기 대응을 늦게 했던 것도, 아베 총리가 올림픽 연기를 질질 끌었던 것도 모두 같은 맥락에서 이뤄진 일이죠.

이들이 재난 상황을 해결하지 못하면 경기 부양도, 대통령 재선도, 올림픽 정상 개최도 불가능함을 뒤늦게나마 깨달은 것이 다행이라면 다행입니다. 중요한 총선을 앞두고 정치적 유불리를 계산하는 대신, 적극적인 방역에 나선 우리나라 문재인 대통령의 결단은 이런 주변국들의 상황과 맞물려서 더욱 돋보입니다. 
덧붙이는 글 권오윤 시민기자의 블로그(cinekwon.com)에도 게재된 글입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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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와 책에 관심 많은 영화인. 두 아이의 아빠. 주말 핫케익 담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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