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몇 년간 국내 TV 예능계의 대세는 '일상 관찰 예능'이었다. <나혼자 산다>, <미운 우리 새끼>, <살림하는 남자들>, <슈퍼맨이 돌아왔다>, <전지적 참견 시점> 등 연예인이나 유명 셀럽들이 등장하여 자신의 일상과 개인사를 자연스럽게 공개하는 프로그램들이 한동안 우후죽순처럼 쏟아졌다.

심지어 지인이나 가족들같은 비연예인 출연자들도 덩달아 방송에 출연하여 연예인-셀럽 못지 않은 유명세와 관심을 받는 경우도 크게 늘어났다. 일각에서는 최근의 관찰 예능을 두고 사실상 '인맥예능'·'가족예능'이 되어버렸다는 냉소적인 평가도 나온다.
 
TV조선 <세상 어디에도 없는 아내의 맛>은 이른바 가족예능의 대표적인 히트 사례다. <아내의 맛>은 김현숙-하승진-이하정-홍현희-이만기-함소원 등 수많은 실제 유명인 부부들이 등장하여 솔직하고 거침없는 가정사 공개로 큰 화제를 모았다. 시청률 조사회사 닐슨코리아에 따르면 <아내의 맛>은 종편예능으로서는 드물게 3주 연속 시청률 두 자릿수를 돌파할 만큼 꾸준한 인기몰이를 하고 있다.
 
<아내의 맛> 인기몰이의 일등공신이라면 역시 배우 함소원- 사업가 진화 부부를 꼽을 수 있다. 한중 국제커플이자 18년 나이 차의 연상연하로 방송 초기부터 큰 화제를 모았던 함-진 부부는 <아내의 맛> 원년멤버로서 지금까지도 고정출연하고 있다. 특히 함소원의 중국 시부모님이 등장하기 시작하면서 더 화제가 됐다. 사실상 이제는 함소원-진화 부부의 이야기보다도 일반인인 중국 시부모님들의 티격태격하는 '앙숙 케미'와 화려한 '먹방' 등이 더 주목받을 정도다.
 
하지만 프로그램이 높은 인기를 끈다고 해서 꼭 출연자들도 행복한 것은 아니다. 함소원은 최근 자신의 SNS를 통해 지속적으로 도 넘은 악성 댓글을 받은 사실을 공개하며, 속상한 심경을 토로하여 눈길을 끌기도 했다. 함소원이 공개한 캡처 사진에는 <아내의 맛> 방송분을 두고 욕설과 인격모독에 가까운 악플들이 가득하여 충격을 줬다.
 
<아내의 맛> 함소원, 악플로 인한 고통 호소
 
 <아내의 맛>에 출연중인 함소원. 그가 방송을 통해 보여진 고부갈등으로 인한 에피소드 때문에 악플에 시달렸다.

<아내의 맛>에 출연중인 함소원. 그가 방송을 통해 보여진 고부갈등으로 인한 에피소드 때문에 악플에 시달렸다. ⓒ TV조선

  
 <아내의 맛>에 출연중인 함소원. 그가 방송을 통해 보여진 고부갈등으로 인한 에피소드 때문에 악플에 시달렸다.

<아내의 맛>에 출연중인 함소원. 그가 방송을 통해 보여진 고부갈등으로 인한 에피소드 때문에 악플에 시달렸다. ⓒ TV조선


최근 방송된 <아내의 맛>에서는 함소원과 중국 시어머니의 고부갈등이 그려졌다.  중국 마마가 함소원이 외출한 틈에 어린 아이들과 물감이 든 물총놀이를 하다가 집안을 엉망으로 만든 것. 이 사태가 발단이 되어 부부싸움으로까지 이어졌고 마마가 미안한 마음에 중국으로 돌아간다고 하자, 함소원이 그대로 중국행 티켓을 발권하는 모습이 방송됐다. 
 
방송이 나가고 시청자들의 반응은 엇갈렸다. 워킹맘으로서 시부모님까지 챙겨야 하는 함소원의 입장을 옹호하는 시청자들도 있었지만, 반대로 마마가 사과를 했음에도 함소원이 시부모에게 지나치게 무례하거나 감정적으로 행동했다고 지적하는 목소리도 나왔다. 
 
사실 함소원이 <아내의 맛> 출연 이후 악플로 인한 고통을 호소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함소원은 작년 10월 <아내의 맛> 방송분에서는 악플로 인하여 정신과 치료까지 받으며 눈물을 흘리기도 했다. 당시 함소원은 '돈에 너무 집착한다' '어린 남편에게 함부로 대한다'는 비난에 시달리며 고민하는 모습을 드러냈다.
 
 <아내의 맛>에 출연중인 함소원. 그가 방송을 통해 보여진 고부갈등으로 인한 에피소드 때문에 악플에 시달렸다.

<아내의 맛>에 출연중인 함소원. 그가 방송을 통해 보여진 고부갈등으로 인한 에피소드 때문에 악플에 시달렸다. ⓒ TV조선


결국 함소원의 사례는 개인의 사생활을 방송의 소재로 삼는 가족 관찰예능의 부작용을 단적으로 보여준다. 임신, 육아, 부부생활, 경제관념, 시부모와의 관계 등 일신상의 프라이버시 영역이 되어야 할 내용들이 방송을 통하여 전국민에게 여과없이 공개되며 개인의 신상이나 가치관마저도 대중에게 평가의 대상이 되고 만다. 그런데 리얼리티라고 해도 어디까지나 방송인 만큼 얼마든지 편집상 연출과 과장이 가미될 수 있고 눈에 보이는 것만이 100%가 아닐 수도 있다.
 
중요한 것은 결국 시청자에게 각인되는 '이미지'다. 방송은 이야기의 재미와 긴장감을 높이기 위하여 갈등과 자극을 필요로 하고, 그 와중에서 누군가는 출연자의 이미지를 희생하여 '어그로(aggro, 관심이나 분란을 일으키는 행위)를 끌어야 하는 경우도 있다. 특히 함소원 같은 이미지는 긍정적으로든 부정적으로든 방송에서 이슈를 만들기 좋은 캐릭터다.
 
문제는 이러한 출연자의 이미지 소모를 바탕으로 방송의 인기와 화제성은 당장 높아질지 몰라도, 장기적으로는 이미 '굳어버린' 출연자의 부정적 캐릭터가 다시 회복되기 어렵다는 데 있다.

함소원은 작년 정신과 상담 이후 남편과의 관계 개선을 위하여 노력하거나 짠순이 이미지를 벗어나 시부모님을 모시고 해외 동반 여행을 기획하는 등 적극적으로 변화하려는 모습도 보여줬다. 세상 어느 가족이 그러하듯 항상 화기애애한 모습만 있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이번 고부갈등 에피소드처럼 자극적인 상황이 발생하자 함소원이 그동안 노력했던 모습들은 묻혀버렸고, 또 다시 일방적인 악플세례에 시달려야 했다. 갈등이 어떻게 수습되는지 결말은 보여주지 않고 굳이 다음주로 방송을 넘긴 제작진도 출연자의 이미지를 고의로 희생시킨 셈이다.

도 넘은 비난·인신공격성 악플까지 정당화 안 돼

개인 일상과 가족사까지 공개하는 관찰예능에 출연했다가 이미지 추락과 함께 악플로 고통받은 연예인은 함소원뿐이 아니다. 역시 대표적인 가족예능으로 꼽히는 <살림남>에 가족과 동반 출연 중인 배우 김승현은 한 토크쇼에서 "가족 악플로 마음고생을 했다"고 고백했다. 그는 "딸이 아빠랑 안 닮았다, 부모님은 아들보다 더 튀려고 한다는 등의 악플이 달렸다"면서 안타까움을 호소하기도 했다.
 
당시 함께 출연했던 가수겸 배우 홍경민도 "가족과 함께 프로그램하면 애를 앞세워 돈 버는 거 아니냐는 지적을 받는다"면서 "나중에 성인이 된 아이들에게 큰 선물같은 시간이 될 것 같아서 방송에 출연했다"고 해명하기도 했다.
 
또한 개그맨 박성광의 전 매니저는 <전지적 참견시점>에서 동반출연하여 큰 화제를 모았으나 방송 이후 악플에 시달리며 스트레스를 받다가 결국 매니저를 그만두고 퇴사한 사실이 알려져 안타까움을 주기도 했다. 당시 매니저는 방송에서는 밝은 모습을 보였지만 능숙하지 못한 업무나 외모 비하 악플에 시달리며 많은 스트레스를 받았던 것으로 알려졌다. 그런가 하면 일부 관찰예능에서는 출연자들이 방송직후 제작진의 악의적인 편집이나 이미지 왜곡에 불만을 토로한 사례도 종종 있었다.
 
관찰예능이 포화상태에 이를 정도로 범람하면서 갈수록 자극적인 에피소드도 늘어나고 있다. 리얼리티라는 명분을 내세워 끊임없이 출연자들의 개인사와 일상에 깊이 침투하는 것을 당연하게 여긴다. 물론 출연자들도 어느 정도는 공개적인 방송에 나온 이상 대중의 평가를 감수해야 하는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방송이 나간 후 후폭풍을 감당해야 할 이 또한 출연자이다. 
 
방송을 통하여 관심을 받고 유명세를 누린다고 해서 꼭 행복한 것은 아니다. 관찰예능이라는 이름으로 남의 사생활을 엿보는데 필요 이상으로 탐닉하는 방송들, 방송에 편집된 일부 장면만을 놓고 출연자들의 인생과 인성을 모두 재단할 수 있다고 믿는 악플러들로 인하여 누군가는 두고두고 심각한 고통을 겪게 될 수도 있다는 사실을 잊어서는 안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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