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라다이스 힐스>에 거주하는 여성들은 코르셋을 조인 흰 드레스를 입고 다닌다.

<파라다이스 힐스>에 거주하는 여성들은 코르셋을 조인 흰 드레스를 입고 다닌다. ⓒ (주)올스타엔터테인먼트

 
눈을 떠보니 낯선 섬이다. 어떻게 끌려왔는지 기억조차 나지 않는 우마(엠마 로버츠)에 공작부인(밀라 요로비치)은 "네 화를 다스리려면 시간이 걸려"라고 말한다. "이건 기회란다, 우마", "새로운 시각으로 네 인생을 살펴봐"라고 말한다. 우마는 "누구 시각이요? 당신?" 이어 "그럼 제 시각은요?"라고 대꾸한다. 공작부인은 두 달간 이곳에서 지낼 거라는 소식과 함께 덧붙인다. "그 후에 있을 네 청혼을 다시 생각해보렴."
 
19일 개봉하는 <파라다이스 힐스>(감독 앨리스 웨딩턴)는 이상적인 여성상을 일방적인 시선으로 규정짓는 사회에 의문을 제기한다. 동시에 올바름이나 당연함은 누구에 의해 결정되는지 근본적인 질문이 담겨 있다.
 
말썽을 피운 우마, 자기 목소리로 노래를 부르겠다던 가수 아마르나(에이사 곤잘레스), 상류층의 삶에 적응하지 못한 유(아콰피나) 등은 '치료'라는 목적으로 파라다이스 힐즈라는 섬에 보내진다. 누가 보냈을까. 그들의 가족들이다. 파라다이스 힐즈에는 치료를 받으러 온 여성들이 넘친다. 시중을 드는 건 남성들이다. 
 
 영화 <파라다이스 힐스>의 한 장면.

영화 <파라다이스 힐스>의 한 장면. ⓒ (주)올스타엔터테인먼트


특정 공간이 너무 매혹적이면 오히려 낯설어 의심을 불러온다. 대학에서 광고를 공부한 웨딩턴 감독은 미술과 의상으로 기시감을 조절할 줄 안다. 섬 야외에는 싱그러운 식물들이 넘치고 건물 안에는 특급 호텔을 연상케 하는 분홍빛 벽지와 커튼에 둘러싸인 침대가 있다. 영화 제목 그대로 낙원을 옮겨 온 것만 같다.

그런데 여성들은 중세 시절을 떠오르게 하는 코르셋으로 조인 흰 드레스를 입고 반복적인 스케줄을 소화해야 한다. 자연스럽게 여성성을 연상케 하는 공간에 갇힌 여성들을 떠올리게 되며 파라다이스라고 이름 붙여진 이 낙원에서는 불안함이 감지된다.
 
웨딩턴 감독이 여성의 결혼을 신분 상승의 요소로 여긴 일부 계층에 의문을 제기한다. 그럴 때 여성들에게 선택할 자유는 사라진다. 그저 상대방에게 맞춤형 인간으로 전락하고 만다. 최첨단 시대와 중세 시대를 섞어놓은 영화 속 시대 배경은 그래서 의미심장하다. 시대는 변해도 여성들을 향한 태도는 여전히 과거에 머물러 있다는 시각을 전하는 것 같다. 이 영화가 여성 감독이 연출하고 주인공이 모두 여성인 것은 이와 무관하지 않을 것이다.
 
다만 영화는 평면적으로 그려진다. 대다수의 캐릭터가 말(言)의 힘에만 기대다 보니 캐릭터는 많은데 누구 하나 구체적으로 보이지 않는다. 사건의 인과관계를 설명하거나 그 인물을 입체적으로 보일 수 있는 장면이 목마른 이유다. 94분. 15세 관람가.
덧붙이는 글 이 기사는 브런치에도 실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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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직 문화부 기자. 팩트만 틀리지 말자. kjlf2001@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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