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월 25일 <도망친 여자> 기자회견에 참석한 홍상수 감독

지난 2월 25일 <도망친 여자> 기자회견에 참석한 홍상수 감독 ⓒ 베를린영화제

 
"영화에 참여한 모두에게 감사드립니다. 영화제와 심사위원들에게도요. 허락된다면, 배우들이 일어나 박수를 받았으면 좋겠네요. 감사합니다."

이게 전부였다. 프랑스를 필두로 전 세계 예술영화 관객들에게 사랑 받는 거장 감독의 수상 소감은. 자신의 영화 속 징징대고 매달리는 '한국 남자' 캐릭터들과는 사뭇 다르게 '쿨'하기 그지없었다. 3대 국제영화제에서의 첫 감독상 수상이란 수식이 무색할 정도였다.

지난 2월 29일(현지 시각) 폐막한 제70회 베를린국제영화제에서 24번째 장편영화 <도망친 여자>로 은곰상(감독상)을 수상한 홍상수 감독의 수상 장면을 뒤늦게나마 유튜브로 접했다. 수상 직후 <도망친 여자>를 "미니멀리즘적 묘사"라 소개한 베를린영화제 측 설명과 닮아 있는 '미니멀'한 소감이라 할 만했다.

개인적으론, 그의 이번 수상 자체가 뒤늦은 감이 없지 않았다. 1998년 두 번째 작품인 <강원도의 힘>이 칸 영화제 '주목할 만한 시선'에 특별 언급된 이래, 홍 감독은 3대 국제영화제인 칸과 베니스, 베를린영화제 본선 경쟁 부문에 모두 진출한 유일한 한국 감독이다. 이후 2010년 <하하하>로 칸 영화제 '주목할 만한 시선상'에 이어 2017년 <밤의 해변에서 혼자>로 김민희가 베를린 영화제 은곰상(여자연기자상)을 수상한 바 있다. 

게으른 탓에, <기생충> 봉준호 감독의 '오스카 4관왕'에 이은 한국영화의 이 반가운 낭보를 접하고 난 뒤 뒤늦게야 홍 감독의 수상 장면과 수상직후 이어진 기자회견 영상을 챙겨봤다. 수상 소감도 소감이었거니와, 통역을 합쳐 6분 남짓한 짧은 시간 동안 기자회견에 임하는 홍 감독의 자세 역시 무덤덤하단 표현이 제격이었다.

질문하는 기자는 자꾸만 '큰 그림'을 묻는데, 홍 감독은 담담한 어조로 거듭 "작은 세계", "작은 것"을 강조하는 모습도 흥미로웠다. 1995년 <돼지가 우물에 빠진 날>로 데뷔한 홍 감독의 작품 세계에 친숙한 관객이라면, "여성 주인공들의 결혼 안팎을 둘러싼 작은 이야기들이 먼저냐, 미투나 여성 운동 등 글로벌한 움직임을 반영한 것이냐"는 취지의 외신 기자 질문에 미소를 머금을 만했다.

물론 홍 감독은 조곤조곤 친절하게 자신의 작업 방식을 설명했다. 배우와 스태프들에게 촬영 당일 아침에야 해당 장면에 대한 시나리오를 전달하기로 유명한 홍 감독 특유의 작업 방식을 알고 있는 관객들이라면 이미 친숙한 바로 그 작업 방식을 말이다. 그럼에도 홍 감독은 "먼저 시작하기로 마음을 먹는다"라고 운을 뗀 뒤 그의 팬이라면, 또 '홍상수 월드'에 입문하는 외국관객이라면 눈여겨 볼만한 창작의 비밀을 털어 놓고 있었다.

"마음에 드는 장소나 배우가 있다면 일주일 뒤, 한 달 뒤 촬영하기로 결정합니다. 그리고 그 공간이나 배우들을 다시 만나고, 그 공간을 돌아다녀요. 그러다 촬영 일주일 전, 며칠전에 첫 장면이나 시퀀스를 생각해 내야하는 거죠. 그때부턴 스스로를 믿을 수밖에 없어요. 장면을 연구하고 시나리오를 쓰는 걸로부터 시작해서 며칠이 지나면 전체 구조가 떠오릅니다. 그렇게 엔딩까지 갑니다."

눈 뜨고 볼 수 없었던 연예매체 보도들

그리고 8일 YTN이 드물게도 <홍상수도 전한 '낭보'... "장르 영화 가능성 알렸다">라는 홍 감독의 작품 세계를 조명하는 기사를 내보냈다. 역시나 뒤늦은 감이 없지 않은 보도지만 눈여겨 볼 만했다. 그런데 내용은 아쉬웠다. 특히 기사의 1/3을 채운 배우 김민희와의 '사생활 문제' 언급은 더더욱. 

물론 앞서 일주일간 이어진 연예매체들의 보도는 한 술 더 떴다. 그 중 최악은 최근 신작 <나는 고발한다>로 프랑스 세자르 영화상 감독상을 수상한 로만 폴란스키 감독과의 비교였다. 수상 소식과 함께 평론가들의 평가를 곁들인 <사생활 논란에도 굳건… 세계가 보는 홍상수 영화의 가치는>란 2일 <국민일보> 보도는 양반이었다. 제목엔 구태여 "사생활 논란"이란 표현을 등장시켰지만 기사의 대부분을 작품에 대한 평가나 수상의 배경 등에 할애했기 때문이다.

허나 주관적인 잣대로 무리한 비교를 일삼은 기사도 적지 않았다. 그 중 아래 두 기사는 눈에 띌 수밖에 없었다.
 
 홍상수 감독과 로만 폴란스키 감독의 수상 소식을 비교해 전하는 <[시네마Y] 작품과 윤리는 별개?…홍상수X폴란스키, 논란의 수상> 보도 화면

홍상수 감독과 로만 폴란스키 감독의 수상 소식을 비교해 전하는 <[시네마Y] 작품과 윤리는 별개?…홍상수X폴란스키, 논란의 수상> 보도 화면 ⓒ SBS연예뉴스

 
"홍상수 감독과 로만 폴란스키 감독이 각각 독일과 프랑스에서 감독상을 수상하며 '뜨거운 감자'가 됐다. 물론 두 감독의 수상에 대해 같은 잣대로 판단하는 것은 무리가 있다. 홍상수 감독이 개인 사생활이라는 윤리적인 문제라면 폴란스키 감독은 도덕성 뿐만 아니라 법적으로도 문제가 있는 경우기 때문이다." (2일 SBSfun2, <작품과 윤리는 별개?…홍상수X폴란스키, 논란의 수상>

"올해 세자르영화제 감독상은 '나는 고발한다(J'accuse·영문 '장교와 스파이(An Officer and a Spy)')'로만 폴란스키 감독이 받았고, 베를린영화제 감독상은 '도망친 여자' 홍상수 감독이 차지했다. 로만 폴란스키 감독은 소아성애자로, 홍상수 감독은 현재 진행형 불륜으로 불쾌한 사생활이 알려진 인물들. '작품에 도덕적 잣대를 들이대면 안 된다'는 이유로 선택된 이들은 수상을 하고도 축하받지 못하는 냉담한 현실과 마주하고 있다(중략).

홍상수 감독의 행보는 이변없이, 예외없이 국내에서 외면 당하고 있다. 김민희와의 불륜 인정 후 해외 활동에만 주력하고 있는 홍상수 감독은 세계 3대 영화제라 꼽히는 영화제에서 감독상을 수상했음에도 '낭보'라 표현하기 찝찝한 것이 사실. 국내 영화팬들은 물론 네티즌들은 '어쩌라고' '안물안궁' '제발 홍상수·김민희 뉴스 좀 눈에 안 보였으면' '돌아오지마' 등 반응을 쏟아내고 있다." (2일 <일간스포츠>, <세자르 성범죄·베를린 불륜 감독 '수상' 유럽영화제 반감↑>)


로만 폴란스키 감독의 수상 결과는 문제적이란 평가가 지배적이다. 또 시상식 당시 성폭력 피해자로 알려진 프랑스 배우 아델 에넬이 폴란스키 감독의 수상 결과를 접하고 시상식장을 박차고 나간 것이 세계 언론의 주목을 받기도 했다. 

그럼에도 폴란스키 감독과 홍 감독의 수상을 직렬 비교하는 것이 과연 온당할까. 이렇듯 '대중'이란 지극히 추상적인 개념을 무기 삼아 주관적인 관점을 '논란'으로 승화시킨 보도를 어떻게 봐야할까. 더불어 일부 연예 매체의 베를린 영화제 폐막식 보도도 눈에 띌 만했다.

모욕적이고 인신공격성인 댓글의 난무

객석에 나란히 앉았던 홍 감독과 김민희가 은곰상 발표 직후 가벼운 포옹을 한 것을 두고 "포옹 포착"부터 "격렬한 포옹"이란 제목이 붙은 기사들이 쏟아져나왔다. 4일 SBS <본격연예 한밤> 역시 둘의 포옹을 부각시켰다. 봉준호 감독과의 직접 비교에 이어 둘의 사생활을 "이슈"화 시키며 비난 여론을 환기시킨 언론도 다수였다.

"특히 홍 감독과 김민희는 여전한 애정을 과시하는 모습으로 이번 베를린 국제영화제에서 내내 화제를 모았다. 홍 감독은 감독상 수상자로 호명된 후 옆자리에 앉은 연인이자 페르소나인 김민희와 포옹을 나눴고 영화제 레드카펫에서 손을 잡고 걷는가 하면, 같은 반지를 착용한 모습으로 이슈를 낳았다.

두 사람은 이렇듯 사생활에 대한 비난 여론에도 계속해서 아랑곳 하지 않는 모습을 보였다. 이는 홍 감독 수상 소식 직후, 홍 감독과 김민희에 대한 비난 여론이 또 한 번 형성되는데도 영향을 미쳤다는 평가다." (2일 <뉴스1>, <홍상수도 전한 '수상 낭보'…'기생충'과 '사뭇 다른' 국내 여론> 중에서)


시선을 돌려보니, 양대 포털이 연예면 댓글 창을 없앴다고는 하지만, 차마 지면으로 옮기기 힘든 모욕적이고 인신공격성인 댓글은 어김없이 난무 중이었다. 두 사람의 사생활은 전 국민적인 '놀이'가 돼버린 듯했다. 홍 감독의 베를린 수상 영상을 시청한 뒤, 자꾸만 관련 동영상을 추천하는 '유튜브' 속 영상들이 딱 그랬다.

유튜브 상엔 듣도 보도 못한 역술인들이 "사주로 보는 홍상수와 김민희의 미래"를 들먹이고, '충격', '결별', '불륜' 등의 제목이 달린 영상들이 즐비했으며, 수 년 전부터 바로 몇 달 전까지 둘의 사생활을 선정적으로 소비하는 영상이나 과거 뉴스나 연예 프로그램 영상들이 넘쳐나고 있었다.

이러한 영상들을 소비하는 이들에게 이른바 '떡밥'을 제공한 것이 바로 수 년 간 둘의 사생활을 '장사'에 활용해온 언론들이었다고 할 수 있다. 두 사람이 공식적인 발언이나 활동을 극도로 자재했음에도 불구하고 둘의 관계가 세간에 알려진 2016년 6월 이후 둘의 일거수 일투족을 선정적으로 보도해 온 것이 바로 한국의 언론들 아니었던가(관련 기사: 식당 줄 선 홍상수-김민희 뒷모습 '찰칵'... 진정 부끄럽다 http://omn.kr/1ghsw).

김민희와 처음으로 호흡을 맞춘 <지금은맞고그때는틀리다> 이후 5년이 흐르는 사이, 홍 감독은 무려 7편의 영화를 찍으며 작품 세계를 확장해 왔지만, 이를 지켜보는 우리 언론의 행태는 '지금도 틀리고 그때도 틀리다'란 표현이 부족함이 없을 듯 보인다.
홍상수 김민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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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작업 의뢰 woodyh@hanmail.net, 전 무비스트, FLIM2.0, Korean Cinema Today, 오마이뉴스 등 취재기자, 영화 대중문화 칼럼니스트, 시나리오 작가, 각본, '4.3과 친구들 영화제' 기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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