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기생충> 흑백판 포스터.

영화 <기생충> 흑백판 포스터. ⓒ CJ ENM

 
코로나19의 지역사회 감염이 현실화하면서 선제 대응 중인 영화계도 타격을 고스란히 입고 있다. 이미 몇 달 전부터 개봉일자를 정해둔 많은 영화들이 개봉을 미루거나 관련 행사를 대폭 취소하면서 관객과의 만남 기회 역시 축소되고 있기 때문. 

지난 주말(21일부터 23일) 3일간 극장을 찾은 관객은 약 70만명. 코로나19 사태 발발 이후 최저 주말 관객수다. 38명이 사망한 메르스(중동호흡기증후군)가 한창 유행 중이던 2015년 25주차 주말 관객수가 약 210만명이었던 걸 감안하면 3분의 1로 급감한 것이다. 이런 분위기를 감지한 영화계도 저마다 선제적 대응을 이어가는 모양새다.  

일일 관객 수 8만... 자료 수집 이후 역대 최저

25일 현재 상영 중인 영화 중 박스오피스 상위권을 지키고 있는 작품은 <지푸라기라도 잡고 싶은 짐승들> < 1917 > <정직한 후보> 순이다. 영화진흥위원회 영화관입장권 통합전산망 기준 24일 월요일 하루 관객 수가 약 8만 명인데 이를 세 작품이 각각 2만, 2만, 1만 5천 순으로 나눠 가져갔다. 일일 관객 수 8만은 통합전산망이 실질적으로 전국 모든 극장의 자료를 수집하기 시작한 2011년 이후 역대 최저 수치다. 

현재 상영작들은 모두 관객 수 급감 피해를 입고 있다. <지푸라기라도 잡고 싶은 짐승들>은 19일 개봉 이후 지금까지 39만 관객이 들었다. 손익분기점인 240만에 턱 없이 부족한 수준이다. 해당 작품은 코로나19 여파를 감안해 개봉을 12일에서 일주일 미뤘지만 사태가 장기화하면서 결국 정면으로 피해를 입게 됐다. <정직한 후보>는 당초 예정일인 12일 개봉했고, 초반에 관객이 많이 몰리며 현재 손익분기점 150만에서 다소 모자른 139만을 기록 중이다. 

개봉 예정작들은 상황을 더욱 민감하게 받아들이고 있다. 확진자 수가 십수명 대였던 2월 초와 달리 현재는 하루가 멀다 하고 수십에서 백여명 이상의 확진자가 나오고 있기 때문이다. 밀폐된 공간에서 일정 시간 머물러야 하는 영화 관람 특성상 예비 관객들 역시 극장 찾기를 주저하고 있는 게 수치상으로 분명하게 확인된다. 이에 다수의 개봉 예정작들은 언론시사회를 취소하는 것은 물론 개봉일 자체를 무기한 연기하고 있다. 
 
 개봉일 연기를 결정한 <사냥의 시간>

개봉일 연기를 결정한 <사냥의 시간> ⓒ 리틀빅픽쳐스

 
26일 개봉하려던 <기생충: 흑백판>, <사냥의 시간>을 비롯해 3월 5일 개봉 예정이던 한국 독립예술영화인 <이장>, <후쿠오카>, <나는 보리>, 그리고 디즈니픽사 애니메이션 <온워드: 단 하루의 기적> 등이 이미 언론 시사회를 취소했고, 4월 중 혹은 무기한으로 개봉을 연기한다고 공지했다. 또한 3월 5일 개봉을 앞둔 <결백>은 연기 고지를 하진 않았지만 언론사 인터뷰와 시사 일정을 취소하며 연기를 논의 중이다. 이미 예매 창구가 열렸던 영화들은 부랴부랴 예매 취소를 안내하며 환불 절차를 밟고 있다.

<기생충> 관계자는 "정확히 언제 개봉할지 날짜까지 알리기엔 애매한 상황"이라며 "예매 건에 대해선 각 극장에서 양해 문자 발송 및 환불하는 식으로 대응하고 있다"고 전했다. <결백> 측 관계자는 "개봉 연기를 두고 계속 논의 중인데 일단 다음주 일정은 취소하지 않고 있다, 금주 내에 가부를 결정해야 하는 상황"이라고 알렸다.

울며 겨자 먹기로 개봉하는 영화들

언론 시사회나 외부 행사는 최대한 줄이거나 취소했지만 개봉은 예정대로 하는 영화들도 있다. 극장을 찾는 관객 수 자체가 줄어든 상황이라도 어쩔 수 없는 사정이 있는 경우다. 공포 외화 <더 보이2: 돌아온 브람스>나 할리우드 대형 직배사인 디즈니픽사의 <인비저블맨>, 그리고 국내 독립다큐멘터리 <기억의 전쟁> 등이 여기에 해당한다.  

3월 5일 개봉을 강행하는 <더 보이2: 돌아온 브람스> 측 관계자는 "영화 일 하면서 이런 난리를 겪은 건 처음"이라며 "개봉일 변경을 논의하긴 했지만 개봉하든 안 하든 위험 부담을 안고 가는 건 마찬가지라 그냥 홍보마케팅 스케줄에 맞춰 개봉하기로 했다"고 말했다.

오는 26일 개봉하는 <인비저블맨> 측 역시 "상황을 지켜보면서 논의했는데 북미 동시 개봉을 염두에 두고 진행한 일정이라 그대로 개봉하는 게 좋다고 판단했다"고 답했다.

상대적으로 예산 규모가 작은 외화들은 울며 겨자 먹기식으로 개봉을 미룰 수 없음을 호소했다. 맥튜 맥커너히 주연의 <젠틀맨>, 안락사 문제를 다룬 <빈폴> 등은 각각 26일과 27일 예정대로 개봉한다.

<젠틀맨> 홍보담당자는 "코로나 여파도 있고, <지푸라기라도 잡고 싶은 짐승들>이 1주일 연기하면서 우리 영화 역시 그 이후로 연기한 상황이었다"며 "(홍보마케팅) 예산 문제도 있고, 연기해도 여러 이슈가 생길 수 있어서 지금 상황에선 최선의 선택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독립예술영화는 더 심각
 
 영화 <이장> 관련 이미지.

영화 <이장> 관련 이미지. ⓒ 인디스토리

 
한국 독립예술영화 사정은 더욱 심각하다. 25일 기준 대구 지역 독립예술영화 전용관을 비롯해 전국 주요 독립예술 전용관이 휴관을 결정했기 때문. 서울 한국영상자료원, 아리랑시네센터, KT&G 상상마당 시네마, 부산 영화의전당, 동성아트홀, 오오극장 등이 줄줄이 휴관을 공지 중이다. 지자체와 대기업에서 운영하는 전용관을 제외하면 전체 중 절반에 가까운 전용관이 대거 문을 닫는 수순이다. 전용관 상영이 절실한 독립예술영화 입장에선 관객과 만날 기회를 잃게 된 것이다. 

27일 개봉을 강행하기로 한 <기억의 전쟁> 배급 관계자는 "3월 초 개봉이었다면 연기하는 걸 고민했겠지만 당장 이번 주 개봉이라 불가피한 면이 있었다"며 "휴관하는 극장도 있지만 상영을 확정해준 곳도 있어서 민폐를 끼칠 순 없었다, 일단 개봉은 하되 감염 예방 수칙을 철저히 지키도록 하겠다"고 전했다.

이 관계자는 "사태가 언제까지 이어질지 가늠할 수도 없고 현실적인 부분을 고민했다, 장기상영을 염두에 둬야 할 것 같다"며 "24일부터 휴관 극장이 쭉 나오는 상황이라 우려스럽긴 하다, 다음주에 영화 주인공인 탄 아주머니도 오시려 했는데 미루게 됐다"고 덧붙였다.

극장도 극장이지만 독립영화 사정상 개봉일 변경으로 추가되는 예산 집행을 감당하기 버겁다는 의견도 있었다. 이미 개봉일 고지 등에 광고집행비를 쓴 경우라면 상황은 더욱 열악했다. 3월 5일 개봉을 알렸다가 4월 말로 미룬 다큐멘터리 <밥정> 배급 관계자는 "4월로 옮기는 영화들이 많아서 그때 제대로 상영이나 할 수 있을지도 의문이다, 3월 개봉 예정 영화들이 20편이 넘는데 그들마저 엎어진다면 대란이 벌어질 것"이라며 "이미 (개봉일이 적힌) 내외벽 광고가 들어갔는데 결국 비용이 증액될 수밖에 없는 상황"이라 말했다.

<이장> 배급 관계자 역시 "관객 수가 하루에 10만도 안나오는 건 (영화일을 시작한 이래) 처음 본다"며 "예산 자체가 적기에 이런 상황에 유동적으로 대처하긴 어렵다, 배급사끼리 개봉일정 정보를 공유하곤 하는데 상반기 일정은 다 꼬였다고 보면 된다"고 전했다. 
 
 다큐멘터리 영화 <밥정>의 한 장면.

다큐멘터리 영화 <밥정>의 한 장면. ⓒ 엣나인필름

 
멀티플렉스에서 독립예술전용관까지... 전전긍긍

관객 급감을 정면으로 체감하고 있는 극장들은 자구책 마련을 고심중이다. 코로나19 유행 초기 확진자들이 다녀간 이후 해당 지점을 일시 휴점하는 등 선제적으로 대응해온 CGV는 평소에 비해 상영회차를 많게는 절반 수준으로 줄이고 있다. 

CGV 관계자는 "대구에서 확진자들이 대거 나오면서 관객 수가 확 꺼졌다, 2003년 이후 이런 일이 없었다"며 "대구 쪽은 상영회차를 극단적으로 줄였고 일반 극장도 평소보다 1회나 2회씩 줄이고 있다, 확정은 아니지만 일부 극장은 문을 닫는 것도 고려하고 있다"고 알렸다.

개봉 예정작이 대거 개봉을 미루며 영화 수급 자체가 부족한 상황에 이 관계자는 "모 배급사 대표가 전화를 걸어 호소하더라, 극장 입장에선 걸 영화가 없으니 그냥 개봉하자고 할 수 있겠지만 관객 자체가 없으니 그럴 수도 없었다"며 "기획전을 한다거나 다양한 프로그램을 고민 중이다, 다만 이 상황이 장기화 되면 극장에 와서 보는 영화와 넷플릭스 같은 OTT 플랫폼으로 보는 관람 패턴이 더욱 극단화 될까 걱정"이라고 말했다.

롯데시네마 역시 자체 행사를 미루거나 취소하는 식으로 대응 중이다. 롯데시네마 관계자는 "대구 쪽은 오후 2시부터 8시까지 운영하는 등 회차를 줄이고 있다"며 "추가로 특정 영화를 걸진 않고, 기존 상영작을 중심으로 프로그램을 짤 예정"이라 답했다

서울 인디스페이스와 아트나인은 아직 휴관을 결정하진 않았지만 상황을 지켜보며 유동적으로 대처할 전망이다. 인디스페이스 관계자는 "관객들이 GV 같은 이벤트 행사를 통해 주로 전용관을 찾는데 그런 게 불가하니 관객 수 자체가 급감하긴 했다"며 "이미 종영한 작품을 다시 틀 순 없고, 이미 상영 중이거나 개봉이 확정된 영화의 회차를 늘릴 것"이라 전했다. 아트나인 관계자 또한 "평소의 3분의 1수준으로 관객이 줄었다, 휴관하는 게 맞는 건지 고민"이라며 안타까운 심경을 밝혔다.

좋지 않은 상황이지만 대부분 영화 관계자들은 당장의 수익 보단 코로나19 사태를 우려하며 잘 해결되길 바라는 마음을 전했다. 27일 개봉을 강행하는 독립영화 <하트>의 정가영 감독은 "개봉도 개봉이지만 나라 상황이 안 좋아 우울한 기분이다, 극장을 찾아달라는 말은 못하지만 개봉은 한다는 정보 정도는 널리 퍼뜨리고 있다"며 "GV가 취소되고 있다는 게 너무도 아쉽지만 집에서라도 영화를 보실 상황이 되면 보시면 좋겠다, 속히 코로나19가 진정되었으면 한다"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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