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대한병원협회 신종코로나 비상대응실무단장을 맡고 있는 명지병원 이왕준 이사장이 페이스북에 올린 글을 동의를 얻어 싣습니다. 외과의사인 이 이사장은 2009년 신종플루 때는 대한병원협회 상황실장, 2015년 메르스 때는 대한병원협회 대책위원장을 맡는 등 신종 바이러스가 발생 때마다 대응을 해왔습니다.[편집자말]
 
국내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3차 대유행'의 확산세가 이어지는 가운데 12일 오전 서울 강서구보건소 선별진료소에서 시민들이 검사를 받기 위해 줄을 서고 있다.
 국내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3차 대유행"의 확산세가 이어지는 가운데 12일 오전 서울 강서구보건소 선별진료소에서 시민들이 검사를 받기 위해 줄을 서고 있다.
ⓒ 연합뉴스

관련사진보기

 
주말을 넘기면서 코로나19 확진 환자가 일일 발생 1000명 대를 넘기고 지역사회 감염이 전국으로 확산하면서 위기가 심화하고 있다. 현 상황에서는 곧 3단계 격상이 불가피해 보이고 이번 성탄절은 통행 금지하에 보낼 수도 있다는 불길한 예감이 현실화되고 있다.

의료역량을 넘어서는 상황에 정부 당국은 뒤늦게 당황하고 있고 여기저기에서 현 위기 상황의 타개책에 대한 문의가 빗발친다. 사실 여러모로 만시지탄의 측면이 있지만 일단 지금은 지나간 상황에 대한 자책이나 책임 공방보다는 당면한 상황을 돌파하기 위해 서로 힘을 모으고 위기 극복을 위해 같이 힘을 모아야 할 때라 생각한다.

이에 지난 먼 11개월을 코로나19 대응 일선 현장에서 그리고 각종 위원회에서 활동했던 경험에 기초해서 당면 대응 방안을 요약해 제시해 보고자 한다.

시스템 구축

현시점에서도 핵심은 병상 확보가 아니라 시스템 구축이다. 즉 환자분류와 치료(Triage & Treatment) 전략을 수정해 하향 흐름(down stream) 전략으로 가능한 중환자 치료 병상의 효율성을 높여야 한다.

이미 확보된 지방의료원의 진료 기능을 높여서 국가지정 격리병상이나 3차병원 중환자실의 환자 중 이송가능 한 환자를 아래로 내려야 한다. 그리고 지방의료원의 확진자 중 의료 처치가 필요 없는 모든 환자를 즉시 생활치료센터로 이송해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곧바로 생활치료센터 수용 병상을 2만 병상으로 늘리고 확대해야 한다.

거점 전담병원 확보

대구 경북에서의 1차 유행 경험을 참조해서 당시 동산병원과 같은 역할을 할 병원을 찾아야 한다. 중환자 치료 역량이 되는 큰 병원(즉 전문인력이 되는 병원)을 최소 2개 이상 코로나19 거점 전담 병원으로 바꿔 비상 역량을 확보해야 시스템이 작동할 수 있다.

대형 민간 병원을 아무리 쪼아도 필요한 병상을 확보하기 어렵다. 왜냐하면 그러려면 이미 5월 이후 차근차근 시스템을 구축해야 했는데 우리처럼 다인실 구조의 중환자실 체제에서는 병실을 통째로 비워야 하기 때문에 구조적으로 전환이 어렵고 인력과 환자 재배치도 만만치 않다. 지금까지 이와 관련한 시험 가동을 해본 적도 없다.
 
15일 오후 대구시 중구 계명대학교 대구동산병원에서 의료진이 교대 근무를 위해 방호복을 입고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환자들이 있는 병동으로 향하고 있다. 2020.3.15
 15일 오후 대구시 중구 계명대학교 대구동산병원에서 의료진이 교대 근무를 위해 방호복을 입고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환자들이 있는 병동으로 향하고 있다. 2020.3.15
ⓒ 연합뉴스

관련사진보기

 
감염병 재난수가 신설

수가 체제를 즉각 변환하고 보상에 대한 확실한 보장을 해야 한다. 감염병 재난수가 신설과 적용을 초기부터 주장해 왔지만 지난 주말에야 2배 적용을 발표하는 복지부의 인색함을 이해하기 어렵다. 일반 중등도 이하 확진 환자 치료가 2배라면 중증 이상의 입원 환자 치료는 5배의 재난수가가 적용되어야 하고 치료를 위해 보조적으로 비우게 되는 병상에 대해서도 넉넉히 보상해 줘야 한다. 그래야 자발적 동참을 유도할 수 있다.

(심평원 관계자에 의하면 1월 이후 현재까지 코로나 확진 환자 2만 명의 총 치료비가 1000억 원에 불과했다 한다. 평균 500만 원. 코로나 진료비에 인색한 건 어리석은 정책이다. 의료 역량이 넉넉하면 사회적 봉쇄와 경제 활동을 어느 정도 더 넉넉하게 할 수 있다. 3단계로 올리면 사회적 지원금이 바로 몇 조 원이 더 나간다.)

의료 인력 민병대

공공의료인력연대(Public DNA, Public Doctors & Nueses Alliance) 즉, 의료인력 민병대를 꾸리고 예비 인력을 동원해야 한다. 민병대에는 충분한 수당을 지급해야 한다. 당장 투입하지 않아도 소정의 교육과 훈련을 하며 추가 예비인력으로 인적 자원을 유지·관리해야 한다. 향후 명예 자격증을 부여해 자긍심과 보람을 고취해 줘야 한다.
 
코로나19 방역작업 지원에 투입된 특전사 군인들이 14일 오후 서울 용산구보건소 선별진료소에서 시민들을 안내하고 있다.
 코로나19 방역작업 지원에 투입된 특전사 군인들이 14일 오후 서울 용산구보건소 선별진료소에서 시민들을 안내하고 있다.
ⓒ 권우성

관련사진보기

 
실사구시적으로 인력 차출

대학병원 및 기존 병원 역량에서 인력 차출을 유도해야 하는데 이 역시 실사구시적으로 해야 한다. 강제적 내지 강압적 방식보다는 코로나19 환자 부담이 적은 병원일수록 인력 차출을 설득하고 가능한 대로 중환자 치료 역량을 효율적으로 배분해야 한다. 대한중환자의학회와 긴밀히 협조해야 한다.

생활치료센터는 원격 시스템으로 관리

생활치료센터의 수용 병상을 1주일 내 1만 5천 병상 이상으로 긴급하게 확충해야 한다. 시설을 확보하는 건 어느 정도 가능하겠지만 이 역시 중앙정부가 진두지휘해서 지방정부와 역할 조정을 잘해야 한다. 더불어 인력과 운영 시스템이 문제인데 각 시설 단위를 어느 한 병원에 맡길지 연합으로 운영할지 등 기준과 매뉴얼을 시급히 통일해야 한다.

생활치료센터에 의료진을 파견하는 것은 최소화하고 원격시스템으로 효율적으로 관리해야 한다. 이미 여러 군데서 검증된 몸에 착용하는 웨어러블 디바이스(Wearable Device)나 원격 진료가 가능한 텔레메디슨(telemedicine)을 활용해야 한다.

PCR 검사 무제한으로

검사 역량을 강화해야 한다. 선별 진료소의 문턱을 없애고 PCR 검사(의심 환자의 침이나 가래 등 가검물에서 RNA를 채취해 진짜 환자의 RNA와 비교해 일정 비율 이상 일치하면 양성으로 판정하는 검사 방법)를 무제한 풀어야 한다.

긴급 항원 검사는 위양성(본래 음성이어야 할 검사 결과가 잘못되어 양성으로 나온 경우), 위음성 비율이 높을 뿐만 아니라 현장 이용상 한계가 크므로 제한된 범위에서 하면 되고 이미 갖춰진 검사 역량을 총동원해야 한다. 검사역량 강화가 추적과 격리의 핵심 고리임이 이미 검증된 K방역의 기본 전략이다.

통합 지휘본부 가동

권역별·지역별 통합 지휘본부를 가동해야만 효율성이 올라간다. 의료 전문성과 방역의 행정 시스템이 충돌하지 않도록 해야 한다. 중앙뿐만 아니라 권역별·지역별 통합 거버넌스가 실제 작동하는 곳은 많지 않다. 현장을 보건소 역량만으로 대처하는데 그치지 말고 의료 전문성을 각 단위에 참여시켜 활용해야 한다.

의사 국가고시 빨리 치러야

전공의 시험 면제 같은 황당한 발상이 아니라 당면한 의사 국가고시를 빨리 치르고 내년 의료인력 공백이 없도록 해야 한다. 인턴이 없으면 결국 대형병원의 진료 역량이 떨어질 수밖에 없고 중환자 진료는 더욱 어려워지게 된다. 자존심 싸움을 버리고 비상시기에 맞는 통 큰 지도력을 발휘해 신규 의사 인력을 확보하는 데 대승적 결단을 내리기를 촉구한다.

이번 위기는 내년 2월까지 가면 어느 정도 잠잠해지겠지만 코로나19 팬데믹은 백신이 풀려도 내년 말까지 이어지는 장기전 및 진지전이 될 수밖에 없다. 차제에 정비된 시스템과 전략을 업그레이드해서 장기전의 틀을 갖추고 끝까지 잘 버텨내는 것이 경제를 살리고 위기를 기회로 만드는 핵심 방어책이다.

이번의 위기 대응이 3차 대유행 이후 의료 시스템을 정비하는 계기가 되어야 한다. 늦었다고 생각할 때가 가장 빠를 때다. 지금이라도 올바른 상황 인식과 정확한 전략과 현실적 대응을 통해 위기 상황을 힘 모아 돌파해 가기를 기원한다.

태그:#코로나19
댓글5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모든 시민은 기자다!" 오마이뉴스 편집부의 뉴스 아이디


독자의견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