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큐멘터리 <기억의 전쟁>의 한 장면.

다큐멘터리 <기억의 전쟁>의 한 장면. ⓒ 시네마달

 
누구든 마주하고 싶지 않은 기억이 있을 것이다. 개인이든 국가든 잘못된 선택을 할 수 있고, 실수할 수 있다. 중요한 건 그것을 인정하고 사과하는 용기이지 않을까. 게다가 진심으로 사과를 바라는 상대가 손을 내민다면 더욱 외면하지 말아야 할 일이다. 오는 27일 개봉하는 다큐멘터리 영화 <기억의 전쟁>은 바로 그 용기를 내기 위한 좋은 촉매가 될 수도 있겠다.

우리가 기억하는 월남전은 이웃과 가족 누군가의 희생이자, 대한민국 경제 부흥의 디딤돌이기 마련이었다. 물론 그게 전부는 아니다. 참전군인은 곧 베트남 국민 누군가에겐 가해자였고, 나아가 민간인 학살의 주범이기도 했다. <기억의 전쟁>이 특별한 건 그 사실에 마냥 기대지 않고, 피해자의 기억과 그들을 바라보는 이웃들의 기억을 제시하려 한다는 점이다. 그것도 여성과 장애인의 시선으로 말이다. 전쟁 피해자와 그 이웃들이 서로의 기억을 털어놓는 과정을 담은 영화는 참전군인, 나아가 한국 사회에 베트남 파병에 대한 질문을 던진다. 

자전적 다큐, 그러니까 청각장애가 있는 부모와 자신의 이야기를 담은 <반짝이는 박수 소리>(2015)로 데뷔한 이길보라 감독은 "전쟁의 참혹함이나 진실을 파헤치자는 게 아니라 어떻게 그것을 기억할 것인가를 묻고 싶었다"며 취지를 분명히 말했다. 거기에 공감한 스태프들이 하나둘 뭉쳤고, 공교롭게 감독과 프로듀서, 대부분의 스태프가 여성이었다. 개봉을 며칠 앞두고 서울 연남동 인근에서 이길보라 감독과 조소나 프로듀서를 만나 이야기를 더 들을 수 있었다. 

남성의 기억에 갇혀 있는 전쟁
 
 다큐멘터리 <기억의 전쟁> 이길보라 감독(우)과 조소나 피디(좌).

다큐멘터리 <기억의 전쟁> 이길보라 감독(우)과 조소나 피디(좌). ⓒ 시네마달


"열여덟 살 때 베트남 여행을 다녀왔는데 그 얘길 들은 할아버지가 당신께서도 다낭에 갔던 적이 있다더라. 참전군인이셨는데 고엽제 후유증으로 투병하다 돌아가셨다. 베트남에 갔다는 말씀만 하시고 다른 얘길 잘 안 하셨다. 그러다 20대가 되면서 민간인 학살 사실을 알게 됐고, 다시 베트남을 찾았다. 왜 나의 기억과 할아버지의 기억이 다를까 생각하면서." (이길보라 감독)

한베평화재단에서 주최한 '베트남 평화기행'에 참여하면서 이길보라 감독은 응우옌 티 탄을 만났고, 참전군인 손녀인 자신에게 밥을 권하는 그의 모습을 보며 뭔가를 해야겠다 다짐한다. 현지 스태프에게 청각장애가 있는 딘 껌을 소개받고, 전쟁 2세대인 응우옌 럽을 알게 되며 영화의 골격이 만들어진 것. 감독의 부모가 청각장애인이기에 현지 관계자들보다 더욱 이들의 언어를 잘 이해할 수 있었다고 한다. 

"대부분의 영화에선 확실한 이야기를 할 수 있는 주인공이 필요한데 굳이 전쟁의 참혹함을 보이는 이미지는 쓰고 싶지 않았다. 다양한 기억과 전쟁에 대한 태도를 보이고 싶었지. 그런 면에서 그 세 분이 주인공이 된 것이다. 영화를 만들기까지 여러 동기가 있지만 할머니의 말씀도 컸다. 베트남전을 물어봤을 때 할머니는 '전쟁? 그건 할아버지 같은 남자들이나 잘 알지'라고 하셨는데 그게 굉장히 이상하다고 생각했다. 할아버지가 나가셨을 때 가족을 다 챙긴 건 할머니인데 왜 말할 수 없다고 하시지? 여성은 왜 한마디도 할 수 없다고 생각하는 거지? 싶었다. 전 할머니도 그 전쟁에 참전했다고 생각한다." (이길보라 감독)

"영화 후반부에 시민평화협정 장면이 있다. 그 누구도 응우옌 티 탄 아주머니가 참전군인에게 사과하라는 말을 꺼낼 걸 예상하지 않았는데 심하게 몸을 떠시면서도 그 말씀을 하시더라. 그 모습을 보며 전 많이 울었다. 솔직히 제가 전쟁을 수행한 군인은 아니었지만 그런 역사적 사실을 접하며 말할 수 없는 죄책감을 느꼈거든. 내가 한 게 아닌데도 이런 감정이 드는 건 왜일까 생각했는데 탄 아주머니께서 사과를 얘기하는 순간 가해국, 피해국을 떠나 오롯이 우뚝 선 여성의 모습을 봤다. 그때 오히려 저만의 죄의식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조소나 피디)


사과하는 것도 용기가 있어야 하지만 사과를 요구하는 건 보다 더 큰 용기를 필요로 하지 않을까. 화해와 치유를 위한 일말의 가능성을 상징하기 때문이다. 참전군인의 눈을 똑바로 보지 못하고 벌벌 떨면서도 용서를 구했으면 좋겠다고 말하는 응우옌 티 탄의 모습에서 이길보라 감독 역시 놀랐다고 고백했다.  

대부분의 사회적 비극이 그렇듯 같은 공간 안에서도 사람들의 생각은 갈리곤 한다. <기억의 전쟁> 속 베트남 사람들도 마찬가지다. 이제 그만 잊자며 체념하는 이부터 분노와 한을 품은 이들까지 저마다의 속내를 전한다. 

"우리 사회를 봐도 그런 반응은 당연한 것 같다. 누군가는 잊지 말자고 하고 누군가는 그만하자고 하잖나. 심지어 베트남은 전쟁터였다. 당연히 전후 마을 사람들의 생각이 갈릴 수 있지. 그게 혼란스럽진 않았고, 오히려 그런 상황에서 용기를 내는 탄 아주머니가 대단하다고 느꼈다." (조소나 피디)

"약 5년간 이 영화를 준비하는 사이 베트남 다낭이 엄청난 관광지가 됐잖나. 그곳에서 택시 타고 20분만 가면 나오는 마을이 바로 피해자들이 사는 곳이다. 그게 참 아이러니했다. 두 곳의 온도차, 그리고 하노이와 호치민과의 온도차가 너무 다르더라. 도시만 가도 정규 교육을 받은 사람들이 한국군의 민간인 학살 사실을 잘 모르더라. 박항서 감독은 알면서도. (중략) 그렇게 상충하고 부딪히는 사실을 보며 정말 우리가 기억의 전쟁을 하고 있다는 걸 느꼈다." (이길보라 감독)


한국에서 다큐멘터리를 한다는 것
 
 다큐멘터리 영화 <기억의 전쟁> 관련 사진.

다큐멘터리 영화 <기억의 전쟁> 관련 사진. ⓒ 시네마달

 
두 사람 모두 <기억의 전쟁>으로 다양한 질문과 대화, 논쟁이 시작되길 기대하고 있었다. 그 기대는 제작과정에 고스란히 묻어 있다. 23회 부산국제영화제에서 상영되기 직전까지 이 영화로 무엇을 이루고 싶은지 스스로 물어보며 편집 방향을 잡아갔다고 한다. 한국예술종합학교에서 영화를 공부한 후 암스테르담에서 공부를 이어 갔고, 스태프들과 소통도 이메일 등으로 해야 했다. 현지 취재를 담당한 서새롬 피디, 소통과 제작 환경 조성을 담당한 조소나 피디 등과 손발을 맞추면서 지금의 구성이 나올 수 있었다. 

"개인적으로 이 영화는 감독이 새로운 시도를 했다고 본다. 꽤 도전적인 작품이라고 생각한다. 전쟁이라는 주제가 광범위한데 여성의 시선으로 어떻게 해석할 것인가 내심 궁금하기도 했다. 처음 촬영본을 봤을 때 모든 장면이 다 좋은 건 아니었어도 빛나는 지점들이 있었다. 그래서 감독과 함께 할 수 있겠다 생각했다."

유년 시절부터 예능보다 다큐멘터리를 즐겨봤다는, 뼛속까지 다큐멘터리스트인 감독과 7년째 해외와 국내 마켓을 돌며 한국 다큐멘터리 시스템을 고민해 온 프로듀서의 만남은 현재까지 얼어붙어 있는 국내 다큐멘터리 산업의 새로운 활력으로 작용할 수 있을 것이다. 

1990년생(이길보라 감독)과 1986년생(조소나 피디)는 국내를 넘어 해외 여러 다큐인들과 협업 시스템을 꾸려 가고 있다. 이길보라 감독의 차기작 역시 베를린영화제 탤런트 랩(LAB) 프로젝트로 선정돼 부문별로 세계 각국의 유능한 스태프들로 제작진을 꾸릴 가능성이 열렸다. 다큐로 지평을 넓히고 있는 두 사람은 서로 다큐를 하는 이유가 분명해 보였다.

"국내도 그렇고 해외에서도 다큐는 상업성과는 거리가 멀다. 사실 전 영화를 하겠다는 생각이 애초에 없던 사람이었다. 방송사 시험을 봐서 시사교양 피디가 되거나 언론사 시험을 봐서 기자를 하고 싶었지. 시험을 준비하다 우연히 보게 된 다큐멘터리를 보고 빠지게 됐다. 재밌더라. 극영화는 실화에 가까울수록 리얼리티(현실감)가 살았다며 좋아하는데 진짜 리얼리티를 다큐로 보여주면 사람들은 답답해한다. 그게 흥미로웠다. 제가 좋아하는 다큐들을 보면 인간이 무엇인지, 국가란 무엇인지 그런 질문을 계속 하게 한다. 다큐는 영화라는 장르 안에 특수한 위치처럼 있는데 다른 장르에 비해 저평가받는 것 같다." (조소나 피디)

"다큐를 보면서 자랐다. 고래 나오고 상어 나오는 게 재밌었고 그게 세상의 창 같은 기분이었다. 부모님이 호빵 장사하면서 집을 비울 때면 다큐를 보곤 했다. 열아홉 살 때 <로드 스쿨러>(단편으로 이길보라 감독이 돈을 모아 8개월 간 아시아 8개국을 여행한 이야기가 담겨 있다)라는 작품을 찍었을 때, 영화라는 게 3D 업종이라는 걸 뼈저리게 느꼈다(웃음). 근데 다 만들고 나니 누군가는 A로 해석하고, 다른 이는 B라고 해석하며 다양한 담론이 생기더라. 그 이후 영화를 계속 해보겠다고 생각했다." (이길보라 감독)

물론 녹록지 않다. 대부분의 독립영화인이 그렇듯 다큐멘터리 하나만으로 벌어먹고 살 수 없는 현실이다. 조소나 피디는 "그럴 때마다 서로를 의지하며 하는 것 같다"며 함께 작업하는 이들에 대한 애정을 드러냈다. 이길보라 감독은 "(네덜란드에서) 유학하면서 깨달은 건 유독 한국이 결과만 보는 것 같다는 사실이었다"며 "외국 시스템을 알고 싶어 떠난 이유도 있다"고 말했다.

"한국에서 장편 다큐멘터리도 만들어 보고 책도 써보니 예술가로서 삶의 지속성을 생각하게 됐다. 한국에선 한 영화가 끝나고 다음을 시작할 때 이전 영화가 성공했는지를 따지더라. 해외라고 해도 좋은 시스템이 존재하는 건 아니었다. 영화를 대하는 태도, 그리고 결과보단 과정을 중시하더라. 결국 다큐를 한다는 건 자신만의 질문을 던지고 답을 찾아나가는 거더라. 그 과정에서 작업1, 작업2, 작업3이 나오는 거지. 제가 지금 말은 쉽게 던지지만 이걸 체감하는 데 시간이 많이 걸렸다. 저 역시 자본주의 사회에서 태어나 자랐으니 말이다. 석사 과정에서 그런 걸 배우며 마음이 편해졌다. 제겐 지속가능성에 대한 나름의 답이기도 하다. 

<기억의 전쟁> 역시 조소나 피디와 함께 시스템을 만들어 가는 의미도 있다. 현재 독립 다큐멘터리판에서 중요한 이슈라고 생각한다. 제작하면서도 우리 각자에게 어떤 역할이 필요하고, 또 그걸 잘 맡을 것인가 얘기하며 자릴 잡아갔다. 처음엔 모든 게 모호했다. 그걸 겉으로 드러내는 게 쉽진 않잖나. 상처를 주고받기도 하면서 좋은 선례를 만들어 보자며 버텼던 거다." (이길보라 감독)
댓글3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진실과 정의를 추구하는 오마이뉴스를 후원해주세요!

후원문의 : 010-3270-3828 / 02-733-5505 (내선 0)

오마이뉴스 후원하기

오메가3같은 글을 쓰고 싶다. 될까? 결국 세상을 바꾸는 건 보통의 사람들.

  • 당신이 좋아할 만한 콘텐츠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