끝까지 백승수(남궁민 분)다웠고 끝까지 드림즈다웠다. 야구 팬들의 겨울을 책임졌던 드라마 <스토브리그>다운 마무리였다. 2018년 <여우각시별> 이후 드라마 출연이 없었던 이제훈의 특별 출연은 시청자들에게 분명 좋은 선물이 됐다. 게다가 이제훈은 단순히 얼굴만 비춘 걸로 끝난 게 아니라 남궁민과의 치열한 연기 대결 끝에 드림즈를 인수하며 마지막회의 실질적인 주역으로 활약했다. 

하지만 야구 팬들에게 가장 큰 선물은 IT 회사 PF에 인수된 드림즈 선수들의 시즌 성적이었다. <스토브리그>의 실질적인 주인공으로 불린 '갓두기' 강두기(하도권 분)는 백승수 단장과의 약속처럼 정말 20승과 함께 3패만 기록했고 은퇴 위기에 몰렸던 노장 투수 장진우(홍기준 분)는 25홀드로 화려하게 부활했다(물론 스프링캠프 때만 해도 스트라이크존에 공도 던지지 못하던 유민호가 곧바로 시즌 11승을 올린 것은 다소 의아한 부분이다).

세이버스와의 한국시리즈를 앞두고 "우리는 정규 시즌 1위 세이버스에게 상대전적에서 앞선 유일한 팀"이라는 짧지만 멋진 연설(?)로 선수들의 사기를 끌어 올린 인물은 감독도, 코치도 아닌 운영팀장 이세영이었다. 드림즈가 강팀으로 변모하기까지 백승수 단장과 함께 드림즈를 위해 물심양면으로 노력한 이세영 운영팀장은 박은빈이라는 좋은 배우를 만나 비로소 깊은 생명력을 얻었다.

만 4세부터 활동... 데뷔 23년차 베테랑(?) 배우 박은빈
 
 박은빈은 690만 관객이 선택한 영화 <은밀하게 위대하게>에 출연했지만 전혀 존재감을 보이지 못했다.

박은빈은 690만 관객이 선택한 영화 <은밀하게 위대하게>에 출연했지만 전혀 존재감을 보이지 못했다. ⓒ (주)쇼박스

 
박은빈은 만 4살이었던 1996년 아동복 모델로 데뷔해, 1998년 SBS 드라마 <백야3.98>로 배우 활동을 시작했다. 하지만 문근영, 고아성, 김유정, 김새론 등 아역 시절 이미 스타로 떠올랐던 배우들과 달리 박은빈은 아역과 청소년 배우 시절에는 크게 주목 받는 작품을 만나지 못했다.

2001년 <명성황후>에서 1대 세자빈, 2005년 <부활>에서 한지민의 아역을 연기한 박은빈은 2006년 KBS 드라마 <서울1945>에서 소유진이 연기한 문석경의 아역을 맡으며 시청자들의 눈길을 끌었다. 박은빈은 10대 어린 청소년 배우가 하기 힘든 친일 귀족 집안의 외동딸 역할을 기품 있고도 오만하게 연기했고 <서울1945>는 일본에 수출되고 현지에서 DVD 발매가 되는 등 많은 사랑을 받았다. 

박은빈의 특이한 이력 중 하나는 2009년 5월부터 11월까지 약 6개월 동안 진행했던 Mnet 예능 프로그램 <소년소녀 가요백서>였다. 소녀시대의 티파니, 카라의 한승연, 시크릿의 전효성 등 걸그룹 멤버들의 전유물이었던 여성 MC들 사이에서 박은빈은 유일하게 비가수 여성MC였다(박은빈과 함께 진행하진 않았지만 남자 MC 중에는 훗날 <별에서 온 그대>와 <해를 품은 달>을 통해 대스타로 성장하는 김수현도 있었다).

<드림하이> 마지막회에서 수지가 연기한 고혜미의 동생으로 까메오 출연하며 시즌2 주인공으로 예상됐던 박은빈은 2013년 <구암 허준>의 다희 아씨 역을 통해 지상파 주연을 차지했다. 박은빈은 20대 초반의 어린 나이에도 허준(고 김주혁 분)을 위해 온갖 고생을 마다하지 않는 헌신적인 현모양처 연기를 무난하게 소화하며 시청자들의 호평을 받았다. 하지만 <구암 허준> 역시 전광렬 주연의 <허준>에 비하면 시청률은 초라한 편이었다.

박은빈은 2013년 700만 가까운 관객을 동원한 흥행 영화 <은밀하게 위대하게>에서 윤유란(동생 윤유준 역은 최우식이 맡았다)을 연기했지만 비중이 적었고, 사도세자의 아내 혜경궁 홍씨를 연기했던 <비밀의 문> 역시 한석규, 이제훈이라는 화려한 캐스팅에도 한 자리 시청률에 허덕였다. 그렇게 대표작을 만나지 못하던 박은빈이 인생 캐릭터를 만난 것은 소속사를 옮긴 2016년이었다.

<청춘시대> 송지원 이어 <스토브리그> 이세영, 박은빈의 인생캐릭터
 
 <스토브리그>의 한 장면. 다소 소극적이엇던 이세영 팀장의 캐릭터는 선을 넘은 서영주에게 일갈을 하면서 능동적으로 변하기 시작했다.

<스토브리그>의 한 장면. 다소 소극적이엇던 이세영 팀장의 캐릭터는 선을 넘은 서영주에게 일갈을 하면서 능동적으로 변하기 시작했다. ⓒ SBS

 
박은빈은 2016년 한 집에서 사는 동년배 여학생 5명의 삶을 그린 JTBC 드라마 <청춘시대>에서 왈가닥 학보사 기자 송지원을 연기했다. 짧은 단발머리로 변신한 박은빈은 야한 농담도 서슴지 않는 유쾌하고 발랄한 송지원 캐릭터를 능청스럽게 연기하며 시청자들의 뜨거운 지지를 받았다. 물론 앞서 단아한 박은빈을 기억했던 사람들은 "저게 정말 박은빈이 맞냐?"며 경악을 금치 못했다.

이후 3년 만에 박은빈이 만년 꼴찌 야구팀의 운영팀장 역을 맡게 되리라 예상한 대중들은 거의 없었다. 박은빈은 SBS 금토드라마 <스토브리그>에서 프로야구단 드림즈의 운영팀장 이세영을 연기했다. 사실 방영 초반만 하더라도 이세영의 캐릭터를 수동적으로 보는 시선도 있었다. 백승수 단장(남궁민 분)이 내리는 파격적인 결정에 반발하다가 나중에 깊은 뜻을 알게 된 후 백단장의 의견에 수긍하는 것처럼 보였기 때문이다.

하지만 7회 엔딩에서 백승수 단장의 무릎에 술을 뿌리는 서영주(차엽 분)가 들고 있던 유리잔을 벽에 던지는 장면부터 본격적으로 이세영 팀장의 '걸크러시'가 폭발하기 시작했다. 14회에서 윤성복 감독(이얼 분)이 승부조작에 연루됐을 때는 경찰에게 증거 영상들을 보여주며 구명에 성공했고 구단 직원들 앞에서 임동규 재영입에 대한 설득도 백승수 단장 대신 직접 했다. 시청자들도 이세영 팀장의 변화와 박은빈의 열연에 뜨거운 지지를 보냈다.

박은빈은 성인 연기자가 된 후 현모양처부터 발랄한 대학생, 꼴통판사, 열혈탐정조수, 프로야구 최연소 여성 운영팀장까지 나이에 비해 다양한 캐릭터를 연기해 왔다. <스토브리그>의 이세영 팀장으로 '인생 캐릭터'를 새로 쓴 박은빈이 보여줄 앞으로의 연기가 더욱 기대된다.
 
 <스토브리그>의 한 장면. 이세영 팀장 캐릭터는 강두기를 놓치고 좌절하던 백승수 단장에게 쓴소리를 할 정도로 성장했다.

<스토브리그>의 한 장면. 이세영 팀장 캐릭터는 강두기를 놓치고 좌절하던 백승수 단장에게 쓴소리를 할 정도로 성장했다. ⓒ SBS

박은빈 스토브리그 이세영 팀장 청춘시대 송지원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