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남산의 부장들> 포스터.

영화 <남산의 부장들> 포스터. ⓒ ?쇼박스

 
"인간의 삶이 영원해지자, 사람들은 모든 것을 조심하기 시작했어. 이전의 사람들이 왜 무모하게 용기를 내고 저항했는지 알아? 모두가 죽는다는 걸 알았기 때문이야."

원종우 작가의 <나는 슈뢰딩거의 고양이로소이다>를 읽다가 정신이 번쩍 들었다. 과학기술의 발전을 통해 인류가 영원한 생명 얻은 세계를 그린 이야기에서 사람들은 차라리 접촉을 거부하고 혹시라도 있을 수 있는 위험을 피했다. 그 모습을 보면서 우리가 같이 '죽어가고' 있다는 것이 던져주는 용기를 깨달았다. 그렇다. 우리의 세상에서는 어느 것도 영원하지 않다. 영원하지 않은 것을 영원할 것이라 생각하는 순간, 우리는 서로를 경계하고 두려움으로 자신을 가두게 된다. 영화 <남산의 부장들>(2020)에서 박정희가 그런 모습이었다.

이야기는 1979년 10월 26일 직전의 40일 동안, 독재자와 그 주변의 사람들을 하나하나 농밀하게 보여준다. 우리의 역사는 여전히 그날들의 시간에 대해 논쟁을 끝내지 못했으나, 벌써 40년이 넘는 시간이 지나고 있다. 그리고 그렇게나 오랜 시간을 보냈음에도 불구하고, <남산의 부장들>에서 보이는 '겁먹은' 권력자와 주변의 인물들은 지금의 세상 어디에서도 쉽게 발견된다. 이 또한, 우리가 역사에 대한 논쟁을 끝내지 못했기 때문임을 안다. 나는 영화에서 보이는 경호실장 곽상천(차지철)과 중앙정보부장 김규평(김재규)의 대립이 일터 어딘가에서 계속 반복되던 광경이기에, 역사 속의 사건으로만 미뤄둘 수 없었다.
 
 영화 <남산의 부장들>의 스틸컷

영화 <남산의 부장들>의 스틸컷 ⓒ (주)쇼박스

 
우리 사회는 여전히 막강한 '위계'가 힘을 갖고 있다. 세상이 변했다고는 하지만, 대부분의 일터는 1970년대의 권력과 함께 태어났고 대한민국의 성장과 함께 비대해진 조직이기에, 그들이 태어날 때 조직 안에 각인된 '70년대의 시스템'에서 크게 벗어나지 못했다. 하지만, 영원할 것으로 생각했던 조직은 어느새 나이를 먹었고, 중년의 위기를 겪고 있는 그들은 언제라도 끝날 수 있다는 두려움에 생기를 잃어가고 있다. 이런 조직에는 어디에나 '겁먹은' 박정희가 있고 그를 이용하여 자신의 이익을 챙기려는 곽상천이 있다. 영화를 보는 내내, 나는 그들을 바로 내 옆의 누군가로 쉽게 치환할 수 있었다. 하지만, 김규평을 찾기는 생각보다 쉽지 않다. 결국, 나는 내 일터에서 김규평을 찾지 못했다.

"임자, 임자 뒤에는 내가 있잖아. 임자 하고 싶은 대로 해."

권력자의 두려움은 그것을 이용하여 주변을 차지하고 싶은 사람들의 먹이가 된다. 당신이 권력자라면 현실에 눈을 뜨게 하려는 자와 차라리 눈을 감아 두려움을 달래주려는 자, 둘 중 누구를 선택하겠는가? 고대 영웅들의 무용담에서는 용감하게 눈을 뜨게 함으로써 미래의 승리를 성취하게 하려는 자를 충신이라 묘사했는데, 대한민국의 현대사에서는 아직도 권력자의 눈을 가려 두려움을 잊게 하려는 자들이 쉽게 권력을 갖는다. 적어도 내 주변에선 김규평은 곧바로 저성과자라는 위협을 받게 될 것이고, 곽상천은 승진 대상으로 발탁되더라는 말이다. 계속 우리 동네 곽 실장이 권력자의 눈을 가린 채, 우리에게서 무엇을 빼앗았을지 생각이 미치자 식은땀이 흐른다.

"각하. 정치 좀 대국적으로 하십시오!" (김규평)
"각하가 국가야!" (곽상천)


권력자의 눈에 들고자 우정까지 배신한 김규평은 평생을 지켜온 자존감에 상처를 입은 채, 곽상천과의 권력 다툼에서마저 밀려나고서야 '각하'가 아니라 '국가'를 생각한다. 곽상천은 계속 '각하'를 '국가'와 동일시하며 사사건건 그와 대립하는데, 일상에서 하도 많이 부딪히는 상황이라 실소마저 나왔다. 우리는 종종 조직의 권력자와 조직을 동일시하는 오류를 범한다. 조직의 미래에 대한 논의에서마저 권력자의 의지를 최우선으로 놓음으로써, 논의 자체가 성립되지 않게 한다. 그것이 대한민국의 민주주의에 대한 것이라면 동지라도 구할 수 있겠지만, 위계로 움직이는 조직에서는 쉽지 않다. 김규평은 쉽게 사라지고 곽상천은 하루가 다르게 늘어간다.
 
 영화 '남산의 부장들'

영화 '남산의 부장들' ⓒ 쇼박스

 
1979년 10월 26일의 대한민국은 권력자를 '혁명의 반역자'로 처단했다. 성공하지 못한 혁명은 또 다른 독재자를 권좌에 앉혔고, 민주주의는 여전히 삐걱거리고 있지만 차근차근 나아가는 중이라 믿는다. 그렇다면 이젠, 여전히 민주주의와는 거리가 멀어보이는 당신의 일터로 눈을 돌려보자.

"2020년 2월 2일, 당신 주변의 곽상천은, 혹시, 김규평은 안녕하십니까? 아니, 당신은 어디에 서 있습니까?"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진실과 정의를 추구하는 오마이뉴스를 후원해주세요!

후원문의 : 010-3270-3828 / 02-733-5505 (내선 0)

오마이뉴스 후원하기
  • 당신이 좋아할 만한 콘텐츠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