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재인 대통령과 부인 김정숙 여사는 8일 '2020 문화예술인 신년인사회 및 신년음악회'에 참석했다.

문재인 대통령과 부인 김정숙 여사는 8일 '2020 문화예술인 신년인사회 및 신년음악회'에 참석했다. ⓒ 청와대

 
"아세안 국가들은 우리 한국 드라마를 정말 좋아합니다. 태국 총리는 하루 업무를 마치고 관저로 퇴근하면 한국 드라마를 보는 것이 취미라고 합니다. 매일 같이 보기 때문에 아주 옛날 드라마까지 찾아서 보고 있다고 합니다. 지금까지 본 드라마 가운데에서 <태양의 후예>가 가장(최고라고 하는데), 그분이 태국의 참모총장 출신이거든요.

베트남 총리는 베트남 국민들이 한국 드라마를 너무 좋아해서 재방, 3방 그렇게 하는데, 아주 붐비던 거리가 갑자기 한산해지면 그때가 바로 한국 드라마를 방영하는 시간이라고 합니다."


지난 8일, 서울 예술의전당 음악당에서 열린 '2020 문화예술인 신년인사회' 자리에서 문재인 대통령은 인사말을 통해 각국 정상과의 만남에서 확인한 한국 문화예술의 저력을 열거하고 있었다. 문 대통령이 소개한 이런 '열풍'은 비단 아세안에 국한된 것이 아니었다.

문 대통령은 아랍에미리트 정상회담 직후 열린 K-팝 공연에서 히잡을 쓴 현지 여성들과 청년들이 소위 우리말 '떼창'을 부를 때 느낀 감격을 전했다. 또 사우디아라비아 왕세자의 BTS 사랑이나 벨기에 브뤼셀에서 열린 아셈 회의에서 만난 유럽 정상들이 "한국이 K-팝을 잘하는 것은 그러려니 하는데, 서양 클래식 음악까지 잘하는 것이 너무나 신기한 일이다. 그 비결이 뭐냐"던 취지의 시샘(?)을 소개하기도 했다.

다행이라고나 할까. 이런 자화자찬이 전부는 아니었다. 이명박‧박근혜 정부의 문화예술인들에 대한 블랙리스트에 대해선 "다시는 그런 일이 없을 뿐만 아니라 문화예술의 자유를 최대한 보장하고 또 우리 문화예술인들의 생활 안정 그리고 또 창작을 지원하고, 복지 수준도 최대한 보장하겠다"고도 했다.

또 문화예술인들의 고용보험제 법제화 등 국회 입법 중이거나 계류 중인 문화예술인들의 지위향상 법안들을 거론하며 "문화예술인들이 생활에 대한 걱정 없이 창작활동에 전념할 수 있도록 최대한 지원하겠다"는 다짐도 잊지 않았다. 이를 실행해야 할 주무부처인 문화체육관광부에 박수를 보내면서.

물론, 문 대통령도 <기생충>의 한국영화 사상 최초 칸 황금종려상 수상과 골든글러브 외국어영화상 수상 소식도 빠뜨리지 않았다. 당연하다. 2020년 벽두, 여기저기 BTS와 봉준호 감독의 <기생충>이 언급될 수밖에 없는 현실 아닌가. 이래저래, 한국인이라면 누구나 달뜰 만한.

정작 한국인들이 놀랄 만큼 전 세계인들에게 각광받고 사랑받으며 '경제적 효과'를 창출 중인 K-팝과 K-컬처 등 이른바 '신한류'로 통칭할 이 열풍을 주무부서인 문화체육관광부(문체부)가 좌시할 리 없었다. 그런데, 최근 의아할 수밖에 없는 정책이 제시됐다. 바로 박양우 문체부 장관의 입을 통해서다.

문체부의 한류위원회
 
 박양우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이 작년 10월 7일 정부세종청사 15동 대강당에서 정부부처 최초로 열린 문체부 적극행정 실천  다짐대회에 참석해 인사말을 하고 있다.

박양우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이 작년 10월 7일 정부세종청사 15동 대강당에서 정부부처 최초로 열린 문체부 적극행정 실천 다짐대회에 참석해 인사말을 하고 있다. ⓒ 문체부

  
"21일 문체부에 따르면 문체부 장관이 위원장을 맡는 한류위원회에는 산업·외교·교육부와 방송통신위 등 관계부처 차관 등이 참여한다. 또 관련 공공기관인 한국콘텐츠진흥원, 한국국제문화교류진흥원, 한국관광공사, 코트라(대한무역투자진흥공사), 중소벤처기업진흥공단, 대중소협력재단, 보건산업진흥원, 농수산식품유통공사의 기관장이 민간을 대표해 이름을 올린다(중략).

한류위원회의 운영은 '정부 한류정책 방향 정립 및 협업 총괄', '협력사업 발굴 및 정보 공유', '해외조직 활용 협업 제고', '한류 지속을 위한 인적 네트워크 강화' 등에 초점을 맞출 것으로 보인다. 특히 한국 콘텐츠가 온라인을 통해 전세계로 확산되는 환경 변화에 대한 효율적 대응책을 찾는 것이 문체부의 주요 관심사여서 한류위원회에서도 이 부분이 비중 있게 다뤄질 것으로 전망된다."


21일 <세계일보>가 1면에 단독보도한 < BTS·기생충 물결 타고 2월 '한류위원회' 뜬다 > 기사 중 일부 내용이다. 지난 13일 신년 인터뷰에서 나선 박양우 장관이 '신한류' 정책을 소개하며 "한류위원회를 구성할 것"이라고 공언한 것이다.

아니나 다를까. <기생충>과 BTS를 언급한 박 장관은 "한류 콘텐츠의 지속적인 확산과 소비재 수출, 관광산업의 파급효과 극대화를 위해 범정부적인 지원체계 구축이 시급하다"며 "기존 정책에 바탕을 둔 신한류 정책을 강력하게 추진하겠다. K팝과 더불어 문학, 미술 등 문화 전반을 발전시키고 태권도를 비롯한 체육 분야 한류에도 공격적으로 투자하겠다"고 밝혔다.

해당 기사에 따르면, 이를 위해 문체부는 차관이 이끄는 실무협의체 회의를 수시로 열고, 문체부 국장이 단장을 맡아 실무를 뒷받침하는 한류추진단도 구성한다고 한다. 문체부가 밝힌 올해 예산은 '콘텐츠 수출 유망기업 대상 통합지원' 10억 원, '콘텐츠 특화 번역인력 양성 추진' 8억 원, '온라인 해외홍보 지원' 31억9000만원 등이다.

놀랍진 않다. 이미 지난 2일 박 장관이 내놓은 신년사에서도 이런 분위기는 감지됐던 바다. 박 장관은 "국제적으로 중요한 일들이 이어진다"며 2020년 도쿄 올림픽 등을 비롯한 대형 이벤트에 주목했다. 한 언론은 이 신년사에서 가장 많이 사용한 단어가 '역대 최고'라 꼬집을 정도였다.

"국민 여러분을 위한 '불쏘시개', 부지깽이'" 등의 표현으로 '국민'을 소환한 박 장관도 "현장과의 더욱 적극적인 소통"을 언급하긴 했다. 그러나 구체적인 실행 방안은 전무했다. 이와 관련해 박 장관이 언급한 내용은 "공정한 문화 생태계 조성, 우리말의 보존과 확산, 한류의 범정부적 진흥 체계 구축, 문화·체육·관광 분야를 통한 일자리 마련 등의 과제들이 가시적인 성과로 나타나도록 매진하겠다"는 전부였다.

아직 출범도 안 한 '한류위원회'에 재를 뿌릴 생각은 없다. 하지만 문체부와 박 장관이 과연 <기생충>과 BTS 열풍이 어디서 연원했는지, 그런 본질을 고민하지 않은 과거 정부의 한류 정책이 어땠는지를 고려했는지는 질문할 수 있고, 또 반드시 질문해야 할 것 같다. '한류위원회' 구상에서 엿보이는 '규모'와 '산업'에의 경도 때문이다. 그 정반대의 답은, BTS와 <기생충>의 어제와 오늘에 이미 제시돼 있었다.  

BTS의 경우
 
 빅히트 엔터테인먼트 방시혁 대표가 서울대학교 졸업식에서 축사를 하고 있다.

빅히트 엔터테인먼트 방시혁 대표가 서울대학교 졸업식에서 축사를 하고 있다. ⓒ 서울대학교

 
"우리 회사가 하는 일이 사회에 좋은 영향을 끼치고, 특히 우리의 고객인 젊은 친구들이 자신만의 세계관을 형성하는 데 긍정적인 영향을 주는 것. 음악 산업의 패러다임을 변화시킴으로써 음악 산업을 발전시키고 종사자들의 삶의 질을 개선하는 데 기여하는 것."

작년 2월, 서울대학교 졸업식에서 방시혁 빅히트 엔터테인먼트 대표가 낭독한 축사는 1년이 지난 지금도 그 의미가 퇴색하지 않았을 만큼 오래오래 기억에 남을 만했다. 방 대표가 제시한 사뭇 감동적인 행복론과 방탄소년단(BTS)의 선한 영향력 말이다. 그와 함께 방 대표가 염려했던 한국의 문화/엔터테이먼트 산업전반과 종사자/창작자들이 처한 현실은 과연 얼마나 달라졌을까.

"작곡가로 시작해 음악 산업에 종사한 지 21년째인데, 음악이 좋아서 이 업에 뛰어든 동료와 후배들은 여전히 현실에 좌절하고 힘들어합니다. 음악 산업이 안고 있는 악습들, 불공정 거래 관행, 그리고 사회적 저평가. 그로 인해, 업계 종사자들은 어디 가서 음악 산업에 종사한다고 이야기하길 부끄러워합니다. 많은 젊은이들이 여전히 음악 회사를 일은 많이 시키면서 보상은 적게 주는 곳으로 인식하고 있습니다."

BTS와 K-팝 열풍의 지속을 위해 정부가 해야 할 일이 무엇일까. 그 답을 제시한 것이 바로 방 대표의 축사라 할 수 있다. 바로 기본, 즉 창작자와 산업 종사자들이 좋은 콘텐츠를, 예술을 생산해낼 수 있는 환경을 지속시키기 위한 지원과 제도 개선 말이다.

BTS를 배출한 음악 산업을 예로 들어 볼까. 이미 수년 전부터 제기됐지만 문체부가 "판단이 어렵다"며 손을 놓고 있는 음원사재기 문제는 어떤가. 그 아이돌 산업의 이면인 노예계약이나 10대 연습생들의 노동권 문제는 또 어떤가. 설리와 구하라를 안타까운 선택으로 몰고 간 산업적 요인들에 대해 문체부는 무엇을 할 수 있을지 왜 고민하지 않는가.
 
봉준호의 20년
 
 19일(현지시간) 제26회 SAG 어워즈(미국 영화배우조합) 시상식에서 작품상에 해당하는 '아웃스탠딩 퍼포먼스 바이 캐스트 인 모션픽처'( outstanding performance by a cast in a motion picture) 상을 수상한 송강호와 출연 배우들, 봉준호 감독이 트로피를 들고 기뻐하고 있다.

19일(현지시간) 제26회 SAG 어워즈(미국 영화배우조합) 시상식에서 작품상에 해당하는 '아웃스탠딩 퍼포먼스 바이 캐스트 인 모션픽처'( outstanding performance by a cast in a motion picture) 상을 수상한 송강호와 출연 배우들, 봉준호 감독이 트로피를 들고 기뻐하고 있다. ⓒ neon

 
<기생충>의 경우, 2000년 <플란더스의 개>로 데뷔한 봉준호 감독의 20년을 돌아볼 필요가 있다. 데뷔작의 흥행 참패에 이은 <살인의 추억>의 성공은 작금의 스크린독과점의 배급 환경에선 불가능했을지 모른다. 또 봉 감독이 졸업한 한국영화아카데미 출신들이, 또 다른 '봉준호의 후배'들이 봉 감독이 데뷔했던 2000년대와 같은 창작 환경을 누리기는 요원해졌다.

봉 감독이 <기생충>의 시나리오에 참여한 <철원기행>, <초행>의 김대환 감독을, 한국의 독립예술 감독들을 응원해온 이유가 무엇이겠는가. 작금의 상업영화 시스템에선 도저히 제2의 <기생충>이 나올 수 없는 상황임을 그 누구보다 인식했기 때문이요, 지속적으로 독창적인 영화들을 생산해내는 창작자들이 한국영화의 미래임을 잘 알고 있기 때문 아니겠는가. 하지만 그 독립예술영화가 이전 정부 10년간 어떻게 고사돼왔는지를 문체부는 다 잊었나.

박근혜 정부 블랙리스트에 대해 본인 역시 피해자였던 봉 감독은 "그 자체가 죄악"이라며 "큰 트라우마 남겼다"고 회고한 바 있다. 문체부가 단순히 "재발방지"를 약속하는데 그칠 문제가 아니다. 트라우마는 물론 물질적이고 실질적인 피해를 입은 피해자들에 대해 문체부는 어떤 제도개선을 약속했는가. 문 대통령의 공언과 달리 전임 도정환 장관 역시도 봉합에 그친 이 사안이 '한류위원회'보다 과연 덜 중요할까.

이렇게 창작자들을 위한 제도나 환경 조성의 필요성이 어디 영화나 음악 산업만의 문제일까. 연극과 미술, 공연이라고 다를까. 무엇보다 이명박 정부도, 박근혜 정부도 한류를, K-컬처를, 문화융성을 외쳐왔다. 이명박 정부는 심지어 영부인까지 나서 한식의 세계화로 세금을 낭비했다. 최순실씨가 진두지휘했고 예산까지 전용한 박근혜 정부의 창조경제 역시 '한류!', 'K-팝', 'K-컬처'를 외쳐왔다.

그 10년 간 실제 한류에 기여한 정부의, 문체부의 정책 중 기억나는 것이 있는가. 그 반대로 대통령이, 문체부 장관이 유명 연예인이나 해외 K-팝 공연장에서 찍은 사진이 먼저 떠오르지 않는가. '한류위원회'는 그런 과거 정책이나 홍보성 행사들을 반복하지 않기 위한 철저한 고심의 산물인가.

투자배급사 CJ가 <기생충>의 '오스카 레이스'에 들인 돈이 100억 이상이라고 한다. 어쩌면 연일 쏟아져 나오는 미국발 기사와 전 세계인이 환호하는 '기생충' 신드롬 역시 대기업의 자본 없이는 불가능했을지 모를 일이다. 작금의 대중문화 콘텐츠는, 문화예술은 이렇게 산업과의 긴밀한 연계를 통해 이뤄질 수밖에 없다.

박근혜 정부 당시 '한류경제학을 실현한 CJ의 글로벌 창조경제 모델'이란 낮뜨거운 홍보를 일삼았던 CJ가 블랙리스트로 피해를 입었다는 사실은 아이러니 그 자체지만. 문재인 정부의 문체부가 블랙리스트의 오명을 벗기 위해서라도, "문화예술인들의 생활 안정 그리고 또 창작을 지원하고, 복지 수준도 최대한 보장하겠다"던 대통령의 의지를 실제 정책으로 이행해야 하지 않겠는가. 

그렇기에 더더욱, BTS의 '강제' 해외 진출이나 <기생충>의 신드롬에 일조한 트위터나 유튜브를 문체부가 인수할 것이 아니라면, 문체부는 '한류위원회'가 과거 관 주도 정책들과 무엇이 다른지를 제대로 설명할 수 있어야 한다. 산업을 더 건강히 구축하고, 창작자들이 살아 숨 쉬게 만들며, 그리하여 단단한 문화적 토양라는 '기본'을 조성하는 것보다, 이를 바라는 현장과의 소통이나 지원, 제도 개선보다 더 중요한지와 함께.    

좀 더 시선을 넓혀, 프랑스의 어느 광장에서, 대학에서 한류의 대폭발을 실감했다는 김동춘 성공회대학교 사회과학부 교수가 23일 페이스북에 게재한 경고가 눈에 들어온 것도 같은 이치다. 드라마 <겨울연가> 이후 문체부가 관심을 기울여 온 한류를 위해 예나 지금이나 분명한 것은, 제2의 BTS를, 제2의 <기생충>을 추동하는 것도 아니요, '한류위원회' 구성과 같은 관 주도 정책은 더더욱 아니라는 사실이다. 

"그런데 (프랑스) 서점에서 본 한국은 초라하기 그지없습니다. 아시아 코너에 한국을 소개하는 책 한권 없습니다. 중국은 시장이 크니까 그렇다 치고, 역사가 오랜 일본관련 연구서적이나 대중서적은 엄청납니다. 치열한 경쟁을 뚫고 들어온 한국학과 학생들도 학년이 거듭되면 급히 감소한다고 합니다. 한류에 대한 관심을 이어줄 있는 역사, 문화, 사회과학 강좌도 책도, 그것을 강의할 강사도 없기 때문입니다.

그런데도 한국 정부나 외교부, 문화부, 교육부는 한류가 당장 '돈이 되니' 이 쪽에만 관심을 갖고 있으며, 장기적인 문화, 학문 인프라 구축에는 관심이 없어 보입니다. 국내에서 제대로된 문화, 학문정책이 없는 현상이 해외에서도 마찬가지로 나타납니다. 우선 정치권, 외교부가 바뀌어야 하고, 외교부 관료들이 변해야 합니다. 한류 거품 꺼지면 한국의 위상은 다시 과거로 되돌아갈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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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는 영화 기자, 오늘은 프리랜서 글쟁이. 살다보니 시나리오 쓰는 사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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