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츠계에는 '높은 몸값을 받는 스타 선수들일수록 욕값도 연봉에 포함되어있다'는 자조 섞인 우스갯소리가 있다. 대중의 관심을 받는 유명 선수들에게는 팬들의 질타와 비판도 어쩔 수 없이 겪어야만 하는 선수 인생의 한 부분이라는 의미다.
하지만 악의적인 인신공격, 비난을 위한 비난은 다르다. 겉보기에 부와 명예를 거머쥐며 남부러울 것 없어 보이는 스타들, 강철보다 단단해 보이는 운동선수들도 내면은 의외로 여린 사람들이 많다.

최근 농구계에서 '악플'이 다시금 뜨거운 화두가 되고 있다. 남자프로농구 귀화 선수 출신 라건아(전주 KCC)가 인종차별에 댓글을 받았던 내용을 고백하여 이슈가 된 가운데 이번에는 여자프로농구의 간판스타인 박지수(청주 KB스타즈)도 악플로 인한 고충을 직접 토로해 눈길을 끌고 있다.

박지수는 지난 20일 개인 SNS에 장문의 글을 올리며 "어렸을 적부터 표정 이야기를 많이 들었었기 때문에 저도 인지하고 고치려 노력 중이고. 일부러 무표정으로 뛰고 조금 억울해도 항의하지 않으려고 노력중"이라고 고백했다. 박지수는 아마추어 시절부터 일부 팬들로부터 경기중 표정 문제를 종종 지적받았던 것으로 알려졌다. 농구 선수들은 코트 위에서 치열한 몸싸움을 벌일 수밖에 없는데다, 박지수같은 센터들은 골밑에서 주로 경합하기 때문에 경기에 집중하다보면 일일이 표정관리를 하기 어렵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박지수는 "표정이 왜 저러냐, 무슨 일 있냐, 싸X지가 없다'등 매번 그렇게 말씀하시면 귀에 들어오지 않을 것 같으셨나요. 아니면 일부러 들으라고 하시는 건가요. 오히려 제가 물어보고 싶네요. 이렇게 몸싸움이 심한 리그에서 어떻게 웃으면서 뛸 수 있나요. 전쟁에서 웃으면서 총 쏘는 사람이 있나요"라고 반박했다.

심지어 박지수는 "매번 이 문제로 스트레스를 받았고 시즌 초 우울증 초기까지 갔었습니다. 정말 너무 힘드네요 이젠"이라고 고백하며 "이렇게 올린다고 해서 당장 뭐가 변하지 않을 것도, 논란이 될 수 있다는 것도 알아요. 그럼에도 올리는 이유는 너무 답답하고 스트레스 받아서 진짜 그만하고 싶어서요. 그냥 농구가 좋아서 하는 거고, 직업에 대한 자부심이 있는데 이제 그 이유마저 잃어버리고 포기하고 싶을 것 같아서요"라고 답답함을 토로했다.
 
 20일 경남 창원시 마산실내체육관에서 열린 여자프로농구 BNK썸-KB스타즈 경기에서 KB 박지수가 BNK 이소희와 볼을 다투다 놓치며 안타깝게 바라보고 있다.

20일 경남 창원시 마산실내체육관에서 열린 여자프로농구 BNK썸-KB스타즈 경기에서 KB 박지수가 BNK 이소희와 볼을 다투다 놓치며 안타깝게 바라보고 있다. ⓒ 연합뉴스

 
박지수의 소속팀 KB는 이날 마산실내체육관에서 열린 BNK와의 2019-2020 WKBL 정규시즌 경기에서 62대 45로 대승했다. 박지수는 15득점 13리바운드로 더블-더블 활약을 펼치치며 팀의 승리를 이끌었다. 하지만 경기가 끝난뒤 인터뷰에서도 박지수의 표정은 밝지 않았다.

경기 내내 상대의 집중견제로 힘든 표정을 지었던 박지수는 파울을 불러주지 않은 판정에 대하여 속상한 마음을 내비치기도 했다. 하지만 경기 후 일부 팬들은 그의 태도와 표정 문제를 지적하며 비난하자 결국 SNS에 자신의 심경을 토로하는 것으로 억울함을 호소했다. 또한 박지수의 고백은 단지 이번 경기에만 국한된 것이 아니라 그동안 지속적으로 자신을 괴롭히는 악플에 대한 공개적인 호소였다.

박지수가 처한 상황은 은퇴한 남자프로농구의 서장훈과 비슷하다. 서장훈도 현역 시절 독보적인 기량과 신체조건 때문에 매 경기 상대의 집중견제에 시달렸고 잦은 부상 위험에 노출되거나 심판 판정에서 불이익을 봤던 경우가 많았다. 연세대 재학 시절인 1994년 농구대잔치에는 박지수의 아버지이기도 한 박상관(전 삼성전자)의 팔꿈치 가격에 목부상을 당하며 농구인생에 회의를 느껴 은퇴까지 고민했던 일화는 유명하다.

바로 이 사건을 기점으로 서장훈도 지금의 박지수와 마찬가지로 심판 판정에 종종 불만을 토로한다거나, 경기중 무뚝뚝하고 짜증섞인 표정이 일종의 트레이드 마크가 됐다. 이런 이미지로 인하여 서장훈은 전성기 시절에는 실력에 비하여 유독 인기가 없는 선수로도 유명했다. 오히려 한때는 스포츠계에서 안티팬이 가장 많은 대표적인 비호감 선수로 꼽힐 정도였다. 선수생활 말년에 이르러서야 그간의 업적들이 재평가받았고 은퇴 이후에는 방송인으로 활발하게 활동하며 이미지가 많이 회복된 케이스다.

하지만 서장훈의 선수 시절과 비교해도 요즘 선수들이 인신공격성 악플로 당하는 스트레스와 고통은 결코 적지 않다. 과거에는 미디어가 한정적이어서 경기장만 벗어나면 선수들의 사생활이 많이 노출되지 않았고, 인터넷 댓글만 보지 않으면 굳이 악플을 신경쓸 필요가 없었다. 그런데 최근에는 미디어와 SNS가 대거 발달하면서 유명인의 경우 일거수일투족이 대중에게 노출된다. 
 
 지난 14일 인천 삼산월드체육관에서 열린 남자프로농구 인천 전자랜드 엘리펀츠와 전주 KCC 이지스의 경기. 1쿼터 KCC 라건아(왼쪽 두 번째)가 전자랜드 선수들의 압박 수비에 고전하고 있다.

지난 14일 인천 삼산월드체육관에서 열린 남자프로농구 인천 전자랜드 엘리펀츠와 전주 KCC 이지스의 경기. 1쿼터 KCC 라건아(왼쪽 두 번째)가 전자랜드 선수들의 압박 수비에 고전하고 있다. ⓒ 연합뉴스

 
어떤 팬들은 선수들의 경기중 작은 제스처나 표정, 입모양까지 꼬투리를 잡아 문제삼기도 한다. 가벼운 장난이나 풍자라면 웃고 넘길 수 있지만, 일부 악성팬들은 이를 악용하여 선수의 이미지를 왜곡하거나 악의적인 '프레임'을 만든다. 심지어 전후관계를 생략된 짧은 영상이나 사진을 근거로 경기중 무심코 넘어갔던 사소한 장면들도 다시 논란을 만들기도 한다.

또한 라건아나 박지수의 사례처럼 최근의 악플러들은 일상화된 SNS를 이용하여 악플을 당사자에게 직접 전송하기도 한다. 때로는 집단적이고 조직적인 의혹을 자아낼만한 악플 테러도 과거보다 빈번해졌다. 물론 당사자들이 직접 악플을 차단할 수는 있지만, 작게는 개인의 사생활을 위한 공간이자 넓게는 타인과의 소통을 위하여 만든 자리임에도, 끝도없이 반복되는 인신공격에 매일같이 노출되어야하는 것은 당사자들에게는 큰 상처가 될 수밖에 없다.

과거에는 이런 악플도 선수라면 참고 견뎌야할 통과의례이거나, 그저 무시하는 것이 최선이라고 여겨졌다. 하지만 이제는 분위기가 달라지고 있다. 라건아가 그간 받아온 인종차별에 대한 심경을 솔직하게 털어놓자 또 다른 외국인 선수 브랜든 브라운(KGC인삼공사), 귀화혼혈선수 출신 전태풍(서울 SK) 등이 이에 동조하며 같은 경험담을 고백하여 화제가 되었다. KBL과 각 구단에서도 선수들의 인권보호와 프로농구 응원 문화 개선 등에 대해 대응책을 고민하고 있다. 이제 악플은 더 이상 개인의 문제가 아니며 '공론화'를 통하여 구조적인 해결책을 모색해야할 시점임을 보여준다.

물론 프로선수라면 때로는 팬들의 비판을 받을 수 있고 그런 지적을 자양분 삼아 더욱 좋은 모습을 보이기 위하여 노력할 의무가 있다. 하지만 팬과 선수는 갑을관계가 아니며 상호 존중을 받아야할 관계다. 감정적으로 격해져서 한 말이라고 하지만 농구선수라는 직업에 대해 '포기'라는 단어까지 나올 정도라면 그녀가 느꼈을 심적인 고통은 얼마나 컸을지 한 번쯤 생각해봐야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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