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개 숙인 박항서 16일 오후(현지시간) 태국 방콕 라자망갈라 스타디움에서 열린 2020 아시아축구연맹(AFC) U-23 챔피언십 베트남과 북한의 조별리그 최종전에서 패배한 박항서 베트남 감독이 자리를 떠나고 있다.

▲ 고개 숙인 박항서 16일 오후(현지시간) 태국 방콕 라자망갈라 스타디움에서 열린 2020 아시아축구연맹(AFC) U-23 챔피언십 베트남과 북한의 조별리그 최종전에서 패배한 박항서 베트남 감독이 자리를 떠나고 있다. ⓒ 연합뉴스

 
'박항서 매직'이 멈췄다.

박 감독이 이끄는 베트남은 16일(한국시간) 태국 방콕의 라차망칼라 스타디움에서 벌어진 북한과의 2020 아시아축구연맹(AFC) 23세 이하(U-23) 챔피언십 D조 조별리그 최종 3차전에서 1-2로 역전패했다. 이로써 베트남은 조별리그 2무1패(승점 2)를 기록, 조 최하위로 대회를 마쳤다.

앞선 2경기에서 무득점 무승부에 그친 베트남은 이날 경기에서 반드시 이겨야 8강행을 기대할 수 있는 상황이었다. 다득점을 목표로 공격적인 경기운영에 나선 베트남은 전반 16분 띠엔린의 선제골로 앞서갔으나 10분 만에 북한 강국철의 프리킥 상황에서 골키퍼 부이띠엔중의 치명적인 펀칭 실책이 나오며 허무하게 동점을 허용했다. 팽팽한 흐름이 이어지던 후반 43분에는 북한 김광혁에게 페널티킥을 허용한 것을 리정규가 역전 결승골로 마무리하며 베트남의 마지막 희망까지 무너뜨렸다.

박항서 감독으로서는 2017년 베트남 사령탑 부임 이후 사실상 첫 좌절이다. 박 감독은 바로 2년 전 이 대회를 통하여 베트남의 국민영웅으로 부상한 바 있다. 박 감독은 약체로 꼽히던 베트남을 2018 U-23 챔피언십에서 동남아 국가로는 최초로 결승까지 이끌며 지도력을 인정받았다.

이후로 박 감독과 베트남의 동행은 기적의 연속이었다. 2018년 자카르타-팔렘방아시안게임에서는 4강에 올랐고, 같은해 성인대표팀을 이끌고 첫 참가한 스즈키컵(AFF 챔피언십)에서는 무려 10년 만에 우승을 차지했다. 박 감독 개인에게도 사령탑으로서 이뤄낸 국제대회 첫 우승이기도 했다.

기세를 이어간 2019 AFC 아시안컵에서도 '죽음의 조'를 극복하고 베트남을 8강에 올려놨고 같은해 동아시안게임(SEA)에서 또 한번 정상에 올랐다. 2022 카타르 월드컵 2차예선에서도 G조 1위를 달리며 최종예선 진출을 목전에 두고 있다.
 
 16일 오후(현지시간) 태국 방콕 라자망갈라 스타디움에서 열린 2020 아시아축구연맹(AFC) U-23 챔피언십 베트남과 북한의 조별리그 최종전. 북한 량현주와 리청규가 승리를 자축하고 있다.

16일 오후(현지시간) 태국 방콕 라자망갈라 스타디움에서 열린 2020 아시아축구연맹(AFC) U-23 챔피언십 베트남과 북한의 조별리그 최종전. 북한 량현주와 리청규가 승리를 자축하고 있다. ⓒ 연합뉴스

 
베트남은 박 감독이 지휘봉을 잡은 이후 현재진행중인 월드컵 예선을 포함하여 총 6번의 국제대회에서 우승 2회 포함 최소한 조별리그 통과 이상의 성적을 기록하는 등 선전했다. 베트남은 박 감독과 함께한 2년 동안 명실상부한 '동남아 축구의 패자'로 우뚝 섰다. 박 감독은 그 능력을 인정받아 지난해 11월 베트남축구협회와 역대 최고대우로 3년 재계약을 맺었다.

하지만 인생도 축구도 항상 오르막길만 있을수는 없는 법이다. 베트남 축구는 U-23 챔피언십에서 2년 전의 기적을 재현하지 못했다. 박 감독은 8강 진출 좌절의 책임을 온전히 자신에게 돌리며 선수들을 감쌌다.

결과는 아쉽지만 사실 박항서 감독을 탓하기는 어렵다. 박 감독은 베트남 A대표팀과 23세 이하 대표팀 감독을 겸임하고 있다. 박 감독과 마찬가지로 모리야스 하지메 감독이 두 팀을 겸임하고 있는 일본 대표팀도 이번 대회에서 조별리그 탈락의 수모를 피하지 못한데서 보듯 한 명의 감독이 두 개의 팀을 동시에 지휘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한국에서도 허정무나 고 핌 베어벡처럼 겸임 구조를 몇 차례 시도한 바가 있었으나 성공한 경우는 한 번도 없다.

박 감독은 과도한 부담을 우려하여 A대표팀에 집중하고 싶다는 의지를 피력했으나 베트남 축구협회의 강력한 만류로 계속 23세 이하 대표팀을 같이 맡게 됐다. 박 감독은 부임 이후 계속해서 월드컵 예선-스즈키컵-SEA 게임같은 각급 대회들을 쉴 틈없이 소화하느라 집중력이 분산될 수밖에 없었다. 도쿄올림픽 본선출전을 노리는 경쟁국들이 이번 U-23 챔피언십을 위하여 엄청난 투자와 시간을 들여 준비를 했던 것과 비교할 때 아무래도 격차가 날 수밖에 없었다.

현실적으로 베트남과 아시아 상위권 팀들의 수준차가 여전히 존재한다는 것도 무시할 수 없다. 베트남이 박 감독 체제에서 동남아 축구의 신흥강호로 부상했지만 여전히 피지컬-체력-경기운영-골결정력 등 모든 면에서 격차는 존재한다. UAE나 요르단같은 중동팀들을 상대로 대등한 승부를 펼치며 비긴 것만 해도 불과 3~4년 전 베트남을 생각하면 오히려 장족의 발전이라고 할수 있다. 지난 대회 준우승으로 높아진 눈높이와 달리 현실적으로 베트남은 여전히 아시아 축구의 '언더독'에 가까운 입장이었고 아직도 발전해야할 부분이 많은 팀이라는 것을 받아들여야하는 게 이번의 결과다.

다행히 박 감독이 그동안 베트남에 가져다준 성공의 여운이 아직 강한 탓에, 베트남 현지에서도 박 감독의 책임을 탓하는 분위기가 크지 않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베트남 언론들은 이번 대회 결과에 아쉬움을 표시하면서도 이제 베트남이 다시 월드컵 예선에 집중해야 한다는 목소리를 내고 있다. 때로는 이보 전진을 위한 일보 후퇴가 더 좋은 도약의 계기가 될 수도 있는 법이다. 박 감독은 결코 마법사가 아니라 축구인일 뿐이고, 그에게도 한번쯤 숨을 고를수 있는 여유는 필요하다.

한편 베트남이 탈락하면서 D조에서는 UAE와 요르단이 각각 1, 2위로 8강에 진출했다. 김학범 감독이 이끄는 한국은 C조 1위로 8강에 진출하며, 19일 D조 2위 요르단과 준결승 진출을 놓고 다투게 됐다.

이번 대회에서 동아시아 국가들은 대체로 중동과 만나면 고전을 면치 못하고 있다. 한국이 조별리그에서 이란에 거둔 유일한 1승을 제외하면 북한, 일본, 중국이 중동팀들에 거둔 성적은 1무 5패다. 한국은 동아시아 4개국 중 유일하게 8강에 살아남았다. 도쿄올림픽 개최국인 일본이 조기탈락하며 한국은 자력으로 3위 안에 들어야 9회 올림픽 본선진출을 이룰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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