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쿄 올림픽 출전 확정' 여자배구 대표팀... 2020 도쿄 올림픽 아시아 최종 예선전 (2020.1.12)

'도쿄 올림픽 출전 확정' 여자배구 대표팀... 2020 도쿄 올림픽 아시아 최종 예선전 (2020.1.12) ⓒ 국제배구연맹

 
운명의 끝장 승부. 이보다 더 어울리는 단어를 찾기 어려웠다. 이 한 경기 직후 발생하는 차이가 천당과 지옥만큼이나 엄청나기 때문이었다.

한국과 태국 여자배구 대표팀이 딱 그랬다. 두 팀은 12일 태국 나콘랏차시마에서 열린 '2020 도쿄 올림픽 아시아지역 최종 예선전(대륙별 예선전)' 결승전에서 마지막 한 장 남은 '도쿄 올림픽 출전권'을 놓고 마주했다.

결과는 한국의 세트 스코어 3-0(25-22, 25-20, 25-20) 완승이었다. 경기가 끝나자 한국과 태국 선수들은 모두가 끌어안고 폭풍 같은 눈물을 쏟아냈다.

한국 대표팀의 이다영은 어린 아이처럼 얼굴이 눈물로 범벅이 됐고, 김희진은 옷깃으로 얼굴을 가리며 하염없이 눈물을 흘렸다. 김연경은 그런 후배들을 일일이 찾아다니며 어머니의 품처럼 따뜻하게 안아줬다. 선수들의 눈물 장면에서 그동안 올림픽 티켓 획득에 얼마나 부담감이 컸고 간절했는지, 그 과정에서 얼마나 마음고생이 극심했는지 그대로 묻어났다.

태국 대표팀 선수들도 마찬가지였다. 보기 안쓰러울 정도로 폭풍 눈물을 흘렸다. 그러나 두 팀의 눈물의 의미는 극과 극으로 달랐다. 한국 선수들은 극도의 불안감 속에서 모두가 염원하는 최상의 결과를 만들어낸 '감격의 눈물'이었다. 태국 선수들은 앞으로도 오래도록 꿈의 무대인 올림픽에 갈 수 없을지 모른다는 안타까움, 그리고 당장 대표팀 은퇴에 내몰리게 된 '회한의 눈물'이었다. 결과가 반대였다면, 눈물의 의미도 정반대로 바뀔 수밖에 없는 절체절명의 한판 승부였다.

불리함과 불안감은 '간절함'을 이길 수 없었다

사실 태국과 결승전 직전까지만 해도 한국 대표팀을 향한 극도의 불안감이 엄습했다. 선수 대부분이 크고 작은 부상에 시달리면서 '부상 병동'이나 다름없었기 때문이다. 또한 태국 홈팬들의 일방적 응원이라는 불리함까지 극복해야 했다. 혹시 모를 심판진의 편파 판정도 걱정스러운 대목이었다.

객관적인 전력은 세계랭킹 9위의 한국이 14위 태국보다 다소 앞선다는 평가가 있지만, 이번 결승전처럼 중대하고 압박감이 큰 경기에서는 전력 이외의 변수로 승패가 엇갈리는 경우도 종종 발생한다. 더군다나 한국은 2018년 아시안게임부터 최근 2년 동안 주요 국제대회에서 태국에게 1승 4패로 열세였다.

그러나 어떤 불리함과 불안감도 간절함을 이길 수는 없었다. 이번 도쿄 올림픽 본선 티켓을 향햔 선수들의 간절함과 절박함은 비장감마저 들 정도였다.

김연경은 11일 준결승 대만전에서 한국이 1세트부터 패배 위기에 몰리자 복근 고통은 아랑곳하지 않고 경기에 출전하겠다며 자청을 했다. 라바라니 감독이 "선수들을 믿으라"며 말려야 할 정도였다. 그 믿음에 보답하듯, 코트에 있는 선수들은 김연경 없이 결승 진출을 일궈냈다. 귀중한 휴식을 취한 김연경은 결승전에서 양 팀 통틀어 최다 득점(22득점)을 쏟아부으며 우승을 주도했다.

종아리 부상이 심해서 대표팀 교체까지 검토할 정도였던 김희진은 11일 준결승전 맹활약 이후 더욱 투혼을 불살랐다. 그는 현지 언론과 인터뷰에서 "부상 상태가 어떻든, 태국전은 정말 중요한 경기다. 아픈 것 다 잊고 뛰겠다"고 말했다.

결승전 직후 이재영은 "태국전 당일 오전까지만 해도 허리 상태가 많이 안 좋았다. 경기를 뛸 수 있을까 걱정했다"며 "그래도 이 악물고 해보자고 생각했는데 시합 때는 안 아파서 다행이었다"고 실토했다.

그는 또 "시합 때 간절함이 있었다. 결과가 너무 좋아서 다같이 울었다"며 인터뷰 도중 왈칵 눈물을 쏟아냈다. 그는 "올림픽은 정말 꿈에 그리던 무대인데 꼭 한번 메달을 따고 싶다. (김)연경 언니 있을 때 한번 해보고 싶다"고 포부를 밝히기도 했다.

결국 여자배구 대표팀이 한국 배구의 최대 염원이었던 도쿄 올림픽 본선 티켓에 성공한 것은 서로에 대한 믿음, 반드시 해내야 한다는 간절함과 책임감으로 똘똘 뭉쳤기 때문이었다.

올림픽이 무엇이기에 영혼을 쏟아부을까
 
 '대한민국 캡틴' 김연경

'대한민국 캡틴' 김연경 ⓒ 국제배구연맹

 
사실 부상이 심각하면, 선수 보호 차원에서 출전하지 않는 게 맞다. 더 큰 부상으로 이어질 수 있기 때문이다. 대표팀을 위한 희생만을 강요해서도 안된다.

그러나 올림픽 출전권이 걸린 경기를 앞두고 선수들은 하나같이 "내 부상 상태가 어떻든 반드시 출전권을 따겠다"고 투혼을 불살랐다.

올림픽이기 때문이었다. 한국 스포츠 현실에서 올림픽 출전 여부는 해당 종목의 흥망성쇠를 좌우할 정도로 중요성이 크다. 한국의 단체 구기 종목이 올림픽 출전권을 따내기가 갈수록 하늘의 별따기처럼 어려워지면서 올림픽 출전 자체가 국민들에게 해당 종목이 세계적 수준임을 인증받는 일이 되어버렸다.

올림픽은 선수 개인과 해당 종목에 대한 국민적 인지도와 관심도를 높일 수 있는 최고의 무대다. 이는 해당 종목의 리그 흥행으로 직결되고, 리그 인기는 프로구단들이 투자에 적극적으로 돌아서면서 선수들의 연봉 인상 요인으로 작동한다.

올림픽은 선수 개인이 국가에 봉사하고 희생한다는 차원을 넘어선 지 오래다. 선수에게도 꿈의 무대이자 실질적 이익이 된다. 종목을 불문하고, 선수와 프로 리그들이 올림픽 출전권 획득에 사활을 걸고 있는 이유다.

특히 한국 여자배구는 올림픽 출전의 혜택을 가장 크게 누린 대표적인 사례라고 할 수 있다. 2012년 런던 올림픽 이전 여자배구의 위상을 돌아보면, 극명하게 알 수 있다.

여자배구 인기 급등... 2번 올림픽 진출이 '최고 발판'

런던 올림픽 이전까지만 해도 여자배구에 대한 인식은 남자배구 경기 앞에 하는 보너스 게임 정도로 인식되는 경향이 강했다. 이는 여자배구 프로구단 관계자들조차 인정하는 사실이다. 여자배구 TV 시청률이 남자배구를 앞선다는 것은 상상조차 안 되던 시절이었다.

그러나 2012년 런던 올림픽과 2016년 리우 올림픽 출전은 반전의 큰 발판이 됐다. 런던 올림픽 직전인 2011-2012시즌 V리그 정규리그 전체의 여자배구 경기당 케이블TV 평균 시청률은 0.45%에 불과했다. 2012년 런던 올림픽 이후 치러진 2012-2013시즌 V리그에서는 0.67%로 폭등했다. 바닥권인 인기를 크게 출렁이게 한 '1차 발화점'이었다. 

이후 리우 올림픽을 거치면서 0.7%대 중반으로 탄탄한 기반을 다진 후 지난 시즌부터는 역대 최고 기록을 갱신하는 폭발적 상승세가 나타나고 있다. 김연경, 양효진, 김수지 등 '황금 세대' 이후를 책임질 이재영, 이다영, 박정아, 김희진, 강소휘가 신흥 스타로 성공적으로 안착하면서 상승세가 더 두드러졌다. 또한 고교생 신인들이 프로 무대에 데뷔하자마자 대중들의 주목을 받을 정도로 좋은 활약을 펼치면서 신진 스타가 속출한 것도 인기에 기름을 붓고 있다.

급기야 올 시즌은 V리그 출범 이후 최초로 상반기 평균 시청률에서 여자배구 남자배구를 추월하는 현상까지 발생했다. 한국배구연맹(KOVO)이 지난달 27일 언론에 공개한 자료에 따르면, 상반기 '경기당 케이블TV 평균 시청률'에서 여자배구가 지난 시즌보다 대폭 상승했다. 지난 시즌 상반기는 0.8%였고, 올 시즌 상반기는 1.07%로 집계됐다. 상승률로 보면, 33.7%나 폭등했다. 그러면서 평균 시청률이 케이블TV '대박' 기준인 1%대를 돌파했다.

이제는 여자배구 시청률이 프로야구와 경쟁을 해도 TV 중계 편성에서 밀리지 않을 정도로 위상이 크게 올라갔다.

탄력 받은 여자배구... '국내 스타-국제대회' 중요성 입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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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영국

 
결국 프로 리그가 대중적 인기를 끌어올리고 유지하기 위해서는 외국인 선수 확대가 아니라, 국내 선수들 중에서 대중 스타가 끊기지 않고 계속 나와야 한다는 점을 여자배구가 여실히 증명해주고 있다.

아울러 대중의 관심과 인지도를 높이고 대중 스타를 탄생시킬 수 있는 국제대회 선전 등이 반드시 뒤따라야 한다는 점도 각인시켜주고 있다. 두 요소가 잘 이루어지 않는 프로 리그는 대부분 하락세를 면치 못했다.

여자배구 대표팀이 이번 도쿄 올림픽 출전권 획득에 성공한 것은 또 하나의 큰 성장 발판으로 작동할 것이 확실시 된다.

12일 도쿄 올림픽 아시아 예선전 한국-태국 결승전의 TV 생중계(MBN) 시청률은 전체 가구 기준으로 5.4%를 기록했다. 이날 방송된 종편과 케이블TV 프로그램 전체를 통틀어 시청률 순위 5위를 차지했다.

중계 방송사가 지상파가 아닌 데다, 경기 시간대도 오후 8시로 주말 인기 드라마, 남자축구 도쿄 올림픽 아시아 최종 예선전 한국-이란 경기 방송 시간과 겹친 점을 감안하면 실로 대단한 수치다.

여자배구 국가대표팀이 남자축구, 야구 국가대표팀과 함께 흥행 보증수표로서 위상을 입증한 것이다. 앞으로 여자배구 대표팀 중계에 더욱 탄력을 받을 수 있게 됐다.

무엇보다 여자배구 대표팀은 그런 대우를 받을 자격이 있다는 점을 스스로 국민들에게 보여주었다. 3회 연속 올림픽 출전이라는 성과도 대단하지만, 거기까지 도달하는 과정과 경기 내용도 훌륭했기 때문이다.

세계적 명장인 라바리니 감독이 한국 여자배구에 새 바람을 몰고 오며 '토털 배구를 바탕으로 하는 스피드 배구'로 대폭 업그레이드시켰다. 그러면서 도쿄 올림픽 메달 획득이 꿈이 아니라 '기대해볼 만하다'는 인식으로 바뀌고 있다.

현재 대한민국 여자배구 대표팀은 세계적 수준의 코칭 스태프, 국제대회 중요성을 잘 알고 믿음과 투혼으로 국민들에게 감동을 안겨주는 14명의 전사들이 이끌고 있다. 그들은 '위대한 명품'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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