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BS <뉴스토리> '아이를 위한 나라는 없나' 편의 한 장면

SBS <뉴스토리> '아이를 위한 나라는 없나' 편의 한 장면 ⓒ SBS

 
지난 12월 10일, 마지막 20대 정기국회가 열리던 날이다. '민식이법' 등 아이들의 이름이 붙은 십여 개의 법안 가운데 두 개가 이날 통과됐다. 이에 앞서 숨진 아이의 영정 사진을 안고 온 부모들은 국회의원 앞에 무릎 꿇고 "다른 아이들은 이런 일로 다치거나 죽어선 안 된다"며 눈물로 호소했다.

왜 숨진 아이들의 부모들은 국회의원 앞에서 무릎을 꿇어야 했으며 그 심정은 어땠을까? 28일 방송된 SBS <뉴스토리> '아이를 위한 나라는 없나' 편에서는 민식이법 등 아이들의 이름이 붙은 법안이 국회 문턱을 넘어서기까지의 과정과 아이를 잃은 고통 속에서도 법안 통과를 위해 애썼던 유가족들을 취재했다.

일상 뒤흔드는 아이 잃은 부모의 고통

인천 송도. 사고 이후 이소현씨는 아들 태호의 방을 차마 치우지 못한다. 태호가 사고 당시 입고 있었던 옷도 버리지 못한다. 사고가 난 건 지난 5월이다. 한 축구클럽 통학차량을 타고 가던 도중 운전자의 과속과 신호위반으로 교통사고가 발생, 목숨을 잃었다. 고 김태호 어머니 이소현씨는 "5월 15일 그날로 모든 게 멈춰 있다. 사고 소식을 들었던 순간, 아이가 하늘나라로 간 그 순간을 결코 잊지 못 한다"며 "아침에 눈을 뜨기가 두렵다. 아무 것도 못 하겠다. 다시 직장에 가지도 못 한다"고 하소연한다.

태호가 타고 있던 차량은 노란색 승합차였으나 법이 규정하는 어린이 통학차량 적용 대상에서 벗어나 있었다. 부모는 생업도 포기한 채 아이의 죽음을 직접 파헤쳐야 했다. 고 김태호 아버지 김장희씨는 "이건 큰 문제다. 자녀들이 탄 통학버스가 진짜 어린이 통학버스인지 알기 위해 시작한 것"이라고 말한다.

그러나 어린이가 탑승하는 모든 차량을 어린이 통학버스 대상에 포함시키자는 취지의 법안(태호·유찬이법)은 아직 국회 상임소위도 통과하지 못한 상태다. 태호의 부모는 "태호와 비슷한 사고를 당하는 아이가 없게 되면 그래도 부모로서 나중에 태호 만날 때 부끄럽지 않을 것 같다"며 결코 포기할 수 없다고 말한다.

경기도 용인시. 해인이 어머니는 거실 한쪽에 해인이가 사용해온 물건들을 수북이 쌓아두었다. 해인이가 사고를 당한 건 지난 2016년 4월의 일이다. 어린이집에서 하원하던 도중 비탈길에 미끄러진 차량에 치여 부상을 당했다. 하지만 즉각적인 응급조치가 이뤄지지 않았고, 이로 인해 해인이는 결국 숨졌다. 사고 이후 아무 것도 달라진 게 없다는 사실은 부모를 더욱 힘들게 한다. 고 이해인 어머니 고은미씨는 "저희가 피해자임에도 불구하고 사람들만 만나면 자연스럽게 고개를 숙이게 되거나, 죄 지은 것처럼 살아야 하는 현실이 너무 억울하고 답답하다"고 토로한다.

해인이가 사고를 당한 지 3년 8개월, 부모는 아이가 기억에서 잊힐까 두렵다고 말한다. 그래서 해인이의 물건에 더욱 애착을 갖는 것인지도 모른다. 13살 미만의 어린이에게 위급한 일이 발생했다고 의심할 사유가 있을 경우 응급처치를 의무화 하자는 해인이법은 현재 간신히 국회 상임소위만 통과한 상태다.

현실 정치의 높은 벽 확인, 유가족들의 분노

11월 27일, 국회 행정안전위원회 전체회의실 앞. 태호, 해인이, 민식이 등 아이를 사고로 잃은 유가족들은 복도에서 무릎을 꿇고 국회의원들을 향해 애원했다. 이들의 호소 끝에 민식이법은 행안위 전체회의를 통과한 뒤 본회의로 넘겨졌다. 그러나 이날도 태호, 해인이법안 등은 아예 논의조차 이뤄지지 않았다.
 
 SBS <뉴스토리> '아이를 위한 나라는 없나' 편의 한 장면

SBS <뉴스토리> '아이를 위한 나라는 없나' 편의 한 장면 ⓒ SBS

 
고은미씨는 "애들 이름 갖고 논의 한 번만 해달라고 부탁하는데도 국회라는 곳은 너무 냉정했다"며 "대한민국에서는 왜 우리가 발로 뛰고 부탁하며 다녀야 하는지 모르겠다. 제발 아이들 이름 갖고 장난치지 말아 달라"고 부탁했다.

11월 29일, 국회는 본회의에서 민식이법 등을 통과시킬 예정이었다. 그러나 여야의 극한 대치로 본회의가 무산되면서 어린이생명안전법안은 또 다시 상정되지 못했다. 김장희씨는 "정말 너무 한다. 이게 대한민국의 정치 현실이라니 이 나라가 정말 싫다"고 말했다. 해인이 아버지 이은철씨 역시 "지금 여기 있는 부모들이 우리 아이 살려달라고 말하는 게 아니다. 대한민국 아이들이 조금이라도 안전할 수 있게 만들어달라는 건데 그게 그렇게 힘들다"며 원망을 쏟아냈다.

결국 그날 본회의는 열리지 않았다. 고 김민식 어머니 박초희씨는 정치를 몰라 이런 대접을 받는 건 아닌지, 이렇게 양쪽에서 이용만 당하다가 버려지는 건 아닌지 우려하며 "당신들이 그렇게 하라고 해서 아이 낳고 아이들 이름을 내어준 게 아니다. 우리 아이를 이용하지 말라"고 말했다.

하준이 어머니는 본회의가 무산된 그날 이후 국회에 대한 어떠한 기대도 접었다고 말한다. 고 최하준 어머니 고유미씨는 "자식 있고 부모 있는 다 같은 사람이다. 그 마음을 믿고 무릎 꿇고 사정했는데, 국회에 있는 사람들은 우리가 아는 그런 사람이 아니었다"며 울분을 토해냈다.

4살 때 놀이공원에 갔다가 주차장에서 미끄러진 차량에 치여 목숨을 잃은 하준이. 고유미씨는 사고 이후 심한 충격 속에서 정신과 치료도 받고 이민도 생각했다고 한다. 고씨는 더 이상 같은 피해를 입는 어린이가 생겨선 안 된다며 법안 마련에 온힘을 쏟아왔다. 

민식이법 하준이법 통과됐지만

12월 10일, 민식이법이 본회의에 상정되어 마침내 법안이 통과됐다. 고 김민식 아버지 김태양씨는 "앞으로도 다치거나 사망하는 아이들이 없었으면 좋겠다"며 소회를 밝혔다. 하준이법도 그날 국회 본회의를 통과했다. 고 최하준 어머니 고유미씨는 "하준이의 이름을 이제 가슴에 묻고, 두 아이의 엄마로 평범하게 살고 싶다"며 새해엔 일상으로 돌아가기를 희망했다.
 
 SBS <뉴스토리> '아이를 위한 나라는 없나' 편의 한 장면

SBS <뉴스토리> '아이를 위한 나라는 없나' 편의 한 장면 ⓒ SBS

 
지금까지 통과된 어린이생명안전법안은 민식이법과 하준이법 등 두 개다. 국회에는 아직 해인이법, 태호·유찬이법 등 통과되지 못한 10여 개의 어린이생명안전법안들이 남아있다. 

태호·유찬이법 대표 발의자인 정의당 이정미 의원은 "부모님 가슴에 대못을 두 번 박은 느낌"이라며 "슬픔을 딛고 이렇게 발로 뛰어다니셨는데 결국은 국회가 그분들의 마음을 받아 안지를 못했다. 국회가 그분들의 상처를 한 번 더 헤집어 놓은 것 같아 너무 미안하다"고 말했다.

해당 법안들은 내년 5월, 20대 국회 임기가 종료되면 자동 폐기된다. 우리 아이들이 안전하게 뛰어 놀며 살 수 있는 환경을 바라는가. 그렇다면 이 법안들이 20대 국회가 끝나기 전 통과될 수 있도록 관심을 갖고 끝까지 지켜봐야 할 책임이 우리 모두에게 있다.

"정치는 저희와 먼 줄 알았어요. 그런데 우리 집 앞 횡단보도도 정치였고, 우리 아이 통학버스도 정치였으며, 모든 게 정치였어요. 그래서 참여라는 게 얼마나 무섭고 중요한지 알았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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