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드 VS 페라리>는 돈을 제대로 쓴 할리우드 영화다. 제작비는 9760만 달러로 1136억 원인데 100억 원만 들어가도 블록버스터로 평가되는 한국과 달리 할리우드 블록버스터는 현재 평균 제작비가 1억 달러를 넘어가고 있기에 할리우드 기준으로는 많은 돈이 들어간 편은 아니다. 또한 제작비가 많다고 해서 반드시 영화적 쾌감이 크지 않은데 반해 이 영화는 그 값을 톡톡히 한다. 10년 장롱 운전면허만 있고 페라리는 이름만 들어본 '차알못'인 나도 카 레이싱에 흠뻑 빠져들만큼 잘 찍었다. 특히 마지막 르망24시 경주 장면은 관객들에게 긴장감, 피로감, 희열을 그대로 전달한다. 이를 보는 것만으로도 티켓 값이 아깝지 않을 정도다.
 
하지만 이 영화가 단순히 카 레이싱의 생생함만을 전달했다면 잠깐 즐기는 팝콘 무비로 금세 기억에서 잊혀졌을 것이다. 영화를 보고 나서 며칠이 지나도록 계속 생각이 나고 다시 보고 싶은 마음이 드는 건 카 레이싱의 외피를 쓰고 있지만 영화 속 다양한 메시지들을 곱씹어 보게 되기 때문이다.

좋은 영화가 으레 그렇듯 이 영화도 관객들에게 다양한 해석의 여지를 주고 있으며 영화 속 메시지도 관객들에게 주입하는 것이 아닌 부드럽게 숨어있다. 따라서 흥미로운 카 레이싱 영화로 볼 수도 있고 두 남자가 역경을 이겨내며 꿈을 이뤄가는 과정으로 볼 수도 있으며 60년대 미국과 유럽의 자존심 대결로 볼 수도 있다.
  
 영화 <포드 vs 페라리>는 흥미로운 카 레이싱 영화로도 볼 수 있지만 1960년대 미국사회를 배경으로 풀어가는 다양한 사회적 메시지를 읽을 수 있다.

영화 <포드 vs 페라리>는 흥미로운 카 레이싱 영화로도 볼 수 있지만 1960년대 미국사회를 배경으로 풀어가는 다양한 사회적 메시지를 읽을 수 있다. ⓒ 폭스코리아

 
혁신의 과정에서 중요한 부분은

내게 있어 가장 흥미로웠던 부분은 혁신을 이뤄내는 과정이었다. 보통의 레이싱 영화에서 경주 장면이 중요한데 반해 이 영화는 레이싱 카를 개발하는 과정에 대부분을 할애한다. 1960년대 매출 감소에 빠진 포드 자동차는 베이비부머 세대에게 어필하기 위해 페라리와의 인수합병을 시도한다. 하지만 그 과정에서 엔초 페라리 회장에게 모욕을 당하자 돈은 얼마든지 써도 좋으니 르망 24시에서 페라리를 박살낼 차를 개발하라고 지시한다.

포드 임원진은 르망 24시의 유일한 미국 우승자 케롤 셸비(맷 데이먼)를 찾아가지만 그는 "돈으로 살 수 없는 것이 있다"라고 말하며, 켄 마일스(크리스천 베일) 역시 무한대의 돈이 있어도 200~300년 걸릴 거라고 한다. 그 이유는 포드의 경직된 시스템에 있었다. 영화에서는 이를 짧지만 인상적으로 여러 차례 보여준다. 과학적 데이터에 의존하고 여러 단계의 절차를 거쳐 결재 서류가 올라가는 장면으로.
 
이 과정에서 안정적인 결과물이 반복적으로 나올 수는 있지만 혁신은 나오지 않는다. 아이슈타인은 "똑같은 행동을 반복하면서 다른 결과를 기대하는 것은 미친 짓(insanity)"이라고 했다. 캐롤 셸비와 켄 마일스는 포드 시스템을 "싹 다 바꿔버리"면서 혁신을 이뤄낸다. 사무실에 앉아 데이터에 의존하는 게 아니라 경주장에서 수 백 번의 실제 실험을 하면서 조금씩 고쳐 나간다. 여러 단계의 행정 절차에서 현장의 의견이 왜곡되는 현상을 막기 위해 포드 회장으로부터 전권을 위임받는다. 케롤 셸비는 포드 회장에게 레이싱 체험을 제공한 뒤 경주에서 이기기 위해 무엇보다 중요한 건 '370km 차를 운전하는 사람'이라고 한다. 아무리 좋은 서류가 만들어지고, 그럴듯한 행정 절차가 이뤄져도 제일 중요한 건 현장에서 직접 결과물을 만들어내는 사람이다.
 
불가능해 보이는 상황에서 놀라운 변화를 만들어낸 공통 원리를 탐구한 <스위치>(칩 히스, 댄 히스 저)에서는 1990년 베트남 아동들의 영양실조 문제를 해결하는 과정이 나온다. 종전의 이 문제에 대한 해결책은 당시 베트남은 위생 설비가 형편없었고 깨끗한 물이 충분히 공급되지 않았으며, 시골 사람들은 대개 영양실조에 대해 무지한다는 분석을 바탕으로 하고 있었다.

책에서는 이를 'TBU(true the useless)', 즉 '사실이지만 쓸모가 없는' 것이라고 한다. 해결책은 책상머리가 아닌 현장에 있었다. 당시 베트남의 여러 불리한 조건에서도 건강을 잃지 않은 아이들이 있었다. 이들은 형편없는 식품으로 취급되던 작은 새우와 게, 고구마 잎을 하루에 4차례 먹고 있었다. 이 형편없는 음식이 아이들에게 단백질과 비타민을 보충해 주고 있었고, 4번의 걸친 식사로 적은 양을 먹더라도 많은 양을 소화시키고 흡수시키고 있었다. 종전의 분석을 무시하고 현장에서 6개월 동안 이런 사실을 잘 관찰하고 적용한 후 아이들 가운데 65%의 영양 상태가 개선되었다.
 
혁신은 우리사회 모든 분야의 화두이다. 민간 기업만이 아닌 정부도 혁신의 주체로 나서 지난달에는 '제1회 대한민국 정부혁신 박람회'가 열리기도 했다. 혁신교육, 혁신기업, 사회혁신, 주민혁신, 정부혁신 등. 사회 모든 곳에서 혁신을 외치고 모든 주체가 혁신적으로 사고하고 행동할 것을 요구받고 있다. 하지만 정작 우리는 포드 자동차처럼 말로만 혁신을 얘기하면서 종전의 시스템 안에서 사고하고 행동할 것을 강요하지는 않고 있을까. 종전의 시스템 바깥에서 사고하고 행동하는 캐롤 셸비와 켄 마일스를 모난 돌 취급하며 부정하지는 않을까. 아이슈타인이 얘기한 '미친 짓(insanity)'을 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포드주의에 대한 성찰의 메시지

조금 더 나아가보면 이는 기존 자본주의 생산 양식에 대한 비판으로도 이어질 수 있다. 방적기, 증기기관의 발명이 산업혁명의 기술적 토대를 만들어냈다면 테일러주의와 포드주의는 현재 자본주의 체계 확립의 이론적 토대를 만들어냈다. 프레데릭 윈슬로우 테일러(1856-1915)는 미국 발명가 겸 기술자로 과학적 관리주의의 주창자로서 초단위로 노동자들의 기계적이고 반복적인 행동 분석과 감독 기법을 창안했다.

헨리 포드(1863~1947)는 테일러주의적인 구상을 적용할 수 있도록 부품의 표준화와 컨베이어 벨트를 이용한 이동식 생산 공정을 도입하여 오늘날과 같은 대량생산 시스템을 확립했다. 테일러주의와 포드주의는 대량소비 시대를 열었다. 1908년 헨리 포드가 T형 자동차 생산을 하며 내세운 광고는 "어지간한 봉급생활자라면 누구나 구입할 수 있을만큼 쌉니다"였다. 소비자들의 선택권에 대해 포드는 단호하게 "검은색이기만 하다면 어떠한 색도 선택하실 수 있습니다"라고 답변할 정도였다.
 
대량생산과 대량소비는 선순환을 만들어내며 종전에는 상상할 수 없었던 풍요로움을 가져왔다. 생산이 소비를 만들어내고 소비가 생산을 만들어내며 보이지 않는 손에 의해 자본주의는 끝없이 확장해가는 것처럼 보였다. 1929년 검은 목요일로 알려진 월스트리트 대폭락으로 시작된 대공황이 있기 전까지는. 하지만 미국은 빠르게 시장의 한계를 인정하며 1933년 뉴딜정책으로 정부가 적극적으로 실업자에게 일자리를 만들어주고 경제 구조와 관행을 개혁해갔다. 그리고 2차세계 대전 이후 승전국으로 최대 호황을 누린다. 자본주의의 문제점을 고친 수정 자본주의는 다시금 '370km 차'처럼 질주하기 시작했다. 1973년 오일쇼크 전까지는.

영화 속 배경이 되는 1960년대는 이런 시대적 배경을 갖고 있다. 그럼에도 미국의 황금기라고 할 수 있는 60년대를 바라보는 영화의 시선은 냉정하다. 구소련은 물론이고 외계인까지 미국이 나서서 지키며 우주방위대를 자처하는 성조기가 펄럭이는 팍스 아메리카나 영화가 아니다. 오히려 장르는 다르지만 미국사회를 바라보는 시선은 <조커>와 닮아 있다. <조커>가 2019년 시선으로 1980년대 신자유주의 시대의 빈부격차 문제점이 반복되고 있는 미국사회를 냉소적으로 바라보는 것처럼 <포드 VS 페라리>도 현재의 시선으로 1960년대의 미국의 풍요로움의 실체를 까발리고 있다.
 
"할아버지, 이젠 세상이 달라졌어요. 지금은 '현대'란 말예요"라는 말에 "얘야, 그 '현대'를 발명한 게 나란다"라고 얘기했던 포드에 대한 존경이 아닌 돈 밖에 모르는 속물근성의 돼지로 표현되고 있다. 오히려 대척점에 있는 페라리가 상징하는 가치에 대한 무한한 존경을 비친다. 대량생산-대량소비로는 가질 수 없는 인간의 고유성과 인격이 담긴 장인정신, 돈으로는 가질 수 없는 창의성에 대한 애정이 가득한 영화이다. 한나 아렌트는 <인간의 조건>에서 일을 생계유지를 위한 노동(labor), 먹고사니즘만으로 환원되지 않는 창의성이 발현되는 작업(work), 집단적, 사회적 행위(action)로 구분한다. 포드가 현대의 '소외된' 노동(labor)을 발명했을지는 몰라도 영화 속 페라리로 대변되는 작업과 행위에 대해서는 만들기는커녕 이해하지 못했다.
 
특히 스포일러라 말할 수 없는 마지막 경주의 결과를 보고나면 돈으로는 결코 살 수 없는 인간의 작업과 행위의 위대함을 느낄 수 있다. 인간은 결코 컨베이어 벨트에 따라 움직이는 톱니바퀴가 아니라 심장이 뛰고 타인과 소통하며 뜨겁게 사랑하는 살아 있는 존재이다. 그 장면을 온전히 관객에게 전달하게 하는 크리스천 베일과 맷 데이먼의 눈빛과 분위기에 가슴 속 뜨거움이 올라온다. 처음 한 말을 정정해야겠다. 이 영화 돈 값을 제대로 했지만 돈만으로 할 수 없는 것을 이뤄냈다. 이 영화를 보기 전까지 올해 최고의 배우는 <조커>의 호아킨 피닉스였지만 크리스천 베일로 바뀌었다. 먼 이상향을 바라보는 열정 가득한 눈빛과 현실의 중력에 짓눌린 구부정한 어깨와 깡마른 몸으로 연기한 그는 포드의 시스템 안에 갇혀있지만 야생마처럼 날뛰는 페라리 자체였다.
  
 먼 이상향을 바라보는 열정 가득한 눈빛과 현실의 중력에 짓눌린 구부정한 어깨와 깡마른 몸으로 연기한 그는 포드의 시스템 안에 갇혀있지만 야생마처럼 날뛰는 페라리 자체였다.

먼 이상향을 바라보는 열정 가득한 눈빛과 현실의 중력에 짓눌린 구부정한 어깨와 깡마른 몸으로 연기한 그는 포드의 시스템 안에 갇혀있지만 야생마처럼 날뛰는 페라리 자체였다. ⓒ 팍스코리아

 
끝으로 크리스찬 베일이 아들에게 들려주는 영화 속 명대사 "어디까지 버틸 수 있는지 알려면 차의 한계를 알고 있어야 해"를 언급하고 싶다. 1929년의 대공황, 1973년 오일쇼크, 2008년 세계금융위기처럼 질주하는 자본주의 한계를 넘어섰을 때 사람들은 버티지 못했다. 우리나라만이 아니라 세계적 찬사를 받고 있는 <기생충> 속 이야기처럼, 자본주의가 한계를 넘어서며 여기저기서 버티지 못하는 소리가 새어나오고 있다. 다시금 문제점을 고친 수정 자본주의는 이제 정부와 기업만이 아닌 시민들의 참여와 현장을 바탕으로 한 혁신의 과정에서 새롭게 만들어지는 자본주의 4.0이 아닐까.
댓글2
이 기사의 좋은기사 원고료 2,000
응원글보기 원고료로 응원하기

진실과 정의를 추구하는 오마이뉴스를 후원해주세요!

후원문의 : 010-3270-3828 / 02-733-5505 (내선 0)

오마이뉴스 후원하기

협동조합을 널리 알리기 위해 협동조합 교육, 상담, 컨설팅 등을 하며 협동조합이 보다 튼튼하게 우리 사회에 뿌리내릴 수 있도록 노력하고 있습니다.

  • 당신이 좋아할 만한 콘텐츠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