뮤지컬 '헛스윙밴드' 공연사진.

뮤지컬 '헛스윙밴드' 공연사진. ⓒ 부평구문화재단

 
한(恨). 욕구나 의지의 좌절과 그에 따르는 삶의 파국 등과 그에 처한 편집적이고 강박적인 마음의 자세와 상처가 의식·무의식적으로 얽힌 복합체를 가리키는 민간용어(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인용).

뮤지컬 <헛스윙밴드>(12월 11일~14일 공연)는 바로 이 '한'과 '재즈'가 일맥상통한다는 믿음 아래 만들어진 작품이다. 이전에도 1950년대 미8군 보급창 '에스캄'을 배경으로 한 창작음악극 '당신의 아름다운 시절'을 만들었던 부평구문화재단이 이번에는 시야를 더 넓혀 부마민주항쟁과 재즈의 메카 부평을 연결시켰다.

제작에는 한국 고전소설을 바탕으로 한 창작뮤지컬 '얼쑤', '쿵짝' 등을 만들며 국내 창작계의 버팀목 중 하나가 된 우컴퍼니의 우상욱 연출과 다수의 작품을 함께하며 역량을 인정받은 오세혁 작가, 이진욱 작곡가가 함께했다.

'한'과 '재즈'는 꽤 유사성을 지닌다. '한'을 무엇이라고 정확히 설명할 수 있는 사람은 없듯이 재즈 역시 그 단어의 어원부터 장르적 특성 등이 사전적 정의가 아닌 흐르는 음악 속에서 만들어졌기 때문이다. 우리 민족의 한이 끝없는 외세의 침략과 난 속에서 자연발생했다면 재즈 역시 아메리카 대륙으로 건너간 흑인들의 '악보 없는 음악' 속에서 고개를 내밀었다.

그렇기에 '재즈' 혹은 '스윙'이라는 단어는 '한'과 마찬가지로 아는 사람만이 알 수 있는 그야말로 '느낌적인 느낌'인데 뮤지컬 '헛스윙밴드'는 이 두 가지의 정체성이 겹치는 순간을 절묘하게 포착해낸다. 
 
 뮤지컬 '헛스윙밴드' 공연 장면.

뮤지컬 '헛스윙밴드' 공연 장면. ⓒ 부평구문화재단


클래식 피아니스트로 교육받으며 자란 주인공 방규석은 부평 재즈클럽에서 우연히 재즈를 알게 되고, 재미교포 매기킴의 재즈밴드 오디션을 위해 부산으로 향한다. 방규석은 '재즈는 자유'라고 말하면서도 남들에게는 그 자유를 강요하는 모순된 모습을 보인다.

자유를 원하지만 진짜 자유가 무엇인지조차 잘 모르는 방규석은 끊임없이 자유를 갈구한다. 그의 자가당착 덕분에 그의 헛스윙밴드는 재즈와 거리가 먼 랩퍼(마이클), 민중가요를 부르는 운동권 학생(광장희), 판소리꾼(소리)을 재즈밴드의 보컬로 영입하게 된다.

하지만 자유를 부르짖던 그가 진실로 자유와 마주하는 순간은 매기킴을 만나 재즈를 연주할 때가 아니라 경찰서에서 벌을 서며 원치 않은 애국가를 부르는 순간이다. 누르는 게 있어야 튀어나오는 게 있듯이 방규석은 바로 그 순간 진짜 자유와 마주하게 된다. 방규석이 마주한 자유는 과연 무엇일까. 그리고 우리가 원하는 자유는 무엇일까.
 
 뮤지컬 '헛스윙밴드' 공연사진.

뮤지컬 '헛스윙밴드' 공연사진. ⓒ 부평구문화재단

 
공연은 헛스윙밴드의 행보를 가끔은 노골적으로, 대체적으로 건조하게 뒤쫓으며 이러한 일련의 흐름을 빠른 템포로 선보인다. 그러나 밴드 멤버를 영입하는 과정만으로도 극의 절반이 흘러버려서 정작 중요한 사건들을 겪으며 성장하는 주인공의 모습이 잘 표현되지 않는 점이나, 애국가, 아침이슬 등을 재즈풍으로 편곡하며 참신함을 담아냈으나 제목답지 않게 '스윙' 리듬까지 함께 녹여내지 못한 넘버들은 트라이아웃 작품답게 완성도에 있어 아쉬운 부분이다.
  
하지만 그보다 중요한 것은 이 작품의 모든 요소가 일관된 방향성, '재즈'를 표현하는데 있다는 점이다.

예컨대 댄스 중심의 뮤지컬이 아닌 경우 다소 부수적인 요소로 취급되곤 하는 안무만 봐도 그렇다. '헛스윙밴드'는 1920~30년대 미국에서 재즈의 대중화를 열었던 스윙재즈를 기반에 둔 오리지널 스윙댄스, '린디합(Lindy Hop)'을 본격적으로 안무에 도입했다.

국내에서 스윙재즈 기반의 음악이나 안무를 도입한 작품들은 '존 도우', '경성특사'를 비롯해 여러 작품이 있었지만, 실제 스윙재즈, 스윙댄스라기보단 재즈댄스를 기반으로 한 현대적인 차용에 머물렀다. 이는 밥 포시 스타일의 재즈댄스가 국내 안무계에 뿌리깊게 자리잡고 있기 때문이기도 하며, 전문성보다 대중성을 기초로 하는 소셜댄스 장르의 춤을 '보여지는' 용으로 무대에 도입하기에는 어려운 면도 있었기 때문이다.
 
 뮤지컬 '헛스윙밴드' 공연 장면.

뮤지컬 '헛스윙밴드' 공연 장면. ⓒ 부평구문화재단

 
그러나 '헛스윙밴드'에서는 '뮤지컬 안무가'가 아니라 공연계에서 전혀 무명인 '스윙댄스 전문강사' 전강준, 양지은을 안무가로 내세워 단순히 음악이나 대본에서만 재즈를 추구하는 게 아니라 작품 자체가 재즈의 오리지널리티를 추구하는데 힘을 보탰다.

1980년대 부활해 현대적인 발전을 거듭하면서도 1920~30년대 오리지널 린디합을 복원하는 것에 중요한 가치를 두는 스윙댄스는 뮤지컬 '헛스윙밴드'가 추구하는 가치와도 잘 부합하는 선택이라 볼 수 있다. 비록 뮤지컬 배우들의 움직임은 프로 댄서들에 비해서 다소 엉성했지만 이것 역시 트라이아웃 뮤지컬이라는 관점에서 볼 때 적합한 시도다. 창작지원, 제작지원을 받아서 만들지만 신선함을 찾기 어려운 최근의 창작 초연 작품들 사이에서 조금은 이런 '프리'한 작품이 있어도 좋지 않을까.
덧붙이는 글 이 기사는 서정준 시민기자의 브런치(https://brunch.co.kr/@twoasone/)에도 실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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