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 스틸컷

영화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 스틸컷 ⓒ 수도영화사

 
화염이 활활 이글대는 붉고 노란 하늘을 배경으로 스칼렛 오하라(비비안 리 분)는 올려다보고 렛 버틀러(클라크 게이블 분)는 내려다본다. 두 사람이 입술을 가까이 대고 서로를 그윽이 바라본다. 영화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 포스터에 담긴 유명한 장면이다.
 
이 영화가 처음 개봉된 날은 80년 전인 1939년 12월 14일이다. 1929년 대공황을 맞은 미국이 10년째 허덕이다가 재난에서 빠져나온 해이자, 히틀러의 폴란드 침공으로 제2차 세계대전이 발발한 해다. 대공황의 상처가 아직 남아 있는 동시에 새로운 대전이 막 시작하던 시점에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가 개봉했던 것이다.
 
3시간 40분짜리인 이 영화는 1936년 6월 21일 소설가 마가렛 미첼이 발간한 같은 제목의 소설을 원작으로 한다. 이 소설은 출간 첫 해에 100만 부 이상 팔렸다. 영화는 그 이상의 흥행을 누렸다. 상영 1년 만에 관객 2500만을 동원했다. '천만 영화'의 대기록을 한 해 동안 두 번이나 달성한 셈이다.
 
영화는 1861년 4월 발발한 남북전쟁과 그 이후의 정치·경제적 격변을 배경으로 스칼렛 오하라의 일생을 다룬다. 위의 포스터 장면은 영화가 1시간 27분쯤 상영됐을 때 등장한다. 남북전쟁이 거의 끝나가는 1865년 4월경을 배경으로 하는 장면이다.
 
스칼렛과 그의 고향이 링컨 대통령이 이끄는 북군에 점령되기 직전을 보여주는 포스터 장면은 이 영화에서 분기점을 이룬다. 영화를 전반부와 후반부로 가르는 이 장면을 계기로, 스칼렛의 인생은 물론이고 영화의 전반적인 분위기가 확 전환된다.
 
미국대륙 동남부에 꼬리처럼 볼록 튀어나온 반도가 있다. 쿠바를 마주보고 있는 플로리다반도다. 그 플로리다 바로 위쪽에 직사각형 모양의 조지아주가 있다.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의 무대는 바로 이곳이다.
 
남부 농장주의 딸 스칼렛

스칼렛은 조지아주에서 흑인 노예와 농장을 대거 보유한 대지주의 딸로 성장했다. 흔히 말하는 '남부 농장주'의 딸이었던 것이다. 그는 이 같은 가문의 경제적 지위에 더해 자신의 외모에도 상당한 자신감을 갖고 성장했다. 세상 모든 남자들이 다 자기를 사랑할 거라는 착각 속에 살았다.
 
이것은 상당부분은 착각이 아니다. 실제로 많은 남자들이 그를 흠모한다. 개중에는 용감하게 프러포즈를 하기도 한다. 물론, '안 그런 남자'도 있다. 하지만, 스칼렛은 그 가능성은 염두에 두지 않는다. 세상 모든 남자들이 자기와 춤을 추고 싶어함은 물론이고 자기가 시키는 소소한 심부름이라도 하고 싶어한다고 생각한다.
 
이 착각이 영화를 이끌어가는 동력 중 하나다. 실제로는 자기가 짝사랑하고 있으면서도 상대방이 자기를 사랑한다고 생각하는 스칼렛의 오판이 애슐리 윌키스(레슬리 하워드 분)라는 남자를 그의 인생에 끌어들이는 원인이 된다.
 
애슐리는 위에서 말한 '안 그런 남자' 중 하나다. 그는 스칼렛이 이난 멜라니 해밀튼(올리비아 하빌랜드 분)을 사랑한다. 남북전쟁 직전, 그러니까 영화 초반부에서 애슐리는 멜라니와 결혼식을 올린다. 그런데도 스칼렛은 애슐리가 맘에도 없는 멜라니와 결혼을 선택했을 이유가 있을 거라면서, 애슐리에게 자기와 결혼하자고 요구한다. 하지만, 애슐리는 순정남이었다.
 
애슐리를 포기할 수 없었던 스칼렛은 미련을 버리지 못한다. 군에 징집된 애슐리를 기다리느라 멜라니와 가깝게 지내기까지 한다. 이는 스칼렛·멜라니·애슐리 세 사람이 훗날 한 가족처럼 얽히게 만드는 원인이 된다.
 
한편, 포스터에 등장한 렛 버틀러는 스칼렛이 애슐리를 사랑하는 줄 알면서도 끈기 있게 구애한다. 북부 출신인 그는 남부 조지아주에 체류하면서 현지인들의 미움을 독차지한다. 한국의 지역차별보다 더한 남북차별을 당하면서, 그는 이곳에서 양키(북부 미국인)의 대명사로 취급된다.
 
버틀러는 상당한 경제력을 가졌지만, 조지아주 지주들한테는 고려 대상이 되지 않는다. 남부 농장주의 관점에서 서술되는 이 영화에서 버틀러는 비열하고 야비한 북부 출신을 상징할 뿐이다. 양키에 대한 남부 농장주들의 증오심을 그는 정중하면서도 능청맞게 넘겨버리곤 한다.
 
그런 그가 스칼렛과 함께 포스터 장면을 연출하게 된 것은 남북전쟁이 끝나기 직전이었다. 임신한 멜라니 집에 머물던 스칼렛을 북군의 공격으로부터 구하고자 스칼렛과 멜라니네를 마차에 태워 피신시키던 도중에 나온 한 장면이었다.
 
불길이 하늘을 뒤덮은 상태에서, 버틀렛은 마차 옆자리에 탄 스칼렛에게 "봐둬요! 역사적 순간이니"라며 "남부가 사라지는 이야기를 손자에게 해주시오"라며 남부의 역사가 바람처럼 사라지는 이 순간을 꼭 기억해두라고 말한다. 그러더니 마차에서 뛰어내린다. 군대에 들어가야겠다며 갑자기 노상에서 이별을 고한다.
 
그런 뒤 스칼렛을 마차에서 들어내 땅바닥에 세운 뒤 껴안으려 한다. 스칼렛은 "나를 이렇게 껴안지 말아요"라며 저항하고, 버틀렛은 "스칼렛 날 봐요"라고 말하는 장면이 이 영화의 포스터가 됐다.
 
그 장면 이후로 스칼렛의 모든 것이 뒤바뀌었다 
 
 영화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 스틸컷

영화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 스틸컷 ⓒ 수도영화사


이 장면 이후로 스칼렛의 모든 것이 뒤바뀌었다. 농장주 따님으로 동화 같은 삶을 살던 그는 전쟁으로 어머니가 죽고 아버지가 치매가 된 상황에 직면한다. 이를 극복하고자 그는 억척 같은 삶을 살지 않을 수 없었다. 예전과 달리 그는 돈을 최고의 가치로 생각한다. 순진하고 착각 많던 '공주님' 모습은 간데 없고, 한푼이라도 더 벌어 농장을 키우려 애쓰는 사업가의 모습을 보여준다. 그러는 사이, 북부에서 유입된 자본주의 문화에 스스로를 적응시켜 나간다.
 
불굴의 노력으로 경제력은 유지해 나가지만, 그는 연이은 개인적 불행에 시달린다. 남북전쟁과 그 이후의 격변이 그에게서 주변 사람들을 하나둘씩 빼앗아간다.
 
그의 불행은 그보다 4년 전인 남북전쟁 개전과 함께 시작했다. 청혼을 거부한 애슐리에게 보여주려자 홧김에 결혼했던 그는 개전과 함께 남편이 징집되더니 남편이 곧바로 전사하는 불행을 맞는다. 종전 즈음에는 어머니를 잃고, 나중에는 아버지와 두 번째 남편마저 잃는다. 이뿐 아니다. 자기 딸이 아버지와 똑같이 낙마 사고로 세상을 떠나는 고통까지 감내해야 한다.
 
불행은 영화 막판까지도 이어진다. 세 번째 남편이 된 버틀렛마저도 결국 그를 떠나버린다. 불행이 그칠 줄 모르고 계속됐던 것이다. 남북전쟁을 계기로 이 모든 일들이 벌어졌던 것이다.
 
남북전쟁 이후로 스칼렛이 각박하게 살면서 온갖 불행에 노출되는 스토리는 이 영화가 남부 농장주의 관점에서 서술된 것과 관련이 있다. 북부 공업자본가들에 패한 남부 농장주들의 관점에서는 남북전쟁 이후의 미국이 각박하고 불행스러운 곳일 수밖에 없었다.
 
이 영화가 그리워하는 이상적인 상태는 전쟁 이전의 남부 문화다. 북부에서 혐오되던 노예제도마저도 이 영화에서는 아름답게 묘사된다. 스칼렛의 흑인 유모가 가족인지 노예인지 구분이 안 되고, 노예 아이의 보살핌 속에 농장주 자녀들이 편히 잠을 잔다. 이런 모습은 노예와 지주의 공존 속에 번영했던 남부를 미화하는 장치다. 이런 모든 것이 남북전쟁과 함께 바람처럼 사라진 것에 대한 아쉬움의 정서가 이 영화를 지배하고 있다.
 
흥미로운 것은, 역사의 패자인 남부의 관점에서 서술된 이 영화가 1939년 미국에서 대흥행을 이뤘다는 점이다.
 
남북전쟁은 북부 공업자본가들이 남부 농장주들을 꺾은 전쟁이었다. 북부의 공업자본가 입장에서는 노예가 아니라 노동자가 필요했고, 남부의 농장주 입장에서는 노동자가 아니라 노예가 필요했다. 그래서 양쪽은 충돌할 수밖에 없었다. 결국 북부가 승리하면서 미국은 공업자본가의 나라가 됐다. 패자인 남부 농장주의 관점에서 서술된 영화가 북부 공업가들의 나라에서 상영됐는데도 대흥행을 거뒀던 것이다.
 
영화의 흥행 요인은 스칼렛의 파란만장한 인생 역정이 관객의 시선을 집중시킨 데서 우선적으로 찾을 수 있다. 그에 더해 농장주인댁 아씨로 살다가 살벌한 생존 투쟁에 뛰어든 스칼렛의 모습이 대공황기 미국인들에게 공감도 되고 위안도 됐을 수 있다. 영화 속 스칼렛은 상류층이라서 일반 관객들과 입장이 다르긴 하지만, 스칼렛이 고난과 시련을 겪는 모습이 대공황기 미국 대중의 정서와 공명했다고 볼 수 있다.
 
그에 더해 공업 자본주의에 대한 은근한 비판도 공감을 도출하는 데 기여했다고 할 수 있다. 남북전쟁 이후의 급속한 산업화 속에서 공장 노동자로 내몰려 기계 부속품으로 전락한 데다가 대공황까지 맞아 생활난을 겪고 있던 미국인들한테는 자본주의를 비판하는 이 영화를 보면서 약간은 통쾌했을 수도 있다.
 
하지만, 자본주의에 대한 이 영화의 비판에는 중대한 결함이 있다. 자본주의보다 더 나은 사회를 대안으로 제시한 게 아니라, 남북전쟁 이전의 남부 지주문화를 대안으로 제시하는 데 그쳤다. 사라진 남부 지주문화에 대한 향수를 막연하게 조장했다는 점에서, 이 영화의 자본주의 비판은 대책 없는 비판이라고 평가할 수 있다.
 
그 같은 한계가 있기는 하지만, 자본주의에 불만을 느낀 노동자 대중의 마음속에는 짜릿한 느낌이 생겼을 수도 있다. 빵은 먹고 살 수 있을지라도 각박하고 살벌하기만 한 자본주의 문화를 떠나자는 메시지가 영화 후반부에서 잔잔히 흐르고 있기 때문이다.
 
영화 마지막 장면에서 스칼렛은 그간의 인생역정에 슬픔과 회한을 느끼면서 "중요한 건 땅뿐이다"라며 고향으로 돌아갈 결심을 한다. "난 집으로 갈거야"라며 "내일은 또 다른 날이 시작될 거야"라고 그가 독백하는 것으로 이 영화는 끝난다. 대공황기의 미국인들에게 막연하나마 현실 도피를 권하는 한편, 미국 자본주의에 비판적 메시지를 던졌다는 점이 이 영화의 흥행에 일정 정도 기여했다고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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