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안해요, 리키> 포스터

<미안해요, 리키> 포스터 ⓒ 영화사 진진

 
'라떼 이즈 홀스'(Latte is horse)라는 말을 들어본 적 있을까. 기성세대가 자주 쓰는 말인 "나 때는 말이야"에서 '나 때'는 '라떼'로, '말'은 영어 '홀스'로 바꿔 요즘 젊은 세대들이 이를 풍자하는 표현이다. 현 세대와 기성세대의 갈등을 유쾌하게 담아낸 신조어로 볼 수 있다.

하지만 현실은 유쾌할 수 없다. 기성 세대가 '나 때는 말이야'로 시작하는 조언이나 충고를 더 이상 젊은 세대들이 들으려하지 않는다는 방증이기 때문이다. 그럴 만도 하다. 노력을 하면 무엇이든 할 수 있다는 류의 충고는 요즘 젊은 세대들에게 전혀 울림을 주지 못하고 있으니 말이다.

노동문제에 대해 꾸준히 이야기해 온 켄 로치 감독의 <미안해요, 리키>는 생존의 문제에 직면한 한 가족을 조명한다. 이 영화가 기존 켄 로치 영화와 비슷한 결을 유지하면서 차이를 드러내는 지점은 이 가족이 겪는 문제가 보편적이기 때문이다. <나, 다니엘 블레이크>나 <레이닝 스톤>이 실업자를, <지미스 홀>이나 <보리밭을 흔드는 바람>이 특정한 시대를 대표하는 인물들의 모습을 다룬 반면 <미안해요, 리키>는 중하류층 가정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
 
가장 리키는 택배기사로, 아내 애비는 복지사로 일하고 있다. 부부가 모두 일을 하고 각자 직장에서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다는 점에서 이들 가정은 비록 일은 힘들지만 경제적으로 불편함 없이 지내고 있다 착각할 수 있다. 이 착각은 켄 로치 감독이 '왜' <나, 다니엘 블레이크> 이후 다시 영화를 만들었는지 생각해 보면 왜 이런 착각에 빠졌는지 눈치 챌 수 있다.
  
 <미안해요, 리키> 스틸컷

<미안해요, 리키> 스틸컷 ⓒ 영화사 진진

 
세상에 일자리는 많다지만 인간답게 살 수 있는 일자리는 많지 않다. 기업은 그저 돈을 주는 일자리를 만들고 정부는 이를 근거로 일자리 창출에 성공했다 자화자찬한다. 36년 생의 노감독은 두 번째 황금종려상을 수상한 후 더 이상 영화를 만들지 않을 것이라 생각했다고 한다. 하지만 많은 사람들이 파트타임이나 제로아워 계약(정해진 노동시간 없이 임시직 계약을 한 뒤 일한 만큼 시급을 받는 노동계약)으로 일하는 걸 보고 생각하게 되었다 한다.
 
사람답게 살기 위해서 일해야 하는 시간과 직업적 불안정성은 켄 로치 감독에게 큰 충격을 주었다. 이는 주인공인 리키와 에비에게서 잘 나타난다. 리키는 성실한 일꾼이다. 하지만 그에게 주어진 시간은 단 2분뿐이다. 리키는 택배 일을 위해 차를 사야 되고 2분 안에 택배배송을 마치고 차로 복귀해야 된다. 아무리 급한 일이 있어도 대리기사를 구하지 못하면 벌금을 내야 된다.
 
행복했던 리키의 가족은 리키가 택배 일을 하면서 점점 금이 가게 된다. 사춘기 아들 셉은 자꾸 엇나가려 들고 일에 치이는 리키는 강압적으로 아들의 마음을 돌리려 한다. 그 사이에 낀 딸 리사는 사랑하는 아버지와 오빠의 다툼에 답답함을 느낀다. 리키는 셉이 사고를 쳐도 학교에 갈 수 없다. 택배회사는 단 몇 시간도 가족의 일로 시간을 내는 걸 허락하지 않는다. 그러기 위해서 리키는 벌금을 내야만 한다.
  
 <미안해요, 리키> 스틸컷

<미안해요, 리키> 스틸컷 ⓒ 영화사 진진

 
일을 하고 돈을 버는 건 먹고 살기 위해서다. 모든 경제활동은 인간다운 삶을 위한 수단이다. 하지만 현대의 자본주의 사회에서는 그 관계가 바뀐 느낌이다. 몸은 점점 병들어 가고 정신적으로 피폐해져 가는데 그저 돈을 번다는 명목으로 자신을 죽여 간다. 애비는 밤 9시까지 근무를 하고 자차가 없어 사비로 대중교통을 이용한다. 그녀는 고객과의 관계와 회사의 간청에 수당이 주어지지 않는 초과근무도 수행한다.
 
애비는 몸과 마음이 병든 이들을 도와주는 복지사다. 하지만 일을 하면 할수록 병이 드는 건 애비다. 리키와 애비는 열심히 살아간다. 하지만 그들은 가난하다. 심지어 셉은 아버지의 인생이 잘못 살아온 것이라 부정하기에 이른다. 이 영화에서 슬픈 장면 중 하나는 애비가 과거를 회상하는 장면이다. 리키가 실직을 당하기 전까지 그들 부부는 미래를 꿈꿀 수 있었다. 하지만 한 번의 실직으로 모든 걸 잃고 만다.
 
<미안해요, 리키>의 원제는 'Sorry We Missed You'이다. 택배기사들이 부재중인 집 앞에 붙이는 메모이기도 한 이 제목은 '우리가 당신을 잊어서 미안하다'는 내용 또한 담고 있어 의미하는 바는 크다. 고도의 자본주의를 이루는 현대사회는 기술의 발전과는 별개로 높은 근무시간과 강한 업무강도를 지니고 있다. 일에 치이고 하루를 바쁘게 살아가는 이들은 자신의 현실이 어떤지, 또 주변이 어떤지 둘러볼 수 없다. 내가 힘들게 살아가는 만큼 남들 역시 힘들게 살아가는 게 당연하다 생각하기 때문이다.
  
 <미안해요, 리키> 스틸컷

<미안해요, 리키> 스틸컷 ⓒ 영화사 진진

 
켄 로치 감독은 <나, 다니엘 블레이크>를 통해 '연대'에 대해 이야기하였다. 이 영화에서 주인공 다니엘 블레이크가 관공서 벽에 '권리'를 요구하는 낙서를 하고 이에 사람들이 동조하는 모습은 짧지만 확실한 연대를 보여준다. 켄 로치 감독은 '우리는 다른 세상이 가능하다고 외쳐야 한다'고 말한 바 있다.
 
리키와 애비의 고통은 우리 모두가 겪는 아픔이라 할 수 있다. 살아가기 위해 나쁜 일자리를 두고 경쟁하고 부당한 대우를 견뎌내야 한다. 그런데 돌아오는 건 열심히 살지 않았다는 손가락질이다. 감독은 이런 우리가 모두 뭉쳐 먹고 살 권리인 빵 뿐만이 아닌 인간답게 살 권리인 장미를 달라 외칠 수 있어야 된다는 점을 강조한다.
 
<미안해요, 리키>는 희극과 비극을 동시에 품은 작품이다. 취업과 경제활동은 생존의 문제에서 희극이지만 직장의 부당한 대우 때문에 행복했던 가정을 지키기 힘들어하는 리키의 모습은 비극이라 할 수 있다. 이 영화가 보여주는 가족의 모습은 어쩌면 우리의 모습일지 모른다. 그래서 더 공감이 가고 슬픔이 느껴지는, 감독이 전하고자 하는 메시지가 강하게 와 닿는 영화라 할 수 있다.
덧붙이는 글 이 글은 김준모 시민기자의 개인 블로그, 브런치에도 게재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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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씨네리와인드' 기자 겸 영화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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