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그렇게 아버지가 된다> 포스터

영화 <그렇게 아버지가 된다> 포스터 ⓒ (주)티브로드폭스코리아

 
지난 2004년 아동 유기를 다룬 영화 <아무도 모른다>로 한국 관객들에게도 깊은 인상을 주었던 일본 감독 고레에다 히로카즈는, 2013년 영화 <그렇게 아버지가 된다>를 통해 6년간 키운 자식이 친자가 아니라는 사실을 알게 된 아버지의 혼란을 그리고 있다. 친 자식처럼 키운 아이가 사실은 남의 자식이었다는 사실 앞에 주인공은 충격과 혼란에 휩싸인다. 친자와 기른 자녀 사이에서 갈등하는 부모의 이야기는 그리 낯선 소재가 아니다.  

하지만 이 영화는 익숙한 소재를 낯설게 보게 하며, 다르게 표현하고 있다. 흐트러짐 없고 완벽을 추구하는 남자 주인공 료타(후쿠야마 마사하루)를 중심으로 감정의 폭발이나 자극적인 장면, 강렬한 배경 음악 없이도 담담하게 이야기가 전개되지만, 영화를 보는 내내 미세한 떨림을 놓을 수 없다.   

료타 부부와 사이키(릴리 프랭키) 부부는 각각 아들의 초등학교 입학을 앞두고, 서로의 아들 케이타(니노미야 케이타)와 류세이(황 쇼겐)가 산부인과에서 뒤바뀌었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하지만 6년 동안 키운 자식을 쉽게 맞바꿀 수는 없다. 혼란 속에서 두 가족은 주말마다 함께 시간을 보내기로 한다. 서로의 친자가 어떤 환경에서 자랐는지, 어떤 아이인지를 알고 친해지며 앞으로 어떻게 할 것인지 생각할 시간을 갖기 위함이었다.
 
 영화 <그렇게 아버지가 된다> 스틸 컷

영화 <그렇게 아버지가 된다> 스틸 컷 ⓒ (주)티브로드폭스코리아

 
키즈카페에 아이들을 데려온 두 아버지의 모습이 대비된다. 유능한 건축가 료타는 깔끔하게 차려입고 테이블에 앉아 멀찍이서 구경만 하지만, 전기 상회 일을 하는 사이키는 네 명의 아이들(3명은 사이키의 자녀, 1명은 료타의 자녀)과 몸으로 놀아준다. 엄마들은 곁에서 지켜보며 거들다가 교대를 해준다.

사이키는 말한다. "애랑 같이 있는 시간을 더 만들지 그래요. 그런 걸 귀찮아 하면 안 돼요. 반 년 동안 케이타가 료타 씨보다 나랑 더 많이 있었어요." 그러자 료타는 항변한다. "시간만 중요한 게 아니죠. 내가 아니면 안 되는 일(건축가로서의 일)도 있어요." 이어지는 사이키의 답변이 마음을 울린다. "무슨 소리에요. 애들한텐 시간이에요. 아버지란 일도 다른 사람은 못 하는 거죠."

사회적으로 유능한 료타는 자신이 왜 무능한 남자에게 이런 말을 들어야 하는지 이해하지 못하지만, 영화 속 제일 공감되는 장면을 꼽으라면 바로 이 장면일 것이다.

료타는 지난 6년 동안 늘 아내에게만 아이를 맡겨놓고, 바쁜 일만 끝나면 시간을 내보겠다는 변명을 반복해 왔다. 어린 아들에게 목욕도 혼자 하게 하고, 뭐든 스스로 혼자 하도록 하는 것이 그의 교육방침이다. 아빠처럼 되고 싶다며 노력하는 아들을 가끔은 칭찬해주라는 아내에게는 "둘 다 응석을 받아주면 어쩌라고?" 하며 딱 자른다.

반면, 사이키는 가장으로서 돈을 잘 벌어오는 아빠는 아니지만 고장난 아이의 장난감을 뚝딱 고쳐주고, 이 가족은 식사와 목욕, 놀이, 잠자기 등 모든 일을 함께 한다. 우아하고 고상한 척 하는 대신 솔직한 사이키 부부의 모습이 편안하고 정감 있다. 허름한 집에 살며, 생활습관이나 가족문화가 너무나 상반된 이 가족을 못 마땅하게 여긴 료타는 친자 류세이와 기른 자식 케이타를 모두 자신이 데려다 키울 생각을 품는다. 반면 두 엄마는 서로의 자녀와 가족에 대해 정보를 교환하며 끊임없이 소통한다. 엄마들은 무엇이 중요한지를 아는 것이다.

결국 료타는 그냥 이대로 살면 안 되겠냐고 묻는 상대편 엄마 유카리(마키 요코)와 자신의 아내에게, 더 늦어지면 부모도 아이들도 괴로울 뿐이라며 친자 맞교환을 선택한다. 엄마인 미도리(오노 마치코)는 남편에게 맡겨놨더니 결국 아들을 내주게 되었다며 료타를 원망한다. 영화 속 사이키의 아내 유카리의 대사처럼 핏줄을 강조하는 것은 아이들과 정서적으로나 생활 면에서 끈끈하게 연결되어 있지 않은 남자들만의 생각일 뿐이다. 엄마에게 자식이란 그런 것이 아니다.
 
 영화 <그렇게 아버지가 된다> 스틸 컷

영화 <그렇게 아버지가 된다> 스틸 컷 ⓒ (주)티브로드폭스코리아

 
나를 닮고, 내 피를 이어받은 친자를 중시하는 남자, 사회적인 성공이 중요한 남자 료타. 그의 성격과 가치관이 쉽게 바뀌지는 않을 것이다. 하지만 료타도 6년간을 케이타의 아빠로 살았던 시간을 부정할 수 없었다. 친자를 데려다 키우기로 선택했지만, 케이타를 사이키네 집으로 보낸 후 료타의 마음에 큰 파문이 인다. 친자인 류세이에게도 조금씩 정을 느끼기는 하지만 케이타의 부모로 살아온 시간을 지울 수는 없다. 아무리 자식과 놀아준 시간이 별로 없었고, 칭찬해주고 상냥한 말을 건네준 적이 많지 않았을지라도. 료타는 6년간 류세이가 아닌 케이타의 아빠였다.

그리하여 료타는 길러준 부모와 함께 살고 싶어하는 친 아들 류세이를 그 부모에게 데려다주고, 기른 아들 케이타를 만나러 간다. 류세이는 료타와 미도리가 친부모라는 사실을 알았지만, 서슴지 않고 옛집에 들어서는 순간 "다녀왔습니다"라고 인사한다. 그 가족들도 "어서 와"라고 반긴다. 료타 역시 케이타를 향한 그리움과 사랑을 더 이상 숨기지 않고 외친다. 케이타가 보고 싶어서 왔다고. 나는 친 아빠가 아니지만, 지난 6년 동안은 아빠였다고.

영화를 보는 동안 관객은 료타의 미세한 심리적 변화와 흔들림, 지금껏 아들로 생각하고 길러온 자식을 빼앗길까봐 불안해하는 엄마 미도리의 떨림까지 손대면 만져질 듯 섬세하게 느낄 수가 있다. 영화를 보는 내내 어떤 극중 인물도 감정을 토해내듯 격렬하게 발산하는 사람은 없지만, 담담한 연출과 배려깊은 묘사 덕분에 영화적 공감도는 더 깊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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