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으로부터 약 3년 전, 당시 한국대표팀을 이끌던 울리 슈틸리케 감독의 주가는 한창 드높았다. 슈틸리케 감독은 부임 이후 2015 아시안컵 준우승-동아시안컵 우승-월드컵 2차예선 무실점 전승 등 화려한 성적을 거두며 '갓틸리케'라는 칭송을 받았다. 대부분이 아시아무대에서 약팀을 상대로 거둔 성과라거나, 경기내용이 좋지 않았다는 우려는 화려한 결과에 묻혀버렸다.

2016년 6월, 한국축구는 원정에서 강호 스페인과 평가전을 치렀다. 슈틸리케호가 안방과 아시아무대를 벗어나 출범 이후 제대로된 유럽 강호와 원정에서 맞붙게 된 첫 경기였다. 독일 출신이지만 선수시절 레알 마드리드에서 최전성기를 보내며 스페인식 점유율 축구를 내세우던 슈틸리케 감독이 '원조'를 상대하게 되었다는 점에서 화제를 모았다. 한국에서의 무패행진으로 자신감에 취해있던 슈틸리케 감독은 평가전을 앞두고 "강팀과의 정면대결도 상관없다"라고 말할 정도로 기세등등했다. 

결과는? 1-6의 '야구 스코어급' 참패였다. 손흥민-기성용 등 당시 기용 가능한 베스트전력을 모두 투입했으나 스페인의 압도적인 개인기와 패싱게임에 말 그대로 농락당했다. 주세종의 만회골로 겨우 영패를 면한데 만족해야했다. 슈틸리케 감독은 대패 이후 "스페인과 아시아 축구가 다른 세계에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며 본인도 멘붕에 빠진 모습이었다. 슈틸리케의 어설픈 점유율 축구와 무능한 '민낯'이 원조 앞에서 처음으로 낱낱이 까발려진 순간이었다. 이후 슈틸리케 감독은 아시아 최종예선에서도 밑천이 드러난 점유율 축구를 무리하게 고집하다가 중국-카타르 등에게도 덜미를 잡히며 결국 경질됐다.

비판 피할 수 없었던 조광래 감독

이와 비슷한 사례는 2011년에도 있었다. 당시 조광래 감독은 브라질월드컵 3차예선 레바논 원정에서 1-2로 패배한 이후 대표팀에서 경질됐다. 하지만 조광래호 몰락의 진정한 시발점은 레바논전 이전에 그해 8월에 열린 일본과의 평가전부터였다. 당시 조광래호는 출범초기 이른바 '만화축구'라는 신조어를 탄생시키며 높은 승률로 승승장구했는데 사실 이것도 결국 스페인식 패싱게임을 모방한 일종의 점유율 축구였다.

하지만 한국보다 먼저 패싱게임을 고유의 스타일로 정착시킨 일본과의 맞대결에서 조광래호는 37년 만에 3골차로 지는 소위 '삿포로 참사'를 당하며 만화축구의 한계를 드러냈다. 공교롭게도 전임이었던 허정무 감독이 일본과의 대결에서 단 한 번도 지지않았던 것과 비교되며 조 감독은 비판을 피할 수 없었다. 

모든 위기에는 항상 위험을 예고하는 복선이 있기 마련이다. 파울루 벤투 감독이 이끄는 대표팀은 19일 UAE 아부다비에서 브라질과의 원정 평가전을 치른다. 직전 경기였던 레바논과의 2022 카타르월드컵 2차 예선에서 졸전 끝에 0-0 무승부에 그친 다음이라 분위기 전환을 위해서라도 이번 경기의 내용이 중요할 수밖에 없다.

설명이 필요 없는 축구 강호 브라질은 벤투호가 출범 이후 만난 가장 강한 상대라고 해도 무방하다. 더구나 이번에는 편안한 안방에서 장거리 이동과 시차적응에 피곤한 원정팀을 상대하는 것이 아니라, 제3국에서 동등한 조건으로 맞붙는 정면대결이다. 벤투호의 진정한 경쟁력을 확인하는데 이보다 더 좋은 기회는 없다.

벤투 감독은 조광래-슈틸리케에 이어 한국축구에서 또 한 번 점유율 축구를 시도하고 있는 지도자다. 후방 빌드업을 바탕으로 한 공격적인 패스축구는 벤투 감독의 축구철학이기도 하다. 하지만 부임 이후 높은 승률에도 불구하고 원정 경기와 밀집수비에 취약한 모습을 보이며 무의미한 빌드업, 플랜 B의 부재 등이 끊임없이 도마에 오르고 있다.

특히 최근 원정에서의 경기력은 벤투 감독의 능력에 대한 의문부호만을 키웠다. 한국대표팀 감독 부임 이후 1년이 훌쩍 넘었는데도 세밀함이 떨어지는 빌드업 위주의 단조로운 경기운영, 쓰는 선수만 고집하는 용병술, 손흥민-황희찬-김신욱 등 소속팀에서 좋은 활약을 펼치고 있지만 대표팀에만 오면 작아지는 선수들의 조합 문제 등에서 좀처럼 해법을 찾지 못하고 있다.

오버랩되는 불안한 징후들
 
 파울루 벤투 축구 국가대표팀 감독이 14일(한국시간) 레바논 베이루트 로타나 제피노르호텔에서 월드컵 아시아지역 2차 예선 4차전 레바논과의 경기를 하루 앞두고 가진 공식 기자회견에서 레바논 취재진의 질문에 답하고 있다.

파울루 벤투 축구 국가대표팀 감독이 14일(한국시간) 레바논 베이루트 로타나 제피노르호텔에서 월드컵 아시아지역 2차 예선 4차전 레바논과의 경기를 하루 앞두고 가진 공식 기자회견에서 레바논 취재진의 질문에 답하고 있다. ⓒ 연합뉴스


유럽 스타일의 점유율 축구와 아시아팀들의 밀집수비간 상성이 맞지 않는다는 것을 감안해도 전술적 유연성이 부족하다는 비판은 피할 수 없다. 매번 큰 변동 없는 선수선발과 주전 라인업은 2022 카타르 월드컵이 3년이나 남은 상황에서 벌써 베스트 멤버가 굳어진 게 아니냐는 의구심을 자아낸다. 자꾸 조광래와 슈틸리케 시절에 드러났던 불안한 징후들이 오버랩될 수밖에 없는 대목이다.

이런 시기에 브라질같은 강팀을 만난 게 벤투호에게 득이 될까 독이 될까. 일단 세계적인 스타들이 즐비한 브라질은 아시아권 팀들처럼 한국을 상대로 수비적인 경기운영을 펼칠 가능성은 거의 없다. 브라질도 직전 경기에서 남미의 최대 라이벌 아르헨티나에 0-1로 석패한 것을 비롯하여 최근 A매치 5경기 연속 무승에 빠져있어서 대표팀을 바라보는 자국 여론이 좋지 않은 상황이다. 분위기 전환을 위해서라도 한국전 승리를 위하여 더욱 공격적으로 나설 가능성이 높다.

한국 대표팀은 홍명보 감독이 이끌던 2013년 안방으로 브라질을 불러들이고도 0-2로 완패한 바 있다. 하물며 이번엔 원정이다. 벤투호에게는 브라질전이 대단히 힘든 경기가 되겠지만 한편으로는 오히려 기회가 될 수도 있다.

벤투 감독이 점유율 축구를 고집하는 궁극적인 이유가 2022 카타르월드컵 본선을 목표로 하는 것이라면 브라질전은 미리보는 월드컵을 대비한 일종의 모의고사라고 할수 있는 무대다. 벤투호가 브라질을 상대로 일정한 경쟁력을 보여준다면 팬들도 벤투의 점유율 축구에 대한 고집을 어느 정도 납득할 수 있을 것이다. 혹은 점유율 축구를 포기하더라도 강팀을 상대로 '맞춤형 전략'을 구사할 수 있는 모습을 보여준다면 그것도 의미가 있다.

하지만 만에 하나 슈틸리케호의 스페인전이나, 조광래호의 한일전같이 결과도 내용도 다 놓치는 '대참사'가 또 일어난다면? 향후 벤투 감독의 리더십과 축구철학에 대한 불신은 더 깊어질 수밖에 없다. 벤투 감독은 자신이 2022년 월드컵까지 한국대표팀의 지휘봉을 이끌고 갈 자격이 있는지 이쯤에서 다시 한번 증명해야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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