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리스> 포스터

<모리스> 포스터ⓒ 알토미디어


2018년 개봉된 영화 <콜 미 바이 유어 네임>이 일으킨 소소한 열풍은 우리 사회의 인식이 변화되었음을 방증했다. '퀴어'(동성애) 작품은 이전까지 소수 관객들만 보는 작품처럼 인식되었다. 하지만 2016년 <캐롤>이 열풍을 일으키면서 대중적으로 성공을 거둔 예술영화를 이르는 '아트버스터'로 주목받게 되었다. 2019년, 무려 30여 년이 지난 시점에 <모리스>는 국내에 정식으로 개봉하게 되었다.
 
베니스영화제 은사자상과 볼피컵(남우주연상)을 수상한 이 작품이 30여 년이나 늦게 한국에서 개봉할 수 있었던 데는 두 가지 이유가 있다. 첫 번째는 제대로 된 가치를 인정받을 수 있는 시장의 확립이다. 퀴어는 앞서 사회적인 편견 때문에 가치를 제대로 인정받지 못했다. 앞선 작품들의 성공은 이런 분위기를 완화시켰고 이는 <모리스>가 지닌 작품의 가치를 제대로 인정받을 수 있는 시장의 확립으로 이어졌다.
 
두 번째는 감독이자 각본가인 제임스 아이보리의 감수성이다. 특유의 서정성과 위트로 <전망 좋은 방>, <하워즈 엔드>, <남아있는 나날> 등 수많은 드라마 명작을 만들어낸 이 감독은 <콜 미 바이 유어 네임>에 각본가로 참여했다. 안드레 애치먼의 원작을 각색해 아카데미상을 수상한 그는 E.M. 포스터의 원작을 각색한 <모리스>에서도 특유의 감수성으로 관객들의 마음을 적신다.
 
20세기 초 영국을 배경으로 한 이 작품은 사회가 용납할 수 없었던 사랑을 이야기한다. 모리스 홀은 사회를 이끌어갈 엘리트층으로 케임브리지 대학교에 입학한다. 하지만 학교의 수업은 낡았고 교수들은 고지식하며 이런 공간에서 보내는 하루하루는 모리스에게 무료하게 다가온다. 그런 그에게 레코드판을 정리하고 있는 클라이브의 존재는 매력적으로 느껴진다. 두 사람은 서로를 통해 일상의 해방감을 얻는다.
  
 <모리스> 스틸컷

<모리스> 스틸컷ⓒ 알토미디어

 
두 사람의 우정은 점점 사랑으로 발전해 나간다. 하지만 사회적인 위치와 시선 때문에 두려움을 느낀 클라이브는 모리스를 멀리하고 모리스는 그런 클라이브에게 더더욱 집착한다. 클라이브가 결혼을 하면서 모리스는 그의 하인 알렉과 사랑을 나눈다. 마치 클라이브를 향한 모리스의 사랑처럼 알렉은 강렬한 사랑을 모리스에게 표현한다. 하지만 알렉과 가까워지면 가까워질수록 모리스는 자신의 사회적 위치와 시선에 대한 두려움을 느낀다.
 
세 명의 남자를 통해 진정한 사랑에 이르는 과정을 보여주는 이 작품은 시대가 흘러도 변하지 않는 감성을 지니고 있다. 그 감성의 원동력은 열정과 금기이다. 작품 속 금기는 세 가지 장면을 통해 표현된다. 첫 번째는 도입부에서 노년의 교사가 어린 모리스에게 남녀의 성관계를 설명하는 장면이다. 언젠가 너도 이런 과정을 겪게 될 것이라는 교사의 말은 이후 모리스의 상황에 빗대어 생각해 볼 때 아이러니한 감정을 준다.
 
두 번째는 클라이브가 말하는 플라토닉의 관계이다. 클라이브는 자신과 모리스의 관계는 정신적으로 의존하는 플라토닉한 관계라며 육체적인 사랑을 거부한다. 육체적인 사랑에서 남을 수 있는 증거를 거부하며 사회적인 시선에 대한 두려움을 보여준다. 세 번째는 모리스가 치료를 받는 장면이다. 당시 동성애는 병으로 여겨졌고 치료할 수 있다는 믿음이 있었다. 동성애를 병으로 여기는 분위기는 그 당시 사회에서 동성애를 얼마나 큰 위험으로 간주했는지 짐작할 수 있다.
  
 <모리스> 스틸컷

<모리스> 스틸컷ⓒ 알토미디어

 
그럼에도 모리스가 자신의 감정을 숨길 수 없었던 이유는 진정한 행복과 연관되어 있다. 모리스를 비롯한 케임브리지 대학의 학생들은 자신의 꿈과 행복이 아닌 가문이 지닌 사회적인 명성에 맞는 사람이 되기 위해 노력한다. 개인이 아닌 공동체의 가치를 중시하는 사회에서 이들이 지향하는 행복의 가치는 좋은 배우자와 개인의 성공, 이를 통한 가문의 가치 상승이 주가 된다.
 
클라이브는 이 행복의 가치를 따라간다. 반면 모리스는 자신이 추구하는 행복을 얻기 위해 어렵고 힘든 길을 걸어가고자 한다. 제임스 아이보리 감독은 이 힘겨운 여정을 섬세한 감수성으로 풀어낸다. 모리스가 클라이브에게 느끼는 격렬한 감정을 강렬하게 표출하기 보다는 아련하고도 안타까운 순간들을 담아낸다. 욕망의 크기를 보여주기 위해 노력하기 보다는 아스팔트를 뚫고 피어나는 한 송이의 꽃처럼 서서히 결실을 맺는 사랑의 용기를 조명한다.
 
<모리스>는 고풍스러운 분위기에 퀴어라는 독특한 감성을 녹여낸 특별한 아트버스터이다. 스크린을 가득 채우는 사회적인 편견과 금기를 뚫고 퍼지는 모리스의 사랑의 열정은 가슴을 움직이는 힘을 보여준다. 명작이 지닌 힘은 감성에 있다. 이 감성은 시대가 지나도 변하지 않고 오히려 더 깊게 그 맛을 음미할 수 있는 와인과 같은 마력을 지니고 있다. 이번 정식 개봉은 그런 순간을 만끽할 수 있는 기회라 할 수 있다.
덧붙이는 글 이 기사는 김준모 시민기자의 개인 블로그, 브런치, 씨네리와인드에도 게재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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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 겸 영화 칼럼니스트 김준모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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