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1988년 개봉한 에롤 모리스 감독의 <가늘고 푸른 선 The Thin Blue Line>을 보고 다큐멘터리 연출가의 꿈을 키웠다. 영화는 1976년 11월, 미국 텍사스주 댈러스에서 발생한 로버트 우드 경사 살인사건의 진범을 찾는 과정을 보여준다.
 
사건 발생 한 달 뒤, 16세 소년 데이비드 해리스가 용의자로 지목된다. 자신이 저지른 살인을 친구들에게 떠벌리던 데이비드는 경찰이 들이닥치자 로버트를 살해할 때 사용한 22구경 권총을 버린 늪지와 도난된 차량을 운전한 사실까지 진술한다. 하지만 데이비드는 검찰 조사 과정 중 진술을 뒤집는다. 자신과 우연히 차에 동석한 28세 청년 랜들 애덤스가 로버트 우드 경사를 살해했다고 말이다.
 
랜들은 사건 발생 전에 데이비드와 헤어졌다고 주장했지만, 검찰은 그의 주장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그렇게 데이비드의 증언만으로 랜들 애덤스는 살인죄로 사형선고를 받는다. 그로부터 10년 후, 에롤 모리스 감독은 이 사건을 추적하기로 마음먹고 영화 <가늘고 푸른 선 The Thin Blue Line>의 제작을 시작한다.
 
치밀한 구성과 인터뷰를 통해 경찰 살해 혐의로 12년을 복역한 랜들 애덤스의 무죄를 밝혀낸 이 작품은 현재까지도 전설적인 탐사 다큐멘터리로 손꼽히고 있다. 특히 이 영화가 가진 강력한 무기는 '인터뷰'에 있다. 용의자와 검찰, 그리고 증인들의 각기 다른 주장을 편집해 관객이 진실을 마주할 수 있도록 구성한 것이다.

다큐멘터리 스토리텔링의 주요 요소 : 인터뷰 
 
 정두언 전 의원이 김병기 감독과 악수를 하고 있다.

정두언 전 의원이 김병기 감독과 악수를 하고 있다.ⓒ 오마이뉴스


이명박 전 대통령의 4대강 사업을 추적한 다큐멘터리 영화 <삽질>이 가진 무기도 바로 인터뷰다. 나는 <삽질> 제작 중 수많은 사람을 만났다. 자신을 던져 4대강 사업을 반대한 사람들, 당시 사업을 옹호해서 호가호위했던 사람들, 그리고 거대한 사업을 기획해 막대한 이익을 취하려는 자들. 김병기 감독과 나는 그들을 만나면서 4대강 사업의 실체에 다가가려 했다.
 
다큐멘터리가 흥미로운 이유는 극영화와 달리 미리 짜놓은 대본이 없기 때문이다. 따라서 인터뷰 대상의 반응이나 행동을 예상할 수 없다. <삽질> 제작 중 가장 기억에 남는 인터뷰이는 정두언 전 새누리당 의원이다.

2002년 당시 서울시장 후보였던 이명박의 비서실장이었던 그는 2004년 17대 총선을 시작으로 서대문을에서 3선을 했다. 우리는 과거 이명박의 최측근이었던 그를 찾아갔다. 정 전 의원은 우리를 반갑게 맞이했다.
 
"촛불 시위를 맞으면서 이명박 정부가 추락했고 대운하도 같이 추락했죠. (이명박 전 대통령이) 워낙 의지가 강하니까 이거를 4대강 살리기로 축소해서 하자는 건의를 여러 사람이 했겠지만 나도 했고. (중략)

어쨌든 그런 소문은 있었어요. MB의 친구라고 했나. 뭐 하여간 옛날 현대건설에서부터 뒷바라지하던 사람이 토목(공사)을 차지했느니 그래서 엄청나게 돈을 벌었단 이야기도 들었고. 그리고 이제 내가 대충 실세들이라고 하는 행태를 보면 거의 모든 사업에 개입하더라고. 나는 제일 웃기는 게 검찰 이런 데선 계좌 추적을 해. 세상에 계좌로 돈을 넣어 주는 데가 어디 있어? 그러니까 안 할 순 없겠지만 다 현찰로 오가지 어떻게 계좌로 되겠어요?"
 
한반도 대운하 사업에 대한 엄청난 반대 여론을 반전시키기 위해 4대강 사업으로 전환했다는 정 전 의원의 발언을 시작으로 한 시간여에 걸쳐 인터뷰가 진행됐다. 그는 이명박 정부 시절 '왕의 남자'라고 불렸고 이명박 전 대통령의 친형 이상득 전 국회부의장 출마를 요구하는 '55인 파동'에 앞장섰다가 이후 MB에게 등을 돌렸다. 최측근에서 '저격수'가 된 그는 꽤 차분한 모습이었다.
 
그로부터 약 1년 뒤인 2019년 7월 16일 정두언 전 의원은 돌연 세상을 떠났다. 그는 4대강에 대해 어떤 진실을 알고 있었을까. 영화 <삽질>은 그의 모습을 담은 마지막 다큐멘터리 영화가 됐다.
 
흩어진 이야기의 조각들을 하나의 드라마로 만드는 과정 : 편집 
 
 이연정 편집감독이 영상 편집 작업 중이다.

이연정 편집감독이 영상 편집 작업 중이다.ⓒ 백재호 감독


영화(다큐멘터리 포함) 제작 과정은 크게 세 단계로 나눌 수 있다. 기획 의도를 바탕으로 연출계획을 짜고 출연자를 섭외하는 프리 프로덕션 단계, 실제 촬영을 진행하는 프로덕션 단계, 영상 편집과 음악, 색 보정과 음향을 정리하는 포스트 프로덕션 단계까지. 그 중 <삽질>의 편집 과정에 관해 이야기해보려고 한다.
 
우리 편집 과정에서 생긴 사건·사고들은 책 한 권에도 다 못 담아낼 정도로 많다. 그간 꽤 오래 편집 프로그램을 다뤄왔지만 <삽질>의 편집 과정은 생전 처음 보는 오류들의 향연이었다. 예상치 못한 일은 촬영 현장에서만 발생하는 게 아니라는 걸 이번 편집 과정을 통해 뼈저리게 배웠다. 업계에는 '편집은 엉덩이로 한다'는 말이 있다. 당시 내 엉덩이는 짓무르다 못해 곪았다. 함께 했던 편집감독도 나보다 심하면 심했지 덜하진 않았을 것이다.
 
당시 나와 편집감독은 OK 컷부터 NG 컷까지 꼭 필요한 화면이 1초라도 있으면 쓴다는 심정이었다. 그렇기에 연출자와 편집감독은 오랜 시간 함께하기 마련이다. 편집은 힘들게 찍어온 영상을 버리는 과정이다. 수많은 영상 중 무엇을 버려야 할 것인지는 연출자와 편집자 둘만의 몫이다.
 
영화 <삽질>은 이연정 편집감독과 함께 했다. <이타미 준의 바다(2019, 정다운)>, <발광하는 현대사(2014, 홍덕표)>, <돼지의 왕(2011, 연상호)>, <똥파리(2008, 양익준)> 등 다수의 작품에 참여한 그의 경험은 <삽질>을 보다 극적으로 만드는데 핵심적인 역할을 했다. 올해 5월 전주국제영화제에서 상영된 108분짜리 버전을 94분으로 줄이는 데 50일이 걸렸다. 단순히 14분을 줄이는 게 아니라 전체를 조각 조각 분해하고 붙이는 작업이 시작됐다. 이미 108분짜리 결과물을 봐 온 내 눈은 객관적일 수 없었다.
 
24분의 1초인 한 프레임을 자를 것인가 붙일 것인가. 그 선택의 과정에서 이연정 감독의 진가가 드러났다. 다큐멘터리 영화라는 장르는 방송의 탐사 프로그램과 이야기 전달 방식이 달라야 한다. 사실 전달도 중요하지만, 그에 못지않게 인물의 발언을 통해 영화의 전반적 메시지를 전달하는 것도 중요하다. 촬영 영상을 하나씩 하나씩 유심히 보던 이 감독은 내가 찾지 못했던 출연자들의 발언을 찾아서 살려내기 시작했다. 다소 딱딱하고 지루했던 기존 버전에 그가 새 숨을 불어넣기 시작하면서 비로소 <삽질>은 영화가 됐다. 그렇게 2019년 긴 장마와 무더위를 백석역 인근의 작업실에서 이 감독과 보냈다.
 
<삽질> 편집 과정에서 언급해야 할 중요한 사람이 한 명 더 있다. 바로 이정찬 편집감독이다. 제작과정 중 우리는 4대강 사업에 대해 이명박 정부가 지시했던 내용이 담긴 실제 문건을 다수 확보했다. 기사로 바로 보도했다면 특종 거리였다. 확보한 문건을 바탕으로 영화 곳곳에 관객들이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모션 그래픽을 입혔다.

이 작업은 1프레임(24분의 1초)씩 동작을 만져야 하기에 고되면서도 세련미까지 고려해야 하는 까다로운 과정이었다. 이정찬 편집감독은 20대 초반의 젊은 열정을 모두 쏟아부었다. 작업이 끝날 무렵, 그와 함께 술을 한잔했다. 그때 그는 나에게 조심스럽게 이야기했다.
 
"다시 이 작업을 하라고 하면 힘들어서 절대 못 할 거예요."
 
그렇게 든든한 두 명의 편집감독과 함께 <삽질>은 결승점을 향해 달려갔다.
 
 이정찬 편집감독이 <삽질>의 모션 그래픽을 수정 중이다.

이정찬 편집감독이 <삽질>의 모션 그래픽을 수정 중이다.ⓒ 오마이뉴스

  
다큐멘터리를 극적으로 만들어주는 요소 : 음악
 
음악 작업은 편집이 끝난 후 영화의 전체 분위기를 이끄는 중요한 역할을 한다. <삽질>은 한반도 대운하 사업부터 4대강 사업에 이르기까지 10년이 넘는 기간에 일어난 다양한 사건들을 다루고 있다. 그렇기에 다양한 분위기의 음악이 필요했다.

영화의 프로듀싱을 맡은 이선필 기자는 제작과정 중 오랜 시간 음악에 대해 고민했다. <삽질> 제작 전, 나는 영화에서 음악이 차지하는 비중이 크지 않다고 생각했다. 긴장감 있는 이야기 전개와 출연자들의 진정성만 있다면 연출자가 원하는 지점에서 다양한 감정을 전달할 수 있다는 판단이었다. 내 생각이 틀렸다는 걸 음악 제작과정을 다 지켜본 직후 깨달았다.
 
이선필 기자와 나는 강기훈 유서 대필 조작사건을 다룬 영화 <1991, 봄>의 양정화 프로듀서의 소개로 한 음악감독을 만났다. 사당역 인근에 있는 '개화만발 스튜디오'에서 그렇게 양정원 감독과 처음 만났다. 첫 만남은 강렬했다. 검은색 뿔테 안경과 멋진 수염 그리고 귀걸이의 조합. 반갑게 우리를 맞이한 그와 꽤 오랜 시간을 스튜디오에서 보냈다.
 
 양정원 음악감독

양정원 음악감독ⓒ 개화만발 스튜디오

 
<삽질>의 음악은 108분짜리 버전과 개봉 버전인 94분 버전 총 두 번의 작업을 거쳤다. 이미 한 번 작업이 완성된 음악을 전부 다시 만들어달라고 부탁하는 우리를 보고 양 감독은 어떤 생각이 들었을까. 작업이 다 끝난 뒤 그는 흔쾌히 대답해 주었다.
 
"똑같은 일을 두 번 하면 결과가 안 좋을 거라 걱정했어요. 그리고 작업하면서 처음 할 때보다 더 힘들어서 아예 처음부터 다시 하고 싶었어요. 이 영화 안 본 눈을 사고 싶었죠."
 
올해 2월 8일을 첫 만남을 시작으로 9월 중순까지 장장 8개월간 이어진 음악 작업. 결과는 대만족이었다. 일렉트릭 기타와 일렉트릭 피아노로 구성된 록 블루스. 양 감독은 영화에 담긴 4대강 사업에 얽힌 음모, 4대강 독립군들의 고발, 망가진 자연을 두고 아파하는 사람들을 표현하고자 했다고 이야기했다(영화 <삽질> OST는 지난 11월 1일 발매됐다).
 
여러 사람이 모여 하나의 결승점을 향해 달려가는 과정. 영화의 매력은 여기에 있다. 절대 끝나지 않을 것 같았던 <삽질>의 제작을 마치며 들었던 생각은 단순히 흥행 성패만은 아니었다. 영화 <삽질>을 통해 만났던 다양한 사람들과의 소통 과정에서 왜 좋은 영화를 만들어야 하느냐는 질문에 스스로 답을 찾을 수 있었다. 진실에 대한 올바른 기록, 영화 <삽질>은 14일 개봉한다.

☞ 영화 <삽질> 예매 사이트 
http://movie.yes24.com/Ticket/Ticket_Movie.aspx?m_id=M0000754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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