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터미네이터: 다크 페이트> 포스터

<터미네이터: 다크 페이트> 포스터ⓒ 월트 디즈니 컴퍼니 코리아

 
아빠와 남동생과 평화롭게 삶을 살아가던 '대니(나탈리아 레이즈)'. 어느 날 갑자기 아빠의 모습을 한 터미네이터 'Rev-9(가브리엘 루나)'가 나타나 대니를 죽이려 하지만, 그녀는 '그레이스(맥켄지 데이비스)'의 도움으로 살아남는다. 자신을 강화인간이라 소개한 그레이스는 대니가 인류의 미래이고, 자신은 그녀를 보호하기 위해 왔다는 사실을 알려준 후 도망치기 시작한다. 그러나 이내 Rev-9의 추격을 허용하고 일촉즉발의 위기에 처한 순간, '사라 코너(린다 해밀턴)'가 그들 앞에 나타난다.

<터미네이터 2: 심판의 날>의 영광을 이어가고, 시리즈에 새로운 활력을 불어넣기. 속편과 리부트 등이 줄줄이 실패한 이후 또 한 번 제작된 <터미네이터: 다크 페이트> 앞에 놓인 임무였다. 그리고 <터미네이터: 다크 페이트>는 그 임무를 충분히 해낼 것이라는 기대를 받았다. <터미네이터 2: 심판의 날>의 감독이었던 제임스 카메론이 영화 제작에 합류했고, 린다 해밀턴과 아놀드 슈왈제네거가 사라 코너와 터미네이터로 복귀했으며, <데드풀>의 감독인 팀 밀러가 메가폰을 잡으면서 가능성이 충분해 보였기 때문이다. 그러나 막상 뚜껑을 열어본 <터미네이터: 다크 페이트>는 절반만 합격한 애매한 리포트였다.
 
 <터미네이터: 다크 페이트> 스틸컷

<터미네이터: 다크 페이트> 스틸컷ⓒ 월트 디즈니 컴퍼니 코리아

 
<터미네이터 2: 심판의 날>로부터 이어지는 영화를 만들겠다는 의도는 두 가지 방식으로 영화 안에 구현된다. 우선 린다 해밀턴의 사라 코너와 아놀드 슈왈제네거의 터미네이터라는, 시리즈의 원년 멤버들의 귀환을 통한 시리즈의 핵심 요소인 인간과 기계의 관계를 재조명한다. 노련하고 기계처럼 냉정한 여전사가 된 사라 코너와 평범하게 늙으면서 인간처럼 변한 터미네이터. 감정이 메말라가던 인간과 인간의 감정을 깨우쳐 가던 기계는 서로를 보면서 다시 인간과 기계의 정체성을 되찾는다. 2편에서 감정적으로 강력한 흡입력을 보여줬던 존, 린다, 터미네이터 간의 관계를 비틀어서 재현한 셈이다.

또한 영화는 과학 기술의 발전과 이에 대처하는 인간이라는, 시리즈를 관통하는 주제의식을 다시 한번 전면에 내세운다. 공장에서는 로봇이 대니 남동생의 일자리를 대체한다. 미래에 스카이넷은 없지만 '리전'이라는 다른 인공지능이 핵전쟁을 일으켰다는 이야기를 듣자 사라는 인간들에게 학습 능력이 없다며 한탄한다. 이는 과학 기술의 발전에 인간은 어떻게 대처해야 하는지, 인간의 윤리와 양심은 과학 기술을 사용할 때 어떤 의미가 있는지에 대한 2편의 주제 의식을 고스란히 이식한 결과물이다.

<터미네이터: 다크 페이트>는 시대의 변화를 반영한 인물인 그레이스와 대니를 등장시켜 시리즈에 새로운 활력을 불어넣는다. 대니는 사라 코너를 재해석한 캐릭터다. 사실 사라 코너는 '시크'한 여전사라는 독자적인 영역을 구축했으나, 플롯 상으로는 어디까지나 존 코너의 어머니라는 한계가 분명한 인물이었다. <다크 페이트>는 사라의 한계를 뛰어넘는 시도를 꾀한다. 그 결과 대니는 시리즈를 이끌어갈 주체로서 어머니라는 한계에 종속되지 않는다. 이 시도는 사라와 대니에게 과거와 미래의 만남이라는 상징성을 부여해 접점이 없던 둘 사이에 유대감을 만들어내기도 한다.

그레이스는 인류의 리더로 성장하는 과정에 있는 대니에게 보호자이자 멘토다. 완성된 캐릭터로서 이번 영화에서 가장 빛나는 카리스마를 보여주는 캐릭터이기도 하다. 아빠가 없던 존 코너에게 T-800이 있었던 것처럼, 엄마가 없는 대니에게는 그레이스가 있다. 하지만 둘의 관계는 유사 부자 관계처럼 수직적이나 종속되는 과계가 아니다. 둘은 수평적인 관계에서 서로의 성장을 도우며 단단한 연대감을 느낀다.

이처럼 <터미네이터: 다크 페이트>는 젠더와 가족의 위계질서를 재해석해 정체성을 유지하면서도 시리즈에 새로운 동력원을 만들려고 시도한 영화다. 이러한 시도는 이 작품이 고심 끝에 탄생한 영화로 느껴지는 이유이기도 하다. 하지만 이 영화는 고심한 흔적이 느껴질 뿐 영화적인 쾌락이 크게 와 닿지는 않는다. 이유는 간단하다. <터미네이터: 다크 페이트>는 너무 익숙한 영화다.

놀라움과 긴장감이 휘몰아치던 초반부가 지난 후 대부분의 부분에서 2편을 다시 보는 듯한 기시감을 떨칠 수가 없다. 이는 이전 시리즈의 플롯 구조를 교과서로 삼아 철저히 따르는, <스타워즈: 깨어난 포스>와 유사한 접근방식으로 영화가 만들어졌기 때문이다.

일단 이야기의 구조가 2편과 동일하다. 주인공들의 일상을 파괴하는 터미네이터의 등장과 거듭되는 추격전, 우연을 가장해 아무 설명 없이 주어지는 도움들은 극의 전개를 늘어뜨리고 지루하게 만든다. 빌런인 Rev-9 역시 몸이 나뉘거나 드론을 활용하는 등 발전한 기술력을 보여주지만, 결국 사람의 외관을 복제하고 정보를 캔다는 점에서 T-1000과 다를 것이 없다.
 
 <터미네이터: 다크 페이트> 스틸컷

<터미네이터: 다크 페이트> 스틸컷ⓒ 월트 디즈니 컴퍼니 코리아

 
액션에서도 공장과 고속도로에서의 액션 시퀀스, 헬기와 차량의 추격전 등 2편을 오마주한 부분들이 거듭 등장한다. 그래서 비록 더 화려하고 아크로바틱 하며, 공중과 수중까지 오가면서 스케일을 한껏 키웠을지 언정 그 구조가 동일하다 보니 새롭지는 않다. 새로운 인물들을 잘 활용해서 액션 시퀀스 자체가 긴박하게 잘 만들어졌기에 특히 아쉬운 대목이다.

이처럼 <터미네이터: 다크 페이트>는 2편에서 호평받았던 대목들을 따라가면서 자신이 <터미네이터> 시리즈의 적통임을 증명하려 애쓰는 작품이다. 사라 코너의 등장에서 환호하고 터미네이터의 퇴장에서 눈물짓게 하니 어느 정도 성공했다고 볼 수 있다.

단지 익숙한 구조를 답습한 선택이 새로움을 추구하는 영화의 발걸음에 족쇄가 되는 느낌을 지우기 어려울 뿐이다. 그래서 대니라는 캐릭터가 인상적으로 다가오지 못하고, 그녀의 성장 역시 와 닿지 않는다. 속편이 나온다면 조금만 더 변화를 추구해도 좋지 않을까. 포장은 새로워졌는데 내용물은 크게 변하지 않은, 절반의 성공을 거둔 시리즈의 귀환, <터미네이터: 다크 페이트>다.
덧붙이는 글 이 기사는 원종빈 시민기자의 개인 브런치에도 게재됐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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