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4일 연극 <두 줄> 연습 현장에서 김은미 연출을 만나 이야기를 나눴다. 왼쪽부터 방선혜 배우, 김은미 연출, 김보경 배우, 박경은 배우

지난 14일 연극 <두 줄> 연습 현장에서 김은미 연출을 만나 이야기를 나눴다. 왼쪽부터 방선혜 배우, 김은미 연출, 김보경 배우, 박경은 배우ⓒ 우민정

 
작년 가을 첫선을 보였던 연극 <두 줄>이 다음 달 다시 상연된다. 개작을 통해 서사를 더 단단히 채웠지만, 달라지지 않은 점이 하나 있다. 바로 여성들의 모습만 등장한다는 것이다. 반면, 남성들은 얼굴을 드러내지 않고 목소리와 실루엣으로만 등장한다. 그들이 휘두르는 여성에 대한 폭력이 한 개인의 인성 문제가 아니라는 암시다. 연극 <두 줄>은 가부장제 사회에서 만연한 여성에 대한 폭력을 임신테스트기의 '두 줄'이라는 상징을 통해 이야기한다.
 
상미는 부잣집 사모님이자, 가정폭력 피해자이다. 그녀의 남편은 '술에 취해 꼭지가 돌면 프라이팬을 휘두르고', 다음날이면 그녀를 집 밖으로 못 나가게 한다. "동네 창피하다"는 게 이유다. 그가 창피한 것은 무엇일까? 아내를 때렸다는 사실일까, (자신의 소유물인) 아내가 품위 떨어지는 몰골로 돌아다닌다는 사실일까. 그가 때릴 때마다 사주는 명품백은 누구의 품위를 위한 걸까. 연극 <두 줄>은 상미를 통해 폭력은 때리는 순간에만 일어나는 것이 아니라, 남편이 그녀를 자신의 물건처럼 통제하는 순간순간마다 행해지고 있었다는 것을 보여준다.
 
남편의 폭력에 도망쳐온 상미는 아랫집 정희에게 말한다. "너는 남편 없어서 좋겠다." 그 말에 정희는 침묵으로 응답한다. 그녀에게는 때리는 남편이 없을 뿐, 때리는 남자는 수두룩하다. 택배 기사부터 이웃 남자까지 혼자 사는 그녀는 언제나 타깃이 된다. 

"먼저 꼬셨다던데? 자기 몸 간수는 자기가 해야지." 그러나 폭력 이후 단죄의 언어는 늘 여성을 향한다. 우리 사회에서 "여자의 '조심하지 않은 죄'는 여성에 대한 남성의 각종 폭력보다 더 가혹하게 처벌받는다"(이라영 저서 <정치적인 식탁> 중).

통제당하는 건 여성의 몸
 
사회는 '조심하지 않은 죄'의 책임을 여성에게만 묻는다. 임신 테스트기의 '두 줄' 역시 여성에게만 가혹한 짐이 된다. 상미와 정희도 '두 줄'의 아픈 역사를 가지고 있다. 그녀들의 두 줄이 고통으로 변질될 때 남성들은 어디서 무얼 하고 있었냐고 연극은 묻는다. 극 중 남성은 선심 쓰듯 돈을 건네는 것으로 책임을 다한 것처럼 군다. 그조차 안 하는 이들도 차고 넘치지만, 지난 14일 만난 <두 줄>의 연출 김은미씨는 혹시 모를 낙태에 대비해 '계'를 하는 남성들의 이야기를 듣고 섬뜩했던 기억이 있다며 말을 이었다. 
 
"콘돔을 제대로 쓰는 남성들이라면 그런 계를 할 이유가 없잖아요? 결국, 이 관계에서 처음부터 끝까지 통제당하는 건 여성의 몸이란 걸 깨달았죠."
 
이 작품을 통해 그녀는 우리 사회에서 과연 여성은 자기 몸의 주인인지 질문을 던지고 싶었다고 말한다.
 
"대학에 다닐 때 여자 친구들 사이에서 여자는 결혼하기 전에 '처녀막 재생 수술'을 해야 한다는 얘기가 있었어요. '경험 없는 무결한 여성'으로 남편에게 승인받아야 한다는 이유였죠. 그때부터 질문이 생기기 시작했어요. 여성의 몸은 누구를 위해 존재하나." 
 
 연극 <두 줄> 포스터

연극 <두 줄> 포스터ⓒ 우민정

 
김은미 연출은 작년, <두 줄>을 창작하고 상연하면서 고민은 더 깊어졌다. 공연 후 다양한 남성들과 이야기를 나눌 기회가 있었는데 그때마다 생각의 간극을 확인했다. 주요한 문제 제기 중 하나는 "(극 중 등장하는) 강간은 강간이 아니다"라는 것이었고, 그 근거는 "때리고 협박한 게 아니기 때문"이라는 것이었다. 이런 이야기들은 극작가이자 연출가로서 친밀한 관계에서의 젠더 폭력 문제를 더 고민하게 해주었다.
 
"처음부터 데이트 폭력까지 고민하고 썼던 작품은 아니었어요. 여성에 대한 폭력을 그리는 과정에서 제 생각에는 '누가 봐도 인정할 수 있는 강간'을 그렸는데, 의외로 '그게 왜 성폭력이냐?'는 반응을 많이 접했어요. 그때부터 고민됐죠. 무엇이 강간인가. 칼을 들이미는 물리적 폭력을 동반해야만 강간인가."
 
그때마다 힘이 되어준 건 "절대 과장이 아니다. 현실적이었다"라는 여성들의 지지였다. 연극이 끝난 뒤 자신의 이야기를 들려주며 기꺼이 연대의 마음을 보내준 사람도 많았다. "잘못이라고 생각한 적이 없었는데 이제야 부끄럽다는 생각이 들었다"라는 이야기를 건네준 남성들도 있었다.

그런 반응에 힘을 입어 올해는 극 안에서 여성들이 만들어가는 연대의 힘도 보여줄 생각이다. 결말의 형식도 관객이 선택할 수 있도록 바꿨다. 서로 관여하고 개입할 때 세상이 바뀐다는 메시지를 전하고 싶어서다.
 
무엇보다 작년부터 함께 해온 김보경, 박경은, 방선혜, 이건희 배우와 새로 합류한 박재승 배우의 호흡이 기대된다. 연극은 현장에서 마주하며 배우들의 호흡을 그대로 느끼는 예술이기 때문이다.

한편 연극 <두 줄>은 11월 7일(수)부터 17일(일)까지 성북마을극장에서 열린다. 
덧붙이는 글 예매는 다음 링크(www.bit.ly/2mtRtKJ)나 인터파크에서 할 수 있다. 문의는 Theater.Twoline@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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