JTBC <뭉쳐야 찬다>의 한 장면

JTBC <뭉쳐야 찬다>의 한 장면ⓒ JTBC


 
'농구대통령' 허재는 최근 예능에서 가장 뜨거운 인물 중 하나다. 스포츠 전설들의 조기축구 도전기를 표방한 JTBC <뭉쳐야찬다>의 고정출연을 시작으로 <미운 우리새끼> <사장님 귀는 당나귀 귀> <집사부일체> <라디오스타> <냉장고를 부탁해> <옥탑방의 문제아들> <정글의 법칙> <일로 만난 사이> 등 최근 수개월간 각 방송사를 돌며 인기 있다는 예능은 모조리 섭렵하고 있다. 이 정도면 서장훈-안정환-현주엽 등과 어깨를 나란히 하는 '스포테이너'로 분류해도 무리가 없다.

농구인으로서의 허재는 흔히 카리스마, 상남자의 대명사로 통한다. 선수시절의 업적은 말할 것도 없고 감독으로서도 거침없는 언행과 다혈질적인 면모로 늘 화제를 몰고다녔던 인물이다. 국가대표팀 감독 시절 무례한 질문을 하는 중국 기자들에게 욕설을 날리는 장면이나, 심판의 오심에 격렬하게 항의하며 '이게 불낙(블락)이야?'하고 따지는 장면은 지금도 허재의 캐릭터를 상징하는 장면으로 꾸준히 회자되고 있을 정도다.

하지만 높은 인지도에도 불구하고 선수나 감독 시절에 농구 관련 이외의 방송 출연은 손에 꼽을 정도였다. 후배인 서장훈이야 이미 선수 시절부터 범상치 않은 언변으로 끼를 보여줬고, 현주엽이 '먹방'이라는 확실한 무기를 갖춘데 비하여 이들보다도 한 세대 위인 '586세대' 허재가 늦깎이 예능 스타로 급부상하리라고 예상한 이들이 얼마나 있을까.

예능인 허재의 숨은 매력 발굴해낸 <뭉쳐야 찬다>
 
 JTBC <뭉쳐야 찬다>의 한 장면

JTBC <뭉쳐야 찬다>의 한 장면ⓒ JTBC


예능인 허재의 숨은 매력을 처음 발굴해낸 것은 바로 축구예능 <뭉쳐야 찬다>다. 사실 이 프로그램의 진정한 주인공은 허재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은퇴한 스포츠 전설들이 뭉친 축구팀 '어쩌다 FC'에서 허재는 이른바 주전에서 제외된 '을왕리 멤버'로 분류된다. 경기에 거의 못뛰고 벤치에만 앉아 있는 모습이 을왕리에 피서온 관광객을 연상시킨다는 데서 비롯된 별명이다.

허재는 정형돈-김성주-김용만 등 예능을 담당하는 연예인 멤버들을 제외하고 '어쩌다 FC'의 체육인 출신 멤버 중 단연 부동의 최약체다. 골키퍼로 나섰다가 축구의 룰을 몰라서 백패스를 손으로 잡질 않나, 출전한 지 5분도 안 되어 번번이 부상을 당하는 '유리몸'인데다, 누가 감독 출신 아니랄까봐 걸핏하면 감독의 영역에 개입하려다가 면박을 당하는 '오지라퍼'이기도 하다. 당초 체육인으로 섭외가 됐는데 실제로는 예능 멤버가 되어버린 독특한 케이스다.

그런데 아이러니하게도 이러한 '부실한 반전 매력'이 오히려 허재의 예능 캐릭터를 극대화시켰다. '농구대통령' 시절의 강인하고 다가가기 어려워 보이는 면모와는 달리, <뭉찬>의 허재는 이른바 '의리 형님' 김보성을 연상시키는 허당 캐릭터다. 큰소리만 뻥뻥치다가 축구는 가장 못해서 번번이 동생들한테 놀림을 당하고 체면이 뭉개지는데서 대부분의 웃음포인트가 나온다.

절에 갔다가 게임룰을 몰라 동생들에게 벌칙으로 등을 두들겨맞는가 하면, 연예인 축구단과의 대결을 앞두고 신나게 댄스까지 추는 모습은 허재의 현역 시절을 기억하는 팬들에게는 상상도 하기 힘든 충격적인 변신이었다. 이러한 '츤데레'에 가까운 면모는 오래전부터 허재를 잘 알고 있는 사람들에게는 익숙한 모습으로 통하지만, 대중에게는 카리스마와 권위를 벗어 던진 신선한 모습으로 다가온다.

'친숙하고 귀여운 허당 아재' 허재
 
 JTBC <뭉쳐야 찬다>의 한 장면

JTBC <뭉쳐야 찬다>의 한 장면ⓒ JTBC


또한 굉장히 권위적이고 거칠 것과 같은 이미지와 달리 투덜대면서도 한참 후배뻘인 감독(안정환)이나 동생들의 말을 잘 따르고 분위기를 맞춰주는 모습을 보며 허재를 다시 봤다는 시청자도 많다. 농구계 외에도 제법 인맥이 넓고 친화력도 있어서 <뭉찬>만이 아닌 다른 프로그램에서도 출연자들과 자연스러운 찰떡 궁합을 보여주기도 한다. 아이러니하게도 어쩌다FC 팀내에서 축구실력이나 발전은 더딤에도 불구하고 정작 홀로 활발한 방송 활동을 하는 것은 물론 광고까지 찍을 만큼, 그야말로 이 프로그램의 최대 수혜자라고 할 만하다. 

사실 <뭉찬> 출연은 허재 개인에게도 인생의 전환점이라고 할 만하다. 불과 얼마전까지만 해도 농구인으로서의 커리어가 크게 망가졌었다. 국가대표팀 감독을 맡아 '2018 아시안게임'에 나섰으나 아들(허웅-허훈) 발탁 논란으로 구설수에 오른 끝에 우승에 실패했고 대회 직후에는 불명예스럽게 자진 하차해야 했다. 프로농구 현역 감독들의 연령대가 젊어지며 어느덧 50대 중반에 접어든 허재의 현역 지도자 복귀 여부도 불투명했다.

그런데 방송 출연 이후 이러한 부정적인 이미지는 거의 희석됐다. 오히려 농구스타 시절의 허재를 잘 모르는 일반 시청자나 젊은 팬들에게는 그저 '친숙하고 귀여운 허당 아재'의 매력으로 어필하며 대중적 호감도가 부쩍 성장했다. 방송에 출연하면서 좋아하던 술도 줄이고 편안한 동료들과 웃고 즐기며 축구를 하다보니 감독 시절보다 얼굴이 좋아졌다는 이야기도 나온다. 방송의 힘이 그저 한물간 왕년의 스타로 잊히던 인물을 단숨에 다시 부활시킨 것이다.

"그거슨(그것은) 아니지"

한편으로 허재가 <뭉찬>에서 특히 빛날 수 있었던 것은 본인의 확실한 캐릭터도 있었지만 스포츠 예능이라는 장르의 특성과 편집의 힘이 컸다. 허재의 대표적인 유행어가 된 "그거슨(그것은) 아니지" 같이 자연스러운 반응이나 사소한 습관들도 대충 넘어가지 않고 포인트를 짚어서 유머러스하게 잘 살려주는 전문 예능인들과 제작진의 편집이 뒷받침 되었기에 허재의 캐릭터가 더 빛날 수 있었던 것이다. 허재의 부족한 축구실력이나 낮은 기여도, 가끔씩 선을 넘는 것처럼 보일 수도 있는 언행같은 단점들은 크게 부각되지 않는다. 적절한 편집의 중요성을 보여주는 장면이다.

물론 허재가 예능인으로서 꾸준히 인기를 구가할 수 있을지는 아직 미지수다. 허재가 방송에서 어필할 수 있는 캐릭터는 사실 <뭉찬>에서 보여준 허당 캐릭터의 연장선상에 있다. 이미 여러 예능에서 게스트로 출연하여 허재라는 캐릭터를 통하여 보여줄 수 있는 에피소드는 거의 다 보여줬다고 할 만하다. 앞으로 <뭉찬>의 인기 곡선에 따라 예능인 허재의 주가도 영향을 받을 수 있을 듯하다. 

의외의 지점에서 인기몰이를 시작했지만 허재가 역시 가장 빛나는 순간은 역시 본업인 농구와 관련된 모습을 보여줄 때다. 허재는 <뭉찬>을 섭외받을 당시, 농담 반 진담 반으로 "후속편은 농구와 관련된 프로그램을 한다는 약속을 받고 출연을 결정했다"고 밝힌 바 있다.

허재를 중심으로 한 <뭉찬>의 농구 버전을 찍는 것도 현실화된다면 충분히 재미있는 기획이 될 것으로 보인다. 허재의 방송 활동과 늦깎이 인기는 차세대 스타 부재에 허덕이고 있는 현재 프로농구계에도 미디어 활용의 중요성을 알려주는 좋은 사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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