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전의 고 김지석 부산영화제 부집행위원장 겸 수석 프로그래머

생전의 고 김지석 부산영화제 부집행위원장 겸 수석 프로그래머ⓒ 부산영화제


"다들 안녕하신지요. 이 평범한 인사가 새삼스럽게 느껴지는 요즘입니다. 저도 세월호 참사 이후 긴 시간을 고통과 분노 속에 지내고 있습니다."
 
2014년 6월 부산영화제 관객들에게 보낸 편지에서 김지석 수석 프로그래머의 인사는 이렇게 시작한다. 그는 그해 칸영화제에서 전쟁터에 나간 아들을 기다리는 어머니의 이야기를 그린 이란 영화 <트랙 143>을 인상 깊게 봤다며 이렇게 소개했다.

"이 작품이 각별했던 이유는 짐작하시는 대로입니다. 자식을 잃은 부모의 심정은 그 어떤 고통과도 비교할 수 없을 것입니다. 저는 이 작품이 그분들에게 위안이 되지 않겠지만 적어도 관객들이 슬픔과 고통을 기억하는 역할은 하리라 생각합니다. 저희는 앞으로 차분히 영화제를 준비하겠습니다. 이제부터는 점점 더 바빠지겠지요. 저희는 힘을 더 내겠습니다. 그리고 잊지 말아야 할 것들은 절대 잊지 않겠습니다."
 
부산영화제 성공의 이면에 자리한 허전함
 
지난 12일 폐막한 제24회 부산국제영화제는 올해 행사를 성공적으로 마무리하며 재도약을 선언했다. 하지만 안팎의 호평과 박수 속에서도 허전함과 안타까움이 공존하는 부분이 있다. 바로 김지석이다.
 
지난 2017년 5월 멀리 프랑스 칸영화제 출장 중 타계한 고 김지석 전 부집행위원장 겸 수석프로그래머는 박근혜 정권의 탄압에 맞서 싸웠던 부산영화제 사태에서 가장 큰 희생자였다. 비단 부산영화제뿐만 아니라 한국영화, 더 나아가 아시아영화의 큰 별이었기에 그 허전함은 이루 말할 수가 없다.
 
그가 먼 길을 떠나고 이후 3번의 영화제를 치렀지만 여전히 그의 빈자리는 눈에 띄었고, 영화제를 찾은 국내외 인사들은 틈나는 대로 그를 회고했다. 부산영화제의 성공과 발전에 자부심이 가득한 부산사람 김지석은 그 자체가 부산영화제였기 때문이다.
 
 김지석이 남긴 부산과 아시아영화의 빛나는 기록 <김쌤은 출장 중>

김지석이 남긴 부산과 아시아영화의 빛나는 기록 <김쌤은 출장 중>ⓒ 부산영화제

 
올해 부산영화제에 맞춰 발간된 <김쌤은 출장 중>은 김지석이 남겨 놓은, 부산영화제를 위한 기록이다. 부산영화제 창설 때부터 실질적으로 준비하고 이끌었던 김지석은 영화제 준비와 해외 네트워크를 공고히 하기 위해 끊임없이 해외영화제를 방문했고, 이를 꼼꼼하게 출장보고서와 뉴스레터의 기록으로 남겼다.
 
책으로 나오게 된 것은 고 김지석 부집행위원장의 후임자로 아시아영화 프로그래머를 맡고 있는 박선영 프로그래머의 눈물 때문이었다. 김지석의 출장기를 읽다 가슴이 저며 눈물을 흘린 이야기를 전했고, 이것이 책으로 내자는 의견으로 발전했던 것이다. 지난 5월 김지석 부집행위원장님의 2주기 때 이용관 이사장은 올해 영화제에 맞춰 책을 내겠다는 결심을 전하기도 했다.
 
<김쌤은 출장 중>은 2009년 홍콩영화제와 칸영화제 출장기로 시작해 2017년 이란 파지르영화제 출장기로 마무리 된다. 생전 마지막 영화제는 칸영화제였지만 출장기를 남기지 못했다. 대신 그의 출장 계획서만 남아 있다.
 
그의 출장기는 지난 10년 아시아의 영화의 역사가 자세하게 담겨 있다. 일기처럼 하루의 일정을 세세하게 기록했고, 아시아 영화와 영화산업을 보는 시선과 고민이 엿보인다.
 
표현의 자유 제한된 아시아 국가의 친구
 
생전 김지석 프로그래머는 부산영화제가 매달 정기적으로 보내는 뉴스레터의 맨 마지막에 '인사이드 비프(INSIDE BIFF)'는 제목으로 아시아영화의 흐름과 출장에서 인상 깊었던 내용들을 세세하게 전했었다. 부산영화제를 열렬히 응원하는 관객들에게 '비프폐인'이라는 호칭을 붙이기도 했다.
 
2009년 7월 타이베이영화제의 출장기를 보면 대만의 거장 허우샤오시엔 감독이 양익준 감독과 술자리에서 똥파리의 유명한 대사인 "XX놈아"를 외치면서 즐거워했다는 내용이 나온다. 허우샤오시엔 감독이 대만을 방문할 예정인 김동호 위원장에게 "XX놈아"를 해도 되냐고 묻는 질문에 기겁을 하며 "안 된다"고 했더니 "모두 웃었다"는 부분은 김지석이 전하는 재밌는 출장 뒷이야기다.
 
 지난 6일 열린 부산영화제 <김쌤은 출장 중> 출판기념행사에서 고 김지석 부집행위원장을 추모하고 있는 이란의 모흐센 마흐발바프 감독

지난 6일 열린 부산영화제 <김쌤은 출장 중> 출판기념행사에서 고 김지석 부집행위원장을 추모하고 있는 이란의 모흐센 마흐발바프 감독ⓒ 부산영화제

 
김지석 부집행위원장이 공들였던 곳은 정치적 압박으로 영화 표현의 자유가 제한되던 국가에 대한 연대였다. 특히 이란영화와 영화인들에 각별한 마음을 쏟았다. 이란의 정치 상황이 영화감독들을 억압하고 표현의 자유를 제한해 영화 개봉이 불가능할 정도에 이른 것에 대해 2014년 이란 파지르영화제를 다녀와서는 이런 다짐을 전했다.
 
"모흐센 마흐발바프 감독은 여전히 이란으로 들어가지 못할 것이며 자파르 파나히의 연금 해제는 요원해 보입니다. 신작들 중에는 개봉이 불가능한 작품도 꽤 있습니다. 특히 지난 대통령 선거를 소재로 한 작품들이 여러 편 되는데 정부에서는 상영허가를 내주지 않는다고 합니다. 하메네이를 비롯하나 보수세력의 반발을 우려한 때문이겠지요. (중략) 부산영화제는 단순히 축제가 아니라 그들의 친구이자 파트너가 되고자 했습니다. 이러한 자세는 앞으로도 쭉 계속될 것입니다."
 
2014년 <다이빙벨> 상영으로 촉발된 부산영화제 사태는 이렇듯 아시아 표현의 자유를 위해 지원군 역할을 마다하지 않았던 그에게 자괴감을 안긴 시간이기도 했다. 박근혜 정권의 노골적인 정치적 탄압은 그의 출장마저 가로막았다. 당시 그는 전화통화에서 "5분 대기조라 움직일 수가 없다"며 부산영화제 사태를 대처하기 위해 분주한 자신의 상황을 함축적으로 표현하기도 했다.
 
부산과 한국영화가 세계와 만난 빛나는 기록
 
2015년 4월 뉴스레터에서 김지석은 부산영화제의 상황을 이렇게 전한다. 그에게 세월호 참사는 여전히 고통이었다.
 
"벌써 4월 중순입니다. 지난 4월에 발생했던 전대미문의 비극은 1년이라는 시간이 지났지만 지금도 문득문득 고통이 밀려옵니다. 괴롭지만 그들을 잊을 수가 없네요. 그래서 저는 아직도 마음 속의 탈상을 못했나 봅니다. 희생자들의 명복을 다시 한번 빕니다.

영화제의 상황을 말씀드리자면 지난 3개월이 어떻게 지나갔는지 기억도 잘 나지 않습니다. 지난 연말부터 우리 영화제에 닥친 쓰나미는 아직도 끝나지 않은 채 진행 중에 있습니다."

 
 2020년 완성될 고 김지석 프로그래머 다큐멘터리 영화.

2020년 완성될 고 김지석 프로그래머 다큐멘터리 영화.ⓒ 부산영화제

 
2017년 타계하기 한 달 전 이란 파지르영화제를 찾은 김지석은 연금 중인 자파르 파나히 감독을 찾아 위로와 연대의 뜻을 전하고 고 압바스키아로스타미 감독의 추모행사 참석후 묘소를 찾는다. 이 기록에서도 보수파가 권력을 쥘 경우 이란영화에 재앙이 될 수 있음을 우려했다. 그의 마지막 출장기였다.
 
<김쌤은 출장 중>은 김지석 개인의 시선을 넘어 지난 10년 간 부산과 한국영화가 세계와 만난 빛나는 기록이라는 점에서 사료적 가치도 충분하다. 그의 바람대로 '후대손손 그 가치가 전해져야 할' 실록이기도 하다. 책은 부산영화제를 통해 구입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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