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기 가수겸 방송인이었던 설리가 사망하면서 생전에 그가 마지막으로 출연했던 JTBC2 예능 프로그램 <악플의 밤>이 덩달아 도마에 오르고 있다. 설리는 지난 14일 경기도 성남시 수정구 자택에서 숨진 채 발견됐다. 경찰은 설리의 죽음을 자살로 추정하고 있는데 고인이 생전에 심한 악플로 인한 우울증에 시달렸다는 사실이 알려지며 안타까움을 사고 있다.

설리의 방송 유작이 된 <악플의 밤>은 출연자들이 자신을 향한 악성 댓글을 직접 낭독하고 이야기를 나누는 프로그램이다. 설리는 이 프로그램에서 신동엽, 김숙, 김종민과 함께 MC를 맡았으며 첫 회에서는 자신을 향한 악플을 직접 낭독하기도 했다.

설리의 사망을 안타까워하는 일부 누리꾼들은 <악플의 밤>의 자극적인 포맷을 비난하고 있다. 악플로 누구보다 상처를 안고있던 연예인에게 자신을 향한 무분별한 악플을 직접 읽게 하는 것부터가 트라우마를 되새기게 만드는 잔혹한 설정이었다는 주장이다. 일각에서는 제작진의 사과에서부터 프로그램 폐지를 요구하는 목소리도 나오고 있다.

<악플의 밤>은 현재 예고편 송출이 중단되었고 남은 촬영분도 방송이 불투명해진 상태다. 여론의 분위기나 남은 출연자-제작진이 받았을 트라우마를 감안할 때 일부 누리꾼들의 반발이 아니더라도 더이상의 방송은 어려워보이는게 사실이다.

그러나 <악플의 밤>에게 이번 비극에 대한 책임을 묻는 것은 좀 무리가 있어보인다. <악플의 밤>은 악플을 정당화하자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출연자들이 주눅들지 말고 공개적으로 당당히 악플에 대처하여 극복하는 모습을 보여주자는 게 취지였다. 출연자들이 자신의 악플을 직접 낭독하는 콘셉트는 미국 ABC <지미 키멜쇼> 등을 통해 이미 여러 차례 선보였다. 한국에서도 지난 대통령 선거를 비롯하여 많은 프로그램에서 이 포맷을 차용하기도 했다.

게다가 <악플의 밤>은 출연자가 악플을 그냥 읽고 황당해하는 리액션을 보이는 데서 끝나는 게 아니라, 잘못된 루머나 오해에 대해 진지하게 바로잡을 수 있는 기회도 제공했다. 유명인들이 무분별한 악플에 대하여 일일이 공개적으로 해명할 기회는 그리 많지 않다.

때로 심한 악플에 시달리는 출연자들이 나왔을 때는 자신의 경험담을 들려주며 함께 공감하는 모습도 자주 등장했다. 화려한 연예인이나 SNS에서의 이미지와 달리 "바깥에서는 밝은 척 하지만, 인간 최진리의 속은 어둡다"며 방송에서 드물게 자신의 진솔한 속내를 고백할 수 있었던 것도 오직 이 프로그램에서였다.

잘못된 것은 악플 그 자체이지 악플을 다룬 프로그램이 아니다. 다만 안타까운 것은 이 방송이 '인간적인 설리'의 모습을 볼 수 있는 마지막 유작이 되었다는 점이다. 사망하기 얼마 전까지만 방송이나 SNS에서 밝은 모습만을 보여주던 설리였기에, 누구도 극단적인 선택을 예상하지 못했다.

설리가 세상을 떠난 후에야 지나친 악플에 대한 자성의 여론이 나오고 있다. 하지만 그 방향만 달라졌을뿐 악플 자체가 사라진 것은 결코 아니다. 설리를 애도한다는 명분으로 동료들, 방송 제작진, 소속사, 언론에 이르기까지 설리와 관련이 있던 수많은 사람들에게 또다른 악플 테러가 이어지고 있다. 그런데 그들에게 설리의 입장을 대변할 권리는 또 누가 줬을까. 설리가 과연 지하에서 자신 때문에 누군가가 또다른 악플의 고통에 시달리는 광경을 과연 원할까. 피해자는 있어도 책임지는 사람이 없는 것, 그게 바로 '표현의 자유'라는 허울 뒤에 가려진 악플의 가장 잔혹한 무법성이다.

남이 하는 악플은 비방하면서도 자신의 악플은 명분이 있어서 정당하다고 생각하는 것이 악플의 악순환이 끊이지 않는 이유인지도 모른다. 이미 설리 이전에 수많은 연예인들이 근거없는 루머와 악플의 희생양이 되었지만 그때만 잠시 반짝할 뿐 같은 비극은 되풀이되고 있다. 한번쯤은 '너 때문'이라고 또다른 분노의 제물을 찾기 전에 이제는 '내가 먼저' 혹은 우리 모두가 반성해야할 잘못'이라는 성찰의 시간이 더 필요한게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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