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시즌 연속 봄 농구를 하지 못하고 있는 현재의 KEB하나은행을 보면 상상하기 힘들지만 사실 하나은행은 프로 초창기 신세계 쿨캣 시절 상당한 명문팀이었다. 실제로 신세계는 WKBL 출범 후 8번의 시즌 동안 우승 4번과 준우승 2번을 거두며 초기 WKBL의 최강팀으로 군림했다. 정선민, 이언주, 장선형, 양선애 같은 전·현직 국가대표들이 당시 신세계의 핵심 멤버였고 20대 초반 시절의 임영희 코치(우리은행 위비)도 당시 신세계 소속이었다.

하지만 신세계는 2003년 겨울리그를 끝으로 팀의 핵심 정선민이 WNBA 도전을 선언하면서 크게 흔들리기 시작했다. 정선민은 2년 간의 미국 생활을 마친 후에도 신세계가 아닌 국민은행 세이버스(현 KB스타즈)로 이적했고 2000년대 중반부터 신세계, 그리고 하나은행의 오랜 암흑기가 시작됐다. 두 번의 득점왕을 차지한 김정은(우리은행) 만이 '만년꼴찌의 외로운 에이스'로 고군분투했을 뿐이다.

흔히 프로스포츠에서는 모기업이 바뀌면 과감한 투자를 통해 한, 두 차례 전성기가 찾아오기 마련이지만 하나은행은 2012년 신세계를 인수한 이후 7시즌 연속 봄 농구에 나가지 못했다. 이환우 감독 대신 이훈재 감독이 선임된 이번 시즌에도 하나은행을 3강 후보로 분류하는 농구팬은 많지 않다. 과연 하나은행은 신생구단 BNK 썸마저 '상대로 보고 있지 않다'는 평가를 이겨내고 돌풍을 일으키려 한다.

첼시 리 흔적 지우는데 3년, 그 사이 떠난 프랜차이즈 스타들
 
 강이슬은 지난 시즌 3점 성공과 성공률에서 모두 1위를 차지하며 리그 최고 슈터의 위용을 뽐냈다.

강이슬은 지난 시즌 3점 성공과 성공률에서 모두 1위를 차지하며 리그 최고 슈터의 위용을 뽐냈다.ⓒ KEB하나은행

 
하나은행에게 지난 3년은 '첼시 리 지우기'를 위한 시간이었다. 조모가 한국인이라는 이유로 국내 선수로 인정 받은 첼시리는 2015-2016 시즌 6관왕을 차지하며 하나은행의 준우승을 이끌었지만 한국계가 아닌 것이 드러나면서 영구제명을 받았다. 뿐만 아니라 하나은행은 2015-2016 시즌 팀과 개인기록이 모두 박탈됐고 구단주와 박종천 감독이 사퇴했다. 그만큼 '첼시 리 사태'는 여자프로농구의 전무후무한 역대급 흑역사였다. 

2016년 이환우 감독을 선임한 하나은행은 2016-2017 시즌 나탈리 어천와와 카일라 쏜튼(KB스타즈)이라는 좋은 외국인 듀오를 거느리고도 13승22패로 최하위에 머물렀다. 2016-2017 시즌이 끝난 후 팀의 암흑기를 버티던 김정은이 우리은행으로 이적했고 하나은행은 2017-2018 시즌, 마지막 시즌을 맞아 자포자기한 KDB생명 위너스(4승31패)만 밑으로 둔 5위(12승 23패)에 그쳤다.

하나은행은 2017-2018 시즌이 끝난 후 5명의 선수가 FA자격을 얻었고 그 중 공수에서 가장 공헌도가 높았던 '살림꾼' 염윤아가 KB로 이적했다. 김정은에 이어 염윤아까지 하나은행은 2년 연속 간판급 선수가 다른 팀으로 이적하는 전력손실을 감수해야 했다. 핵심 선수 둘을 잃은 하나은행은 FA시장에서 포워드 고아라를 영입하며 전력손실을 최소화하기 위해 노력했다.

KB에서 8.86득점 5.20리바운드 3.51어시스트 1.94스틸을 기록한 염윤아와 하나은행에서 8.57득점 5.71리바운드 3.11어시스트 1.40스틸을 기록한 고아라의 개인기록은 큰 차이가 없었다. 하지만 KB가 우리은행의 독재시대를 끝내며 프로 출범 후 첫 통합 우승을 차지한 데 비해 하나은행은 네이밍스폰서를 받아 리그에 참여했던 OK저축은행 읏샷(현 BNK 썸)에게도 뒤진 두 시즌 연속 5위(12승 23패)에 머물렀다.

이적 선수 고아라는 스몰 포워드와 파워 포워드를 오가며 충분히 제 역할을 해줬고 '3점슛 여왕' 강이슬의 외곽슛도 여전히 위력적이었다. 하지만 외국인 선수 샤이엔 파커가 19.26점 11.66리바운드로 좋은 성적을 올렸음에도 상대 외국인 선수를 압도할 정도의 위압감을 보이지 못했고 김이슬(신한은행 에스버드)도 부상에 시달리며 18경기에 결장했다. 루키 시즌 박지수와 신인왕을 다퉜던 김지영의 기량이 정체된 것도 하나은행에게는 큰 아쉬움이었다.

15년 만에 여성팀 지도자로 돌아온 이훈재 감독의 첫 시즌은?  
 
 김이슬이 떠난 이번 시즌 신지현이 더 많은 출전시간을 책임져 줘야 한다.

김이슬이 떠난 이번 시즌 신지현이 더 많은 출전시간을 책임져 줘야 한다.ⓒ KEB하나은행

  
2019년 현 시점에서 이제 하나은행을 보면서 첼시 리 사태를 언급하는 농구팬은 거의 없다. 하지만 하나은행은 첼시 리라는 멍에를 지우기 위해 무려 세 시즌 연속 하위권의 순위를 감수해야 했다. 지난 시즌이 끝난 후 이환우 감독이 사퇴한 하나은행은 현역 시절 '수비 스페셜리스트'로 유명했고 15년 동안 상무를 이끌었던 이훈재 감독을 선임했다. 

지난 2년 연속 내부 FA의 이적을 지켜봐야 했던 하나은행은 이번 시즌을 앞두고도 포인트가드 김이슬의 신한은행 이적을 막지 못했다. 하지만 보상선수로 뛰어난 투쟁심을 가진 또 한 명의 포인트가드 강계리를 지명하며 가드진의 이탈을 최소화했다. 한 때 김이슬, 신지현, 김지영, 서수빈까지 가드진이 포화상태였던 하나은행은 이번 시즌 신지현, 강계리, 김지영으로 가드진 교통정리를 마쳤다.

외국인 드래프트에서 전체 3순위로 185cm의 포워드 마이샤 하인스 알렌을 지명했던 하나은행은 하이스 알렌과 훈련을 거의 하지 못했다. 하인스 알렌의 소속팀 워싱턴 미스틱스가 WNBA 파이널 우승을 차지했기 때문이다. WNBA 우승 멤버가 WKBL의 외국인 선수로 합류하는 것은 이례적인 일이지만 하인스 알렌이 제 컨디션을 찾고 국내 선수들과 손발이 맞아가기 위해서는 꽤 많은 시간이 필요할지도 모른다.

하나은행의 최대 강점은 리그 최고의 3점슈터 강이슬을 비롯해 고아라, 김단비, 백지은, 이수연 등으로 이어지는 포워드진이다. 다만 4번 자리에서 다른 팀의 국내 빅맨들과 골밑에서 몸싸움을 해줄 토종 빅맨이 마땅치 않은 것은 하나은행의 최대약점으로 꼽힌다. 물량공세로는 한계가 있는 만큼 하나은행으로서는 신장질환을 극복하고 코트에 복귀한 이하은의 활약에 많은 기대를 걸고 있다.

하나은행은 작년에 이어 올해도 박신자컵에서 우승을 차지했다. 하지만 작년에는 박신자컵 우승의 기세를 정규리그까지 이어가지 못했다. 상무 감독 시절 농구대잔치 9회 우승을 이끈 이훈재 감독을 선임한 것은 하나은행에게는 '특단의 조치'였다. 2003-2004 시즌 금호생명 감독대행을 맡은 이후 15년 만에 여성팀을 지휘하게 된 이훈재 감독은 상무를 아마 농구 최강으로 이끌었던 지도력을 발휘해 하나은행의 오랜 암흑기를 끊을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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