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포스트 포스터

더포스트 포스터ⓒ 20세기 폭스


시민들이 갖는 자유는 크게 두 가지의 자유가 있다. 하나는 외적인 억압에 맞서 쟁취해내는 자유다. 노예로부터의 자유라고 할 수 있다. 다른 하나는 스스로 만들어가는 자유다. 개인들이 자유 의지로 자신들이 지킬 법을 정하고, 이를 충실히 이해하는 것. 자율성이라고도 부르고, 일반의지라고도 부를 수 있는 것. 이것이 현대를 살아가는 우리가 갖는 또 하나의 자유다. 

후자의 자유가 법과 제도로 보장될 경우, 이는 권리가 된다. 우리 모두가 지키기로 합의하고, 이행하기로 합의한 특권으로서 권리가 주어지는 것이다. 중요한 것은 이러한 방식으로 권리를 만들려면 '주장'하는 주체가 있어야만 한다는 점이다. 이처럼 권리를 만들기도, 그리고 유지하기도 힘들다는 것은 인종에 의해 차별받지 않을 권리, 가난하더라도 선거권을 행사할 수 있는 권리처럼 역사 속 사례를 통해 알 수 있다. 2019년 현재 가장 핫한 자유(혹은 권리)는 언론의 자유(시민의 알 권리)와 여성 인권도 마찬가지다. 그리고 이는 스티븐 스필버그 감독의 <더 포스트>가 과거의 영화이나 현재 시점에서 다시 한번 조명받을 가치가 충분한 이유이기도 하다. 

스티븐 스필버그 감독의  2017년 개봉작 <더 포스트>는 베트남 전쟁이 한창이던 1971년을 배경으로 한다. 종군 기자인 '댄 엘스버그(매튜 리즈)'는 베트남 전쟁 관련 국방부 1급 기밀 자료를 빼돌린다. 이와 관련된 특종을 뉴욕 타임스에게 빼앗긴 워싱턴 포스트의 편집장인 '벤 브래들리(톰 행크스)'는 반격하기 위해 필사적으로 노력한다. 워싱턴 포스트의 사주인 '캐서린 그레이엄(메릴 스트립)'도 행정부의 압박 속에서 언론인의 양심과 회사의 이익 사이에서 중대한 선택을 해야 하는 상황에 처한다. 세 인물의 행보가 얽히면서 <더 포스트>는 역사가 정한 결말로 나아간다. 

"We go."
 
댄으로부터 기밀자료를 받아낸 벤 블래들리. 기뻐하며 기사를 준비하는 벤과 달리 회사의 임원들은 백악관과의 관계가 악화될 것이라는 우려와 위법의 소지가 있을 가능성을 고려해 보도하지 않을 것을 원한다. 작중 펜타곤 페이퍼의 보도 여부를 두고 이견이 발생한 가운데, 저 한마디에 이 논쟁은 단숨에 끝난다.

"She says."
 
이 대목은 캐서린의 변화를 보여준다. 그녀는 수많은 남자들에게 둘러 쌓여서 뭘 해야 할지 몰라 망설인다. 누구의 조언도 의미 없는 순간에, 마침내 그녀는 자신의 힘과 책임과 의무를 자각한다. 떨리는 목소리로 결정을 내리고 전화를 끊어버린 캐서린은, 마침내 남자들이 가득한 회의장이나 법원에서 침묵하는 존재 그 이상이 된다. 시대적 한계를 뚫고 다른 여성들의 응원을 받고 대표하는 주체적인 언론인으로 성장한 것이다. 캐서린의 성장은 비록 반 세기 전의 이야기이지만, 아직도 갈 길이 먼 여성 권리 신장 운동의 필요성과 당위성을 강조한다. 

"We publish."

워싱턴 포스트의 기자들은 국가 기밀 누설죄를 뒤집어쓸 상황임에도 언론인의 양심에 따라 사건을 보도한다. 그들은 어떤 대통령과 정부의 권리도 주권자인 시민들의 알 권리에 우선할 수 없다는 저널리즘의 원칙을 충실히 따른다. 영화 초반만 해도 대통령과 관련된 가십을 취재하는데 열중하던 워싱턴 포스트이지만, 그들이 가십을 취재할 수 있었던 언론의 자유가 왜 필요한지, 누가 어떤 이유로 주장해왔는지를 행동으로 보여준 것이다. <더 포스트>가 제작된 2017년의 시점에서 스필버그 감독은 언론들과 전쟁을 치르고 있던 트럼프 행정부를 비판하려 했을지도 모른다.

 
영화 더포스트 스틸컷 영화 더포스트 스틸컷

▲ 영화 더포스트 스틸컷영화 더포스트 스틸컷ⓒ 20세기폭스

 
한 달 사이 안희정 전 충청도지사는 미투 운동의 결과로 유죄 판결을 받았고, 섹시 콘셉트로 유명했던 한 아이돌 걸그룹은 모두의 편견을 깨는 충격적인 무대를 선보였다. 그러나 사회가 여성들의 권리에 합의하고, 이를 보호하기 위한 의무를 부여하는 것이 얼마나 힘겨운 가시밭길인지는 < 82년생 김지영 >의 영화화와 개봉과 관련한 논란이 잘 보여주고 있다.

한편 언론들은 여전히 한 개인과 가족을 끊임없이 물어뜯고 있다. 어떤 특권에 왜 반발하는지를 듣지도 보지도 않고 그들이 원하는 대로 정국을 운영하고자, 감시자가 아닌 한 주체로써 정치판에 끼어든 셈이다. 공영방송의 한 기자는 유튜브 생방송에서 조국 장관 사태에 대해 논쟁을 벌이다가 한국 언론들의 특권의식과 정치권력화 된 모습을 있는 그대로 공개해 버렸다. 수많은 대중들은 역사 속에서 힘겹게 쟁취했다고 믿었던 언론의 자유가 또 다른 무소불위의 권력으로 변질된 것을 목격하고 실망을 감추지 못하고 있다. 

<더 포스트>는 제90회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작품상과 여우주연상에 노미네이트 된 바 있다. 이는 당시 미국 사회가 요구하던 언론의 자유와 페미니즘이라는 메시지를 스필버그가 정확히 짚어냈기에 가능했던 결과일 것이다. <더 포스트>가 지금 한국에서 제작, 개봉된다면 3대 영화 시상식을 충분히 석권하고도 남지 않을까. 2년 전 개봉한 작품이라기에는 그 통찰력과 비판적 시선이 무서울 정도로 날카롭다. 

<더 포스트>는 주제의식 이외에도 많은 장점을 지닌 영화다. 주인공인 벤과 캐서린이 영화 시작 후 10여분 간 얼굴조차 나오지 않는 것처럼 일반적인 저널리즘 영화의 스토리 전개를 따라가지 않았기에 서스펜스 속에서 예상할 수 없는 스토리 전개를 즐길 수 있다. 회의장에 들어가거나, 회의장 안에 있는 캐서린의 잡아내는 카메라와 그 구도는 긴 말 없이 감독이 어떤 의도로 영화를 만들었는지를 명확히 드러내는 훌륭한 연출 방식이다. 스타 파워에 연연하지 않는 예술성이 드러나기도 하고. 메릴 스트립의 카리스마 유무로 전후반부 차이를 만들어내는 연출도 인상적이며, 톰 행크스는 영화에 안정감을 선사해준다.

단점이 없는 것은 아니다. 미국의 근현대사에 관심이 없다면 이해하기 어려울 가능성이 크다. 역사적 사건에 별다른 설명이 없어서 불친절한 영화로 느껴질 여지도 충분하다. 작중 페미니즘이 드러나는 방식도 아쉬움이 남는다. 사실 캐서린은 언론사를 소유한 백인 여성으로, 시대나 사회적으로 기득권층에 속한다고 볼 수도 있다. 같은 여성 안에서도 경제적으로, 사회적으로 다른 계층에 속한다면 직면하는 차별과 어려움이 다를 텐데 그러한 다양성을 영화 안에서 짚어내지 못한 점은 안타까운 대목임에 분명하다. 캐서린이라는 인물의 환경과 내면, 좌절과 성장이 잘 드러나기에 더욱 아쉬움이 남는다. 

그러나 워터게이트 사건으로 마무리되는 영화의 결말은, 영화의 장단점을 다 떠나서 한 가지 사실을 다시 한번 알려준다. 자유와 권리는, 주장하는 사람이 있어야만 만들어지고 유지될 수 있다는 것을. 또 잠시라도 그것을 소홀히 한다면 함께 성취했던 자유마저 다시 사라질지도 모른다고. 이렇게 스티븐 스필버그의 <더 포스트>는 개봉한 지 2년이 지났음에도 존재가치를 당당히 증명한다. 
 
덧붙이는 글 이 기사는 원종빈 시민기자의 개인 브런치에 게재한 글입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게재를 허용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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