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말 묻고 싶어요. 당신의 남편이나 아내가 만약 이런 일을 당했다면 어떻게 하시겠어요. (중략) 이렇게 큰 사건에서도 아무 소리 안 하고 가만히 있으면 한국 사람은 '마사렙'이에요."

2016년 10월 필리핀 경찰에 의해 남편을 잃은 최경진 씨의 말이다. 마사렙이란 '맛있다'란 의미란다. 즉 한국 사람은 건드리면 돈도 나오고 아무 말도 안 하니 건드려도 된다는 의미란다.

지난 17일 MBC <PD수첩>에서는 '사라진 남편, 그는 왜 표적이 되었나'가 방송되었다. 이 방송에서는 2016년 10월 필리핀 경찰에 의해 살해된 채 유족 동의 없이 화장되어 화장실 변기에 버려진 지익주씨와 그 사건을 추적하는 지씨의 아내인 최경진 씨 이야기가 전파를 탔다.

방송을 본 시청자들은 분노했고 외교부가 진정성 있는 대응으로 자국민 보호에 힘써주길 바란다며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http://www1.president.go.kr/petitions/582740)에 글도 올라왔다.

취재 뒷이야기가 궁금해 지난 19일 서울 상암 MBC 사옥에서 이 사건을 취재한 김동희 PD를 만났다. 다음은 김 PD와 나눈 일문일답이다.

 
 MBC <PD수첩>의 한 장면
MBC 의 한 장면MBC
 
- 17일 방송된 <PD수첩> '사라진 남편, 그는 왜 표적이 되었나'를 연출하셨잖아요. 소회가 있을 것 같아요
"사실은 방송이 끝났는데도 숙제가 아직 덜 끝났다는 생각에 홀가분하지 않은 느낌인데요. 저는 이 방송을 통해 사건이 좀 더 공론화돼서 새로운 대책도 나오고 정부를 압박할 수 있는 상황이 되기를 바랐는데, 생각보다 조용해요. 지금은 정치적인 여러 이슈가 있다 보니 굉장히 중요한 문제임에도 불구하고 사람들 관심이 적지 않나라는 생각이 들어요.

이 사건이 2016년 10월에 발생했는데, 그때도 촛불 정국으로 마찬가지 상황이었어요. 필리핀에서는 사건의 반향이 컸고 반성의 목소리가 높았다고 하는데 오히려 한국에서는 조용히 묻혔죠. 저는 취재하는 사람이지만 이 사건이 해결되기를 바라는 사람 중에 하나거든요. 제 방송이 이후의 이 문제를 실질적으로 풀어나가는 데 도움이 되었으면 했는데, 이게 너무 안 되는 게 안타깝습니다."

- 많이 안타까운 것 같아요. 이런 인터뷰 많이 해봤지만, PD님 같은 반응은 처음인 것 같아요.
"이 사건은 제가 2016년에 다른 일로 필리핀에 취재를 갔을 때 알게 된 거라 우연이 아니었던 것 같아요. 두테르테 대통령의 마약 전쟁이 한창이던 때여서 관련 취재를 갔었어요. 그 당시 경찰청에서 경찰청장을 만나기로 하고 기다리고 있었는데 한국 사람들이 경찰청 홀에서 추모식을 한다는 거예요. 그 추모식이 바로 지익주 씨의 추모식이었죠. 그때 처참한 이야기를 듣게 된 거죠.

제가 그 문제를 취재하는 건 아니었지만, 이렇게 중요한 일을 그냥 흘려보낼 수는 없을 것 같아 찍어놓아야겠다고 생각했었어요. 그 후 다 해결이 됐을 거라 막연히 생각했는데 재판도 지지부진하고 유족 혼자 싸우고 계신다는 이야기를 3년이 지난 시점에 다른 분한테 듣게 됐죠. 우연이 몇 번 겹치면 운명이 되잖아요. 그런 느낌이었어요."

경찰이 사건을 조직하고 은폐

- 2016년 처음 필리핀에서 이 사건에 대해 들었을 때 어떤 느낌이었어요?
"정말 믿어지지 않는 느낌이죠. 이게 가능한 일인가 했어요. 필리핀 경찰들이 셋업 범죄를 저지른다고 들어 봤어도 무고한 사람을 경찰청에 데리고 와서 살해한다는 건 상상이 안 되죠.  그러니까 지익주 씨도 아마. 차가 경찰청에 들어갔을 때 안심했을 거예요. 그 과정에서 변을 당한 게 아닌가 하는 추측도 있어요. 지익주씨가 살해된 주차장은 외진 공간이 아니라 경찰청 본관에서 바로 앞에 있어요. 본관 게이트에서 정말 얼마 안 떨어진 그런 곳이었다는 거죠. 경찰들이 대담하게 사람을 죽일 수 있었다는 걸 보고 조직의 비호를 받을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죠."

- 방송에 고문 얘기가 있었던 것 같은데 혹시 고문하다 죽은 건 아닌가요?
"어떤 폭력 행위가 있었는지 구체적으로 밝혀지지 않았어요. 이 사건이 안타까웠던 게 뭐냐면 살해 동기가 뭔지, 누가 어떤 식으로 범행을 저질렀는지 제대로 밝혀지지 않았다는 점이에요. 범인들은 서로를 살인범이라고 지목하고요. 필리핀 검찰이 채택한 범인의 증언에 따르면 범인들은 지익주 씨의 얼굴에 테이프를 코만 남기고 다 감았어요. 이거 생각만 해도 끔찍하잖아요. 

그리고 와이어로 목을 감았는데 남은 와이어를 돌려 고정을 했다는 거예요. 살해 의도가 확실히 있었다는 거죠. 그리고 반항해서 지익주 씨 손에는 수갑이 채워져 있었다고 해요. 고문을 받았다는 말은 아마 팔과 목에 있는 상처 때문이었을 것 같아요. 그래서 범인들 외에 유일하게 시신을 본 장례식장 직원들이 보기에는 이상한 시신이었다는 거죠. 필리핀 로컬 지역에 한국인 시신이 보통 자연사한 시신, 사고 시신 혹은 마약과의 전쟁 과정에서 총상을 입은 시신 정도가 일반적인데 목 졸린 흔적이 있는 시신은 범죄에 의한 사망이라고 볼 수밖에 없죠."

 
 김동희 MBC <PD수첩> PD
김동희 MBC PD이영광
 
- 유족 동의도 안 받고 화장해서 변기에 버렸다는 건데 그게 어떻게 가능하죠?
"이해하기 어렵죠. 범인들의 지시를 받은 장례식장 직원들이 사망 확인서를 조작하고 친인척을 사칭해 빠른 화장을 요구하니 해준 거죠. 증거를 인멸하기 위해서죠. 지금도 이 사건의 키가 뭐냐면 시신이 없다는 점이에요. 시신이 없는 살인을 증명하는 건 어려운 거잖아요. 그러니까 범인들이 시신을 불태워 없애겠다고 결정한 것 같아요. 심지어 재판정에서 둠라오의 변호사가 최경진 씨에게 '남편이 죽었다는 증거가 있습니까?'라고 물었대요. 되게 잔인하지만, 할 말이 없는 질문이죠."

- 최경진씨가 하는 말이 올라가면 필리핀 전체가 붕괴된다고 했는데 무슨 의미죠?
"최 씨는 이 이야기를 경찰 내부에서 들었다고 합니다. 어떻게 보면 조직 내부에서 인지하고 있고 스스로 인정했다고 볼 수도 있는 대목이죠. 일부 경찰들이 돈을 노리고 계획한 것이 아니라 고위직까지 연루된 사건이라고 볼 수 있다는 겁니다. 그렇기에 사건의 진상이 드러날 경우 필리핀 경찰이나 국가 기관의 위상 추락은 물론이며, 전체가 부패했다는 것을 적나라하게 보여주는 부끄러운 일이 될 수 있고요."

- 경찰이 범죄 조직이 아닐까 하네요.
"신념을 가진 훌륭한 경찰관이 많이 계시니 필리핀 경찰 전체가 범죄 조직이라고 말하면 안 되겠죠. 다만 이런 범죄를 저지르는 조직들이 내부에 있는 건 사실이에요. 방송에는 경찰만 나왔죠. 그러나 수수료 받고 경찰과 셋업을 저지르는 한국인 헌터에 따르면 이 사람이 실제로 같이 많은 작업을 한 곳은 NBI라는 조직이에요. 쉽게 이야기하면 필리핀의 FBI에요. 이 NBI라는 곳의 팀장급 간부와 한국인 헌터가 주로 셋업을 같이 하는 사이였대요. 생각해보세요. 타깃을 정하고 납치를 하거나 덮치려면 감시도 해야 되고, 미행도 해야 하고, 인건비가 들잖아요. 한 팀을 운영할 수 있는 위치에 있는 사람이어야 실행이 가능하다는 거죠. 

그리고 이런 계획은 고위급 상관에게 최종 허가를 받는 구조고요. 그러다 보니까 고위급하고 이런 작전을 할 수밖에 없다는 거죠. 고위급이 엮였다는 건 조직적인 범죄라고 볼 수 있죠. 그런데 그 필리핀 수사하는 한 곳 중에 그런 곳하고 일을 줄곧 해왔다고 한국인이 스스로 밝혔잖아요. 그리고 그 사람에 따르면 경찰에도 그런 조직이 있다는 거죠."

피해자가 직접 사건 조사

- 경찰이 지익주씨 집에 들어가 돈을 뜯어내려다 안 되니 지씨를 데려와 죽인 거 거잖아요. 이해가 안 가네요.
"그러니까 저도 좀 이해가 안 가죠. 이 사건은 정말 이해가 안 되는 포인트가 아주 많아요. 왜 지익주씨냐는 것도 이해가 안돼요. 그리고 왜 납치 당일 바로 죽였냐는 것도 이해가 안 돼요. 몸값이 어디로 갔는지 오리무중이고, 연루된 고위층이 누구냐도 밝혀지지 않았죠. 경찰이 스스로 수사하다 보니 꼬리자르기식으로 사건을 축소한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합니다."

- 산타 이사벨을 만나셨는데 자기는 행동 대장이라는 건가요?
"그렇죠. 그런데 본인은 행동 대장이었던 것도 부인해요. 납치, 살해를 일절 안 했다고 해요.  다만 지익주 씨의 시신을 장례식장으로 옮기라고 해서 영문도 모르고 옮겼다는 입장이에요. 하지만 필리핀 경찰은 산타 이사벨이 행동대장이고 실제로 살인을 실행한 사람이라고 결론을 내렸고요."

- 최경진씨를 처음 만났을 때 어땠어요?
"담담하시더라고요. 놀란 게 뭐였냐면 물증을 확보한 사람이 경찰이 아니라 최경진씨 본인이라는 거였어요. 최경진씨가 이 사건을 해결하기 위해서 동분서주하고 실질적으로 혼자 노력한 부분이 너무 많고 그 과정에서 대사관, 경찰에게 버림받았다는 것이 충격이었죠. 경찰도 수사를 제대로 하지 않아서 심지어 사설탐정까지 고용했더라고요. 남편이 죽은 것도 경찰한테 들은 게 아니라 사설탐정이 알려준 거예요. 

은행에서 범인들의 CCTV 화면을 준 것도 최경진 씨가 빌어서였거든요. 그것도 은행에 사정하고 협상해서 두 달 걸렸거든요. 그래서 저는 그때 누가 데리고 가서 죽였는지 연루된 사람이 있고. 대사관이 뭘 안 했다 등 이런 거를 다 떠나서 그냥 최경진씨의 이야기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 얘기를 꺼내는 게 힘들지 않았어요?
"뭘 하나 부탁하는 것도 되게 죄송했지요. 방송으로 해보고 싶다는 제안도 참 어렵게 드린 거고 사실 얼굴 공개부탁도 굉장히 어렵게 말씀드렸던 거였어요. 그리고 심지어 남편이 돌아가신 곳까지 같이 가자는 것도 어려운 말이죠. 최경진씨가 대단하다고 느낀 건 당연히 하겠다고 의연하게 말씀하시는 모습이었어요. 그분이 그만큼 간절하고 절박했던 거예요. 자기가 할 수 있는 건 다 했죠. 심지어 두테르테 대통령까지 3번 만났잖아요. 3번 만났는데도 안 되잖아요. 그래서 남편 돌아가신 곳에 가고 싶지 않아도 다시 간 거고요."

- 세월호참사 때 국가는 없었다는 말을 국민들이 많이 했었잖아요. 지익주, 최경진씨 부부 일을 보면서 해외 교민에겐 여전히 국가가 없는 것 같군요.
"그렇죠. 그렇지만 대사관이든 영사든  뭘 안 한 건 아니에요. 영사 조사법이라는 법이 있어요. 대사관에서 교민들을 위해 조력 할 수 있는 범위를 정해놓는 법이에요. 막상 보면 우리 대사관은 법에 저촉되는 일을 하지 않았어요. 그 법 자체가 잘못되어 있는 거요. 아무것도 안 하게 되어 있어요. 통역이 명단을 제공한다거나, 공정한 수사를 요청한다는 건 실질적으로 효과가 있다고 보기 어려워요. 시스템이 잘못됐다는 건데, 영사 한 명에게 책임을 묻는다고 되는 문제는 아니에요.  국가가 없지는 않았지만 제 역할을 못 해 준 거예요. 안타까워요."

- 마지막에 최경진 씨가 한국인은 '마사렙' 즉 건드려도 되는 사람이라는 인식이 있다는 말이 씁쓸하던데 어떻게 들으셨어요?
"충격적이었고 국민의 한 사람으로서 화도 나죠. 각 나라의 대사관들이 자국민들이 이런 일을 당했을 때 하는 행동들이 다르다고 하더라고요. 교민들 말에 따르면. 다른 나라들과 비교했을 때 대사관은 비자나 발급해주고 하는 곳이지 어떤 도움을 구할 수 있는 곳은 아니라는 생각이 든대요. 그러니까 다른 나라 사람들보다 어떤 일이 있을 때 필리핀 사람들도 저기는 그래도 별 탈이 없다 싶어 타깃을 삼기가 좋은 거죠. 그래서 '마사렙 코리안'을 만들었다는 건데 한국인의 한 사람으로서 너무 참담하고 있어서는 안 되는 일이죠."

- 방송에 못 담은 내용이 있나요?
"많아요. 아까 경찰에 납치 전담반이 있다고 했잖아요. 거기에 가장 높은 분이 계세요. 당시 수사 책임자죠. 그분도 납치 살해 경력이 있어요. 그분은 이제 그 사건 자체가 기각됐다는 답변을 제가 받았는데, 기각이 됐다는 건 무죄 이런 게 아니라 증인이 부족했다거나 증거가 부족했다거나 이걸 소송을 건 사람이 사라졌다거나 여러 가지 외부적인 원인으로 사건이 없어졌다는 얘기지 이 사람이 무죄라는 얘기는 아니에요.

그리고 이 사람은 그 과정에서 자백하는 대가로 면책을 받은 사람이에요. 그러니까 완전히 죄가 없었다고 할 수는 없는 거죠. 하여튼 그분이 형사 책임자로 잘 나가고 계셨어요. 납치 비즈니스가 부업이라는 얘기가 그냥 하는 이야기처럼 안 들리는 거죠. 이런 이야기들도 되게 많았어요. 근데 다 못 넣었죠."

 
 김동희 MBC <PD수첩> PD
김동희 MBC PD이영광
 
- 취재하면서 느낀 점이 있을 것 같아요.
"느낀 점 많죠. 사법 주권이 있는 나라니까 필리핀에게 범인을 어떻게 하라고 할 수 없잖아요. 그렇지만 외교적으로 다른 방법을 생각해볼 수 있지 않나 생각이 들어요. 교민을 대상으로 한 강력 범죄가 해결된 사례는 아예 없진 않아요. 몇 년 전 필리핀 이민국에서 교민들의 사업장을 급습해서 돈을 부정하게 뜯어내는 사건이 있었대요. 교민들 사이에서 여기서 살지 말아야겠다는 얘기가 나올 정도였는데 그때 영사님이 '여기 필리핀 사람들 비자 안 내주겠다. 내 선에서 안 한다'라고 하셨대요. 실제로 그렇게 했고요. 난리가 났대요. 당국이 공식사과하고 재발 방지를 약속하는 식으로 해결됐다고 하더라고요. 그래서 이 문제도 풀지 못 할 건 아니라고 보는데 아쉬운 거죠."

- 시청자들에게 주는 메시지는 무엇일까요.
"최경진씨 사건이 개인의 문제는 아니라는 이야기를 하고 싶어요. 누구든 죄가 있든 없든 경찰에게 죽임당해서 변기에 뿌려질 이유가 없는 거잖아요. 해결에 수십 년이 걸릴지 모를 재판을 하고 재발 방지를 요구하고 이런 걸 개인이 해야 하는 일인가요? 저는 묻고 싶었어요. 필리핀은 국가 대상 소송도 안 되거든요. 우리는 만약 경찰이 그런 일을 저지르면 국가 상대 민사소송이 가능하잖아요. 

실제로 필리핀 노동자가 진짜 한 적 있어요. 우리나라 사람이 필리핀 노동자를 감금하고 성폭행한 사건이 있었죠. 그때 필리핀 대사관에서 와서 그 사람 구출하고 우리나라 상대로 소송했어요. 정부에서 손해 배상했죠. 근데 우리 피해자는 필리핀 정부에 소송하기 어려워요. 왜냐하면 필리핀에 그런 법이 없기에. 그럼 개인은 뭘 해야 하나요? 이건 개인의 이야기가 아니라는 말을 하고 싶었던 거예요."
김동희 PD수첩 지익주 필리핀 경찰 외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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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자들의 궁금증을 속시원하게 풀어주는 이영광의 거침없이 묻는 인터뷰와 이영광의 '온에어'를 연재히고 있는 이영광 시민기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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