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안의 삶이 내게는 거울과 같았다
 
 <나의 아저씨>의 이지안.

<나의 아저씨>의 이지안.ⓒ tvN


2018년 방영된 tvN 드라마 <나의 아저씨>의 이지안(이지은 분)이라는 인물은, 매우 다층적이고 복잡한 동시에 직관적이기도 한 캐릭터다. 보는 이의 관점에 따라, 드라마의 전개 안에서 펼쳐지는 지안의 감정 변화를 이해하기 어렵거나, 좀처럼 공감하지 못할 수 있다.

다만 내가 느낀 이 인물의 특성은, 이미 논리나 이성, 서사의 인과관계로 이해해야 할 대상이 아니었다. 그를 지켜보는 과정은, 내 안에 누적된 정서적 경험을 통한 본능적, 생득적 공감의 영역이었다. 지안의 모습에서 내 과거와 현재가 끊임없이 겹쳐지며 변주되었다.

생존을 위해 어린 시절부터 애어른으로 자란 나의 자아, 정서적으로 미처 성숙하지 못하고 돌봄 받지 못한 내 안의 '성인 아이'의 자아가 충돌하며 갈등하는 순간들이, 지안을 통해 구체적인 모습들로 내 눈앞에 펼쳐졌다. 그래서 눈을 뗄 수 없었고, 지안에게 과몰입했으며, 그를 지켜보는 과정이 먹먹하고 아프고 괴로우면서도, 동시에 그를 있는 힘껏 안아주고 싶었다. 그래서 이 글은, 지안의 이야기이자 나의 이야기이다.

스스로 알아서 투명 인간으로 살아온, 생존에 매몰된 인간
 
 <나의 아저씨>의 이지안.

<나의 아저씨>의 이지안.ⓒ tvN


지안은 부모가 남긴 사채로 인해, 아무리 갚아도 끝이 보이지 않는 빚의 굴레와 절대적 빈곤을 온몸으로 견디는 인물이다. 삼안E&C에서는 파견직으로 일하고, 저녁에는 식당에서 접시를 닦는다. 회사 탕비실에서 커피믹스를 훔치고, 식당 손님들이 남긴 음식으로 끼니를 때우고, 제대로 된 맛있는 식사 한 번 누리지 못하는 채로 버티는, 길고 어두운 터널을 걷는 스물한 살이다.

주변에 믿고 의지할 어른이 없고, 할머니에게는 보호자가 되어야 한다. 삶의 모든 선택과 방향이 오직 생존을 위해서만 존재한다. 이런 삶에 타인과의 관계 단절은 필연적일 수밖에 없다. 회사 사람들이나 사회적 타인들 앞에서 자신의 삶을 철저히 숨기게 되고, 건강한 관계를 맺기 어렵다.

내가 드라마 초반부에서 느낀 지안은, 자신의 깊은 슬픔을 제대로 들여다볼 방법조차 알지 못하는, 그래서 자신을 위해 마음껏 울지도 못하는 경직된 인간이었다. 당장 닥친 현실을 견뎌내기 위해, 자신은 지금 괜찮고 아무렇지 않으며, 잘 이겨내고 있다는 자기암시를 반복할 뿐이다. 더 잘 헤쳐나가야 한다고, 자신을 채찍질할 뿐이다. 지안은 밤에 잘 때조차 편히 눕지 못하고, 끊임없이 뭔가에 쫓기듯 쉼 없이 일자리를 찾는다. 그러면서 "지치지 않았는데 어떻게 잠이 오지"라고 말한다.

드라마의 제9회 중, 삼안E&C의 박동훈 부장(이선균 분)이 춘대(이영석 분)에게 찾아가, 지안의 어린 시절에 대한 이야기를 듣는 장면이 나온다. 지안의 초등학교 졸업식에 사채 빚쟁이들이 몰려왔다가, 지안의 엄마를 만나지 못하고 돌아가는 장면이다. 졸업하는 아이들이 자신의 가족들과 기념사진을 찍느라 분주한 풍경 속에, 지안은 혼자 위축된 어깨를 하고 덩그러니 서 있다. 나는 이 장면을 보며, 학창 시절부터 지금까지 미처 해소하지 못한 내 안의 오래된 슬픔이, 뜻하지 않은 눈물로 정화됨을 느꼈다.

서로를 깊이 이해하는 관계를 통한, 자기와의 화해
 
 <나의 아저씨>의 이지안.

<나의 아저씨>의 이지안.ⓒ tvN


박동훈은 지안을 괴롭히는 사채업자 이광일(장기용 분)을 찾아가, 지안의 빚을 대신 갚아주겠다 나선다. 그리고 광일에게, "나 같아도 죽여. 내 식구 패는 새끼들은, 다 죽여!"라고 소리친다. 지안은 동훈이라는 어른과의 관계를 통해, 처음으로 자신을 위해 충분히 슬퍼하며 울음을 토해낸다. 울어본 경험이 없어 우는 방법조차 몰랐던 어린아이가, 우는 자신을 낯설게 느끼며 첫 울음을 터뜨린다. 절박하고 험한 생존의 과정뿐이었던 자신의 삶을, 아무에게서도 이해받을 수 없다 믿었던 자신의 존재를, 온전히 이해받는 순간이었다.

나는 약 2년간 심리 상담을 받던 과정 중, 평소 가장 부끄럽게 여겼던 20대 시절을 자세히 들여다보는 시간이 있었다. 정작 나는 울지 않는데, 오히려 내 앞의 상담사가 나 대신 내 과거를 진심으로 아파하며 눈물을 보이는 모습을 목격하는 경험을 했다. 나는 그 순간을 통해 비로소 내 과거와 화해할 수 있었다. 누구에게나 그런 순간은 필요하다. 동훈, 그리고 정희네 술집 주인 정희(오나라 분) 등의 인물들이 지안에게 따뜻하게 곁을 내어주는 과정이 보여주듯, 사람을 살게 하는 중요한 요소는 소중한 인간관계다.

후계동 어른들의 도움을 받아 할머니의 장례식을 치른 지안이 "꼭 갚을게요"라고 말하자, 이제철(박수영 분)은 지안에게 "뭘 갚아요, 인생 그렇게 깔끔하게 사는 거 아니에요"라고 한다. 정희는 지안에게 "난 그냥 네가 오기만 하면 돼. 와서 좋아"라고 하고, 자신도 명절에 갈 데 없다며 "우리, 1년에 두 번만 만날래? 설하고 추석에"라고 제안한다. 존재에 대한 무비판적이고 조건 없는 온전한 이해와 수용, 위로와 공감과 연대가 사람을 숨 쉬게 한다. 나는 여태껏 그 힘으로 삶을 견뎠다.

고시원에 찾아와 따뜻한 밥을 사주며 내 어깨를 다독여주던 사람, 빚에 허덕일 때 돈을 빌려준 사람, 병원에 입원했을 때 가족 대신 찾아와준 사람들이 있었다. 생활비가 없어 굶을 때 음식을 보내준 친구들이 있었고, 집에 찾아와 아무 말 없이 죽을 건네준 동료가 있었다. 추석이나 설 연휴에 함께 따뜻한 시간을 보내준 사람들이 있었다.

동훈이 지안에게, 할머니와 주소지 분리하고 장기요양등급 신청하라고 알려준 것처럼, 퉁명스러운 얼굴로 왜 찾아왔냐며 눈도 마주치지 않는 내 손을 잡아끌고, 주민센터와 병원에 찾아가 자기 일처럼 함께 방법을 알아봐 주던 사람이 있었다. 회사를 그만두고 나약한 내가 싫어 우는 내게, 너는 절대 약하지 않다고 단호하게 말해준 친구가 있었다. 그 사람들에게 내가 보답할 수 있는 유일한 길은, 내가 이전보다 안정적인 상태로 행복하게 잘 지내는 것이다.

16화에서 지안의 할머니 봉애(손숙 분)는 지안에게, "참 좋은 인연이다. 귀한 인연이고. 가만히 보면, 모든 인연이 다 신기하고, 귀해. 갚아야 돼. 행복하게 살아. 그게 갚는 거야"라고 말한다. 나는 이 장면을 수없이 곱씹었고, 깊이 위로받았으며, 많이 울었다.

그리고 드라마의 마지막 장면에 등장했던, 새로운 환경에서 주변 사람들과 적극적으로 어울리며 밝고 따뜻하게 지내는 지안의 직장생활 모습은, 그 자체로 이미 더없이 눈부신 삶의 기적이었다. 지안이 어둠에서 빛으로 걸어나와 마침내 편안함에 이르렀듯이, 이 작품을 접한 시청자분들도 편안함에 이르기까지 파이팅할 수 있기를 바란다. 그리고 나도 이제는 주위의 지안이들에게, 좋은 어른이 되고 싶다.
덧붙이는 글 '내가 사랑한 캐릭터' 응모글입니다.
댓글
이 기사의 좋은기사 원고료 30,000 응원글보기
원고료주기

진실과 정의를 추구하는 오마이뉴스를 후원해주세요!

후원문의 : 010-3270-3828 / 02-733-5505 (내선 0)

오마이뉴스 후원하기

글이 지닌 공감과 연대의 힘을 믿는, 대한민국의 15년차 감정노동자.

이 기자의 최신기사
  • 당신이 좋아할 만한 콘텐츠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