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어폰 끼고 사는 여자, 이끼녀 리뷰입니다. 바쁜 일상 속, 이어폰을 끼는 것만으로도 마음에 여백이 생깁니다. 이 글들이 당신에게 짧은 여행이 되길 바랍니다.[편집자말]
추석이다. 말조심이 시급한 때다. 친척들이 모이면 직선적으로 말하는 캐릭터가 꼭 한 명은 있다. 공부는 잘 하고 있냐, 반에서 몇 등하냐, 취업은 어떻게 돼 가냐, 결혼은? 아이는? 둘째는 안 낳고?...

여기에 정치, 종교 이야기가 끼어들면 걷잡을 수 없다. 이게 끝이 아니다. 부동산이야기로 넘어가는 집도 많다. 그때 그 밭뙈기를 팔지 말자고 내가 그렇게 말했는데 결국 팔아가지고, 지금 그게 20배로 올랐다지 뭐야.

그제 퇴근길에 지하철을 타고서 천장에 붙은 화면을 보고 있는데, 이런 뉴스가 나왔다. "30~40대 미혼 남녀, 명절에 귀향 안 해." 정확히 떠오르진 않지만 그 통계가 80%에 육박했던 걸로 기억한다.

결혼 안 하고 너 혼자 살 거냐라는 판에 박힌 레퍼토리. 집집마다 엇비슷한 명절의 풍경을 떠올리니 피식 웃음이 났다. 그럴 때 당사자들은 속으로 이렇게 말한다. '또, 시작이다. 그러면 좋은 사람을 소개시켜주든가!'
 
고호경 고호경 '좋은 사람 있으면 소개시켜줘' 자켓

▲ 고호경고호경 '좋은 사람 있으면 소개시켜줘' 자켓ⓒ 멜론홈페이지 캡처

 
마음속으로만 생각하지 말고, 그럴 때 이 노래를 슬며시 틀어보는 건 어떨까. 과거로 거슬러 올라가면 이런 명곡이 있었으니, 고호경의 '좋은 사람 있으면 소개시켜줘'라는 노래다.

이 곡은 고호경을 비롯해 여러 가수들에 의해 리메이크 됐는데 원곡은 가수 정재형이 속했던 3인조 밴드 베이시스의 정규 2집 < The Unbalance >(1996)의 수록곡이다. 정재형이 작곡했으며, 대중에게 널리 알려진 건 고호경 버전이다.

얼마 전에 라디오에서 흘러나온 이 노래를 듣고 있는데 새삼 가사가 참 재미있고 귀엽게 여겨졌다. 그 후로 3~4일이 넘게 나도 모르게 이 곡을 흥얼거리고 다녔다.

"좋은 사람 있으면 소개시켜줘/ 때로는 물처럼 때로는 불처럼/ 진심으로 나만을/ 사랑할 수 있는/ 성숙하고 성실한 사람이라면/ 좋겠어
 
좋은 사람 있으면 소개시켜줘/ 사랑에도 연습은 있는 거기에/ 아주 조그만 일에도/ 신경을 써주는/ 사랑 경험이 많은 사람이라면/ 좋겠어"


'좋은 사람'의 정의는 저마다 다르겠지만 '나만을 사랑해주는 사람', '성숙하고 성실한 사람'이 좋은 사람이란 건 시대와 국가를 떠나 동일할 것이다. 그러나 가사는 이런 뻔한 이야기에서 그치지 않고 더 구체적인 '좋은 사람'을 언급한다. 사랑에 서툰 사람보다는 사랑을 많이 해봐서 섬세한 배려가 가능한 사람을 원한다는 노랫말이 특히 인상적이다. 하지만 더 재밌는 건 다음 가사다.

"한 번쯤은 실연에 울었었던/ 눈이 고운 사람 품에 안겨서/ 뜨겁게 위로받고 싶어/ 혼자임에 지쳤던 내 모든 걸/ 손이 고운 사람에게 맡긴 채/ 외로움을 잊을 수 있다면
 
좋은 사람 있으면 소개 시켜줘/ 만남 그 자체에 연연하기보다/ 한 번을 만나더라도 그때 분위기에/ 최선을 다하려는 사람이라면/ 좋겠어"


그냥 눈이 크고 예쁜 사람, 눈빛이 맑은 사람이 아니라 '실연에 울었기 때문에' 눈이 고운 사람이면 좋겠다는 표현에서 여자가 원하는 것이 어떤 건지 더욱 구체적으로 알 것 같다. 이어서, 한 번을 만나도 분위기에 최선을 다하는 사람이면 좋겠다는 말에서는 마음결이 섬세하고 한 순간 한 순간을 소중하게 여기는 진정성 있는 사람을 원하는구나, 알 수 있었다.
 
베이시스 베이시스 앨범 자켓

▲ 베이시스베이시스 앨범 자켓ⓒ 오즈의 나라

  
노래는 이렇게 끝나는가 싶더니, 이것 또한 뻔하다는 듯 반전이 마련돼 있었다. 마지막에 남자 래퍼와 고호경이 주고받는 대화는 속물적으로 여겨질 만큼 솔직해서 오히려 충분히 공감이 되고 내 마음 같았다. 아까 분명히 "이상형은 실연에 울어본 눈이 고운 사람, 분위기에 최선을 다하는 사람, 나를 따뜻하게 위로할 수 있는 사람"이라고 말했지만, 막상 소개팅에 나가면 그게 안 된다. 눈에 보이는 외모를 먼저 따지게 되는 게 솔직한 심리일 것이다. 

"Ho 어떤 사람 니가 원하는/ 사람 그 사람/ 너의 이상형을 가진 신이/ 내린 그 사람/ 저사람 눈이 너무 작아/ 저사람 키가 너무 작아/ 저사람 코가 너무 낮아/ 저사람 다리가 너무 짧아/ 나 네게 한마디만 할게/ 뭔데/ 니 속에 꼭 새겨두길 바라/ 그래/ 욕심을 조금 줄여/ 너에게 필요한건 그런 게/ 아니잖아/ OK OK YE"

어릴 때 이 노랠 들었을 땐 미처 몰랐는데, 라디오를 통해 다시 접했을 땐 마지막 랩 부분이 잘 쓰여졌다는 생각이 들었다. 마음결이 아름다운 사람을 이상형으로 품고 있지만 이율배반적으로 막상 만나면 작은 눈, 작은 키, 작은 코, 짧은 다리가 거슬린다는 그녀에게 남자는 단호하게 말한다. 진짜 중요한 것이 무어냐고, 너에게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 다시 생각해보라고. 남자의 충고에 여자는 갑자기 정신이 돌아온 듯이 "OK"라고 수긍하며 노래는 끝이 난다. 

전국의 미혼 남녀분들! 이번 추석 명절, 좋은 노래 많이 들으시면서 부디 즐겁게 보내시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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