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벌새> 스틸컷

영화 <벌새> 스틸컷 ⓒ 엣나인필름

 
중학교 2학년 은희(박지후 분)가 집 문을 두드린다. 그러나 집 안에 아무 기척이 없자 은희는 무언가 두려움을 느낀다. 엄마에게 문을 열어달라고 울부짖는 은희. 그러나 결국 같은 아파트의 다른 층에서 문을 두드리고 있었다는 것을 이내 깨닫고 제 집을 찾아 들어오지만, 은희의 표정이 미묘하다. 영화 <벌새>는 오프닝 시퀀스부터 열네 살 은희가 가진 불안한 정서를 드러낸다. 대체 이 소녀에게 무슨 일이 벌어있는 것일까.

<벌새>는 지난 2018년, 제23회 부산국제영화제에서 심사위원 상 가운데 하나인 넷팩상과 관객상을 거머쥐었다. 그뿐만 아니라 서울독립영화제를 비롯, 제69회 베를린국제영화제, 제18회 트라이베카국제영화제 등 전 세계 유수 영화제에서 25관왕을 달성하며 개봉 전부터 영화 팬들의 기대를 한 몸에 받았던 작품이다.

영화는 좌절과 불만, 그리고 정서적인 동요 가장 심한 '질풍 노도의 시기'를 겪고 있는 은희를 그려내고 있다. 은희는 가족, 친구, 그리고 연애 관계의 문제부터 1994년 당시 성수대교의 붕괴, 북한 김일성 주석의 사망 등 혼란스러운 한국의 정세까지 겪는 그야말로 첩첩산중의 인물이다.
 
 영화 <벌새> 스틸컷

영화 <벌새> 스틸컷 ⓒ 엣나인필름

 
은희 조여오는 안타까운 상황들, 그리고 은희를 찾아온 운명의 멘토

은희는 떡집을 운영하는 부모님, 그리고 오빠와 언니 대치동 아파트에 사는 가정에서 숨 쉴 곳 없이 답답함을 느끼며 살아간다. 그리고 남자 친구가 갑자기 하루아침에 다른 여학생과 연애하는 것을 은희는 목격한다. 한편, 문구점에서 함께 도둑질을 하던 단짝 친구 지숙(박서윤 분)은 문구점 사장의 호통에 은희 부모님의 연락처를 고자질한다. 아무것도 자신의 뜻대로 되지 않는 사면초가의 상황인 은희는 한문 학원의 새로 온 선생님 영지(김새벽 분)를 만나며 전환점을 맞는다.
 
 영화 <벌새> 스틸컷

영화 <벌새> 스틸컷 ⓒ 엣나인필름

 
은희는 담배를 피우는 첫인상에 영지를 경계하기도 했지만, 이내 곧 자신을 옭아매는 상황들을 모든 것을 토로하며 영지와 가까워진다. 영지는 세상이 이해되지 않고, 궁금한 것들로 투성이인 은희에게 유일한 어른이 되어 그의 마음을 알아주고, 이야기를 들어준다. 또한 그 누구보다 은희의 입장에서 고민이 무엇인지, 진심으로 원하는 것은 무엇인지 귀를 기울이며 은희는 점차 안정감을 되찾는다.
 
 영화 <벌새> 스틸컷

영화 <벌새> 스틸컷 ⓒ 엣나인필름


은희와 영지의 흥미로운 공통점은 왼손잡이라는 것이다. 각각의 삶 속 어느 부분에서 '소수자'이자 '약자'로 살아가는 이들의 연대라고 볼 수 있으며 완벽하고 행복한 사람이 있다는 것 자체가 아이러니라고 이해할 수 있는 대목이다(우연하게도, 실제로 <벌새>의 김보라 감독, 은희와 영지를 맡은 박시후, 김새벽 배우 모두 왼손잡이라고 알려져 있다).

영지는 관객들로 하여금 '삶은 행복하고 좋은 것, 슬프고 절망적인 것이 모두 있다'라며 1994년이나 2019년이나 크게 다름없이 이 세상을 살고 있는 이들에게 덤덤하지만 따뜻하게 위로의 메시지를 보낸다. 
 
 영화 <벌새> 스틸컷

영화 <벌새> 스틸컷 ⓒ 엣나인필름

 
청소년기 김보라 감독의 추억이 담긴 일기장을 본 듯

김보라 감독은 <벌새>의 프리퀄로 느껴지는 전작인 단편 영화 <리코더 시험>에서 리코더를 잘 불어서 사랑받고 싶어하는 초등학생 은희의 이야기를 그려내며 영화 팬들의 사랑을 받았다. 또한 감독은 <벌새>의 상영이 끝나고 "떡집 좀 그만 우려먹어라"라는 어머니의 핀잔을 들을 정도로 영화 속 은희는 감독의 유년 시절의 부분이 들어가 있다. 때문에 인터뷰나 GV를 통해 영화 속 '은희'가 감독 자전적 캐릭터냐는 질문이 간혹 등장하곤 하는데, 감독은 <벌새>에 대해 자전적 이야기가 아닌 허구라고 전한다. "영화적으로 각색됐지만 그래도 감정선은 중학생 때의 내 것이니 '반반'이라면 어떨까"라고 답한 만큼 <벌새> 속 은희는 감독의 마음속 깊은 곳과 맞닿아 있는 캐릭터라고도 할 수 있다.

은희가 살고 있는 대치동 은마 아파트, 부모님이 운영하는 떡집, 골프채로 맞은 멍투성이 친구의 모습, 그리고 오프닝 시퀀스의 집을 잘 못 찾아가는 에피소드 등 다양한 장면에서 감독과 주변인의 에피소드가 자연스레 녹아들어 있다. 또한 한 인터뷰에서 1994년은 서태지와 아이들 같은 유행 음악도 있었는데 마로니에 '칵테일 사랑', 원준희 '사랑은 유리 같은 것', 윤복희 '여러분'과 같은 음악을 쓴 이유를 묻는 질문에 감독은 "그저 그 당시 좋아했던 노래들"이라고 밝힌 만큼, 상당 부분 감독의 과거의 기억이 담겨있는 것으로 보인다.
 
 영화 <벌새> 스틸컷

영화 <벌새> 스틸컷 ⓒ 엣나인필름


은희의 주변인에 대한 입체적인 이야기 부재는 아쉬움 남아

<벌새>를 보며 느낀 아쉬움 중 하나는 주인공 은희에게만 모든 이야기의 포커스가 맞춰져 있다는 점이다. 한문 학원을 같이 다닌 단짝 친구인 지숙은 은희보다 더욱 가정 폭력에 노출되어 있다. 또한 지숙은 가정의 붕괴를 고백하며 은희에게 "너는 네 생각만 한다" 무심하게 말한다. 그러나 이후에 지숙은 영화에서 볼 수 없다. 영화는 일관적으로 은희 한 사람에게 초점을 맞추며 관객들을 오롯이 세상의 고통은 은희가 겪는 것처럼 느끼게 만든다.

집에서는 한없이 가부장적이고 밖에서는 춤바람이 든 아버지, 공부는 잘하지만 집에서 동생에게 폭력을 행사하는 오빠, 이를 방관하며 덤덤하게 반응하는 방관자 어머니, 그리고 이 가정에서 탈출하려고만 하는 사고뭉치 언니까지 가족 구성원들 가운데 각자의 이야기는 철저하게 배제되어 관객으로 하여금 가족의 입장에서 생각해볼 수 있는 지점을 끊어 버리는 것 같아 다소 아쉬움이 남는 부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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