왼쪽부터 김희진, 김연경, 양효진... 2019 신한금융 서울 '여자배구 아시아선수권' 대회 (2019.8.23)

왼쪽부터 김희진, 김연경, 양효진... 2019 신한금융 서울 '여자배구 아시아선수권' 대회 (2019.8.23) ⓒ 박진철

 
변화 또 변화. 여자배구 대표팀 감독과 선수들이 서울 아시아선수권 대회를 마친 이후 한목소리로 외친 단어다.

여자배구 대표팀은 올해 빡빡한 국제대회 일정을 치르고 있다. 지난 5~6월에 열린 '2019 발리볼 네이션스 리그(VNL)', 8월 2~5일 러시아에서 열린 '2020 도쿄 올림픽 세계예선전(공식명칭 대륙간 예선전)', 그리고 8월 18~25일 서울에서 열린 '제20회 신한금융 서울 아시아여자배구선수권(아시아선수권)' 대회에 출전했다.

아쉬움과 희망이 교차했다. 도쿄 올림픽 본선 출전권을 거의 손에 넣었다가 역전패를 당했다. VNL에서 일본 대표팀 1군에 압승을 거두고, 아시아선수권에서 일본 대표팀 2군에 패한 것도 아이러니한 결과였다.

희망적인 대목도 있었다. 외국인 감독 체제에서 세계 배구의 흐름에 맞게 변화를 시도하고 있다. 특히 대표팀 선수 대부분이 서브의 강도와 품질이 확실히 향상됐다. 한국 배구의 취약점이었던 라이트 공격도 점점 업그레이드되고 있다. VNL 막판에 보여준 세터의 토스 다양성과 센터 활용도도 인상적이었다. 김연경의 몸 상태와 경기력도 최전성기 시절을 떠올리게 했다.

세터 전원 교체라는 대형 악재에도 불구하고, 세계랭킹 5위 러시아와 대등한 경기력을 선보였다. 가장 큰 소득은 내년 1월 '도쿄 올림픽 아시아지역 최종 예선전(공식명칭 대륙별 예선전)'에서 한국과 끝장 승부를 벌일 태국에게 아시아선수권에서 3-1로 승리했다는 점이다. 지난해 아시안게임부터 이어져 온 태국전 4연패의 사슬도 끊었다.

그러나 앞으로가 훨씬 중요하다. 모든 초점이 내년 1월 도쿄 올림픽 아시아 예선전에서 '마지막 본선 티켓'을 따내는 것에 맞춰져 있기 때문이다. 배구계는 물론 일반 스포츠 팬들까지 초미의 관심사다.

중요한 순간 역전패... 잦은 세터 교체-윙 공격수 편중

한국 여자배구가 올림픽 출전이라는 지상 목표를 달성하기까지는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이번 아시아선수권에서 태국에 승리했지만, 내년 1월에 또 이긴다는 보장이 없다. 앞으로 4개월 사이에 양국 대표팀에 어떤 일이 벌어질지 누구도 알 수 없다.

방법은 딱 한 가지다. 대표팀의 경기력을 어떤 변수에도 태국을 충분히 이길 정도로 끌어올리는 것뿐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시급히 보완해야 할 선결 과제가 있다. '중요하고 결정적인 순간(클러치 상황)'에서 윙 공격수 편중 현상을 지양하고, 공격 다변화를 완성해야 한다는 점이다.

따지고 보면, 올림픽 세계예선전 러시아에 역전패, 아시아선수권 일본전 역전패 모두 똑같은 패턴으로 패했다. 가장 큰 문제는 막판 클러치 상황에서 공격 루트가 레프트, 라이트 윙 공격수에게 지나치게 편중된다는 점이다.

센터의 중앙 속공이나 이동 공격, 윙 공격수들의 '파이프 공격'(중앙 후위 시간차 공격)을 클러치 상황에서도 과감하게 사용할 수 있어야 한다. 그러면서 공격 옵션을 늘리지 않으면, 앞으로도 중요한 대회에서 고비를 넘지 못하고 역전패를 당하는 패턴이 반복될 가능성이 높다.

센터 공격과 파이프 공격을 핵심 옵션이 아니라 간간이 양념으로 사용하는 팀은 결코 국제 무대에서 상위권 성적을 거둘 수 없다. 이는 최근 세계 배구 흐름과 국제대회 결과들이 넘치도록 증명해주고 있다. 한국 대표팀도 그 부분을 하루빨리 완성해야 한다.

라바리니-김연경 "대표팀만이라도 변해야, 예전 배구 안돼"
 
 라바리니 한국 여자배구 대표팀 감독... 2019 신한금융 서울 '여자배구 아시아선수권' 대회 (2019.8.23)

라바리니 한국 여자배구 대표팀 감독... 2019 신한금융 서울 '여자배구 아시아선수권' 대회 (2019.8.23) ⓒ 박진철

 
라바리니 여자배구 대표팀 감독과 주장 김연경은 지난 25일 아시아선수권 중국전 승리 직후 기자회견에서 대표팀의 윙 공격수 편중 문제, 센터·파이프 등 공격 다변화 필요성에 대한 질문을 받았다. 

두 사람은 그런 질문이 나오길 기다렸다듯, 긴 설명과 함께 한국 배구가 반드시 변화해야 한다는 점을 여러 차례 강조했다. 

라바리니 감독은 "점수가 20 대 20으로 세트가 끝날 시기인 클러치 순간에는 세터와 공격수의 호흡이 가장 중요하다. 그런 위기 순간에 공격을 다양하게 가져가도록 계속 지도하고 개선을 하려고 하지만, 그렇게 되기 위해서는 결국 많은 연습과 호흡이 필요하다. 아직까지는 그렇지 못했기 때문에 결정적인 순간에 레프트 쪽으로 토스가 편중되는 현상이 발생한다"고 원인을 짚었다.

이어 "올해 한국 대표팀은 아시다시피 VNL 대회를 앞두고 나와 10일 같이 연습했고, 도쿄 올림픽 세계예선전에서도 주전 세터와 3개월을 맞추며 단단히 준비해서 갔는데 대회 직전에 모두 교체되는 일이 발생했다. 그 때문에 굉장히 어려운 부분이 있었다"고 토로했다.

그는 "위기 순간에 역전패하는 상황이 안 나오기 위해서는 지속적으로 세터와 공격수가 호흡을 맞추는 게 중요하다. 연습 과정을 통해서 그런 부분이 완성되어야 한다"며 "가장 중요한 것은 선수가 하려는 의지가 있어야 하고, 오픈 마인드로 한국 배구가 달라져야 한다는 것을 자꾸 깨우쳐야 한다. 국가대표팀 선수들만이라도 한국 대표팀에 맞는 플레이와 색깔을 찾아서 계속 변화해야 한다"고 역설했다.

김연경(32세·192cm·에자즈바쉬)도 라바리니 감독과 생각이 같았다. 그는 "지금 경기의 패턴이나 공격 점유율 같은 게 저희가 평소 훈련 때 연습했던 것과 많이 다르게 시합 때 흘러나오고 있다"며 "한국 배구가 예전 스타일로 돌아간 것 같아 걱정이 됐다. 세터가 자주 바뀐 것도 그 이유 중의 하나는 맞다"고 밝혔다.

이어 "분명히 달라져야 한다. 하루빨리 그런 부담이 있는 중요한 경기에서도 (센터와 파이프 등) 좀 더 많은 공격 패턴을 활용해야 하고, 그런 부분을 이겨내야만 저희가 한국 배구를 바꿀 수 있다"고 강조했다.

그는 "라바리니 감독이 한국까지 와서 한국 배구가 예전에 했던 배구를 그대로 하려고 했다면, 차라리 감독님이 안 오신 게 낫다. 그런데 지금은 새로운 감독 체제로 한국 배구를 새롭게 바꾸려고 하고 있다"며 "물론 그것이 생각보다 쉽지는 않다. 저희가 여태까지 해왔던 습관이 있기 때문이다. 조금 더 지켜봐 달라. 한국 배구도 분명 바뀌지 않을까 생각한다"고 말했다.

양효진·김희진 발언 '신선한 충격'

기자회견장에 참석한 양효진(31세·190cm·현대건설), 김희진(29세·185cm·IBK기업은행), 오지영(32세·170cm·KGC인삼공사)도 생각이 같았다.

양효진은 "지금까지 대표팀 생활 중 이번이 적응하는 데 제일 힘들었다. 라바리니 감독이 추구하는 배구 스타일이 기존의 한국 배구랑 많이 달랐다"며 "서울 아시아선수권에 들어오면서는 어느 정도 파악을 했다. 그러다 보니 제가 나이가 들어도 배울 게 더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라바리니 감독에게 많이 감사하다"고 밝혔다.

그는 "감독님이 중앙 속공을 무조건 해야 된다고 강조하는 이유는 후위에서 파이프 공격까지 함께 빠른 플레이를 하기 위해서다. 감독님은 중앙 속공을 띄워놓고, 양 사이드의 공격수와 후위에서 파이프 공격까지 4명의 공격수가 공격에 가담하기를 원한다"며 "세계 상위권 팀들의 스피드 배구가 그런 식으로 한다. 그래서 저희가 훈련할 때도 굉장히 빠른 스피드로 연습을 한다. 그런 부분은 제가 맞춰서 가야 한다"고 설명했다.

김희진의 발언은 신선한 충격이었다. 그는 올해 국제대회 전 경기를 선발 주전으로 출전했다. 이는 김희진이 유일하다. '대표팀에서 잠시 빼달라'고 요청해도 할 말이 없는 선수다.

그러나 김희진의 대표팀 사랑은 한술 더 떴다. 그는 "올해 대표팀이 처음 시작할 때부터 4개월째 풀로 경기를 뛰고 있는데 체력적으로 부담이 안 된다면 거짓말"이라며 "그렇다고 엄청나게 힘들어서 못하겠다 그 정도는 아니다. 그냥 좀 부담이 있다는 정도"라고 잘라말했다.

그는 라이트 공격수로서 자신의 과거를 반성하고 채찍했다. "제가 항상 느꼈던 부분은 소속팀에서는 센터를 하고 대표팀에서는 라이트를 하며 왔다 갔다 했다. 그러다 보니 대표팀에서 제가 역할을 많이 해야 한다는 책임감을 한 번도 가져본 적이 없었던 같다"고 돌아봤다.

이어 "올해 VNL 때부터 많이 느꼈지만, 라이트 공격수는 단순히 대표팀에 도움을 주는 선수가 아니라 공격을 이끌어 나가야 하는 자리라는 생각이 들었다. 더 노력해서 지금보다 더 좋은 라이트가 되도록 하겠다"고 열의를 보였다.

오지영도 "라바리니 감독은 리베로가 2단 연결할 때 점프 토스를 원한다. 아직 제가 그런 부분에 미흡하지만, 많이 하려고 노력하고 있다"고 말했다.

월드컵, 베스트 멤버 출전... 스피드 배구 '숙련 기회'

라바리니호는 스피드 배구 완성을 위한 의지와 노력은 변함이 없다. 다행히 대표팀은 공격 옵션을 늘리고 수비 조직력을 다질 수 있는 중요한 기회가 남아 있다. 오는 9월 14일부터 29일까지 일본에서 열리는 '2019 월드컵 대회'에 출전하기 때문이다.

한국 대표팀은 월드컵에 박정아, 이다영, 강소휘가 복귀하는 등 베스트 멤버가 출전한다. 그리고 세르비아(세계랭킹 1위), 중국(2위), 미국(3위), 브라질(4위) 등 세계 최정상급 팀들과 대결한다. 러시아, 일본과 '리턴 매치'도 예정돼 있다. 다른 나라도 모두 최정예 멤버가 출전한다. 올림픽 출전 및 조편성에 큰 영향을 미치는 세계랭킹 점수가 주어지기 때문이다. 한국 입장에서는 도쿄 올림픽 아시아 예선전을 앞두고 실전 대회를 통해 부족한 점을 보완할 마지막 기회라고 할 수 있다.

올해 여자배구 대표팀을 전반적으로 돌아보면, 가장 인상 깊은 대목이 있다. 대표팀 선수들이 라바리니 감독을 전폭적으로 신뢰한다는 점이다. 훈련 과정이 힘들다고 말하면서도 한국 배구가 라바리니 감독이 추구하는 '토털 배구를 바탕으로 하는 스피드 배구'로 바뀌어야 한다는 확신을 갖고 열심히 따라가려고 한다. 그리고 많이 배우고 도움이 됐다고 말한다.

이는 대표팀 선수들이 그동안 언론 인터뷰나 자신의 SNS 등에서 수없이 밝힌 바 있다. 단순히 감독 기분 좋으라고 하는 소리가 아니었다. 선수들 스스로 그렇게 느끼고 있고, 열정을 가지고 변화하려고 한다. 그러면서 올해 대표팀에서 활약한 선수 중 지난 시즌 V리그 때보다 기량이 향상된 선수들이 적지 않다. 선수들이 대표팀에 들어가고 싶어하고, 제외되는 걸 두려워한다는 얘기도 심심치 않게 들린다.

현재 대표팀 선수들은 세계 최고 공격수, V리그 스타라는 자존심을 내려놓고, 한국 여자배구가 세계 강팀이 되기 위해 그리고 도쿄 올림픽 출전권을 따내기 위해 몸부림치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사실 세계적인 감독과 코칭스태프와 함께 한국 여자배구가 변화할 수 있는 마지막 기회일 수도 있다.

배구계와 프로구단도 눈앞의 성적에 대한 조급증을 잠시 내려놓고, 대표팀에 격려와 응원이 필요해 보인다. 도쿄 올림픽 티켓 획득의 최대 수혜자는 선수뿐만 아니라 배구계 전체라는 사실을 잊어선 안된다. 한국 여자배구의 최대 목표 지점이 4개월밖에 남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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