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용순>, <콜 미 바이 유어 네임>, <보희와 녹양>, <굿바이 썸머> 포스터

영화<용순>, <콜 미 바이 유어 네임>, <보희와 녹양>, <굿바이 썸머> 포스터ⓒ 네이버 영화

 
집어삼킬 듯한 더위, 밤낮을 가리지 않던 폭염이 다소 누그러졌다. 언제 끝날지 모를 더위에 지쳤지만 막상 아침저녁으로 선선한 바람이 불어오니 가는 여름이 살짝 아쉽다. 이제 8월도 얼마 남지 않았다. 곧 있으면 가을이다. 여름의 끝을 잡고 있는 요즘, 내년 여름 더위를 접어 둔 채 온전히 남아있는 여름을 즐기고 싶다.

여름은 청춘과 자주 비교된다. 짧고 강렬해서 좀처럼 잊히지 않기도 하고, 반복되는 계절 속에서도 작년과 올해 여름은 분명 미묘한 차이가 있으며 그때로 돌아갈 수 없기 때문이기도 하다. 매력적인 계절 여름을 배경으로 한 영화를 소개한다. 반항, 일탈, 용기, 모험, 사랑, 이별, 성장 등 여름을 대표하는 키워드는 하이틴물, 청춘영화에서 자주 차용된다. 다시는 돌아오지 않을 올해의 여름을 곱씹어 보는 건 어떨까?

그해 여름, 아릿한 첫사랑의 맛 <용순>
 
 영화 <용순> 스틸컷

영화 <용순> 스틸컷ⓒ 롯데엔터네인먼트

 
여름에는 특유의 냄새가 있다. 숨 막히면서 열기가 느껴지는 답답함. 그런데 이상하게 설렌다. 용순(이수경)은 학교 체육 선생님(박근록)과 사랑에 빠져 있다. 육상대회 수상을 목표로 여름 방학에도 연습에 매진하고 있는 중이다. 어느 날, 그런 체육 선생님이 좀 이상하다. 다른 여자가 생긴 거 같다. 그게 누구일까. 그때부터 용순, 문희(장햇살), 빡큐(김동영) 삼총사는 체육 선생님을 미행하기 시작한다.

사춘기 여학생들은 교생 선생님이나 남자 선생님들을 연모하며 자신만의 판타지를 만들기도 한다. 공부, 진로, 가족 스트레스. 세상의 모든 시련이 다 나에게만 온 것 같고 답답하고 짜증 났던 그때 그 시절, 엉뚱한 상상력이라도 발휘해서라도 일탈을 꿈꿨기 때문이리라.

영화 <용순>은 여름과 첫사랑을 짧고 강렬한 욕망으로 다뤘다. 착한 아이 콤플렉스에 갇혀 좀처럼 속내를 표현하지 못한 소녀가 처음으로 누군가에게 온 마음 다해 매달린 풋풋한 집착을 그리고 있는 영화다. 뭐든 용을 쓰며 매달려도 잘되지 않는 세상살이, 용순이 처음으로 맛본 잊을 수 없는 경험이 바로 첫사랑이었다. 후반부, 학교 전체를 뒤집어 놓은 막장 퍼레이드는 처음으로 손에 넣은 무엇을 뺏기지 않기 위해 기를 쓰고 덤빈 용순의 성장일기처럼 읽힌다.

'용순'은 그늘진 콘크리트 사이에서 피어난 어린 싹처럼 보인다. 아무리 볕을 받아보려고 해도 벗어날 수 없는 각박한 현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살겠다는 거센 본능. 이리저리 가지를 뻗어 결국 해를 맞이하고 마는 고군분투다. 지독하게 더웠던 여름이 지나고 가을이 오면 한 뼘 더 자라나 있는 세상의 모든 용순을 오늘도 응원하는 듯한 영화다.

눈부시도록 찬란했던 그 해, 여름 <콜 미 바이, 유어 네임>
 
 영화 <콜 미 바이 유어 네임> 스틸컷

영화 <콜 미 바이 유어 네임> 스틸컷ⓒ 소니픽처스코리아

 
<콜 미 바이, 유어 네임>은 첫사랑의 두근거림과 설렘, 환희, 이별의 모든 것을 담은 판타지이자 '루카 구아다니노' 감독의 욕망 3부작(아이 엠 러브, 비거 스플래쉬)중 마지막 영화다. 원작은 20세기 '람다 문학상' 게이 소설 부분을 수상한 '안드레 애치먼'의 소설이다. 안드레 애치먼은 이 예쁜 이야기를 3개월 만에 써 내려갔다고 한다.

1983년 이탈리아의 여름, 아버지(마이클 스털버그)는 연구를 도와줄 보조연구원의 휴가까지 책임지고 있어 여름마다 손님이 찾아온다. 둘은 첫 만남부터 상대를 사랑할 수밖에 없음을 깨닫는다. 나이와 성별을 떠나 인간으로서 누군가를 사랑한다는 마음 말이다. 스물넷 청년 '올리버(아이 해머)'와 열일곱 소년 '엘리오(티모시 살라메)'는 특별한 연인이 된다.

​엘리오가 막 성(性)에 눈을 뜨며 감정을 찾고, 마음을 나누며, 헤어짐의 아픔을 경험하는 과정을 느껴 볼 수 있다. 특히 첫사랑을 향한 걸작답게. 상대의 마음을 얻기 위한 갈망과 갖고 싶은 욕구, 변덕스러운 마음과, 혹사시키는 감정과 몸을 은유를 통해 보여준다. 복숭아와 살구는 통제할 수 없는 성(性) 적 판타지의 은유다.

탈무드에서는 ​세상에서 숨기기 어려운 세 가지를 가난, 재채기, 사랑이라 했다. 사랑은 숨길수록 드러나고 아닌 척 해도 감출 수 없다. 농밀한 추파를 던지는 끈적임, 상대방을 닮고 싶은 모든 이유가 된다. "네 이름으로 나를 불러 줘. 내 이름으로 너를 부를게"라는 사랑의 속삭임도 용인된다. 사랑하는 사람을 자신의 이름으로 부를 때. 나는 네가 되고 너는 네가 된다.

영화 <콜 미 바이 유어 네임>은 아름다운 이탈리아 고택과 지중해의 여름 풍경이 덤이며, 이탈리아로 여름휴가를 다녀온 듯 생생하다. '나를 탐해 보라'며 유혹하는 마법 같은 이끌림에 매료되는, 여름 하면 생각나는 영화로 각인되었다.

행복은 의외로 가까이에 있다 <보희와 녹양>
 
 영화 <보희와 녹양> 스틸컷

영화 <보희와 녹양> 스틸컷ⓒ KT&G 상상마당

 
보희(안지호)와 녹양(김주아) 둘은 절친한 친구 사이다. 한 날 한 시 같은 병원에서 태어났으며 심지어 같은 반이다. 보희는 녹양의 성격이 부럽다. 왜냐면 자신은 소심하고 겁이 많으며 자신감이 부족하기 때문이다. 녹양은 때론 누나처럼, 때론 엄마처럼 리더십이 강한 아이다. 어쩌면 나와 전혀 반대인 사람에게 끌리듯 둘은 부족한 부분을 보완하고 넘치는 부분은 덜어내며 친구가 되었다.

한창 사춘기가 시작된 무렵 보희는 점점 희미해지는 기억을 붙잡아 보려는 듯 아빠가 궁금하다. 하지만 엄마는 나중에 이야기해준다고 발뺌하기 바쁘다. 답답한 나머지 보희는 녹양과 아빠 찾기 프로젝트에 돌입한다. 아빠의 부재는 보희를 힘들게만 한다. 아빠는 어떤 사람일까? 왜 나를 찾지 않는 걸까? 만난다면 어떤 이야기를 해야 할까? 아빠는 나를 버린 걸까? 그럼 나는 누구일까? 복잡해지는 물음과 두려운 감정이 꼬리에 꼬리를 문다.

영화 <보희와 녹양>은 일반적이란 상식을 살짝 비튼다. 부모는 둘 다 있어야 한다는 편견, 연인이란 꼭 남녀가 아니라는 인식, 여자다움과 남자다움이 뒤바뀐 사례 등. 사회적으로 규정된 모습에서 벗어나지만 무겁거나 슬프게만 다루지 않는다.

또한 '꼭 뭘 해야 할까? 하고 싶은 거 그냥 하면 안 돼?'라며 공부가 아니면 안 된다는 부모들의 강요에 반기를 들기도 한다. 하고 싶은 것을 할 때 행복을 찾는다는 동화 <파랑새>의 교훈도 살짝 첨가했다. 초여름 연둣빛의 싱그러움과 청량한 십대의 통통 튀는 매력이 보는 것만으로도 기분 전환이 되는 영화다.

지금 당장 중요한 건 뭘까? <굿바이 썸머>
 
 영화 <굿바이 썸머> 스틸컷

영화 <굿바이 썸머> 스틸컷ⓒ 장혜령

 
여름은 순환하는 계절에서 젊음 상징한다. 매미가 짝짓기를 위해 땅 속에서 7년이란 인고의 시간을 견뎌 매섭게 울어대는 것처럼 말이다. 맹렬히 찾아왔다가 어느 새 달아난 찰나의 젊음을 흔히 여름에 비유한다. 제20회 전주국제영화제 한국경쟁 부분 상영작 <굿바이 썸머>는 찬란한 계절 여름을 섬세하게 다룬 영화다. 또다시 찾아오는 여름, 누구보다 평범히 살아가는 일. 시한부 선고를 받은 현재(정제원)가 여름이 끝나기 전에 하고 싶은 일이다.

현재는 곧 죽는다는 이야기를 누구에게도 하지 않는다. 한다고 해서 달라지는 것도 아니며, 아프다고 말하는 건 미안한 일이기 때문이다. 이 사실을 들은 수민(김보라)과 지훈(이건우)의 반응은 여느 영화와는 다르다. 어떤 사실을 알고 만나는 것과 모르고 만다는 것에 대해 생각해 봤다. 시한부 인생은 좋아한다는 고백도 마음대로 할 수 없을까? 남겨진 사람의 슬픔과 죄책감을 생각하지 않는 이기적인 처사일까? 아직 해보지 못한 일이 더 많은 십 대들을 통해 경험한 적 없는 죽음을 논하는 <굿바이 썸머>는 일상을 담담히 포착한다.

영화 <굿바이 썸머>는 흔히 생각하는 하이틴 로맨스물이 아니다. 죽음에 대한 두려움도 첫사랑에 대한 떨림도 제대로 느낀 적 없는 철부지 십대의 마음을 그려내고 있다. 시한부라고 꼭 시간을 의미 있게 써야 할까? 버킷리스트를 만들어 해보고 싶은 일을 하는 일만 의미 있을까? 한정된 시간을 어떻게 쓸지는 결국 자신이 선택하는 것이다.

현재는 유난 떨지 않고 지금을 오롯이 즐긴다. 짧고 강렬한 여름은 찰나다. 너무 더워 세상이 녹아버릴 것 같지만 언제 그랬냐는 듯 추위가 오면 여름은 잊는다. 현재가 시한부임을 알리지 않은 건 그냥 덤덤하게 하루를 이어가고 싶어서 일지도 모르겠다. 누군가에게 불쌍한 아이로 영원히 기억되지 않고, 겨울 지나 봄과 여름이 오듯 자연스럽게 받아들여 주길 원한 것뿐이다. 그 처연하고 싱그럽던 마지막 미소는 또 다른 성장의 의미로 다가온다.
덧붙이는 글 이 기사는 장혜령 시민기자의 개인 블로그와 브런치에도 실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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