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범도 장군

홍범도 장군ⓒ 홍범도장군기념사업회

 
졸병 없는 대장이 어디 있습니까?
 
유명한 전투-전쟁사를 배우거나 작품으로 감상할 때, 반드시 거기에는 한 영웅이 있다. '한산대첩' 하면 이순신 장군이요, '살수대첩' 하면 을지문덕 장군이다. 근대사에서 '청산리전투' 하면 김좌진 장군이요, '봉오동전투' 하면 홍범도 장군이다.
 
그런데 영화 <봉오동 전투>에서는 한 영웅의 초인적인 활약상보다는 숱한 무명 독립군들의 활약상을 그리고 있었다. 실제로 <봉오동 전투>에서 홍범도 장군은 영화 끝부분에 잠깐 나올 뿐이다. 이는 감독을 비롯한 제작진들이 숱한 무명의 독립군을 더 조명코자 한 의도 때문이었을 것이다.
 
기자는 2007년 10월부터 2008년 5월까지 8개월 동안 모두 열아홉 분의 호남 의병장 전적지를 여섯 차례 답사하면서 그 후손들은 만났다. 그때 전남 보성 출신 담살이('머슴'의 전라도 사투리) 안규홍 의병장 취재 길에 후손 안병진씨를 만난 일은 지금도 가장 감명 깊게 남아 있었다. 
 
 안규홍 의병장 후손 안병진씨

안규홍 의병장 후손 안병진씨ⓒ 박도

 
그때 내가 살펴 본 안규홍 의병장 무덤은 초라하기 그지없었다. 기념관이나 재실도 없었다. 그래서 나는 후손에게 그 까닭을 물었다.
 
기자 : "의병장 후손으로서 한 말씀 부탁드립니다."
안병진씨 : "저희 집안에서 오래전부터 사당이랄까 기념관 건립을 생각해 왔어요. 그런데 졸병 없는 대장이 어디 있습니까? 숱한 졸병을 제쳐두고 저희 할아버지 것만 못 짓겠더라고요. 호남 어디 한 군데다가 전 의병의 넋을 기리는 큰 사당이랄까 기념관을 세웠으면 좋겠구먼요."

 
나는 그때도, 지금도 그분 말씀에 감동하고 있다. 이마도 이번 영화 <봉오동 전투>도 그 점에 초점을 맞춘 걸로 높이 평가하고 싶다. 하지만 <봉오동 전투>의 영웅 홍범도 장군은 대단히 매력적인 인물이다. 언젠가 그분을 주인공으로 한 영화도 나오리라 믿는다.
 
그래서 봉오동 전적지를 두 차례 답사하고, 홍범도 장군을 골똘히 공부한 기자는 봉오동전투의 영웅 홍범도 장군 이야기를 이 기사에 남긴다.

포수 홍범도
 
 홍범도 장군

홍범도 장군ⓒ 홍범도장군기념사업회

홍범도(洪範圖)는 1868년 8월 27일(음력), 평양 서문안 문렬사 부근에서 가난한 농사꾼의 맏아들로 태어났다. 고조할아버지는 평안도 용강군 화장골에서 살았는데 순조 때 농민의 난을 일으킨 홍경래(洪景來)와 가까운 친척이었다고 한다. 그는 홍경래 난이 실패로 돌아간 후, 일가친척이 화를 입게 되자 가족을 이끌고 평양으로 와서 장사를 하며 살았다.
 
홍범도 아버지 홍윤식은 할아버지 생전에 남긴 빚 때문에 머슴살이를 했다. 홍범도 어머니는 어려서 부모를 여의고, 외가에서 자랐다. 그는 인물이 남달리 뛰어나 관기(官妓)로 뽑혀갈 처지에 이르자, 외가어른들이 서둘러 홍윤식과 혼인시켰다고 한다
 
가난한 부부는 생계에 어려움이 많았지만, 결혼한 지 이태 후에는 아들을 얻는 기쁨을 누렸다. 하지만 그 기쁨도 잠시였다. 홍범도 어머니는 임신 중 제대로 먹지 못한데다가 해산한 뒤 하혈이 심하여 일어나지 못하고 신음하다 이레 만에 세상을 뜨고 말았다.
 
홍윤식은 심청의 아비처럼 동네 아낙네들에게 동냥젖을 얻어 먹이며 어린 아들 홍범도를 길렀다. 그러나, 그도 아들이 아홉 살 되던 해 그만 열병으로 세상을 떴다.
 
일찍 양친 부모를 여읜 홍범도는 머슴살이, 병정, 막일꾼 등 닥치는 대로했다. 그는 공장에서 막일꾼 생활 중에 부도덕한 공장주가 품삯을 일곱 달이나 주지 않고, 도리어 먹고 입고 잠잔 값을 받아야겠다는 데 격분했다. 그리하여 공장주를 응징하고서는 그 길로 금강산으로 들어갔다.
 
그는 외금강 신계사 주지 스님 앞에서 머리를 깎고 중이 되었다. 그러나 평생을 절간에서 보낼 홍범도가 아니었나 보다. 한 해 남짓의 수도 생활을 청산하고 하산했다. 그때 홍범도는 여승 단양 이씨와 정이 들었고, 이씨는 뱃속에 아이까지 가지게 되었다. 그들은 단양 이씨의 고향인 북청으로 가고자 봇짐을 지고 금강산을 떠났다.
 
하지만 그들은 원산 교외에서 불한당으로부터 변을 당했다. 그때 홍범도는 단양 이씨와 생이별을 하게 되고, 이후 방랑객이 되었다. 그는 그때 불평등한 세상에서 남에게 천대와 멸시를 받지 않고 살아가자면 남보다 뛰어난 재주가 있어야 한다는 것을 절실히 깨달았다. 그는 글을 배우지 못 했기에 무예를 닦는 길이 상책이라고 생각했다.
 
홍범도는 강원도 회양에서 만난 포수로부터 사냥총 한 자루를 구입했다. 그 길로 홍범도는 깊은 산 속으로 들어가서 사냥꾼생활로 생업을 삼으면서 사격술과 검술을 닦았다. 뒷날 일본군들은 홍범도란 이름을 듣기만 해도 백발백중 사격술과 신묘한 검술을 떠올리며 긴장했는데, 이 모든 게 그때 익힌 솜씨였다.
 
 홍범도 흉상

홍범도 흉상ⓒ 홍범도장군기념사업회

   
독립군의 영웅이 되다
 
홍범도의 사상과 인생길에 큰 파문을 일으킨 것은 1894년의 갑오 동학 농민전쟁과 이듬해 명성황후 시해사건이었다. 특히 일제 깡패무리들이 남의 왕궁(경복궁)을 마음대로 포위해서 명성 황후를 난도질해 죽이고, 그 시신마저 장작더미에 던져 태워버렸다는 얘기를 듣고 난 홍범도는 울분이 하늘을 찔렀다.
 
그는 일제 침략자들이야말로 천하 제일가는 야수 무리로 우리 민족의 철천지원수라는 것을 똑똑히 알았다. 그는 그때부터 항일 투지를 불태웠다.
 
1895년 10월, 홍범도는 강원도 단발령에서 만난 포수 김수협과 뜻이 맞았다. 그들은 항일 의병을 일으킬 것을 맹세한 후, 곧 무장한 일본군 12명을 통쾌하게 처치했다. 이를 시작으로 홍범도의 맹렬한 항일 무장투쟁이 펼쳐졌다.
 
일제 강압에 따라 정미 7조약이 체결된 후인 1907년 11월이다. 홍범도와 차도선은 의병대를 만들어 함경남도 후치령에서 일제 북청수비대를 섬멸하여 첫 개가를 올렸다. 그 뒤를 이어 홍범도 의병대는 함경남도 삼수·갑산에서 일제 군경과 수십 차례나 치열한 격전을 벌여서 모두 승리로 이끌었다.
 
경술국치 이듬해 1911년 봄, 홍범도는 정예부대를 인솔하여 첫 국내 진격 전을 감행하였고 함경북도 경원에서 일본군 수비대를 습격하여 개가를 올렸다. 또 1919년 10월에는 평안북도 강계 만포진을 공략하여 일본군과 3일간 격전을 치르면서 70여 명을 살상했다. 홍범도 의병부대는 신출귀몰한 전술을 보여줬고, 이 때문에 지금도 홍범도 장군은 우리나라 게릴라전의 영웅으로 불리고 있다.
 
일제하 우리나라 독립 전쟁 효시(嚆矢)로 일컫는 1920년 6월의 봉오동전투는 홍범도 장군 지휘 아래에 이루어졌다. 아울러 우리나라 독립 무장투쟁사에 가장 빛나는 1920년 10월의 청산리대첩 역시 홍범도 장군의 역할이 컸다. 홍범도 장군은 일제와의 생사 결전에서 부인과 두 아들까지 잃고, 혈혈단신으로 남으면서도 항일 구국 투지만은 평생토록 굽히지 않았다.
 
홍범도 장군은 일제에게는 '나는 장군'으로 저들의 간담을 서늘케 했고, 우리 겨레에게는 독립운동의 전설적인 영웅, '백두산 호랑이'로 추앙 받았다. 장군의 거룩한 발자취는 조국의 산과 계곡에, 압록강 두만강 굽이굽이에, 백두산 밀림과 드넓은 만주 벌판에, 러시아 연해주와 시베리아 벌판에까지 남았다.
 
홍범도 장군은 조국 광복 이태 앞둔 1943년 10월 25일, 러시아 카자흐스탄의 크즐 오르다에서 75세를 일기로 파란 많았던 항일 구국 생애를 마감하였다. 홍범도 장군이 돌아가신 지 40년 후, 크즐 오르다 묘지에는 홍범도 장군의 반신 동상이 세워지고, 생전에 살았던 곳은 '홍범도 거리'로 명명되었다고 한다.
 
아무튼 홍범도 장군은 1920년 봉오동전투로 민족 수난을 극복하려는 우리 독립군에게 큰 광명을 줌과 아울러, 일본군에게 무서운 대상으로 그 이름만 들어도 벌벌 떠는 독립군의 명장이 되었다.
덧붙이는 글 이 기사는 독립기념관 한국독립운동사연구소 발행 장세윤 지음 <홍범도>를 참고하여 썼음을 밝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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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여년 교사생활 후 원주에서 지내고 있다. 장편소설 <허형식 장군> <약속> <용서>, 역사다큐 <항일유적답사기><영웅 안중근>, 사진집<지울수 없는 이미지> <한국전쟁 Ⅱ> <일제강점기> <개화기와 대한제국> <미군정 3년사>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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