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엑시트' 이상근 감독 영화 <엑시트>의 이상근 감독이 23일 오후 서울 소격동의 한 카페에서 진행된 인터뷰에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 '엑시트' 이상근 감독영화 <엑시트>의 이상근 감독이 23일 오후 서울 소격동의 한 카페에서 진행된 인터뷰에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이정민


올여름 우리를 찾아온 신선하고 유쾌한 재난영화 <엑시트>는 이상근 감독을 꼭 닮은 작품이다. 실제로 만나본 이 감독은 <엑시트>처럼 군더더기 없이 담백하고도 심지가 단단한 사람이었다. 어떻게 재난영화 특유의 신파도, 속을 답답하게 만드는 악당도 없이 시원하게 질주하는 영화가 탄생할 수 있었는지는 그와 이야기를 몇 마디 나눈 뒤 자연스럽게 이해하게 됐다.

지난 23일 오후 서울 종로구 삼청동에 위치한 한 카페에서 이상근 감독을 만났다. 개봉 전부터 호평이 쏟아지고 있다는 말에 그는 "아직 아무것도 안 믿는다. 영화계는 냉정한 곳이지 않나. 좋은 반응은 기분 좋게 듣고 있지만 아직 영화를 보신 분들은 소수다. 일희일비 하지 않으려 한다"며 의연한 모습을 보였다. 

<엑시트>는 유독가스 테러가 발생한 도심에서 살아남기 위해 달리는 용남(조정석 분)과 의주(임윤아 분)의 좌충우돌 탈출기를 그린 영화. 졸업 후 몇 년째 백수 신세인 용남은 어머니의 칠순 잔치에서 우연히 대학교 시절 산악동아리 후배 의주를 만난다. 그러던 중 근처에서 유독가스 테러가 발생하고, 두 사람은 동아리 시절 습득한 갖가지 기술을 이용해 이곳을 탈출하려 한다.

아래는 이상근 감독과의 일문일답을 정리한 내용이다.
 
'엑시트' 이상근 감독 영화 <엑시트>의 이상근 감독이 23일 오후 서울 소격동의 한 카페에서 진행된 인터뷰에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 '엑시트' 이상근 감독영화 <엑시트>의 이상근 감독이 23일 오후 서울 소격동의 한 카페에서 진행된 인터뷰에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이정민

 
- <엑시트>는 본인에게 상업영화 데뷔작이다. 제작비 100억이면 대작인 셈인데, 부담감은 없었나.
"큰 제작비에 치열한 여름 시장에서 데뷔하게 될 줄은 몰랐다. 무식하면 용감하다고 얼마나 큰 기회인지도 이제 와서야 깨닫고 있다. 하지만 제작비가 크고 작은지에 따라 (마음가짐이) 다르지는 않다. 데뷔작을 만들 때의 열정은 똑같다고 생각하고 노력한 것도 똑같다. 일단은 제작사에서 믿어주신 점이 가장 컸다. 제가 연출부 생활할 때부터 뭘 잘하는지 (류승완 감독이) 잘 알고 계셨기 때문에 시너지가 많이 발생했고 운도 좀 따라줬던 것 같다." 

- 극 중에서 유독가스 테러로 재난이 발생한다. 왜 유독가스를 선택했나. 
"공간이 보이지 않아서 어디로 가야 할지 모르는 상황을 만들면 할 수 있는 얘기가 많을 것 같았다. 또 난국에 처한 젊은이들이 거기서 느끼는 감정들을 보여주고 싶었고, 더불어 호흡할 수도 없는 처절한 상황이 되면 이 젊은이들이 어떻게 견디고 돌파할까 궁금했다. 이거를 빗대 표현하면 예리한 관객들은 다른 의미를 읽어낼 수 있지 않을까 생각했다. 창작자들은 단순한 얘기보다 그 안에 내재된 메타포라든지, 상징적인 것들을 집어넣기 마련이다. <엑시트>라는 영화가 대단한 메시지를 전달하고자 하는 영화는 아니지만 그 안에서도 문맥을 읽어낼 수 있다면 해석하는 재미를 느끼실 수 있지 않을까 싶었다."

- 재난영화의 클리셰가 많이 빠진 느낌이었다. 공권력의 무능이라든가, 악인의 등장이라든가. 이렇게 선택한 이유는?
"이미 재난영화 하면 기대되는 부분이 있지 않나. 익숙한 것들은 가져가되, 제가 아니어도 다른 분들이 많이 하신 것들은 피하려고 했다. <엑시트>에서 포커싱한 부분은 젊은이들이 난국을 타개하고 돌파한다는 거다. 재난의 시작이나 발생, 결말, 콘트롤타워의 부재, 답답증을 일으키는 캐릭터 같은 것보다는 이들의 땀내 나는 여정을 보여드리고 싶었고 거기에 선택과 집중을 했다. 다소 불친절하다고 느낄 만한 부분도 있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두 사람에게 집중한다면 상쇄되지 않을까 싶어서 단호하게 걷어냈다. "

- 테러가 발생했는데 사람이 얼마나 죽었는지, 다쳤는지 같은 피해양상은 영화에 거의 나오지 않았다. 그게 관객에게는 공포감을 주는 요소일 수도 있지 않나?
"피해 양상을 많이 보여드려서 영화적 긴장감을 유발할 수 있겠지. 오히려 그런 부분을 덜어내면 (스토리가) 약해 보일 수 있다는 고민도 했다. 그런데 필요 이상의 피해자들을 만들고 싶지 않았다. 영화 외적으로 스펙터클을 위해 희생되는 모습들을 보여주기 싫었다. 영화 볼 때 그런 생각하지 않나. '카체이싱' 신에서 쓸데없는(주인공이 타고 있지 않은) 차들이 전복되거나 그러면 안에 있는 사람들은 어떻게 되지? 그런 걸 우리 영화에서는 좀 하지 말자는 마음이었다. 스펙터클로 관망하는 게 아니라 두 사람의 여정으로 충분히 긴장감을 유지시켜보고 싶었다. 어떻게 보면 도전이었지만 좋게 봐주신 분들이 계신 것 같아 (기분 좋다). '착한 영화 콤플렉스'까진 아닌데, 좀 탈피해보려고 했던 노력이라고 생각해달라."

- 시나리오 원안이 제작사 외유내강 손을 거치면서 좀 바뀌었다고 들었다. 어떤 부분이 바뀌었나.
"처음에는 지금처럼 거대한 자본으로 움직일 것이라 생각 못했다. 저예산 영화로 마이너한 감성이지만 내 색깔을 보여주자라는 생각이었다. 어쨌든 공간을 좁혀야 했기 때문에 고희연(칠순잔치)이 아니라 결혼식 피로연으로 간 노래방에서 벌어지는 얘기로 설정했다. 원래는 바깥에서 유독가스 재난이 발생했을 때 좁은 공간에 갇힌 사람들의 소동극으로 기획했다. 유독가스 재난이었던 이유도 미술적인 문제에서 많이 가려야 하니까. 어떻게 보면 요행이었다. 외유내강으로 들어와 기획 개발 과정을 거치면서 대중적인 영화로, 전 세대를 아우를 수 있는 얘기로 만들어 보자 한 것이다. 고희연으로 설정을 바꾸고 가족 드라마 요소도 많이 가미됐고 한국적인 정서나 공감대를 일으킬 수 있는 에피소드들이 추가되면서 현재에 이르게 됐다."

- 분명히 재난 상황인데 슬프기보다 유쾌한 느낌이었다. 배우들은 울고 있는데 관객은 웃음이 터지는 신도 있었고. 이런 코드를 좋아하는 편인가?
"나의 영화 취향인데, 유머가 발생하는 걸 좋아한다. 유머라는 건 공감대가 있어야 발생하지 않나. 공감대를 느껴서 웃음을 유발하는 게 영화적 재미를 주는 가장 좋은 방법이라고 생각한다. 우리 영화에서는 '페이소스'가 담긴 웃음이 많이 나온다. 사실 재난 장르와 코미디는 대척점에 있는 부분이라 자칫하면 억지 웃음이 되지는 않을까 고민한 부분도 있다. 밸런스를 잘 맞춰야 자연스럽게 흘러가면서 억지스럽지 않은 유머를 보여드릴 수 있겠다고 생각했다. 그러면 영화에 빠져 두 캐릭터를 응원하면서 재밌게 보실 수 있지 않을까 해서 유머를 적극적으로 활용하면서도 조심스럽게 접근하려 했다."
 
'엑시트' 이상근 감독 영화 <엑시트>의 이상근 감독이 23일 오후 서울 소격동의 한 카페에서 진행된 인터뷰에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 '엑시트' 이상근 감독영화 <엑시트>의 이상근 감독이 23일 오후 서울 소격동의 한 카페에서 진행된 인터뷰에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이정민

 
- 조정석 특유의 능청스러운 연기가 영화에서 큰 몫을 했다는 느낌이었다. 어떤 디렉팅을 했나. 
"처음부터 (조)정석씨가 잘하는 걸 알고 있었고 용남이라는 캐릭터가 그에게 잘 맞는 옷이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상상했던 것보다 더 좋은 연기를 보여주셨다. 시나리오 작업하면서, 시뮬레이션 하면서 내게 인이 박혀 있었던 것에서 벗어나 새롭고 신선한 것들을 많이 보여줬다. 그 덕분에 편집적인 부분에서 많은 선택의 여지가 생겼다. 정석씨 특유의 기지나 리듬에서 나오는 순간적인 재치가 있다. 시나리오의 흐름을 깨지 않는 선에서 재밌는 애드리브나 뉘앙스 같은 게 있었다. 몸짓이나 동선도 재미있는 부분을 직접 많이 만들어줬고. 그게 다 배우의 경험치나 능력이라고 생각한다." 

- 임윤아가 촬영장에서 눈물을 보였다는 에피소드가 화제를 모았다. 임윤아는 "그날 이상근 감독이 되게 미안해했다"고 하더라.
"사실 내가 독한 성격이 못 된다. 리더로서 경험도 풍부하지 못하고 집요함이 더 필요하다고 스스로 느끼고 있다. 사람들에게 모진 소리를 잘 못하는 성격을 타고났다. 그날은 (임)윤아씨가 (너무 많이 뛰어서) 근육이 제 기능을 못하는 상황까지 갔다. 스태프들은 모여 있고 촬영 분량을 끝내야 하는데 배우는 힘들어서 울먹이고 저도 어쩔 줄 모르겠는 상황이었다. 윤아씨도 하기 싫어서 그런 게 아니라 체력적으로 왜 이게 안 될까 하는, 분한 마음이었던 것 같다. 그런데 스스로 한 번 더 하겠다고 말해주더라. 그렇게 쥐어 짜낸 힘으로 마지막 오케이 컷을 건질 수 있었다. (윤아) 팬들이 아시면 화내지 않을까 고민도 했는데 영화로 보답하면 되지 않을까 생각했다."

- 영화 끝나면 나오는 OST '슈퍼 히어로'가 인상적이었다. 어떻게 이승환과 함께하게 됐나.
"시나리오를 쓸 때부터 '슈퍼히어로'를 삽입하고 싶어서 시나리오상에 기재해뒀다. 가사가 마치 <엑시트>를 위해 만든 것처럼 딱 떨어지게 영화와 어울리고 주제도 잘 표현하고 있었다. 어렵사리 부탁을 했는데 제작을 담당했던 류승완 감독님과 (이승환이) 친분이 있더라. 그래서 흔쾌히 승낙을 해주셨다. <엑시트> 버전으로 새롭게 녹음하고 편곡해주셔서 더 재밌게 들으실 것 같다. 영화가 끝나고도 OST를 끝까지 들으면 굉장히 기분 좋게 극장을 나설 수 있지 않을까 싶다."

- 앞서 시사회에서 배우 박인환이 "극 중 용남과 감독의 처지가 비슷하다"고 얘기하기도 했다. 데뷔하기까지 세월이 좀 길었는데, 어떻게 버텼나.
"(데뷔까지) 생각보다는 오래 걸렸다. 제 삶에 영화감독이라는 타이틀을 달 수 있다는 사실만으로 기쁘다. 인고까진 아니고 기다림의 세월이 의미 있었구나 생각한다. 그 기간 동안 아무것도 안 하지 않았던 자신에게 대해 수고했다고 하고 싶다. 평범한 가정에서 자라서 집에서 해주는 밥 얻어먹고 카페에서 글쓰고 그랬다. 경제 활동은 아르바이트로 생활비를 댔다. 이 나이에 부모님께 손 벌리긴 싫었고 풍부하게 살지는 않았지만 짜장면 먹고싶을 때 먹거나 하고 싶은 것 하는 정도는 가능했다. 드라마에 나올 법한, 그런 힘든 시간은 아니었지만 인정받고 싶은 욕구나 꿈에 대한 갈증 그런 것 때문에 지난한 시간이었다고 생각한다."

- <엑시트>로 이제 영화감독으로서의 길이 시작됐다. 앞으로 어떤 이야기를 하는 감독이 되고 싶나.
"단편영화 작업을 할 때도 그렇지만 상상력에 의존해서 새로운 이야기를 만들고 싶어하는 열망이 강한 편이다. 우리 삶이나 생활을 되게 세밀하게 나눠서 분석하고 그 안에 공감가는 부분을 끄집어내는 걸 좋아한다. 별것 아닌 소소한 이야기인데도 공감할 수 있는 이야기를 잘 하고 싶다. 제 시선에서의 공감대가 관객에게는 신선한 공감대가 될 수 있었으면 좋겠다. '이상근 감독에겐 저런 디테일한 관찰력이 있고 저런 공감대를 잘 불러일으키는구나.' 그런 평가를 받으면 좋겠다."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주기

진실과 정의를 추구하는 오마이뉴스를 후원해주세요!

후원문의 : 010-3270-3828 / 02-733-5505 (내선 0)

오마이뉴스 후원하기
  • 당신이 좋아할 만한 콘텐츠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