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귀향'의 배우 강하나씨

영화 '귀향'의 배우 강하나씨ⓒ 경기도

  
 영화 '귀향'의 배우 강하나씨

영화 '귀향'의 배우 강하나씨ⓒ 경기도

 
"같은 우리말과 우리글을 쓰는데, 이렇게 분단되어 있다는 사실이 가슴 아프고..."
 
잠시 목이 메는가 싶더니, 붉게 충혈된 두 눈에서 이내 눈물이 흘러내렸다. 북받치는 감정이 쉽게 추슬러지지 않는 듯, 한동안 말을 잇지 못하던 강하나씨는 "일본에 살면서도 북이랑 남이랑 가르고 얘기를 하니까, 그게 너무 답답했다"며 19년 동안 가슴에 얹혔던 말을 토해냈다.
 
1943년, 천진난만한 열네 살 정민(강하나 역)이 영문도 모른 채 일본군 손에 끌려가 차디찬 전장 한가운데 버려진 채 끔찍한 고통과 아픔 속에서 흘렸던 눈물도 이렇게 아팠을까?
 
일본군 성노예 할머니들의 삶을 다룬 영화 '귀향'의 배우 강하나씨와 조정래 감독이 25일 필리핀을 찾았다. 마닐라 콘래드 호텔에서 열리는 '2019 아시아태평양의 평화와 번영을 위한 국제대회'로부터 특별 초청을 받았다.
 
강하나씨는 행사 참석에 앞서 진행된 기자들과의 인터뷰에서 '조총련'계 재일교포로서 느꼈던 '남북 분단'의 아픔을 소개하면서 눈물을 보였다. 재일교포 4세인 강하나씨는 15살 때까지 국적 없이 살다가 영화 '귀향'에 출연하면서 한국 국적을 취득했다. 그의 삶 자체에 분단의 역사가 아로새겨져 있던 셈이다.
  
 일본군 성노예 할머니들의 삶을 다룬 영화 ‘귀향’의 배우 강하나씨와 조정래 감독이 25일 필리핀 마닐라 콘래드 호텔에서 열리는 ‘2019 아시아태평양의 평화와 번영을 위한 국제대회’에 참석하기 앞서 기자들과 인터뷰를 진행하고 있다.

일본군 성노예 할머니들의 삶을 다룬 영화 ‘귀향’의 배우 강하나씨와 조정래 감독이 25일 필리핀 마닐라 콘래드 호텔에서 열리는 ‘2019 아시아태평양의 평화와 번영을 위한 국제대회’에 참석하기 앞서 기자들과 인터뷰를 진행하고 있다.ⓒ 경기도

 
"성노예 피해 할머니들이 남쪽에만 계시는 게 아니라 북쪽에도 계신다"면서 "북이랑 남이랑 가르는 게 아니라, 원래 조선반도는 하나였다"는 그의 말속에 통일에 대한 희망이 담겨 있었다.
 
조정래 감독은 "남과 북의 상황이 어려운 것은 모두가 다 알고 있지만, 일본군 성노예 문제 등 남과 북이 함께 할 수 있는 일이 너무 많다"며 "그런 것부터 같이 의견을 모으고, 힘을 모아서 하나하나씩 해나가야 한다. 피해 할머니들이 끝까지 이 문제를 외치는 것처럼, 남과 북이 끊임없이 만나다 보면 정말 베를린 장벽이 무너지듯이 한꺼번에 무너질 것"이라고 말했다.
 
한편 경기도(도지사 이재명)와 (사)아태평화교류협회가 공동으로 개최한 이번 국제대회에는 북측대표단을 비롯해 필리핀, 일본, 중국, 호주, 태국 등 11개국의 일본 강제노역 관련 전문가 등 300여 명이 참가한다.
 
특히 이번 국제대회는 최근 일본 아베 정권의 경제 보복 조치로 한·일 갈등이 악화일로에 놓인 가운데 남북 인사들이 모여 일제 강제동원의 진상규명 및 성노예 피해 치유 방안 등에 대해 논의할 예정이어서 주목된다.

배우 강하나씨와 조정래 감독은 26일 오후 열리는 본 행사에서 한국과 필리핀 양국의 성노예 피해자 할머니들을 만날 예정이다.
 
다음은 강하나씨와 조정래 감독의 인터뷰 일문일답 요지이다.
 
"남과 북, 일본군 성노예 문제 등 같이 할 수 있는 것부터 힘 모아야"
 
 영화 '귀향'의 조정래 감독

영화 '귀향'의 조정래 감독ⓒ 경기도

 
- 이번 국제대회에 참석하게 된 소감은?
조정래 "이렇게 큰 대회에 초청이 된 것만으로도 영광이라고 생각한다. 필리핀에 있는 피해자 할머니들도 만나게 된다고 하니까, 가슴이 굉장히 벅차다. 영화 '귀향'을 만들고 관객들에게 '아직 이 문제는 끝나지 않았고, 아직 해결된 것이 없다'는 말씀을 드렸다. 피해자 할머니들이 몇 분 살아계시지 않는다. 살아계실 때 하루빨리 이 문제가 해결되기를 간절히 바란다는 메시지를 국제사회에 전달하고 싶다. 특히 남과 북이 함께 아시아 평화와 인권에 대한 공동의 목소리를 낼 수 있다는 점에서 더 큰 의미가 있다고 생각한다."
 
강하나 "처음에 (참석에 대한) 연락을 받았을 때 깜짝 놀랐다. 필리핀에 계시는 위안부 할머니들과 한국에 계신 위안부 할머니들이 함께 참석하는 행사에 초청받았다는 게 너무나 영광스러웠다. 이번 행사를 통해서 제가 위안부 문제 해결을 위해서 '귀향' 찍었을 때보다 더 할머니들을 위해 할 수 있는 게 뭘까, 생각하고 실천해 나갈 수 있으면 좋겠다."
 
조정래 "강하나양은 재일교포로서 지금도 일본에 거주하고 있는데, '귀향' 촬영 당시 굉장히 큰 위험을 무릅쓰고 용기를 내서 출연해줬다. '귀향'이 많은 국민의 지지와 성원을 받으면서 하나양의 인생에 큰 변곡점을 만들었는데, 이번 행사도 여러 가지 의미에서 하나양에게 또 다른 변곡점이 되는 것 같다.
 
지금 한일 간의 경제 보복과 관련한 갈등, 남북문제에 있어 시시각각 변하는 국제 정세, 어디로 튈지 모르는 답답한 현실이 이어지고 있지만, 그 속에서도 분명히 지켜야 할, 그리고 우리가 꼭 알아야 할 일 중 하나가 일본군 성노예 문제라고 생각한다. 지금 일본의 태도를 보면, 기존의 물타기나 적반하장을 넘어서 이번에는 대놓고 뻔뻔하게 과거에 있었던 강제 징용이나 일본군 성노예 문제에 대해 이미 다 해결된 것처럼 얘기하고 있다. 하지만 이번 행사를 통해 아직 해결된 것은 아무것도 없다는 점을 국제사회에 널리 알리는 계기가 됐으면 좋겠다."
 
- 최근 일본의 경제 보복 조치와 관련 일본 현지 분위기는 어떤가?
강하나 "일본에서 원래 한국을 안 좋아하는 분들은 '아, 한국이 또 뭐라 하고 있네'라고 하는데, 정치에 관심이 없는 분들은 그냥 '한국이랑 안 좋네'라고 한다. 그런데 정치에 관심이 없는 분들이 너무 많다는 점에서 답답하다. 사람마다 다 다른 분위기다. 일본에서 살면서 한일 관계가 안 좋아지면 저도 약간... '한일 관계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느냐'는 얘기가 나오면, 대답하기 어렵고, 이 문제들이 빨리 해결이 됐으면 하는 마음이다."
 
- 영화 '귀향'을 찍을 때 신변의 위협을 받았다고 하던데, 지금도 비슷한가?
강하나 "그때는 심했지만, 지금은 거의 그런 일이 없다. 그런데 위안부 문제를 얘기하는 게 일본 사회에서는 예민한 부분이다. 저는 막 제 생각을 얘기하는데, 그것을 안 좋게 보는 사람이 많다."
 
 영화 '귀향'의 배우 강하나씨

영화 '귀향'의 배우 강하나씨ⓒ 경기도

  
- 공식적인 표기는 '일본군 위안부'인데, 경기도는 조례를 통해 '일본군 성노예'로 바꿔서 표기한다. 어떻게 생각하나?
조정래 "과거에 많이 쓴 '종군위안부'라는 표현은 일본식 표기로서 오해를 살 수 있어서 안 쓰고 있다. 해외에서 '귀향' 상영회를 할 때, 영문 팸플릿에 'Comfort Women'(위안을 주는 여성)이라는 말이 들어가면 영어권이나 유럽에서는 오해를 많이 한다. 영화를 보면서 공감하고, 그 역사적 사실에 분노하고 충격을 받는데, 왜 'Comfort Women'이라는 표현을 쓰느냐는 질문을 꼭 받는다.
 
'일본군 성노예'라는 말은 사실 피해자 할머니들이 들을 때마다 불편해하신다. 그런데도 본질적이고, 그것이 사실이기 때문에 그렇게 불려야 마땅하다고 생각한다. 피해 할머니들이 조금 힘들고 불편하더라도 '일본군 성노예'라는 말을 써야 한다. 일본이 툭하면 '종군위안부'라고 하는 것은 의도가 있는 것이고, 그런 점을 국민과 전 세계 시민들이 알았으면 좋겠다. 이용수 할머니도 '나는 위안부가 아니라, 이용수다'라는 말씀을 꼭 한다. 그만큼 위안부라는 말이 싫은 거다. 피해자 입장에서는 가중된 고문의 멍에를 다시 한번 덧씌우는 것이 된다.
 
일본은 현실도 부정하는 판에 피해자들이 돌아가신다면 은폐가 된다고 생각하는데, 그것은 손바닥으로 하늘을 가리는 행위이다. 현재 일본 경제 보복의 근원이 됐던 문제로 들어가다 보면 일본이라는 나라의 행동을 비롯해 모든 것이 정말 비정상적이라는 생각이 든다. 하나양의 얘기처럼 대부분의 일본 국민들이 이것에 대해서 무관심한 태도를 취하고 있다는 것에 대해서도 굉장히 답답함을 느낀다."
 
강하나 "할머니들이 '성노예 피해자 할머니'라고 불리기 싫어하시지만, 우리가 할머니들의 존재를 알리기 위해서도 그렇고, 틀린 인식이 아니라 올바른 인식을 해야 하기 때문에 '성노예 피해자 할머니'라고 불러야 할 것 같다. 할머니들을 어떻게 부르느냐가 생각보다 중요한 문제인 것 같다."

- 보수 진영에서는 한일 양측이 정치력을 발휘해서 협의하고, 양보할 것은 양보해야 한다고 하는데.
조정래 "이 문제는 절대 타협할 수 없는 문제다. 전쟁범죄에 대해서는 유엔에서도 공소시효가 없다. 국제사회 룰 자체가 강력하게 규정하고 있는데, 정치적으로 타협의 대상이 되거나, 돈 얼마 줬으니 해결이 됐다거나 할 수 있나. 게다가 2015년 12월 28일에 있었던 한일 간의 위안부 협정 자체는 피해자가 다 배제된 상태에서 진행한 것이기 때문에 말도 안 되는 것이다. 이것은 여와 야, 진보와 보수의 문제가 전혀 아니다. 원칙 속에서 풀어나갔으면 좋겠다."
 
- 지금도 '일본군 성노예' 문제에 대해 잘 모르고 있는 일본 내 국민이나 국제사회에 어떻게 알려 나가야 한다고 생각하나.
강하나 "우선 피해자 할머니들이 계신다는 사실을 알려야 하는데, 계속 말을 하고 목소리를 낼 수밖에 없다고 생각한다. 일본 사람들은 할머니들의 존재에 대해서도 안 믿거나 할머니들이 그때 좋아서 일본으로 갔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엄청 많다. 일본 정부가 그렇게 교육을 해서 틀린 인식을 가진 분들이 너무 많은데, 그런 분들과 진짜 끝까지 얘기해야만 바른 역사를 알릴 수 있을 것 같다. 끝까지 타협하지 않고, 얘기를 나눠야 한다."
 
- 영화에 출연하면서 '일본군 성노예' 문제에 대해서 알게 됐는데, 남과 북으로 나뉜 한반도의 역사적 상황에 대해서는 어떤 방식으로 알아가고 있나?
강하나 "피해자 할머니들이 남쪽에만 계시는 게 아니다. 북쪽에도 계신다. 북이랑 남이랑 가르는 게 아니라, 원래 조선반도는 하나였다. 그런 부분에 대해 많이 공부 중이다.
 
(한반도의 분단에 대해) 많이 느끼면서 살아왔다. 일본에서 초등학교부터 고등학교까지 다녔는데, 민단 계열이 아니라 조총련 계열 학교에 다녔다. 학교에서 역사 수업을 받을 때 남쪽 역사와 북쪽 역사를 따로 배웠다. 같은 조선반도인데 왜 따로 역사를 배울까. 저는 북한을 두 번인가 다녀오면서 직접 북한의 모습을 봤다. 같은 우리말과 우리글을 쓰는데, 이렇게 분단되어 있다는 사실이 가슴 아프고...(눈물), 일본에 살면서도 북이랑 남이랑 가르고 얘기를 하니까, 그게 너무 답답했다.
 
(남북 정상의) 판문점 선언을 보면서 너무 감동적이었다. 일본에 있는 교포 친구들도 한국도 가고, 북한도 가고, 다 엄청나게 좋아한다. 그래서 빨리 통일이 되어서 북도 남도 다 같이 갈 수 있는 세상이 빨리 왔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계속 가지고 살아왔다."
 
- 국제사회에서 더 많은 나라가 공감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남과 북이 함께 목소리를 내는 게 큰 의미가 있을 것 같은데.
조정래 "지금 남과 북의 상황이 어려운 것은 전 세계가 다 알고 있고, 전 국민이 알고 있지만, 일본군 성노예 문제 등 남과 북이 함께 할 수 있는 일이 너무 많다. 그런 것부터 같이 의견을 모으고, 힘을 모아서 하나하나씩 해나가야 한다. 아무리 어렵고 다시 리셋되는 느낌이 들더라도... 피해 할머니들이 끝까지 이 문제를 외치는 것처럼, 남과 북이 또 만나야 하고, 끊임없이 만나야 한다. 그렇게 만나다 보면 정말 베를린 장벽이 무너지듯이 한꺼번에 무너질 것이라고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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