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BS스페셜-난독시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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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른들 또한 아이들의 상황과 다르지 않았다. 어찌 보면 더 심각해 보이기까지 했다. 장은수 편집문화실업실 대표는 "성인이 되면 스스로 책을 읽어야 하겠다는 생각을 안 하는 그런 편에 속한다. 목적형 동서가 많다. 승진이라든가 시험이라든가 이럴 때 주로 책을 읽고 목적이 달성되고 나면 더 이상 책 안 읽는다"라며 "4명 중 3명이 책을 읽지 않는 나라인데, OECD 국가에서는 유일할 거다"라고 밝혔다.
세종대왕이 창제하신 과학적인 한글 덕분에 문자 해독률은 높지만 문맥을 이해하는 능력(문해력)은 OECD 평균 이하이며, 그중 22.4%는 초등학생 수준 이하라고 한다.
방송에 나온 대학생인 이수민씨는 이와 관련된 고민이 있다. 책은 당연히 읽기가 힘들고, 기사도 길어지면 이해가 안 된다. 그러다 보니 세 줄 이상 넘어가면 읽지 않는 습관이 들어 버렸다. 당연히 쓰는 것도 힘들다. 간단한 글도 쓰다 보면 걸리고, 하다못해 자기소개서를 쓰다가도 #(샵)버튼에 의존하게 된다고 한다.
대학생 이수민씨는 자기와 같은 또래들은 과거에 책을 읽다가 안 읽은 세대라 정의한다. 초등학교 고학년, 중학교 때부터 책을 안 읽은 세대, 더 이상 책 읽으라는 잔소리를 듣지 않게 되면서 책으로부터 자유로워진 세대. 대신 그들의 손에는 스마트폰이 쥐어졌다.
한때 '독서광'이었다는 김귀희씨. 아이 둘의 엄마가 된 그는 아이들과 함께 책을 읽으려고 하지만, 좀처럼 책에 집중하기가 힘들다. 귀희씨는 그 이유를 알기 위해 시선이 머무르는 시점이나 시간을 통해 읽는 방식을 검사하는 아이 트래킹에 참여했다. 그 결과 한때 책을 즐겨 읽었다던 김귀희씨는 어느덧 그가 즐겨보는 스마트폰 보듯 책을 읽고 있었다. 그는 문장을 따라 꼼꼼하게 보지 않고 Z자형, F자형으로 건너뛰며 전형적인 디지털 읽기 방식으로 책을 읽고 있었다. 그러다 보니 책의 내용을 깊게 이해살 수 없으니 당연히 책에 집중할 수 없는 것이다.
물론 진화적인 측면에서 볼 때 인류와 독서는 아직 친해지기 어려운 관계이긴 하다. 제작진과 만난 장대익 서울대학교 자유전공학부 교수는 "사람들이 독서를 힘들어 하는 것은 독서가 우리의 진화된 특성이 아니기 때문이다. 인류가 진화한 건 20만 년 됐고, 문자가 6천년 전쯤에 나온 거니, 문자를 읽고 해독하고 그것을 전달하는 것 자체는 매우 힘든 일이다"라고 말했다. 늘 주면을 살펴야 하는 산만한 DNA를 가진 인간들에게 책읽기 자체가 쉽지 않은 미션이란 이야기다.
<책은 도끼다>의 저자 박웅현씨는 "우리 삶에 도움을 줄만한 한 영혼이 우리에게 들려주고픈 말을 정리해놓은 것"이라고 책을 정의한다. 읽는 행위 자체가 중요한 게 아니라, 그것을 통해 내 속에서 어떤 변화를 끌어내느냐가 중요하다는 것이다. 바로 그 '책을 통해 얻어지는 공감', 그것이 깊은 독서의 첫 번째 과제다.
책을 읽는 순간 우리의 뇌는 변화한다. 전두엽이 활성화되며 사고력, 창의력, 기억력, 감정 조절 능력이 깊어진다. 이를 통해 쌓이는 배경 지식, 많이 읽을수록 더 많은 배경 지식이 쌓이고, 이는 다음 독서의 기반이 된다. 그리고 그 배경 지식과 함께 뇌의 회로는 보다 정교해지고 복잡해지며 견고해진다.
책과 멀어진 사람들, 어떻게 하면 다시 친해질 수 있을까?
예전에는 나이가 들면 머리가 굳는다고 했다. 하지만 이제 그렇게 말하는 뇌과학자들은 없다. 하다못해 저글링만 해도 뇌의 회로는 변화한다. 노인이 되서 굳는 게 아니라, 안 써서 굳는 것이다. 뇌를 활성화시키는 가장 좋은 방법, 그건 두말할 필요도 없이 '독서'다.
물론 이견도 있다. 책을 사지 않을 뿐, 책을 읽지 않는 건 아니라는 주장이다. 스마트폰으로 볼 수 있는 레이아웃에 맞춰 디지털 세대의 작가로 최근 각광받는 문화류씨는 자신들의 독자의 경우 "한 달에 7,8권의 웹 소설을 소비한다"며 "종이로 된 책을 안 살 뿐 자신들의 세대는 웹 소설 등으로 다른 '독서'의 세계를 열고 있다"고 반박하기도 한다.
미국 UCLA 난독연구센터장인 매리언 울프 교수는 "5살에서 10살 시절에 책읽기에 재미를 붙이고, 11살에서 15살 무렵 책과 디지털의 세계를 접목해 나가는 것이 가장 이상적인 방식"이라 권유한다. 하지만 전반적으로 '독서'가 낯설어지는 시대, 과연 어떻게 다시 책과 친해질 수 있을까?
박웅현씨는 누군가와 친구가 되려면 시간이 걸리듯 책과 친해지기 위해 시간을 투자하라고 권유한다. 일 년에 몇 권을 읽어치우려 하지 말고 한 권이라도 꼭꼭 씹어 먹듯이 읽으라고 권한다. 기생충 박사 서민의 주장은 더욱 파격적이다. 어린 시절 반강제적인 독서 교육으로 책을 멀리하게 되었으니, 차라리 어릴 적에 책을 읽는 것을 '규제'하여 읽고픈 욕망을 극대화시켜야 된다는 것이다.
홍천고등학교에 분 독서 바람, 그 시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