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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쿄대에 합격할 정도의 실력을 갖고 있다는 'AI(인공지능)'가 있다. 이 AI와 우리나라 고등학교 재학생들에게 같은 유형의 국어 문제를 풀도록 했다. 문제는 이랬다. '알렉스는 남자와 여자 모두에게 공통적으로 쓰이는 애칭이다. 그렇다면 알렉산드라라는 여성의 애칭은 다음 중 어느 것일까?' 다음 4개의 선택지 ①남자 ②여자 ③알렉산드라 ④알렉스 중 정답은 ④알렉스다.

이 기사를 읽은 여러분들은 맞추셨는가? 지난 21일 방송된 < SBS 스페셜 > '난독시대-책 한 번 읽어볼까'편에 등장한 AI는 이 문제를 비롯해 모두 9문제를 풀었다. 그렇다면 우리의 고등학생들은 어땠을까? 이런 유형의 문제를 푼 학생들의 30%가 정답을 비껴갔다. 무엇을 물어보는 문제인지 모르겠다는 학생들부터 애칭이라는 단어가 무슨 뜻이냐고 반문하는 학생들까지.

방송에 나온 선생님은 "요즘 학생들의 경우 교과서의 글을 읽고 요약을 하라고 하면 '그런 요약은 인터넷에 치면 다 나온다'며 하려 들지 않는다"라며 안타까워했다. 인터넷에 치면 중심 내용이 다 나와서일까? 글의 중심 내용을 정리할 수 있는 학생들을 쉽게 찾을 수 없단다.

놀랍게도 실제 중학생, 고등학생들은 자신들이 책을 읽지 않는다고 당당하게 밝힌
다. 방송에 나온 몇몇 학생들은 도서관에 모여 수다를 떨면서도 '책을 왜 읽느냐'며 해맑게 반문한다. 이날 다큐의 문을 연 건 유치원도 아직 다니지 않은 나이의 유아가 엄마 품에 안겨 독서상을 수상하는 장면이었다. 지금은 '책을 읽지 않는다'고 당당하게 밝히는 중고등학생들도 어렸을 적엔 다르지 않았을까? 집 책장에는 엄마가 사 모은 각종 전집류가 쌓여 있을 수도 있고, 엄마 손을 잡고 빈번하게 오갔을지도 모른다. 왜 아이들은 변한 것일까? 왜?

독서를 하면 입시경쟁에서 뒤처진다는 이상한 결론      

방송에 따르면, 우리나라 국민들의 독서 관심도는 어린 시절을 지나면 급격하게 떨어지기 시작한다. 어른이 되면 더한다. 유치원, 초등학교 시절만 해도 읽기가 중요하다고 생각한 부모들은 아이들의 독서 교육에 관심을 가진다. 하지만 중학교만 가도 그 '독서 교육'의 관점이 달라진다. 그저 책을 읽는 것이 아니라 그 책이 교과와 연결되어 가시적 효과를 내길 바란다.

그러다 입시 경쟁에 본격적으로 나서기 시작하면, 강남 국어 학원에 밤새 줄을 선 학부모의 말처럼 '독서'를 하면 뒤처진다는 결론에 이르게 된다. '수학, 영어 문제 하나라도 더 봐야지 어디 책'이라 생각하는 시기가 되는 것이다.

책 읽을 시간을 없게 만드는 입시 교육도 문제지만, 근본적으로는 자발성이 없고 반강제적으로 책읽기를 시작했던 우리나라의 독서 교육이 문제다. '기생충 박사'로 유명한 서민 박사는 초등학교 시절 '많이 읽어라'라고 강요하는 등 독서조차 숙제로 만드는 우리의 교육 환경이 아이들과 책을 멀어지게 만드는 것이라고 했다. 어린 시절 강제적으로 책을 많이 읽으라고 하니, 질려버린다는 것이다.

한국 청소년은 2006년 국가 간 학력 비교 평가(PISA) 읽기 영역에서 1등을 했지만 이후 순위가 급격하게 떨어지고 있다. 그런데 문제는 전체 순위 하락만이 아니다. 하위권 학생들이 크게 증가하고 있다는 점을 더 심각하게 받아들여야 한다. 전체의 32.9%가 하위권에 속한다. 이것이 의미하는 바는 교과서를 읽고 이해를 잘 못하는 비율이 전체의 1/3에 이른다는 것이다.

'2018년 수능 국어 파동' 해프닝은 이로 인해 빚어진 일이라고 볼 수 있다. 일반적으로 수능 1등급 커트라인이 90점을 상회하는데 2018년에는 80점을 겨우 넘어 문제가 됐다. 출제 기관에서는 이 정도는 충분히 풀 수 있을 것이라 여겼지만, 학생들은 '멘붕'에 빠지고 말았다. 방송에 나온 한 국어학원 원장이 겪은 일은 우리나라 중고생들의 읽기 수준이 어느 정도인지 잘 알려주는 사례였다.

"저는 주제를 설명하고 있었습니다. '우리 주인공은 역마살이 있어서 아무리 한 곳에 머무르려고 해도 떠돌아다닐 수밖에 없는 운명이었다', 그러자 한 학생이 '선생님, 역마살이요, 어느 부위예요? 라고 물어봤습니다."

수능 국어는 어휘력, 이해력, 사고력, 독해력이 필요한데 어린 시절부터 부모들이 일일이 떠먹여준 주입식 교육을 받아온 아이들은 이제 국어 학원마저 줄을 서야 하는 처지가 됐다.

디지털 시대의 '난독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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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른들 또한 아이들의 상황과 다르지 않았다. 어찌 보면 더 심각해 보이기까지 했다. 장은수 편집문화실업실 대표는 "성인이 되면 스스로 책을 읽어야 하겠다는 생각을 안 하는 그런 편에 속한다. 목적형 동서가 많다. 승진이라든가 시험이라든가 이럴 때 주로 책을 읽고 목적이 달성되고 나면 더 이상 책 안 읽는다"라며 "4명 중 3명이 책을 읽지 않는 나라인데, OECD 국가에서는 유일할 거다"라고 밝혔다.

세종대왕이 창제하신 과학적인 한글 덕분에 문자 해독률은 높지만 문맥을 이해하는 능력(문해력)은 OECD 평균 이하이며, 그중 22.4%는 초등학생 수준 이하라고 한다.

방송에 나온 대학생인 이수민씨는 이와 관련된 고민이 있다. 책은 당연히 읽기가 힘들고, 기사도 길어지면 이해가 안 된다. 그러다 보니 세 줄 이상 넘어가면 읽지 않는 습관이 들어 버렸다. 당연히 쓰는 것도 힘들다. 간단한 글도 쓰다 보면 걸리고, 하다못해 자기소개서를 쓰다가도 #(샵)버튼에 의존하게 된다고 한다.

대학생 이수민씨는 자기와 같은 또래들은 과거에 책을 읽다가 안 읽은 세대라 정의한다. 초등학교 고학년, 중학교 때부터 책을 안 읽은 세대, 더 이상 책 읽으라는 잔소리를 듣지 않게 되면서 책으로부터 자유로워진 세대. 대신 그들의 손에는 스마트폰이 쥐어졌다.

한때 '독서광'이었다는 김귀희씨. 아이 둘의 엄마가 된 그는 아이들과 함께 책을 읽으려고 하지만, 좀처럼 책에 집중하기가 힘들다. 귀희씨는 그 이유를 알기 위해 시선이 머무르는 시점이나 시간을 통해 읽는 방식을 검사하는 아이 트래킹에 참여했다. 그 결과 한때 책을 즐겨 읽었다던 김귀희씨는 어느덧 그가 즐겨보는 스마트폰 보듯 책을 읽고 있었다. 그는 문장을 따라 꼼꼼하게 보지 않고 Z자형, F자형으로 건너뛰며 전형적인 디지털 읽기 방식으로 책을 읽고 있었다. 그러다 보니 책의 내용을 깊게 이해살 수 없으니 당연히 책에 집중할 수 없는 것이다.

물론 진화적인 측면에서 볼 때 인류와 독서는 아직 친해지기 어려운 관계이긴 하다. 제작진과 만난 장대익 서울대학교 자유전공학부 교수는 "사람들이 독서를 힘들어 하는 것은 독서가 우리의 진화된 특성이 아니기 때문이다. 인류가 진화한 건 20만 년 됐고, 문자가 6천년 전쯤에 나온 거니, 문자를 읽고 해독하고 그것을 전달하는 것 자체는 매우 힘든 일이다"라고 말했다. 늘 주면을 살펴야 하는 산만한 DNA를 가진 인간들에게 책읽기 자체가 쉽지 않은 미션이란 이야기다.

<책은 도끼다>의 저자 박웅현씨는 "우리 삶에 도움을 줄만한 한 영혼이 우리에게 들려주고픈 말을 정리해놓은 것"이라고 책을 정의한다. 읽는 행위 자체가 중요한 게 아니라, 그것을 통해 내 속에서 어떤 변화를 끌어내느냐가 중요하다는 것이다. 바로 그 '책을 통해 얻어지는 공감', 그것이 깊은 독서의 첫 번째 과제다.

책을 읽는 순간 우리의 뇌는 변화한다. 전두엽이 활성화되며 사고력, 창의력, 기억력, 감정 조절 능력이 깊어진다. 이를 통해 쌓이는 배경 지식, 많이 읽을수록 더 많은 배경 지식이 쌓이고, 이는 다음 독서의 기반이 된다. 그리고 그 배경 지식과 함께 뇌의 회로는 보다 정교해지고 복잡해지며 견고해진다.

책과 멀어진 사람들, 어떻게 하면 다시 친해질 수 있을까?

예전에는 나이가 들면 머리가 굳는다고 했다. 하지만 이제 그렇게 말하는 뇌과학자들은 없다. 하다못해 저글링만 해도 뇌의 회로는 변화한다. 노인이 되서 굳는 게 아니라, 안 써서 굳는 것이다. 뇌를 활성화시키는 가장 좋은 방법, 그건 두말할 필요도 없이 '독서'다.

물론 이견도 있다. 책을 사지 않을 뿐, 책을 읽지 않는 건 아니라는 주장이다. 스마트폰으로 볼 수 있는 레이아웃에 맞춰 디지털 세대의 작가로 최근 각광받는 문화류씨는 자신들의 독자의 경우 "한 달에 7,8권의 웹 소설을 소비한다"며 "종이로 된 책을 안 살 뿐 자신들의 세대는 웹 소설 등으로 다른 '독서'의 세계를 열고 있다"고 반박하기도 한다.

미국 UCLA 난독연구센터장인 매리언 울프 교수는 "5살에서 10살 시절에 책읽기에 재미를 붙이고, 11살에서 15살 무렵 책과 디지털의 세계를 접목해 나가는 것이 가장 이상적인 방식"이라 권유한다. 하지만 전반적으로 '독서'가 낯설어지는 시대, 과연 어떻게 다시 책과 친해질 수 있을까?

박웅현씨는 누군가와 친구가 되려면 시간이 걸리듯 책과 친해지기 위해 시간을 투자하라고 권유한다. 일 년에 몇 권을 읽어치우려 하지 말고 한 권이라도 꼭꼭 씹어 먹듯이 읽으라고 권한다. 기생충 박사 서민의 주장은 더욱 파격적이다. 어린 시절 반강제적인 독서 교육으로 책을 멀리하게 되었으니, 차라리 어릴 적에 책을 읽는 것을 '규제'하여 읽고픈 욕망을 극대화시켜야 된다는 것이다.

홍천고등학교에 분 독서 바람, 그 시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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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승훈 교사는 책을 읽으며 아이들의 눈빛이 달라진다고 했다. "교과서를 보거나 EBS 문제집을 풀면서 고단하던 눈빛이 책을 읽고 거기서 재미를 느끼게 되면 변한다"며 "EBS 문제집을 적당히 보고 시간을 나눠 책도 좀 읽는 게 수능 성적이 향상되는 지름길"이라는 팁을 제시한다.

실제 박성경 학생의 경우, "처음엔 공부 시간을 빼서 책을 읽는 데 부정적이었지만 3개월 정도 꾹 참고 책을 읽다보니 문제 푸는 시간이 늘어났다"고 자신의 성공 사례를 밝혔다.

단, 손 교사는 "서울대 권장 도서목록 이런 건 피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자신이 좋아할만한 책을 골라야 한다는 것이다. 독서를 한다면 대번에 50권을 사들이는 것도 피해야 할 일 중 하나란다. 일주일에 두 권씩 사 들이면 어느 틈에 그 책들을 읽고 있는 아이들을 발견하게 될 것이라는 한다. 같이 읽는 것도 한 방법이다. 보령의 '책읽는 마을', 대전의 '백북스' 등 이미 전국에 여러 독서 모임들이 활동 중이다.

홍천고등학교는 학생들의 독해력을 향상시켜주기 위해 독서 동아리를 장려한다. 처음엔 '친구랑 함께 책을 읽고 노는 시간'으로 시작했지만, 자신이 주체적으로 무언가를 할 수 있는 유일한 시간이라는 입소문이 퍼졌다.

어느덧 전교생의 70%가 참여하는 83개의 독서 동아리가 활동 중이다. 심지어 고3이 된 아이들도 여전히 주말 오후에 함께 책에 대한 토론을 한다. 동아리의 학생은 말한다. "책을 싫어하는 이는 없다. 단지 좋아하는 책을 만나지 못했을 뿐"이라고.
덧붙이는 글 이 기사는 이정희 시민기자의 개인 블로그(http://5252-jh.tistory.com)와 <미디어스>에도 실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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