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보희와 녹양> 포스터.

영화 <보희와 녹양> 포스터.ⓒ KT&G상상마당

 
소심하고 예민한 소년 보희(안지호 분)와 대범하고 씩씩한 소녀 녹양(김주아 분)은 중학생 1학년 동갑내기 '베프'다. 그들은 같은 산부인과에서 한날한시에 태어나기도 했는데, 보희는 아빠 없고 녹양은 엄마 없이 자랐다. 두 분 다 그들이 어렸을 때 돌아가신 걸로 안다. 한데 보희가 엄마한테 남친이 생긴 듯한 모습을 보고는 아빠가 죽은 게 아닐 수 있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그러곤 녹양과 함께 아빠를 찾아나선다. 녹양은 그 여정을 카메라에 담는다. 

그들은 보희의 생물학적 아빠를 찾는 도중 여러 사람들을 만난다. 보희 사촌 누나와 그녀의 남자친구, 아빠의 친구와 지인들, 그리고 보희와 녹양을 놀려대는 학교 급우들도 있다. 특히 친해지는 이가 있으니 보희 사촌 누나의 남자친구 성욱(서현우 분)이다. 그는 주말에만 바텐더로 일하는 만큼 평일에 시간이 많은 것도 작용을 하겠지만, 어른인 그보다 훨씬 똑똑하고 성숙해 보이는 소년소녀 보희 녹양과 잘 맞는 것 같다. 

한편, 녹양은 카메라를 들고 보희의 여정을 다큐멘터리로 찍으려 하는데 사람들이 묻는다. "그걸 해서 뭐해?" 녹양은 답한다. "꼭 뭘 해야 돼요?" 그러는 보희가 아빠를 찾으려고 다양한 사람들과 만날 때마다 그들이 묻는다. "아빠는 왜 찾아? 찾어서 뭐해?" 보희는 선뜻 답하지 못한다. "그냥..." 보희와 녹양은 보희 아빠를 찾을 수 있을까? 그 여정의 끝에는 무엇이 있을까?

소년 보희의 생물학적 아빠 찾기
 
 생물학적 아빠 찾기의 외형. 영화 <보희와 녹양>의 한 장면.

생물학적 아빠 찾기의 외형. 영화 <보희와 녹양>의 한 장면.ⓒ KT&G상상마당

 
영화 <보희와 녹양>은 한국영화의 미래로 평가받는 '한국영화아카데미' 장편과정 졸업 작품이다. 그동안 <파수꾼> <소셜포비아> <성실한 나라의 앨리스> <수성못> 등의 대표작을 내놓은 바 있다. 단편영화만 찍다가 이 작품으로 장편에 데뷔한 안주영 감독의 풋풋하지만 일면 예리한 감성이 생생히 살아 있다. 어느 모로 보나 다음을 기대하지 않을 수 없다. 

영화의 주요 스토리 라인은 주지했다시피 소년 보희의 생물학적 아빠 찾기다. 찾아서 뭘 할 건지는 모르지만 그냥 찾고 싶고 찾아야겠다는 마음이 든다. 녹양이 그 여정에 함께하며 카메라로 옮겨 다큐멘터리를 제작하려는 것도 왜 하는 건지는 모르지만 그냥 하고 싶고 해야겠다는 마음의 발로이다. 그들의 '찾기'는, 주가 목적에서 과정으로 옮겨가는 훌륭한 '성장'에의 모습과 맞닿아 있다. 

사실 우리는 이런 류의 이야기를 많이 봐왔다. 불과 얼마 전에 개봉한 <히치하이커>도 비슷한 외형을 띄고 있고 범위를 넓히면 미국의 <에브리바디 올라잇>이나 대만의 <나의 EX>도 있다. 이들 작품 모두 평면적 외형 대신 나름의 입체적 소구점을 중심으로 이야기가 진행되는데, <보희와 녹양>도 그러하다. 범상치 않은 짜임새와 매력 있는 캐릭터 연기가 훌륭한 앙상블을 맺어 영화를 보는 내내 시선을 끈다. 

뜻하지 않게 찾게 되는 이들
 
 아빠 찾기 여정에서 뜻하지 않게 찾게 되는 이들. 영화 <보희와 녹양> 포스터.

아빠 찾기 여정에서 뜻하지 않게 찾게 되는 이들. 영화 <보희와 녹양> 포스터.ⓒ ?KT&G상상마당

 
보희와 녹양은 보희의 아빠를 찾는 과정에서 뜻하지 않게 다른 이들을 찾게 된다. 그들이야말로 이 영화가 말하고자 하는 성장의 핵심인데, 다름 아닌 보희 자신과 녹양이다. 보희는 '남자'답지 않게 여리고 예민하거니와 이름도 그러하다. 그런 자신을 싫어하기 마련이라 이름도 바꾸고 싶고 '여자'답지 않게 씩씩하고 대범한 녹양이 부러울 뿐이다. 녹양처럼 되고 싶어 한다. 

아빠를 찾아가는 여정에서 보희는 이런 사람 저런 사람의 사연과 조언을 듣는다. 아빠를 찾는 이유가 무엇이냐고. 그러곤 깨닫는다. 생물학적 아빠의 부재(不在)에의 이유가 아니고, 본인이 존재론적으로 부재(不在)한 삶을 살고 있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서 그런 게 아니냐고. 즉 보희는 다른 누가 아닌 '보희'로서의 자신을 찾아가는 여정을 떠났던 것이다. 

그 여정에 함께하는 녹양은 그에게 당연한 존재이다. 같은 산부인과에서 한낱한시에 태어난 쌍둥이 같은 사이로, 반쪽 짜리 가족의 빈 자리를 채워주고 놀림이나 받는 약한 존재의 버팀목이 되어주는 동반자 말이다. 하지만, 보희가 그걸 알 리는 없다. 보희가 녹양을 그런 식으로 생각할 리는 없는 것이다. 아직 그런 단계의 성장을 경험하지 못한 보희로서는 녹양이 그저 '당연'한 존재일 뿐이다. 

그런 녹양를 포함 엄마도 새롭게 보게 되는 보희다. 아마도 그건 보희가 보희 자신을 제대로 재정립하게 되면서부터일, 녹양을 당연하지 않은 존재로 보게 되고 가족이자 동반자로서 그리고 일방 아닌 쌍방의 버팀목이 되고자 한 것이다. 한편, 이 여정의 시작이 된 보희 엄마의 남친 사건(?)도 이해하는 시선으로 보는 보희, 이제 더 이상 아이가 아니다. 어른이 다 되었다. 

결핍, 성장, 전복
 
 결핍, 성장, 전복 등의 메시지를 전한다. 영화 <보희와 녹양> 포스터.

결핍, 성장, 전복 등의 메시지를 전한다. 영화 <보희와 녹양> 포스터.ⓒ KT&G상상마당

 
영화가 보희의 성장만을 그리는 건 아니다. 모든 캐릭터들이 결핍된 존재이기에 어떤 식으로든 성장을 경험한다. 그런 면에서 한없이 착한 영화이다. 보희는 아빠가 부재하고 녹양은 엄마가 부재하기에 자연스레 보희의 엄마와 녹양의 아빠 또한 남편과 아내가 부재할 것이다. 보희와 녹양을 놀리는 반 '친구' 승현은 진정한 친구가 부재하고 보희 사촌누나의 남자친구 성욱은 고아로 부모님이 부재하다. 

<보희와 녹양>은 각종 부재로 인한 결핍을 잘못과 틀림이 아닌 용인과 다름의 시선으로 바라보고자 한다. 심지어 극 중 악역이라면 악역이랄 수 있는 승현에게조차 진정한 친구가 없어서 그러하다는 식의 해석을 할 여지를 남겨두는 것이다. 누구나 결핍을 안고 살아가는 현대인의 보편적 단면을 꽤나 촘촘하게 보여주고 있다 하겠다. 

그런 한편 영화 자체가 보편의 전복을 시도한다. 의외로 당연한듯 자연스럽게 보여주지 않는다. 주지했다시피, '남자' 보희와 '여자' 녹양의 뒤바뀐 듯한 모습에서 기존에 보편적으로 갖고 있는 성별에 대한 고정관념을 전복하려 한다. 그리고, '아이' 보희 녹양과 '어른' 성욱의 뒤바뀐 듯한 모습에서 기존에 보편적으로 갖고 있는 성년·미성년에 대한 고정관념을 전복하려 한다. 

보편적 고정관념의 전복에 성공한 듯 보인다. 그 방식이 꽤나 직설·직접적인데 분위기가 유쾌·통쾌하며 고개가 끄덕여지게 하는 결과를 도출했다. 모든 캐릭터들에 나름의 상징이 있고 그들이 만나 겪는 소소한 사건들과 만나 이루는 앙상블에 이유가 있기 때문일 것이다. 영화를 곱씹을수록 2019년의 발견이라 할 만하다. 이런 영화라면 언제나 환영이다. 
덧붙이는 글 이 기사는 singenv.tistory.com에도 실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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