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vN 수목드라마 <검색어를 입력하세요 WWW>

tvN 수목드라마 <검색어를 입력하세요 WWW>ⓒ tvN

 
요즘 어떤 드라마가 재밌나요? 누가 그렇게 묻는다면 망설임없이 <검색어를 입력하세요 WWW>(아래 <검블유>)다. 한동안 드라마에 흥미를 붙이지 못하고 방황하던 나는 첫회를 보자마자 "바로 이거거든!"하면서 홀딱 빠져 버렸다.

국내 굴지의 IT포털 업계에 저렇게 많은 여성 임원이 있다는 건, 다소 과장되었을지 몰라도 캐릭터나 이야기 전개는 꽤 매력적이다. 특히 임수정이 맡은 배타미라는 역할은 여성들의 워너비 캐릭터다. 상사 앞에서도 하고 싶은 말 쏟아내는 통쾌함과 어떤 사건이 벌어져도 우왕좌왕하지 않고 핵심을 파악하는 통찰력, 회사에서 잘리자마자 바로 스카웃되는 능력, 그리고 20대의 직장 후배를 챙기는 바람직한 선배미까지, 두루두루 멋지다.

배우 임수정이 대본을 읽고 나서, 여태까지 없었던 캐릭터여서 선택했다는 말이 이해가 간다. 그동안 '일잘러' 여성들의 이야기가 없었던 것은 아니지만, 여러 면에서 진화된 캐릭터이기 때문이다.

'우리나라 땅에 두 사람도 없을 국보급 순정파'라니...
 
 2004년 방송된 KBS 2TV 드라마 <미안하다 사랑한다>

2004년 방송된 KBS 2TV 드라마 <미안하다 사랑한다>ⓒ KBS


'배타미' 캐릭터를 임수정의 대표작이라 할 수 있는 <미안하다 사랑한다>(2004)와 비교해 보면, 그 차이가 확연히 느껴진다.

'우리나라 땅에 두 사람도 없을 국보급 순정파. 사랑이 뭔지를 제대로 안다.' <미안하다 사랑한다>에서 임수정이 맡은 송은채에 대한 소개말이다. '괴팍하고 거칠고, 모르는 욕이 없다. 한번 돌면 끝장을 봐야 직성이 풀리는 다혈질이다. 싸움도 곧 잘한다.' 그의 상대역이었던 소지섭(차무혁) 캐릭터다. 순정파 여성과 터프한 남성의 비극적 사랑이야기인 <미안하다 사랑한다>는 2004년 방영될 때 '미사 폐인'까지 양산하며 시청률 20%를 넘는 인기를 끌었다.

그러나 이 드라마에서 송은채는 여성 캐릭터로서 그다지 매력적이지 못했다. '순정'이라는 이미지를 업고 눈물샘을 자아내는 역할이었을 뿐, 주체적인 면이 거의 없다. 은채는 당차고 똑똑하지만 툭하면 넘어지는 허술함으로 보호본능을 일으키는 전형적 캐릭터다. 캐릭터 설명에는 사랑이 뭔지를 제대로 안다고 되어 있는데 오히려 맹추 같다.

짝사랑하는 최윤(정경호) 앞에서는 20년이나 머뭇거리며 자신의 마음을 숨겼고, 자신을 사랑하는 무혁 사이에서 갈팡질팡하지 않았던가. 엄마도 있고 인기도 많은 톱가수에게 쓸데없는 모성을 발휘하는 것도 이해불가다. 자신이 진짜 원하는 걸 감추고 뒤에서 우렁각시처럼 도와주는데 하다하다 자신이 사랑하는 남자의 사랑의 메신저 노릇까지 한다. 게다가 겨우 두 살밖에 많지 않은 무혁을 '아저씨'라고 부르다니. 오글거릴 정도로 유아적이다.

최윤에게 장기 기증을 약속한 무혁이 자신의 남은 생애 동안 은채와 같이 있고 싶어 할 때, 오로지 장기 기증을 위해 옆에 있어 주던 은채가 무혁이 시한부임을 알고는 무혁의 곁에서 함께 지낸다. 한마디로 은채는 자신의 욕망은커녕, 다른 사람에게 자신을 맞추고 희생하는 캐릭터다. 무혁이 죽어서도 외로울 거라며 자살까지 한다. 이 정도면 착한 여자 콤플렉스를 넘어선다. 그런데 이게 순정이라고? 순정에 대한 모독이다.

자기 밥그릇 확실하게 챙기는 당찬 여자 배타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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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년의 배타미는 다르다. 일단 자기 밥그릇을 확실하게 챙기는 당찬 여자다. 회사의 잘못을 뒤집어쓰게 되었을 때, 자신이 피할 수 없다는 것을 알게 된 후 확실한 보상을 해달라고 똑부러지게 요구한다. 밥그릇을 챙기는 방법에 조금의 편법은 있으나 불법은 아니다. 보호본능을 자극하며 누군가로부터 보호받는 존재가 아니라 스스로 보호한다.

가장 인상적인 건 '욕망'에 대한 부분이다. 회사의 총알받이로 청문회에 나간 배타미는 자신을 공격하는 국회의원이 과거 청소년 성매매를 했다는 사실을 폭로한다. 그러자 국회의원은 독이 올라서 "난 너 같은 년들이 제일 싫어. 네 욕망에만 눈 멀어서 제 살 길만 강구하는 개 같은 새끼들"이라고 모욕을 주는데, 그녀의 반응은 차분하면서도 도발적이다.

"왜, 그러면 안 돼? 내가 개새끼면 안 돼? 내가 욕망에 눈이 멀면, 왜 안 되는데?"

이런 1.5리터짜리 사이다 발언이라니. 왜 이토록 숨통이 트이나 했더니, 여성의 야망이 금기시된 사회에서 이렇게 여성이 당당하게 자신의 욕망을 드러내고 추구하는 모습을 본 적이 없었다. 짝사랑만 20년이나 한 순정과는 비교불가한 능동태다.
 
배타미의 욕망은 기존 드라마 서사에서 다룬 욕망과도 구별된다. 그동안 우리나라 드라마에서 다룬 여성의 욕망이란 사연이 필요했다. 대개는 착하고 순진하게 살다가 어떤 사건을 겪으면서 그동안 공고했던 평화로운 울타리가 깨짐으로써 복수와 욕망의 화신이 되는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복수나 욕망의 화신이 되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하는 것은 남성일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복수나 욕망에 불을 지피는 것도 남성, 왜곡된 욕망에서 벗어나 구원을 해주는 것도 남성(왕자님)이었다. 그런데 배타미는 다르다. 그런 사연이 없다. 욕망의 주체가 자기 자신이다. 그렇다고 해서 불법적인 욕망도 아니다. 이기기 위해 욕망하고, 누군가 그 욕망에 정당한 브레이크를 걸면 신중하게 고민하며 궤도를 수정하기도 한다. 일도 자리도 사랑도 스스로 추구하고 선택한다. 자기 욕망에 발이 걸려 넘어져도 주체적으로 일어선다. 남성 때문에 망가지지도 않고 남성을 탈출구로 삼지 않아도 혼자 해결하고 행복할 수 있는 존재다.
 
그래서 문제를 해결하는 방식이 다르다. 최근 방영분에서 실시간 검색어에 본인의 이름이 오르자 두려움을 느낀 타미가 검색어 조작의 배후를 알기 위해 조작업체 직원을 잡는 장면이 나왔다. 쫓아가다가 잡힌 조작업체 사장은 "처자식이 있어요"라며 선처를 호소한다. 그때 배타미는 눈 하나 깜짝 안 하고 말한다. "어쩌라고."

배후가 송가경(전혜진 분)의 남편 오진우(지승현 분)라는 사실을 알고 찾아갔지만, 그는 사과 한 마디 없이 "촌스럽게 굴지 말라"며 뻔뻔하게 돈이 든 쇼핑백을 내민다. 타미는 사과는 진실할 리 없지만 돈은 진실하다며 당당하게 돈을 받고 나왔다. 그리고 그 길로 바로 진우의 차를 박살낸다. 놀라서 달려온 진우에게 타미는 자신이 당한 그대로 돌려주며 묵직한 한방을 날린다.

"이걸로 새 차 사세요. 받아요, 촌스럽게 굴지 말고. 사과는 밥 안 먹여주니까 생략하고 나도 보상은 했습니다. 아주 크게."
 
한 여성의 파괴된 삶에 대해선 왜 인색하고 잔인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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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사회는 피해자에게 가혹한 부분이 있다. 피해자다움을 요구하면서 피해자에게 말도 안 되는 태도와 관용을 요구하기도 한다. 학교 폭력으로 친구를 죽인 아이들 재판에서 '앞길이 창창한 아이들인데'하면서 선처를 요구하거나, "사람 죽인 것도 아닌데 별것 아닌 일로 앞길 막혔다"며 적반하장인 경우도 있다. 성폭력으로 한 여자의 삶을 망가뜨려 놓고도 가해자가 한 집안의 가장이라는 이유로 처벌에 대한 부담을 덜어주는 경우가 허다하다. 거기에 대한 답으로 "어쩌라고"만큼 확실한 것이 있을까?

근데 왜 앞길 창창했던 한 아이의 짓밟힌 생명과 한 여성의 파괴된 삶에 대해서는 그렇게 인색하고 잔인할까. 성폭력 피해자가 보상금을 받으면 꽃뱀 취급을 당하기도 한다. 여성들은 원하는 건 제대로 된 사과라면서 돈을 거부하지만, 왜 그래야 할까. 신체적 정신적 피해는 얼마이며, 망가진 일상을 돈으로 보상받는 게 왜 진정성을 의심받아야 할 일인가. 제 밥 그릇을 꽉 쥐고 잘 챙기면서도 불의를 참지 못하고 되갚아주며 "내가 이렇게 하면 왜 안 되는 건데?"라고 일갈하는 배타미 캐릭터에 박수를 보내는 이유다.

마지막으로 매우 중요한 사족이 남았다. <미안하다 사랑한다>에서 송은채의 상대는 두 살 연상 '아저씨' 무혁(소지섭)이었는데, 이번에는 10살 연하 박모건(장기용)이다. 2004년의 송은채는 무혁에게 억지로 끌려서 차에 탔고, 2019년 배타미는 박모건을 차에 태운다. 무혁은 '터프함'을 가장한 일방적이고 강제적인 무대포 방법으로 여성에게 다가갔다면, 모건은 현명하고 신중하며 상대를 존중할 줄 안다.

단적인 예로, 무혁은 은채를 강제로 차에 태워서 "밥 먹을래, 나랑 살래! 밥 먹을래, 나랑 같이 죽을래!"하며 폭력적인 방법으로 호감과 사랑을 표현했지만, 모건은 타미가 그만 다가오라고 손짓을 하자 멈추고 발길을 돌린다. 여성의 '스톱' 신호를 듣는 남성이다. 바빠서 연락을 못한 타미에게 투정을 부리다 "이런 거 싫으면 말해요. 안 할게요"하며 여성의 상황과 감정을 배려한다. 이 또한 남성 캐릭터의 바람직한 진화다.

자기의 최고 히트작 속 착한 여자 이데올로기를 부수고, 스스로 강하고 당당하게 욕망하고 제대로 경쟁하는 여자 캐릭터를 만들어내고 있는 임수정. 사실 임수정의 배타미 외에도 이다희(차현), 전혜진(가경) 등 멋진 언니들이 많이 나온다. 이들은 서로 상처를 주고받으며 미워하면서도, 서로를 자극하고 어느새 연대하며 성장한다. 사회 구조를 굳이 이야기하지 않아도 이런 모습들이 자연스러워서 볼 때마다 짜릿하다. 여적여의 프레임을 깨고, 서로 견제하며 연대하는 <검블유> 속 여성들과 현실 속 여성들의 멋진 승부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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