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BS 드라마 <녹두꽃> 포스터

SBS 드라마 <녹두꽃> 포스터ⓒ SBS


한국 역사에서 일반 민중이 6개월간 독자적 지배권을 행사한 적이 있다. 바로 1894년 동학혁명 때였다. 동학군이 호남 곡창지대 중심지인 전주성을 점령하자, 이를 진압하겠다며 청나라군과 일본군이 조선에 상륙했다. 그러자 동학군은 외국군 철수의 명분을 만들고자 정부군과 화친을 맺고 전주성을 비워줬다.
 
바로 이 전주성을 내주는 조건으로 동학군이 얻어낸 것이 한국 역사에서 보기 드문 일이었다. 민중을 대표하는 농민군이 전라도를 독자적으로 지배할 수 있게 된 것이다. 이 정도의 넓은 지역이 무려 6개월씩이나 민중의 독자적 지배에 맡겨진 적은 그 이전에 없었다.
 
그런 의미에서, 1894년 하반기 6개월 동안 전라도는 정치적 의미의 신세계였다. 동학혁명을 다루는 SBS 드라마 <녹두꽃>이 현재 방영하는 부분도 바로 이 시점에 대한 것이다.

전례 없었던, 전라도에서만 가능했던 '정치 개혁'
  
 SBS 드라마 <녹두꽃>의 한 장면

SBS 드라마 <녹두꽃>의 한 장면ⓒ SBS

 
동학혁명으로부터 12년 전인 1882년, 한양 주민들과 하급 군인들이 반란을 일으켜 고종 임금의 권한이 약 1개월간 정지됐다. 고종의 비밀 요청을 받은 청나라군이 조선에 상륙해 왕십리(직업군인 거주지)에 사는 민란 주역들을 진압하기 전까지, 조선 정치에서는 새로운 기운이 감돌았다. 그런 의미에서, 그 한 달간 한양은 신세계였다.
 
동학혁명 때는 임오군란 때보다 훨씬 긴 6개월 동안, 훨씬 넓은 전라도를 범위로 신세계가 펼쳐졌다. 거기다가 임오군란 때와 달리 동학혁명 때는 신세계를 보장하는 정치적 시스템까지 공식적으로 가동됐다.
 
동학 때는 전라도 53개 군·현에서 폐정개혁이라는 정치 혁신이 단행되고 집강소라는 민중정치위원회 혹은 인민정치위원회가 설치됐다. 집강소가 시행한 폐정개혁을 살펴보면, 지금 감각으로 봐도 상당히 혁명적인 일들이었음을 느낄 수 있다.
 
폐정개혁안 제12조는 '토지를 평균 분작(分作)하게 하라'는 조항이다. 여기서 말하는 토지는 농업생산에 쓰이는 땅이다. 농업생산에 소요되는 토지를 평등하게 나눠주라는 것은, 현대적 감각으로 풀이하면 회사 지분을 노동자들에게 평등 분배하거나 상업용 빌딩을 상인들에게 골고루 나눠주라는 의미와 다를 바 없었다.
 
제5조에서는 '노비 문서를 불태워버리라'고 했다. 관청에 속한 공노비는 정조의 아들인 순조가 왕일 때인 1801년부터 점차적으로 폐지됐다. 여기서 말하는 노비는 개인에게 속한 사노비를 주로 지칭한다. 사노비 대부분은 지주에게 종속된 소작농 생활을 하고 있었다. 그들을 법적으로 얽매는 문서를 불태워버리라고 했다. 그냥 없애라고 하지 않고 불태워버리라고 했다. 이 말 한 마디만으로도 혁명적 분위기를 쉽게 느낄 수 있을 것이다.
 
주인 땅을 경작하던 노비가 면천을 받으면, 그 노비는 일터를 잃을 수밖에 없었다. 대책 없는 면천은 실직을 의미했다. 만약 제12조가 없는 상태에서 제5조가 규정됐다면, 전라도 농민들이 동학군 지도부를 욕하지 않을 수 없었을 것이다. '대책 없는 진보'라느니 '세상물정 모르는 진보'라느니 하는 말들을 했을 것이다.
 
하지만, 제12조를 통해 소작농들에게 토지를 분배한 상태에서 제5조를 통해 농민들의 신분적 억압을 없애주었다. 토지를 지급받은 농민들이 노비 신분 때문에 지주에게 얽매이지 않도록 하기 위한 배려였다.
  
 SBS 드라마 <녹두꽃>의 한 장면

SBS 드라마 <녹두꽃>의 한 장면ⓒ SBS

 
제12조를 통해 소작농들에게 토지를 나눠주는 동시에 제5조를 통해 노비 문서를 불태웠으니, 소작농 생활을 하던 사노비들은 토지도 얻고 노비 신분도 해방되는 이중의 기쁨을 맛볼 수 있게 됐다. 전라도 일대에서 '쓰나미' 이상의 대변화가 노비-지주 관계에서 발생했던 것이다.
 
제6조에서는 백정을 비롯한 천민들에 대한 대우를 개선하라고 규정했다. 여기서 말하는 천민은 법적으로 남한테 예속된 노비를 지칭하는 것이 아니다. 법적 신분은 양인(자유인)이지만 백정 같은 힘든 일에 종사하는 사람에 대한 차별 대우를 없애라는 의미였다. 힘든 일을 한다는 이유로 차별받지 않게 하려는 배려였다.
 
제3조 및 제4조처럼 횡포한 부자들과 불량한 선비 및 양반들을 징계하라는 조항도 있었다. 약자들에게 갑질을 해대는 상류층과 지도층 인사들을 엄징하라는 규정이었다.
 
지금 대한민국에서는 재벌과 특권층이 경제 권력을 여전히 쥐고 있는 상태에서, 이들의 갑질에 대한 비판이 계속되고 있다. 반면, 1894년 전라도에서는 농민군이 경제 권력을 빼앗은 상태에서, 지주와 특권층의 갑질에 대한 응징이 이루어졌다. 당연히, 1894년의 '갑'들이 훨씬 더 두려움을 느낄 수밖에 없었다.
 
이 정도면, 당시 전라도 백성들이 '세상이 개벽됐다'고 느낄 만했을 것이다. 한두 동네도 아니고 53개 군현에서 그랬으니, 신천지나 해방구 같은 단어로 그 6개월간의 호남 땅을 묘사해도 무방할 것이다.
 
양반 지배체제가 통하지 않는 새로운 세상

이런 신천지를 주도한 기관이 각 군현의 집강소다. 집강(執綱)은 기강을 잡는다는 의미다. 집강소에는 책임자인 집강 밑에 서기·성찰(省察)·집사·동몽(童蒙) 등의 임원이 있었다. 이런 집강소가 기존의 관청과 공존하는 이원적 지배체제가 각 군현에서 나타났다.
 
이원 체제라지만, 실상은 집강소가 행정을 주도하는 양상이 나타났다. 기존의 사또들은 허수아비에 불과했다. 사또 밑의 아전들도 동학에 입교해야만 행정사무에 참여할 수 있었다. 그래서 실제로는 집강소가 각 군현의 행정을 전담한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SBS 드라마 <녹두꽃>의 한 장면

SBS 드라마 <녹두꽃>의 한 장면ⓒ SBS

 
그런데 애초에 동학군과 정부군이 합의한 것은 군·현 단위가 아닌 면·리 단위의 집강소였다. 당시의 정치학자 황현이 쓴 <오하기문>에 따르면, 양쪽이 합의한 것은 '낮은 단위의 집강소 체제'였다.
 
<오하기문>에 의하면, 고종의 전권 위임을 받은 김학진 전라관찰사는 동학군과 합의한 뒤 "너희가 거주하는 면·리에 각각 집강을 설치하고, 억울함이 있으면 해당 집강을 통해 감영에 알리고 결정을 기다리라"는 성명을 발표했다. 면·리 단위의 집강소들이 도(道) 단위의 기존 감영으로부터 지휘를 받을 것을 요구했던 것이다.
 
하지만, 일선 농민군 부대는 지도부와 정부군의 합의를 어느 정도는 무시해버렸다. 낮은 단위의 집강소가 아니라 군·현 단위의 집강소를 설치해버렸다. 보다 광역의 힘을 갖고자 하는 일선 농민군의 열망이 반영된 결과였다.
 
이들은 무장해제에 관한 정부군의 요구도 무시했다. 그냥 무기를 든 채로 각자의 군·현으로 돌아가 현지 행정을 장악하고 집강소를 운영했다. 그런 상태로 혁명적인 폐정개혁을 자기 고향에서 실시했다. 1894년 하반기 전라도에서는 기존의 지주 지배체제, 양반 지배체제가 통하지 않는 완전히 새로운 세상이 열리고 있었던 것이다.
  
 SBS 드라마 <녹두꽃>의 한 장면

SBS 드라마 <녹두꽃>의 한 장면ⓒ SBS

 
물론 부작용도 있었다. 갑자기 손에 들어온 엄청난 권력을 제대로 사용하지 못해 물의를 일으키는 농민군도 있었다. <녹두꽃> 최근 방영분에서는, 고부군 동학군들이 지역 유지인 황석주 진사(최원영 분)의 여동생인 황명심(박규영 분)과 강제 결혼하려다 황명심의 전 약혼자인 백이현(윤시윤 분)한테 총알을 맞고 쓰러지는 사건이 있었다.
 
<오하기문>에 따르면, 동학군 중에는 평소 마음에 두었던 양반집 처녀와의 결혼을 강제로 시도하는 이들이 있었다. 어떤 동학군은 '이 집 딸은 내 것'이라는 의미로 대문에 수건을 걸어두기도 했다. 그래서 일부 양반들은 동학군 몰래 딸의 혼사를 추진하기도 했다.
 
이러저러한 부작용들이 발생했지만, 그 6개월간 동학농민군은 계급제도의 부조리를 해결하기 위한 혁명적 조치들을 과감히 실행했다. 지주나 양반이 아닌 농민과 사회적 약자들을 위한 혁신을 용감하게 시행했다. 일본군에 의해 최종 진압될 때까지, 일종의 농민 공화국, 동학 공화국에 의해 우리 역사상 최초의 민중적 정치실험이 진행됐던 것이다.
 
전봉준과 동학군이 시도했던 그같은 혁명적 조치들이 우리 역사 교과서에는 '동학군이 폐정개혁안을 시행했다'는 짧은 몇 마디로 간단히 서술되고 있다. 역사상 최초로 민중 중심의 정치실험이 벌어졌다는 엄청난 혁명적 의미는 죄다 숨겨진 채, 일시적인 해프닝 정도가 벌어진양 기술되고 있다. 민중이 보유한 혁명적 역량이 우리 역사 교과서에서 감추어져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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