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사탄의 인형> 포스터

영화 <사탄의 인형> 포스터ⓒ (주)더쿱


홀로 아들을 키우는 캐런(오브리 플라자 분)은 앤디(가브리엘 베이트먼 분)의 생일을 맞아 갖고 싶어 하던 AI 인형 버디를 선물한다. 새로운 곳으로 이사하여 모든 것이 낯설고 청각장애 때문에 보청기를 착용해 친구 사귀기를 어려워하던 앤디는 자신을 '처키(마크 해밀 목소리)'라고 소개하는 AI 인형과 금세 친해진다.

앤디가 주변의 이웃과 친구들을 사귀기 시작하자 유일한 친구로 남고 싶었던 처키는 점차 사악한 본성을 드러낸다. 처키는 예기치 못한 잔인한 행동을 일삼다가 급기야 살인마저 저지른다. 주위에서 벌어진 끔찍한 살인 사건이 처키의 짓이었다는 것을 알게 된 앤디는 두려움을 느낀다.

<사탄의 인형>은 < 13일의 금요일 >, <나이트메어>, <할로윈>과 함께 8090시대를 대표하는 호러 프랜차이즈다. 1988년에 개봉한 <사탄의 인형>은 생일 선물로 받은 인형이 악마 같은 본성을 드러낸다는 이야기로 익숙한 장난감의 이면에서 비롯되는 공포를 건드렸다. 900만 달러(한화 약 100억 원)로 만든 <사탄의 인형>은 전 세계에서 4400만 달러에 달하는 수익을 올리는 흥행을 거뒀고, 빨간 머리에 멜빵바지, 스트라이프 티를 입은 채로 칼을 든 인형 처키는 단숨에 호러 아이콘으로 등극했다.

이후 시리즈는 <사탄의 인형 2>(1990), <사탄의 인형 3>(1991), <처키의 신부>(1998), <사탄의 씨앗>(2004), <커스 오브 처키>(2013), <컬트 오브 처키>(2017)로 이어졌다. 그러나 편을 거듭할수록 완성도는 처참한 수준으로 떨어지며 관객들에게 실망을 주기도 했다.
 
 영화 <사탄의 인형>의 한 장면

영화 <사탄의 인형>의 한 장면ⓒ (주)더쿱


새로이 선보이는 <사탄의 인형>(2019)은 시리즈를 잇는 속편이 아닌, 리메이크에 해당한다. 앞선 시리즈에서 각본을 쓰고 5~7편에선 연출도 맡았던 돈 만치니는 손을 뗐다. 30여 년간 처키의 목소리를 맡았던 브래드 듀리프도 물러났다.

새로운 처키의 목소리는 <스타워즈> 시리즈의 루크 스카이워커 역으로 유명한 마크 해밀이 소화했다. 각본은 비디오 게임 작가인 타일러 버튼 스미스가 맡았다. 메가폰은 단편 영화 <더 월>(2012)과 <폴라로이드>(2015)로 해외 유수 영화제에서 인정을 받고, 동명의 단편을 확장한 <폴라로이드>(2019)로 장편 데뷔를 한 라스 클리브버그 감독이 잡았다.

<사탄의 인형>은 원작에서 인형 캐릭터 처키, 생일을 맞이한 아들에게 엄마가 인형을 선물로 주는 상황, 우리에게 다정한 존재가 어느 날 갑자기 달라진다는 사실이 주는 공포는 가져왔으나 설정과 전개는 사실상 다른 영화에 가깝다. 프로듀서로 참여한 세스 그레이엄 스미스는 "이미 세계적으로 유명한 오리지널 <사탄의 인형>을 단순히 재현하는 것을 넘어, 오늘날 관객들이 공감할 만한 새로운 시도를 해보고 싶었다"고 설명한다.
 
 영화 <사탄의 인형>의 한 장면

영화 <사탄의 인형>의 한 장면ⓒ (주)더쿱


가장 큰 변화는 처키의 설정이다. 원작에선 살인마의 영혼이 주술의 힘을 빌려 인형으로 들어갔다. 반면에 리메이크된 <사탄의 인형>은 초자연적인 전개가 아닌, AI 설정을 활용한다. 오리지널의 설정을 버리고 디지털 세상에 발맞춘 새로운 이야기인 셈이다.

극 중에서 캐슬란 사의 신제품 인형 '버디'는 인공지능을 갖고 있으며 스마트 가전 기기들을 연결하여 조작할 수 있다. 처키는 상사의 행동에 분노한 베트남 공장의 한 직원이 행동 안전 프로그램, 폭력성 억제 프로그램 등을 제거하며 태어났다. 처키는 학습과 진화를 거쳐 점차 악마로 변한다. 그리고 캐슬란 시스템을 해킹해 사람들의 일상 속에 있는 청소기, TV, 온도조절장치, 드론, 자율 주행 자동차 등의 기기를 이용하여 무차별적인 살인을 벌인다.

영화는 <터미네이터>에서 인간의 명령을 무시하는 인공지능을 연상케 하는 처키를 빌려 디지털 시대의 소비문화를 풍자하고 AI 만능주의를 경계한다. 베트남 직원이 부당 해고를 당하는 도입부엔 노동 시장을 비판하는 목소리가 들린다. 나이 어린 앤디와 친구들이 <텍사스 전기톱 학살2>(1986)를 잔혹한 장면들을 웃으면서 감상하고, 처키가 영상을 통해 살인을 배운다는 묘사에선 호러 영화임에도 불구하고 지나친 폭력성을 우려하는 시각이 엿보인다.
 
 영화 <사탄의 인형>의 한 장면

영화 <사탄의 인형>의 한 장면ⓒ (주)더쿱


처키와 앤디의 관계도 달라졌다. 원작에서 처키는 앤디의 몸을 빼앗아 다시 인간으로 부활하려고 했다. 리메이크한 <사탄의 인형>의 처키는 앤디에게 집착하는 친구로 등장한다. 라스 클리브버그 감독은 "처키는 사람들과 관계를 맺고 그들의 행동 방식을 파악하며 악마로 변한다. 착한 일을 하려고 했지만, 충동적인 행동이 비극을 초래하게 된다"고 부연한다. 빗나간 애정과 버려지는 존재의 슬픔이 처키에게 투영되어 있다.

앤디와 친구들이 처키에게 맞서는 장면엔 미드 <기묘한 이야기>나 <그것>(2017)이 지녔던 1980년대의 향수가 가득하다. <그렘린>(1984), <구니스>(1985) 등 '엠블린 엔터테인먼트'의 정서도 보인다. 가장 영향을 받은 작품은 <이티>(1982)다.

라스 클리브버그 감독은 "<이티>는 <사탄의 인형>을 만드는 데 큰 영감을 주었다"고 고백했을 정도로 영화 곳곳엔 <이티>의 영향이 짙다. <슈퍼맨>(1979)을 거꾸로 접근한 작품이 <브라이트 번>(2019)이라면 <사탄의 인형>은 <이티>의 악몽판일 수도 있다. 엘리엇을 괴롭히는 사람들을 다 죽이는 이티가 앤디의 영원한 친구인 처키이기 때문이다.
 
 영화 <사탄의 인형>의 한 장면

영화 <사탄의 인형>의 한 장면ⓒ (주)더쿱


<사탄의 인형>은 전개는 장르의 관습을 벗어나지 않는다. 제일 아쉬운 점은 처키의 외모다. 원작과는 다른 외형을 가져야 한다는 강박인지, 아니면 현실적인 인형을 만들겠다는 의지인지 알 수 없으나, 극 중 버디 인형의 디자인은 "과연 돈을 주고 사는 사람이 있을까?"란 의문마저 든다. 마크 해밀의 섬뜩한 목소리 연기가 없었다면 처키 자체엔 좋은 점수를 주기 어렵다.

최근 할리우드는 과거 호러 영화를 계속 리부트 또는 리메이크로 내놓는 상황이다. <애나벨>은 인형 호러 영화의 부흥을 일으켰다. <사탄의 인형>은 '다시 만들기'의 홍수와 조악한 인형 호러극의 창궐 속에서 자신만의 작품을 썼다. 블랙 유머와 공포가 적절히 섞인 맛도 괜찮다. <사탄의 인형>은 <서스페리아>(2018)와 더불어 고전 호러의 독창적인 재해석에 성공했다.
댓글1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주기

진실과 정의를 추구하는 오마이뉴스를 후원해주세요!

후원문의 : 010-3270-3828 / 02-733-5505 (내선 0)

오마이뉴스 후원하기

초당 24프레임의 마음으로 영화를 사랑하는 남자

  • 당신이 좋아할 만한 콘텐츠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