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년에 본격적으로 활동을 시작, 2개의 정규 음반을 낸 할시는 비교적 짧은 시간에 자신의 정체성과 음악성을 대중에게 각인시킨 뮤지션이다. 국내에서는 체인스모커스의 'Closer', 방탄소년단의 '작은 것들을 위한 시'에 참여한 가수로 잘 알려져 있다. 올해 1월에는 'Without me'로 빌보드 싱글 차트 1위에 올라 여성 솔로 가수로서도 성공적인 행보를 보여주고 있다.

할시는 음악으로 자신을 표현하는 데 그치지 않고, 사회에 직접 참여해 목소리를 내는 뮤지션이다. 2018년 여성 행진(Women's March)의 연설자로 오른 할시는 여러 사회 문제들을 해결하기 위해서는 함께 힘을 모아야 한다는 메시지를 한 편의 시로 풀어냈다.

할시는 특히 젊은 여성들에게도 영향력 있는 가수로도 알려져 있다. 실제로 작년 여름에 있었던 그의 첫 내한 공연 관객의 90%가 여성이었으며 여성 관객 중 절반 이상이 20대였다. 단순 팝스타와 신데렐라가 되기를 거부하는 할시의 삶 그리고 음악을 3가지 키워드로 알아보자.
 
 2015년 공개된 첫 정규 앨범 < Badlands >는 실제 할시 내면의 혼란과 개인적인 사건을 다룬 곡들로 구성되어 있다.

2015년 공개된 첫 정규 앨범 < Badlands >는 실제 할시 내면의 혼란과 개인적인 사건을 다룬 곡들로 구성되어 있다.ⓒ 유니버설뮤직코리아

 
#1. 디스토피아 탈출기

노토리어스 비아이지와 투팍을 좋아한 흑인 아버지, 너바나와 앨라니스 모리셋을 들었던 백인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난 할시는 그가 추구하는 음악 세계를 마음껏 펼치는 데 힘쓰는 싱어송라이터이다. '애슐리 프랜지파니'라는 본명을 가진 할시는 1994년 미국에서 태어났으며 어린 시절부터 음악에 소질을 보였다. 소셜 미디어에 올린 곡이 계기가 되어 메이저 세계로 데뷔하게 된 그는 뮤지션의 개성과 색깔이 존중되는 것으로 알려진 전자 음악 레이블, 아스트랄베르크스(Astralwerks)에서 음반을 발매하게 된다.

2015년 공개된 첫 정규 앨범 < Badlands >는 실제 할시 내면의 혼란과 개인적인 사건을 다룬 곡들로 구성되어 있다. 그를 지독하게 괴롭힌 양극성 장애와 흑인과 백인 어디에도 속하지 못한 혼혈이라는 사실이 만들어 낸 디스토피아는 음반 속에서 하나의 콘셉트를 이룬다. 자신을 치유하기 위한 할시의 노력이 담긴 이 앨범은 어둡고 불친절한 모습을 갖췄음에도 발매 당시 빌보드 앨범 차트에서 2위를 기록하는 성과를 거뒀다.

스산한 분위기의 'Control'에서는 "누가 통제하고 있지? 내 안에 있는 사람을 견딜 수가 없어"와 같이 통제하기 힘든 자신의 감정 상태를 나타냈다. 할시는 17살에 자살을 시도한 적이 있고 이후 정신병원에 입원했다고 한다. 'Gasoline'은 "너도 나처럼 제 정신이 아니야? 고통 속에 있어?"라며 자신을 결함이 많은 자로 여기는 태도가 깃든 곡이다. 마약을 비롯해 무언가로부터 자신을 빼앗긴 이들을 위해 노래하는 'Colors' 등에서는 청소년기 할시의 마음이 그대로 표출되어 나온다.
 

미국에서 최고의 예술 디자인 학교로 손꼽히는 로드아일랜드 스쿨 오브 디자인에 합격했으나 가난 때문에 갈 수 없었던 그는 결국 집에서 나와 노숙을 해야 하는 상황에 처한다. 그 속에서도 음악의 끈을 놓지 않았고 마침내 할시는 음악으로 감정적 혼란을 극복하는 방법을 깨닫는다. 그는 자신을 치유하는 것에서 더 나아가 2017년 자살 예방 캠페인에 참가, 실제 행동으로도 이어가며 디스토피아 탈출기의 마침표를 스스로 찍었다.
 
 그가 세운 왕국의 주인공은 사랑에 서툰 모든 이들과 성 소수자도 포함된다.

그가 세운 왕국의 주인공은 사랑에 서툰 모든 이들과 성 소수자도 포함된다.ⓒ 유니버설뮤직코리아

 
#2. 더 넓은 왕국으로

발매 직후 빌보드 앨범 차트 1위를 차지한 2집 < Hopeless Fountain Kingdom >은 다크 팝이라 불리던 전작보다 밝은 곡이 많아졌으며 주제 또한 자기 자신에서 할시가 살아오면서 만난 사람들과의 경험으로 대상을 확대했다. 그가 세운 왕국의 주인공은 사랑에 서툰 모든 이들과 성 소수자도 포함된다. 빌보드 싱글 차트 5위에 오르기도 한 'Bad at love'는 실제로 할시가 만났던 여성과 남성의 이야기가 담긴 곡이며 이곳에서 자신이 사랑에 능숙하지 못한 사람이었다는 것을 되돌아본다.

2015년에는 자신의 트위터를 통해 '우리는 모든 여성을 보호하는 페미니즘이 필요하다'는 말을 남겼다. 여기서 모든 여성이란 특정한 여성이 아니라 모든 인종, 성 소수자 등을 포함한 말임을 덧붙였다. 할시는 같은 양성애자인 피프스 하모니의 멤버, 로렌 하우레기(Lauren Jauregui)와 'Strangers'에서 여성의 동성애를 노래하기도 했다. 대중음악에서는 여성의 동성애를 주제로 만든 노래를 찾아보기 힘들다는 점에서 할시가 양성애자로서 목소리를 내는 일에 큰 관심이 있다는 것을 알린 곡이다.
 

미화 없이 느낀 그대로를 표현하자는 할시의 태도가 곡 전반에 깔려있긴 하지만, 표현하는 방식 자체가 대중이 이해하기 힘들거나 접근하기 어려울 정도는 아니다. 잘 들리는 멜로디와 매력적인 보컬로 누구나 그의 곡을 들을 수 있도록 장벽을 낮췄다. 전 남자친구와의 이별을 진솔하게 노래한 'Without me'가 빌보드 싱글 차트 1위를 했다는 것은 할시의 목소리가 대중에게 효과적으로 다가갔다는 증거가 된다.

초기 음악인 'Ghost', 'Control'과 2집의 'Now or never'를 비교해보면 할시가 훨씬 듣기 편안한 음악으로 옮겨왔다는 걸 느낄 수 있다. 하지만 그는 직접 곡을 쓰고 콘셉트를 잡는 싱어송라이터다. 언제든 자신이 원하는 방향으로 핸들을 꺾을 수 있기에 그를 단순 '팝 스타'로 정의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성 평등과 사회 문제에 적극적으로 메시지를 던지는 그의 또 다른 직업은 바로 사회운동가다.

성 평등과 사회 문제에 적극적으로 메시지를 던지는 그의 또 다른 직업은 바로 사회운동가다.ⓒ Nightmare 뮤직비디오

 
#3. 악몽을 선언하다

할시는 올해 5월에 발매한 'Nightmare'에서 편견과 억압에 맞서 스스로 악몽이 되겠다고 선언한다. 성 평등과 사회 문제에 적극적으로 메시지를 던지는 그의 또 다른 직업은 바로 사회운동가다.

작년 빅토리아 시크릿 패션쇼에서 공연 무대를 가진 할시는 특정 조건의 모델만을 런웨이에 세우는 경영진에 비판의 목소리를 낸 적이 있다. 빅토리아 시크릿은 앞서 말한 특정 조건, 즉 키가 크고, 날씬하며, 피부색이 하얀 여성만을 고집해온 것으로 유명하다. 이것을 판타지이자 엔터테인먼트라고 이름 붙인 이들의 마케팅 방식은 오늘날 세대에게 통하지 않았다. 자신의 신체를 있는 그대로 사랑하고 받아들이는 현재의 움직임과 반대되는 것이기 때문이었다.

할시는 이러한 시대적 변화와 더불어 '여자라면 이래야 한다'는 고정관념을 깨기 위해 'Nightmare' 뮤직비디오에 여러 요소를 배치했다. 제작 과정에서도 제작자와 출연자를 모두 여성으로 고용했다.

아리아나 그란데와 케이시 머스그레이브스의 뮤직비디오를 제작한 것으로 알려진 한나 럭스 데이비스와 협업한 할시는 'Nightmare'에서 피부색이 서로 다른 여성들과 함께 빅토리아 시크릿 패션쇼를 연상케 하는 의상을 입고 등장한다.
 

이외에도 청소기를 돌리는 핀업 걸과 피를 흘리며 싸우는 여성들이 등장하는데, 이들을 영상에 배치한 이유는 하나의 이미지로 여성을 정의하지 않고 '우리에게도 다양한 모습이 존재한다'는 주제를 전하기 위해서였다. 할시는 평소에도 자신의 가치관을 삶으로 보여준다. 노출이 있는 옷을 입는 이유가 무엇이냐는 질문에 "다 보이는 옷을 선택하는 이유는 몸매를 부각하려는 데 있지 않고, 문신한 내 몸을 숨김없이 그대로 나타내기 위해서다"라고 답한 적이 있다.

길거리 성희롱을 의미하는 캣콜링을 전면으로 비판하는 가사도 등장한다. "거기 아가씨 웃어 봐"라는 식으로 미소를 강요하는 사람들을 향해 그는 "웃지는 않을 거지만 내 이빨은 보여줄게", "난 달콤한 꿈은 아니지만 지옥의 밤이야"라고 대응한다. 예쁘고 착한 아가씨가 되지 않고 지옥의 밤, 악몽이 되겠다고 선언하는 태도에는 조금의 망설임도 없다.

할시의 음악 세계에서 불가능이란 없다. 타인에게 말하기 조심스럽고, 두렵다 여겨지는 것들을 공론화하는 그의 대담한 움직임은 한 인간이 보여주는 작은 해방 운동과도 같다. 세상을 조금씩 바꾸게 하는 카리스마는 상처받고 소외된 자들이 목소리를 내는 순간에 발현되는 것일지도 모른다. 새로운 방식으로 변화를 만들어가는 밀레니얼 세대의 행보가 궁금하다면 할시를 주목할 필요가 있다.
덧붙이는 글 이 글은 대중음악웹진 이즘(www.izm.co.kr)에도 실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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