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순간 선택의 기로 앞에 선 인간이 할 수 있는 건 선택뿐이다. 물론 여러분은 거기에 포기는 없냐고 질문할 수 있다. 하지만 영화 <에너미>는 여기에 포기란 없다고 단호하게 말한다. 선택은 한 순간이고 실수는 반복되며 그 끝은 요원하다. 벌어진 일을 벌어진 대로 받아들이고 자신이 책임져야 할 만큼 책임지는 것. 이것이 드니 빌뢰브의 <에너미>에서 발견할 수 있는 세상의 원리요, 이치다.
 
문제는 이미 벌어진 상황에 대해 자신은 그럴 의도가 없었다고 발을 빼는 데 있다. 양비론을 강조하는 것이 아니다. 타인을 통해 숨은 욕구를 해결하고 책임은 회피하는 것. 이것이 자칭 '무의도론자'들이 위기 상황에서 활용하는 방법임을 말하는 것이다. 온갖 사건과 사고는 그들에게 자신과는 전혀 무관한 무언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선택 이전의 세계로는 결코 돌아갈 수 없다.
 
드니 빌뢰브의 <에너미>는 마지막 결말을 제외한다면 원작에 충실한 영화다. <에너미>는 주제 사라마구의 소설 <도플갱어>에 기대어 탄생했다. 단지 <도플갱어>의 테르툴리아노 막시모 아폰소와 안토니오 클라로다는 <에너미>에서 앤서니 클레어와 아담 벨이라는 이름으로 대체됐을 뿐이다.

우연히 자신과 똑같이 생긴 사람을 발견한다면
 
 영화 <에너미>(2013) 스틸컷

영화 <에너미>(2013) 스틸컷ⓒ 영화사 진진

 
<에너미>의 주인공은 아담 벨(제이크 질렌할)은 역사 선생으로, 우연히 비디오가게에서 대여한 영화에서 자신과 똑같이 생긴 배우 앤소니(제이크 질렌할)를 발견한다. 이 둘은 서로를 만나 얼굴도, 목소리도, 키와 체형도, 심지어 배에 난 상처까지 똑같음을 확인한다. 그러나 그들은 서로의 욕망과 결핍마저 같은 선상에 있다는 것을 확인하지 못하고 헤어진다. 이후 그들의 욕망과 결핍은 서로의 뿌리를 뒤흔들고 파괴한다.
 
<에너미>는 자신은 다를 거라 생각했지만 결국 자신도 같은 종류의 인간이었음을 깨닫고 운명을 받아들이는 한 남자의 이야기다. 이는 영화에서 다소 상징적이고 직관적인 표현으로 나타난다. 그러나 영화는 구체적인 표상을 강조하며 질문을 던지는 대신, 사람의 선악과 관계없이 발생하는 삶이라는 소용돌이에서 선택 앞에서 저지르는 실수의 가벼움과 책임지는 것의 막중함을 카메라를 통해 보여준다.
 
누구나 실수를 저지를 수 있지만 누구도 책임을 회피할 순 없다. 그것은 사람의 성별, 나이, 신장, 몸무게에 따라 차별 책정되지 않는다. 심지어 갑을 관계에서도 그러하다. 이 사회에는 타인을 우산삼아 자신의 책임이나 죄책감을 덜어내는 경우가 벌어진다. 나에게도 벌어진다. 그렇다면 막상 위기상황에서 내가 취할 수밖에 없는 행동은 무엇일까. 아마도 <에너미>의 마지막 장면과도 같을 것이다.
 
앞서 언급했듯 <에너미>는 포르투갈의 작가 주제 사라마구의 원작소설 <도플갱어>에 기대어 탄생했다. 아담 벨이 자신의 수업에서 헤겔과 막스의 이론을 언급하는 장면은 사라마구의 원작에 바치는 영감의 헌사다. 영화는 원작소설의 마지막 어느 지점을 제외하고 큰 줄기를 그대로 가져왔다. 소설의 한 구절을 조용히 읊조리면서 이 글을 마무리하려 한다.
 
"제일 불안한 건, 그자가 나를 닮았다는 사실, 내 복사판이었다는 사실이 아냐. 정말로 불안한 건 5년 전에 그자와 내가 똑같은 모습이었다는 사실이야. 그러니까 우리 둘 다 콧수염을 길렀다는 것까지 똑같았단 말이지. 게다가 5년이 지난 지금 바로 이 시간에도 그자가 여전히 나랑 똑같은 모습을 하고 있을지도 모른다는 게 더 불안해."
 
 영화 <에너미>의 포스터.

영화 <에너미>의 포스터.ⓒ 영화사 진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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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쓰는 사람입니다. 주로 영화글을 쓰고, 가끔 기사를 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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