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년 지만원과 일베가 이른바 '북한군 개입설'을 제기했습니다. 이 주장은 80년 5월 당시 사진에 찍힌 인물과 지금 북한에서 관료 자리에 있는 인물을 비교하는 빨간색 점과 화살표들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이를 두고 다큐멘터리 <김군>을 만든 강상우 감독은 "그전까지는 정치적 입장과 무관하게 518을 다룰 때 군중에 대해 말했다면 이 화살표는 개개인을 향해 있다는 게 흥미로웠다"고 말했는데요. 화살표를 역으로 추적해가는 방식으로 항쟁 당시 개인의 삶을 조명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했다는 것입니다.

"그분에게 제1광수란 낙인 대신 이름을 돌려드리고자 했습니다."(감독 강상우 GV 발언 중)

아래는 영화 개봉 후 강상우 감독과 만나서 나눈 이야기를 정리한 내용입니다. 518을 소재로 한 몇몇 영화들처럼 시민군의 비장한 모습이나 계엄군의 잔혹함을 부각하지 않으면서도 80년 5월 광주의 상황과 여러 정서들을 이해하고 공감하게 해준 <김군>을 더 많은 사람들이 함께 봤으면 좋겠습니다. 다음은 지난 5일 진행한 강상우 감독과의 인터뷰 일문일답.
 
 영화 <김군>의 티저 포스터

영화 <김군>의 티저 포스터ⓒ 영화사 풀

   
- 영화 개봉 이후로 지브이(gv, 관객과의 대화)가 거의 매일 열리고 있는 것으로 안다. 지브이를 다니면서 어떤지, 현장에서 느끼는 반응이나 분위기는 어떤 것 같은지 궁금하다.
"영화가 바랐던 만큼 아직 많은 관객을 만나진 못하고 있다(웃음). 일단 영화를 보러 오신 분들은 대부분 열심히 몰입해서 보시는 것 같고, 대부분 호의적이다. 처음에는 질문이 안 나오는 경우들 많은데 근데도 눈을 초롱초롱 뜨면서 무슨 얘기 하나 귀 기울여 듣는다. 예전 작업 때랑 다른 느낌이다."
 
- 객석에서 자주 나오는 질문들도 있을 것 같다.
"진지한 질문들도 많이 나오는데, 인터뷰에 응해주시는 분들의 증언 과정에서 트라우마적인 기억을 상기시키는 것에 대한 어려움은 없었는지에 대한 질문은 자주 받는다."
 
- 시민군으로 참여했던 분들 100여명을 만 4년에 걸쳐 만났다고 들었다. 실제 인터뷰로 이분들을 만나고 이야기 듣는 과정이 어땠을지 궁금하다.

"연락을 받는 것 자체가 당시의 기억을 되새기게 함으로써 상처를 드리는 건 아닌가하는 생각이 들어 연락을 더 드리지 못한 분도 있고, 약속을 잡았는데도 약속하기로 한 장소와 시간에 안 나타나시는 분도 있었다. 특히 광주 바깥에 거주하시는 분들의 경우 이웃들이나 직장 동료들에게 본인이 5.18과 관련되어 있다는 이야기를 하시지 못하고 침묵하며 살아 온 이들도 있었다. 작업을 하면서 5.18이라는 게 국가적으로 정리된 역사적 사건이 아니라 여전히 현재 진행형으로 남아있는 사회적 낙인으로서 생존자들에게 다가오는 부분이 있다고 느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북한군 개입설' 등 518에 대한 모욕이 이어지는) 지금의 상황에서 살아남은 자로서 목소리를 내야 한다는 점에 대해서는 많은 분들이 공감해 주셨던 것 같다. 선생님들께서 생각하시기에 ('김군'에 대해 더 잘 알 법한) 또 다른 분들을 소개시켜 주신다든가, 촬영 단계에서부터 영화제, 현재의 개봉에 이르기까지 적극적으로 도움을 주셨다."
 
"5월의 모든 기억이 트라우마는 아니다"
 
- 한편 그렇게 시민군 하면 떠오르는 어떤 정형화된 이미지를 깨줬달까, 시민군의 각각의 스토리를 들을 수 있었던 게 <김군>의 돋보이는 점이라 여겨진다.
"이성애자들은 직장에서 남편과 같이 아내랑 같이 아들과 같이 어딜 다녀왔다고 아무렇지 않게 일상적으로 말할 수 있다. 반면 동성 애인이랑 어디 갔다고 말했을 땐 약간 이상한 생각들, 반문들이 들어오지 않나. 굳이 왜 그런 개인적인 이야기를 드러내야 하냐고. 그건 사적인 이야기인데 너 혼자 묻어둬라 이런 반응이 518생존자들에게도 마찬가지로 적용된다는 생각을 한다.

너무 거창하게 커밍아웃을 할 필요도 없지만, 그동안 편안하게 발언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니었고 그런 맥락에서 침묵을 강요당한 분들도 있다. 이 분들은 당시 어떤 죽음의 순간을 목격한 것에 대해선 아픔을 느끼기도 하지만, 한편으로 어떤 부분에 대해서는 발언하고자 하는 욕구를 갖고 있다. '오월 생존자'라는 틀에 맞추어서 그들의 욕구를 일괄적으로 재단하기 보다, 개개인의 욕구를 세심하게 살펴야 하지 않을까 싶다. 그건 병역거부자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 병역거부자란 전체의 이미지 틀에 개개인을 맞출 수 없다는 그런?
"그렇다. 사실 (송암동 민간인 학살사건 증언자이자 생존자로 나오는) 최진수 선생님도 송암동에 가기 전 동료 시민군들과 어느 건물 옥상에서 경계근무를 서다 누워서 본 별이 가득한 밤하늘을 이야기할 때는 (80년 5월) 24일 송암동에 대한 기억을 말씀하실 때와는 다른 태도, 느낌으로 표현하신다.

"내가 그때 이뻤다"라고 말씀해 주신 김용균 선생님이 처음 트럭에 올라탔을 때의 경험을 말씀할 때도 그렇고. 비록 찰나였지만 선생님 본인들의 표현으로 좋았던, 아름다웠던 기억들도 80년 5월에 존재한다. 선생님들을 만나 대화를 나눌 때에는 계엄군 학살의 피해 증언만을 요청한 것이 아니라, 평범한 일상을 살고 있었던 10대 20대의 청년의 기억에서부터 총을 들고 어떻게 항쟁에 참여했었는지, 낮에는 어디를 다니셨고 어떤 감정을 느끼셨는데, 기억나는 얼굴들은 누가 있는지, 어떤 노래를 불렀는지 등 시민군으로서 느꼈던 다양한 정서와 감정들에 대해서 여쭤봤다."

- <김군>을 찍게 된 계기에 대한 질문도 여기저기서 많이 받았을 것 같다.
"원래는 5.18과 상관없이 광주에서 2014년부터 시민들의 일상을 기록하는 작업을 했었다. 2014년에 '100% 광주'란 공연 촬영 차 처음 광주에 갔는데 시민 100명이 참여하는 공연이었고 그 100명 중에 한 명이 주옥 선생님이었다. 영화에서 김군을 처음 기억하시는 분으로 나오는. 이후에 주옥 선생님과 친해져서 그 분의 일상을 찍고 있었는데 2015년 5월에 당시 개관했던 518 기록관을 갔다가 돌아오셔서는 같은 동네 살던 청년 사진이 거기 걸려있더라는 말씀을 우리에게 해주신거다."
 
 영화 <김군> 스틸컷. 영화는 광주민주화운동에 북한군이 개입했다는 지만원 씨의 주장에서 시작한다. 의도한 것은 아니지만 지만원 씨의 빨간 화살표는 군중으로서 시민군이 아니라 시민군에 참여한  개개인에 초점을 맞추고 있었다.

영화 <김군> 스틸컷. 영화는 광주민주화운동에 북한군이 개입했다는 지만원 씨의 주장에서 시작한다. 의도한 것은 아니지만 지만원 씨의 빨간 화살표는 군중으로서 시민군이 아니라 시민군에 참여한 개개인에 초점을 맞추고 있었다.ⓒ 영화사 풀


- 정말 우연한 계기였던 거구나.
"그때 518 기록관 다녀오셔서 김군에 대해 말씀해주신 게 지금 영화에 들어간 부분이다. 공교롭게도 주옥 선생님이 사진 속 김군을 기억한다고 말씀해주신 같은 달(2015년 5월)에 일베와 지만원씨가 그 사진 속 인물이 북한 특수군이라는 주장을 시작했다. 광주 항쟁 당시 시민들의 사진 속 얼굴의 빨간 화살표와 빨간 점을 찍으면서 수백명의 북한 특수군들이 있다고 주장하기 시작한 거다. 같은 사진 속 인물에 대해서 상반된 주장을 펴는 상황이 흥미로웠다."
 
- 그 이후로 인터뷰 작업이 4년 간 이어진 건가?
"그렇다. 우리 영화에서 지만원씨의 빨간색 화살표를 중요한 시각적 요소로 사용 했다. 기존에 접했던 5.18 책이나 영화, 소설은 정치적 입장을 떠나 군중이나 집단에 초점을 두고 얘기를 한 측면이 있다면, 지만원씨의 화살표는 개개인을 겨냥을 하고 있다는 게 흥미로웠다. 그래서 어쩌면 이 화살표를 역으로 추적한다면 항쟁 당시 개인의 삶과 현재 삶을 조명할 수 있지 않을까 생각을 한 것 같다. 처음에는 김군의 존재에 대한 모든 가능성을 열어놓고 사진에서 출발해서 따라가보자 하는 마음으로 시작을 했다. 이분의 행방을 우리는 모르니까 사진 한 장과 주옥 선생님의 증언, 지만원씨의 주장에서 출발했다."
 
- 다른 인터뷰에서 "시민군의 무장, 총을 들 수밖에 없는 상황을 이해하려면 많은 과정이 필요한데 서사를 강요받는 느낌이라 거부감을 갖곤 했다"고 말한 것을 읽었다.
"무장한 시민군의 이미지를 낯설어 할 젊은 관객들이 영화를 많이 봤으면 좋겠다고 생각 했었다. 나는 처음 이 무장 시민군 사진들을 봤을 때 좀 이상한 기분이 들었던 기억이 있다. 민주화운동이라는 말의 개념도 몰랐을 때고 그냥 사진만 보았을 때인데. 그때 이게 뭐지? 이 사람들 누굴까? 이 사람들이 착한 사람인지 나쁜 사람인지 모르겠는… 그런 궁금증이 들었던 게 기억난다.

일베에서 처음 이 사진 속 인물이 민주화운동에 참여했던 사람들이 아니라 북한군이라고 했을 때, 사람들이 그 사진 속 인물을 낯선 존재 혹은 외부의 불길한 존재로 생각하는 인식의 근원에는 내가 느꼈던 호기심과 비슷한 뭔가가 있을거라 생각한다. 그것은 당시 광주 시민들이 왜 총을 들 수밖에 없었는지, 그 상황에 대한 이야기가 세대를 통해 전승되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약간의 강요 받는 느낌?

나만 해도 선생님들이나 윗세대들한테 너희는 이걸 알아야 해 이런 식으로 주입을 당했기 때문에 오히려 그 거부감 때문에 더 알고 싶지 않았던 것도 있었다. 그에 반해 지만원씨의 주장은 우선은 재밌다. 사실 여부를 떠나서 화살표와 점이 그리는 그 재미가 있기 때문에 그 재미를 이기려면 어떻게 해야할까, 의미와 재미를 동시에 가져갈 수 있는 방법은 없을까를 고민했다. 영화 속 추적의 형식을 통해서 이분들이 왜 총을 들 수밖에 없었는지를 관객들이 알아갈 수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 <김군>에 대한 언론 리뷰들을 보면 "80년을 경험하지 않은 세대가 다룬 518" 이런 식의 평이 많이 보인다. 인터뷰에서 강 감독이 "제작진이 518에 대해 아무것도 모른다는 상황에서 출발했다"고 말한 걸 봤는데, 그런 태도가 실제 시민군 참여하신 분들을 인터뷰하고 이야기 듣는 데 도움이 되지 않았을까 생각했다.
"사실 처음부터 어떤 역사적인 사명감이나 책임의식이 있지는 않았다. 그 전에 80년대 학번, 90년대 학번 다큐 감독님들이 말씀해주셨는데 자기들이라면 너무 어려워서 대선배? 시민군 선생님들을 대선배로 모셔야 하는데... 약간 과장하면 무릎꿇고 이렇게 들어야 할 것 같은? 그런 식의 존재로 생각하는데, 오히려 우리는 어렵게 대하지 않고, 젊은 애들이 와서 선생님 얘기 듣고 싶다고 하니까 이분들이 좀 더 편하게 말씀 하셨던 것 같기도 하다.

기자들이나 리포터들이 오면 항상 5월 무렵에만 와서 피해사실만 묻고 딱 얻고 싶은 것만 얻고 가는데, 우리는 피해 증언 뿐만 아니라 그 전에 일상부터 시작해서 수다 떨 듯 더 여쭤봤다. 선생님들이 보기에 우리는 5.18을 알아야 되는데 모르는 애들도 아니고, 그냥 진짜 모를 수밖에 없는 애들이 와서 (묻고 들으니까)... 광주에서도 젊은 사람들이 5.18에 별 관심이 없다. 그래서 이분들이 좀 더 좋아하신 게 아닐까."
 
- 영화에 "그때는 내가 이뻤어"라고 말하면서 웃는 한 시민군의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그 장면에서 항상 관객들이 많이 웃더라. 이분들이 지금 50대 60대 중장년이 아니라 그 당시의 소년소녀였을 때의 느낌들이 나타나는 순간들을 찍으려고 했다."
 
- 어쨌든 지금은 중년 남성들인데 그렇게 말하니까 약간 깨는 느낌이 있었던 것 같다. 생존자로서 뭔가 침통한 얘기를 하거나 비장한 얘기를 할거라 예상하게 되니까.
"그렇다. 되게 생기있고 활기차고 즐거웠다고까지 말하는 순간들도 짧게나마 있었다는 게 내가 518에 꽂혔던 부분이어서... 학살만이 아니라 시민군에 집중한 영화니까. 젊음이 키워드 중에 하나였던 것 같다.

<그것이알고싶다>처럼 되지 않으려면 뭘 중요하게 가져가야 했을까 했을 때 사진 속에 보이는 그들의 어떤 아름다움? 아름다움도 되게 중요했던 것 같다. 그들이 느꼈을 10대, 20대 초반의 청년으로서 느꼈을 감흥들을 단계별로 따라가는. 단순 피해사실의 증언만이 아니라 여러 가지... 동료들에 대한 애틋함 같은 것도 각자 다른 방식으로 갖고 계시고... 조각조각을 이어나가서 모자이크로 만들었단 생각이 들어서, 그게 어떤 의미에서는 영화적인 형태의 '김군'이라는 생각을 했었다. 실제 김군을 찾는 것도 찾는 거지만, 증언의 조각조각들로 만들어낸 영화란 생각을 한다."
 
 영화 <김군>의 스틸컷. 영화는 김군을 찾아가는 장르물의 형태를 보이면서도, 시민군에 참여했던 개개인들의 그시절 그때의 젊은 모습을 끊임 없이 조명한다. 덕분에 팽팽한 긴장감과 풋풋하고 싱그러운 감정이 동시에 공존한다.

영화 <김군>의 스틸컷. 영화는 김군을 찾아가는 장르물의 형태를 보이면서도, 시민군에 참여했던 개개인들의 그시절 그때의 젊은 모습을 끊임 없이 조명한다. 덕분에 팽팽한 긴장감과 풋풋하고 싱그러운 감정이 동시에 공존한다.ⓒ 영화사 풀

 
- 그 말 되게 멋있다(웃음).
"피칭(펀딩을 위해 영화를 소개하는 자리) 때 그렇게 말한다.(웃음) 피칭할 때 "김군 못찾으면 어쩔거냐" 물어보는데, 저널리즘적인 방식으로 실체를 규명하는 <그것이 알고싶다>와 같은 프로그램이라면 김군을 찾지 못할 경우 프로그램이 성립되지 못할 수도 있으니까. 반면 <김군>에서는 실제 사진 속 구체적 개인으로서의 김군을 찾을 수 있다면 좋지만, 찾지 못한다 하더라도 그 분을 찾는 과정에서 만나는, 항쟁 당시에 참여했던 수많은 이름 없는 김군들 삶을 조명할 수 있다는 점에서 영화적 김군을 성립시킬 수 있다고 생각했다.

우리 제작진은 처음부터 이 영화에서 5.18의 기승전결을 다룰 필요는 없다고 생각했다. <김군>에는 계엄군이 광주에 들어와 시민군들을 진압한 5월 27일 도청 상황이 나오지 않는데, 김군의 추적 타임라인은 5월 24일로 끝나기 때문이었다.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은 김군을 추적하는 과정에서 실제 마주한 생존자들의 목소리들을 진솔하게 들려주는 것이었다."

'80년 광주 시민군의 무장은 폭력인가'라는 질문
 
- 이제, 전쟁없는세상에서 궁금해할 법한 질문이다(웃음). 시민군 중 한 분이 "우리가 전두환이 누군지 알았겠냐 민주주의가 뭔지나 알았겠냐 사람들이 죽으니까 나선거지"라고 말씀하셨다. 인터뷰를 100여명 가량 했다고 들었는데 저렇게 말씀하신 분들이 많았는지 궁금했다.
"거의 대부분이 그랬다. 누가 죽거나 구타당하거나 계엄군들의 만행을 알고 나서 시위에 참여한 거고. 다친 사람 돕고, 할 수 있는 걸 찾아서 나서게 됐다는. 그 전까지는 대학생들 시위하는 거 보고 배불러서 하는 짓이다 생각을 하다가 그런 걸 목격하면서 참여하게 됐다는 이야기를 해주신 분도 있다. 그런 분들이 거의 전부 다인 것 같다. 옆에서 죽어가는 걸 보면서 자기도 뛰쳐나가게 됐다는."
 
- 그런데 최근 한 병역거부자 재판에서 시민군이 80년 5월 총을 든 건 폭력이냐는 질문을 검사가 던졌다.
"80년 당시 내란, 소요죄 등으로 유죄 판결을 받았던 생존자 분들은 5.18이 민주화운동으로 인정된 90년대 김영삼, 김대중 정부 들어서 법원 재심에서도 모두 무죄 판결을 받았다. 광주 시민들의 무장은 국가 전복을 기도한 반란군 세력의 학살에 저항해 시민으로서 정당한 자위권을 행사했다는 취지였던 것으로 기억한다."
 
- 법적으로는 그렇게 말할 수도 있을 것 같은데, 양심을 심사하겠다는 발상도 그렇지만 80년 5월 당시의 맥락을 삭제하고 다짜고짜 폭력이냐 아니냐 묻는 건 문제적이란 생각이 들었다.
"그렇다. 생존을 위한 정당방위 행위를 폭력으로 보는지를 묻는 건데, 질문의 프레임이 매우 악의적이라고 생각한다."
 
- 한편으론 지금 한국 사회가 '양심의 자유'를 해석하는 방식에 있어서 비전향 장기수 분들에 대한 사회적 이미지처럼 양심을 어떤 고결하고 비장한 사람만이 가질 수 있는 어떤 것으로 접근하는 것 아닐까 생각이 든다(전쟁없는세상 논평 참고). 앞서 답변에서 시민군 참여 계기로 거창한 대의명분이 있었던 게 아니라 옆에서 사람이 죽어가는 데 어떻게 가만히 있을 수 있었겠냐는 취지로 답한 분들이 대부분이었다는 이야기를 떠올렸을 때 꼭 거창한 신념을 가진 사람들만 양심의 자유의 보호를 받을 수 있는 건 아니라는 반박이 될 수 있지 않을까 생각이 들었다.
"법률적인 상황에서 양심이라는 게 대두될 때 "~을 하지 않겠다"는 소신의 표현? 소신이라고 거창하게 말할 필요도 없고. 그것만은 못하겠다? 그런 게 시민군에 참여하신 분들이 가지고 계셨던 태도가 아닌가 생각한다. 뭐 미리 모여서 사전에 모의를 해서 항쟁을 일으키거나 그런 게 아니었기 때문에.

80년 5월 당시에 음악다방 디제이를 하시던 분 이야기를 들었다. 디제이 부스가 2층에 있고 1층에 이제 손님들이 차 마시고 있는데 갑자기 계엄군들이 들어와서 젊은 사람으로 보이는 사람 다 때리고 끌고 가는 걸 보고 너무 충격을 받아서… 그 광경에 아무 것도 못하고 발이 떨어지지도 않고 그냥 멍하니 지켜만 봤었다고 했다. 1층에 있던 손님들, 학생들, 젊은 사람들이 끌려 나가는 너무 말도 안 되는 상황을 지켜봤다는 거지.

그리고는 너무 무섭고 두려운데 일개 시민으로서 뭘 해야 할지도 모르겠는 그런 상태에서 몇 시간 동안 다방 안에만 있다가 진정을 하고 밖에 나가서 시민들이 모여있는 걸 보고서는 그때부터 자신들이 할 수 있는 것을 찾아서 했다고. 이 분은 음향장비를 다룰 줄 아니까 방송차량을 타고 다니면서 안내 방송도 하고 마지막날까지 남아서 계셨던 거고. 각자가 할 수 있는 방식으로 참여를 한 건데, 정말 자율적으로 빠른 시일 내에 그런 형태로 일어났다. 다들 그런 일을 자기 일생에서 보지 못할거라고 말씀 하시더라.

최근에 그나마 비슷한 게 박근혜 탄핵 때이려나... 갑자기 200만명이 여러 군데서 동시 다발로 시위에 나서고. 80년 광주 때는 더 고립된 상태에서 시민들이 그렇게 했다는 게... 내가 선생님들 말씀 들었을 때는 개미들이 개미굴에서 각자 역할을 배분 받아서, 각자가 할 수 있는 방식으로 해서 그렇게 역할을 (했다고 한다). 누가 시키지도 않았는데 자연스럽게 그렇게 됐다는 게 되게 신비로운? 대동세상으로 표현되는 그런 느낌을 말하신 것 같다. 누구도 강요받지 않았고 언제든지 집에 돌아가고 싶은 사람은 집에 돌아갈 수 있었다는 것? 시민'군'이라는 표현으로 얘기가 됐지만 어떠한 강압이나 명령 없이 자율적으로 움직였다라는 게 나도 얘기 들으면서 신기했다.

굉장히 현대적인? 도시적인 현상이란 생각이 들었다. 익명의 사람들이... 물론 형님 동생 하는 사람들끼리 다닌 경우도 있겠지만 익명의 개인들이 서로의 이름을 알지도 못하고 모여서 각자의 역할을 했다는 게 대단해 보였달까.

폭력이냐 아니냐는 질문은 되게 야비하긴 하다. 거기에 딱 직면하는 방식으로 대답하면 안 될 것 같다. 그 프레임에 말려들 것 같다. 누가 집에 처들어와서 가족들이 죽는다면 너 뭐하겠냐 그런 식의 질문이잖아. 그럴 땐 답을 안 하는 게 낫지 않을까."
 
- 법정에서는 어떤 식으로든 답을 요구받는 위치에 놓이니까 그게 안타까운 상황이다.
"사람들마다 각기 다르게 생각할 수 있을테고 병역거부자들에 대해서도 일반화를 해서는 안 될 것이라고 생각한다. 시민군의 무장은 오히려 당시 현행법률 상으로 위반되는 행위임에도, 계엄군의 학살이라는 극단적인 상황에 맞선 양심에 따른 행위였다는 점에서 오늘날 병역거부자들의 결단과 맞닿은 부분이 있다고 생각한다."
 
- 인터뷰 마무리로 전쟁없는세상에 한마디 남긴다면?
"도움은 못 되지만 항상 응원하고 있다(웃음). 영화가 폭도라는 의혹을 받는 시민군들의 이미지에서 시작하기 때문에 시민군들의 마음과는 제일 거리가 먼 상태에서 출발한다. 또 실제로 <김군> 작업을 시작했을 때도 개인적으론 아무것도 모르는 상태에서 출발했다. 하지만 만 4년 동안 작업하면서 선생님들의 분노에 공감하게 됐다. 518에 대해 전혀 알지 못했던 관객들도 영화를 보다가 그 분노에 공감할 수 있으면 좋겠단 바람으로 편집했다. 그 바람이 관객들에게 와닿았다면 성공이라 생각하고, 끝에 가서도 와닿지 않았다면 실패라고 생각한다."

* 인터뷰 및 정리 : 날맹(병역거부자)
덧붙이는 글 이 글은 전쟁없는세상 블로그에도 실렸습닌다. http://www.withoutwar.org/?p=1537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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