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신경정신의학회 중독특임이사를 맡고 있는 이해국 가톨릭대학교 의과대학 의정부성모병원 정신건강의학과 교수.
이해국 제공
- 이번 WHO의 결정이 청소년들의 성장, 디지털 게임 산업에 어떠한 영향을 줄 것이라 예상하나?
"게임도 즐거운 오락이자 문화활동임은 분명하다. 하지만 게임하는 동안 성장기 아이들은 몸을 거의 움직이지 않는다. 온라인 게임을 통해 친구들과 소통한다고 해도 이때 이루어지는 접촉은 밖에서 뛰어놀면서 자연스럽게 하게 되는 접촉과 성격이 다르다.
이번 결정은 적절한 게임 사용에 대한 가이드라인을 고민하는 계기가 될 것이다. 나아가 우리 사회가 아동청소년이 균형있게 즐길 수 있는 다양한 문화복지환경을 어떻게 갖출 것인가에 대한 고민의 계기도 마련할 것이다. 결국 아이들의 건강한 심리사회적 발달에 기여할 것으로 생각한다."
- '게임중독 질병 분류' 결정을 두고 '연구 내용이 충분하지 않다' 혹은 '과학적 근거가 부족하다'라고 주장하는 사람들도 있다.
"일각에선 '게임 과몰입'의 원인이 게임 때문인지, 개인 때문인지, 환경 때문인지 아직까지 명확히 연구가 되어 있지 않아서 질병코드로 등재하면 안 된다고 비판을 제기하고 있다. 또한 '게임이용 장애'가 질병으로 등재될 정도의 과학적 근거가 축적되지 않았다는 비판도 있지만, 사실에 근거하지 않은 주장이다.
예컨대, '알코올사용 장애'의 원인이 알코올의 중독성 때문인지, 개인의 취약성 때문인지, 환경의 위험성 때문인지 밝히는 것은 아마도 인류 역사에 걸쳐 연구해야 하는 사안일 수도 있다. 그러나 3가지 요인의 복합적 상호작용에 의해 발생하는 병적 상태가 있다는 것만은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기에, 이미 질병으로 등재되어 있다.
특정 중독성 장애(Addictive Disorder)가 질병으로 분류되기 위해 3가지 조건이 필요하다. 장기추적연구를 통해 보고되는 중독 진단의 지속성과 안정성, 뇌 보상(쾌감) 회로의 도파민 분비 자극 및 이로 인한 회로기능 변화, 과도한 이용으로 인해 발생하는 건강상의 문제가 증명되면 된다. '게임이용 장애'는 최근 50개 이상의 장기추적연구와 1000편 이상의 뇌기능연구를 통해 위 3가지 요건을 충족하고 있다."
- 이번 WHO 결정에 반발하며 '게임중독 관련 연구들을 진행한 곳이 대부분 정신의학계'라는 지적도 나온다. 담배에 붙은 '죄악세'가 게임에도 부과돼 결국 정신의학계의 금전적 이익이 될 거라는 논리다. 이런 주장은 어떻게 생각하는지.
"기본적 사실관계에 전혀 맞지 않는 주장이다. 세계보건기구는 의학을 포함 보건학·예방의학·간호·심리·복지·행정 등 다양한 분야의 전문가들이 모인 기관이다. 이들 중 누구도 이 문제를 정신의학계의 이익을 위한 일이라고 보지 않는다. 따라서, 이번 결정이 일부 정신과 의사들의 새로운 진료영역과 수익 창출을 위해 내려졌다는 비판은 세계보건기구의 성격과 기능에 대한 '무지와 몰이해'로부터 기인한 주장이라고 볼 수밖에 없다.
또한 행위중독 문제의 특성상 질병코드 등재가 된다고 해서 의료기관을 찾아 집중적 치료를 받아야 하는 환자가 급격히 늘어날 일은 없다. 실제 도박의 경우에도 질병코드가 등재되어 있지만, 의료기관의 치료를 받는 사람들은 추정 유병인구의 0.2%밖에 되지 않는다. 또한 '알코올사용 장애'·'카페인사용 장애'도 질병으로 등재되어 있지만, 술이나 커피에 죄악세가 부과되어 있지 않다. 질병 등재와 규제 법제화는 직접적 상관이 없는 별개의 사안이다."
"사안을 '게임의 질병화'로 왜곡, 업계 외부의 '늑대' 만들고 있지 않나"
- 현재 게임 과몰입과 중독 등에 대한 국내 법적-제도적 장치는 어떤 수준인가? 그리고 시스템에 개선되어야 할 지점이 있다면?
"현재 우리나라는 '게임산업진흥에 관한 법'을 두고 '게임 과몰입과 중독' 업무를 문화체육관광부로 하여금 관장하도록 하고 있다. 그러나 현재 문체부가 이러한 법적 의무를 제대로 수행하고 있는지 의문이다. 문체부는 게임 내 '확률형 아이템'(내용물을 모르는 상태로 사용자가 게임 아이템을 구매하면 일부 확률로 좋은 내용물을 얻는 방식)에 대한 규제의 법제화에 미온적 태도를 보이고 있다.
게임은 많은 사람이 보편적으로 즐기는 여가활동 중 하나다. 그러므로 청소년보호와 같은 목적이 아닌 이상 접근성이나 가용성을 법적으로 제한하는 것이 바람직하지는 않다. 다만 일차적으로 게임업계로부터 독립적으로 운영될 수 있는 소비자운동단체, 게임이용자보호 및 지원센터가 필요하다. 게임이용 장애에 대한 보편적 예방을 위한 정보제공, 사용시간 고지 등도 업계가 보다 적극적으로 시행할 수 있어야 한다. 어른들과 청소년이 함께 이용하는 PC방의 환경도 개선되어야 한다."
- 이번 사안을 두고 게임계에서는 강하게 항의하고 있다. 하지만 반대로 게임계가 스스로 운영 방식을 돌아봐야 한다는 비판도 있다. 교수님도 게임업계의 사회적 책임을 지적한 바 있다.
"게임업계의 매출은 10조 규모다. 현재까지의 비즈니스의 역사상 이렇게 청소년들이 주된 소비자층을 형성하는 산업은 없었다. 그러나 게임업계가 청소년들이 아이템을 구입하도록 해서 얻은 수입 중 일부라도, 청소년 등의 게임소비자들을 위해 사회적 책임을 지는 데 쓰고 있는지 묻고 싶다.
무엇이 게임산업을 위협하는 것인지 게임과 게임산업을 진심으로 아끼는 분들에게 묻길 권한다. 게임산업 내부의 이윤추구적 행태에 대한 문제 제기를 회피하려, '게임중독의 질병화'가 아니라 '게임의 질병화'라는 왜곡을 통해 존재하지도 않는 게임업계 외부의 '늑대(적)'를 만들고 있는 것은 아닌지 되돌아 보길 권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