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HO가 국제질병분류(ICD-11) 개정에서 게임사용장애(Gaming Disorder)를 질병으로 분류하기로 결정했다

WHO가 국제질병분류(ICD-11) 개정에서 게임사용장애(Gaming Disorder)를 질병으로 분류하기로 결정했다 ⓒ 픽사베이


WHO가 국제질병분류(ICD-11) 개정에서 게임사용장애(Gaming Disorder)를 질병으로 분류하기로 결정했다는 소식에 많은 논란이 이어지고 있다.

옛날 어린이들은 호환, 마마, 전쟁 등이 가장 무서운 재앙이었으나 현대의 어린이들은 무분별한 인터넷 게임을 함으로써 정신과적 치료를 요하는 무서운 결과를 초래하게 되는 것일까?

ICD-11에서 정의한 게임사용장애를 거칠게 요약하면 오직 게임에만 집착적으로 몰두하며 일상생활이 붕괴된 상태를 12개월 이상 스스로 벗어나지 못 하고 있는 경우를 말한다. 단순히 게임을 자주 즐기는 상태와 질병으로 간주될 수준의 상태 사이에는 다양한 스펙트럼이 존재하겠으나 ICD-11에서는 이를 어느 정도 구분할 수 있는 진단기준을 제시한 샘이다.

정신과적 진단체계의 특성상 진단은 개인의 삶과 심리상태의 다양한 측면들을 포괄적으로 살피며 이루어지게 될 것이다. 또한 다른 정신과적 진단기준들이 그래왔듯 게임사용장애의 진단 기준 역시 향후에 연구가 축적되며 조금씩 수정이 이루어질 수 있다.

동시다발적으로 터져 나온 해묵은 논란들

이번 질병분류를 계기로 게임을 어떻게 바라볼지에 대한 해묵은 논란들이 동시다발적으로 터져 나오고 있는데, 이중에는 WHO가 정의한 게임사용장애와는 하등 관련이 없는 불필요한 논쟁들도 있는 듯하다.

우선 강조하고 싶은 것은 정신의학이 게임 자체를 삶을 파괴시키는 악마의 함정으로 간주하는 것이 아니라는 점이다. 게임사용장애란 어떤 개인이 단지 게임에 손을 댔기 때문에 정신이 타락하고 뇌기능이 손상되는 질환이 아니라 여러 가지 심리사회적 이유로 마음의 균형을 잃은 사람이 스스로를 돌보지 못 하며 게임을 병적으로 사용하고 있는 경우라고 이해하면 되겠다.

게임사용장애의 질병분류를 계기로 여봐란듯이 대두되고 있는 주장 중 또 한 가지는 게임이 사용자의 폭력성이나 범죄 가능성을 높인다는 식의 비약이다. 이러한 발상은 정신과를 방문하는 환자들을 폭력이나 범죄와 연관 지어 생각하는 그릇된 편견에 기대고 있는 듯하여 더욱 불편하게 느껴진다.

만약 이런 시각에 편승하여 어떤 충격적인 범죄를 일으킨 사람이 알고 보니 '게임중독'이었더라는 선정적인 기사들이 보도된다면 정신과 의사들은 또 다시 정신과 진료실을 방문하는 환자들이 잠재적 범죄자가 아님을 알리기 위해 애써야 할지도 모른다.

사회 전체가 입시교육에 과몰입 하고 있는 경쟁적인 한국사회의 맥락에서 특히 청소년의 경우 게임사용장애라는 진단명이 어떻게 수용될지 주목되는 지점들도 있다. 게임이라는 여가활동을 바라보는 부모와 자녀의 시각 차이는 늘 있어왔던 것인데 게임사용장애라는 진단명이 게임의 부정적인 영향에 대한 염려를 높여 불필요한 갈등을 만들지는 않을까.

공부와 게임에 어떻게 시간 할애를 해야 할지, 게임 외의 다른 여가활동을 즐길 수 있을지 등의 삶의 문제가 앞으로는 꼭 병원에서 상의해야 되는 문제로 바뀌는 것은 아니다. 개인의 자아실현이나 삶을 대하는 태도에 대한 복잡한 문제들을 질병과 치료의 문제로만 무분별하게 환원하는 것은 우리들의 삶을 도리어 앙상하게 만들 수도 있다.

게임을 바라보는 우리 사회의 이중적 시선
 
 최근 WHO가 국제질병분류(ICD-11) 개정에서 게임사용장애(Gaming Disorder)를 질병으로 분류하기로 결정했다.

최근 WHO가 국제질병분류(ICD-11) 개정에서 게임사용장애(Gaming Disorder)를 질병으로 분류하기로 결정했다. ⓒ 픽사베이


게임을 바라보는 우리 사회의 시선은 사뭇 이중적인데, 게임을 단지 인생의 낭비라고 보는 사람들이 있는가 하면 e스포츠 종주국의 '수출효자산업'으로 바라보는 시선 또한 있다. 이러한 관점에 따르면 게임은 미래의 먹거리이자 국민들의 창의력을 빛내주는 금자탑이다.

그러한 이유 때문인지 게임산업계는 물론 심지어 문화체육관광부에서도 게임사용장애라는 진단분류를 국내에서는 도입하지 말아야 한다는 입장을 밝혔다. 하지만 삶이 무너진 사람들이 보건의료체계의 혜택을 받으며 스스로를 재건할 수 있도록 도울 수 있는 기준이 마련되는 것을 국민들이 반대할 이유는 없어 보인다.

얼마 전부터 게임업계에서는 사행성이 짙거나 과몰입을 유도하는 요소들만 강조된 양산형 게임들이 시장을 장악해 게임의 창조성과 문화적 다양성이 오히려 쇠퇴하고 있다는 지적을 흔히 찾아볼 수 있는데, 이는 게임사용장애가 질병으로 분류되기 이전부터 꾸준히 지적되어 왔던 문제이며 게임이 문화콘텐츠로서 발전해 나가려면 게임산업계가 스스로 고민해야 할 지점으로 보인다.

편견에서 기인한 불필요한 논란들 대신 게임에 대해 우리가 논의해야 할 주제들은 산적해 있다. 전자기기를 사용한 게임은 인류가 비교적 최근에야 경험하기 시작한 행위이며 게임을 어떻게 바라보고 다루어 나갈지에 대한 사회적 논의는 더욱 다양해질 필요가 있다. 게임사용장애라는 정신의학적 진단분류는 기술변화에 따라 나타난 새로운 양상의 어려움을 돕기 위해 마련된 기준일 뿐이다.

게임사용장애를 겪는 데 개인의 어떤 특징이 영향을 끼치는지, 게임의 어떠한 요소와 설계 방식이 행위 중독과 유의미한 연관이 있는지 등에 대해서는 정신의학적 연구의 초점이 될 수 있을 것이나 게임사용장애로 고통받는 개인을 돕는 것은 국가와 사회가 함께 노력해야 하는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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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붙이는 글 글쓴이는 인도주의실천의사협의회 청년위원장,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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