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때 <무한도전>이라는 TV 프로그램이 있었다. 굳이 설명하지 않아도 웬만한 대한민국 국민이라면 다 알고 있을 터. <무도>라 줄여 불렀던 것도 기억하시리라.

시작은 2005년쯤, 아직 바람 매운 어느 이른 봄날의 첫 방송을 아직 기억한다. 그때의 프로그램 이름은 <무모한 도전>이었다. 첫 도전은 장정 네댓과 황소의 줄다리기였다. 제목 그대로 '무모한 도전' 같은 구성이긴 했는데, 참 황당했다. 게다가 출연진들의 대사와 상황전개는 맥락도 없고, 정신도 없었다. 그냥 자기들끼리 치고받고, 까부는 모습을 그대로 내보냈다. 일부 시청자들은 방송 중 출연진의 말과 행동에 '정신 나간 것 같다'며 비난을 퍼부었다.

그런데 방송이 회가 거듭할수록 시청자들은 이상하리만치 조금씩 빠져들었다. 입으로는 '저게 뭐하는 거냐'고 말하면서도 출연진의 모습에 중독이라도 된 양 눈은 자꾸 화면을 향했다. 나만 그런 게 아니었다. 방송 당시엔 참 많은 국민들이 그랬다. 그리고 몇 년 후, 마침내 <무도>는 국민 프로그램으로 등극했다.

그보다 더 오래 전부터는 <개콘>으로 줄여 부르는 <개그 콘서트>라는 프로그램도 있었다. 아니, 지금도 있다. <개그콘서트>는 1999년 처음 방송을 탔으니 무려 20년이나 됐다. <전국노래자랑>보다는 한 수 아래지만 보기 드문 장수프로그램이다.

<개콘>은 정통 코미디를 지향한다. 우스꽝스러운 촌극(상황극)으로 시청자들을 웃게 만든다. 그런데 <개콘>은 그 이전의 코미디 프로그램과 형식을 달리 했다. 오랜 옛날의 마당극 형식을 현대식으로 재해석했다. 실제 대학로 개그전용극장에서의 공연을 방송사 공개방송홀로 그대로 옮긴 것에 가까웠다. 개그맨들이 객석과 마주한 무대 위에서 연기하는 방식이었다. 그 시도가 참신했다. 기존의 인기 개그맨과 신인들이 잘 어우러지며 큰 인기를 끌었다. 각 방송사마다 아류 프로그램을 속속 만들 정도였다. 치열한 경쟁 속에서도 개콘은 선도자(First Mover)로서의 지위를 굳건히 유지해 왔다.

다른 듯 비슷한 모습으로 인기 얻은 <무도>와 <개콘>

두 프로그램, <개콘>과 <무도>는 다른 듯 같은 모양새를 보였다. 가장 크게 다른 점은 형식이다. 이미 앞서 말했지만 <개콘>은 극 중심이다. 정교하게 짠 대본에 출연자들의 코믹한 연기가 덧입혀진다. 극의 전개 과정에서 수많은 유행어가 탄생했고, 그것은 인기의 분명한 한 축이 됐다.

반면 <무도>는 특별히 구체적인 각본이 없다(물론 이에 대해서는 여전히 논란이 많다). 녹화 당일 큰 틀의 주제와 상황만 주어지고 나머지는 출연자들 간에 즉흥적으로 벌어지는 에피소드들을 그대로 찍는다. 그걸 자막과 함께 편집해 방송하는 형식이다. 그래서 리얼 버라이어티(real variety)라는 신조어까지 만들어 냈다. 그런 점이 우선 다르다.

반면 근본적인 둘의 공통점은 방송의 '목적'이다. 둘 다 보는 이들을 즐겁게 웃게 만든다. 시간 때우기(Killing Time)용이다. 시청자들은 아무 부담도, 생각도 없이 그냥 넋 놓고 보다가 우스운 상황이 나오면 웃으면 된다.

그것 말고도 닮은 점은 또 있다. 두 프로그램의 근간 혹은 기조를 상징하는 키워드가 같다. 그건 '도전'과 '용기'다. <무도>는 제목 자체가 도전이다. 매회 무언가에 도전하고 마구잡이로 덤벼든다. 첫 회의 황소 줄다리기를 비롯해 전철과 달리기, 굴착기와 땅 파기 등 누가 봐도 지기 십상인 대결에 선뜻 나섰다. 나중에는 몇 주에 걸쳐 프로레슬링, 봅슬레이 같은 비인기 스포츠 종목이나 벼농사나 달력 제작 등의 장기 프로젝트에 도전하기도 했다. 자기들 표현을 빌면 '대한민국 평균 이하의 남자'들이 벌이는 무모하고도 무리한 도전기였다.
 
 KBS <개그콘서트> 로고

KBS <개그콘서트> 로고ⓒ KBS

 
한편 <개콘>은 관습과 금기에 도전했다. 가장 먼저 기존의 형식을 과감히 바꿨다. 스튜디오 녹화를 탈피해 오픈된 무대에서 객석의 관객과 함께 호흡하며 촬영했다. 관객이 코앞이니 부담이 클 수밖에 없었다. 그네들이 웃어줘야 할 때 반응이 없으면 그보다 난감한 상황이 없을 터다. 그래도 처음부터 지금까지 그 원칙을 고수하고 있다. 위험성이 컸지만 현실감은 돋보였다. <개콘>의 용기는 주제 선택에서도 드러났다. 그들은 우리 사회와 현실을 풍자하고 조롱하는 데 주저하지 않았다. 역대 대통령과 유력 정치인들은 예외 없이 <개콘>을 통해 한 번씩 '디스' 당하곤 했다. 외모지상주의나 빈부격차, 세대 간 갈등 따위의 사회적 이슈에도 과감했다.

두 번째 공통점은 '사람'이다. 두 프로그램 모두 인재발굴과 육성에 노고를 아끼지 않았다. <개콘>은 그야말로 인재 양성소라 할 만하다. 2019년 현재 전 채널의 예능 프로그램에서 활동하고 있는 개그맨의 절반 이상은 <개콘> 출신이라 해도 무리는 아니다. 이무리 신인이라 할지라도 아이디어 좋고 웃기면 주저없이 무대에 세웠다. 시청자들에게 어필할 수 있도록 등장할 때는 단역일지라도 그의 이름을 자막에 새겨 주었다. 자기들만 크는 게 아니었다. 한창 성장 중인 아이돌이나 걸 그룹들을 개콘 무대로 불러 세워줬다. 말 그대로 함께 크는 협업(collaboration)이었다.
 
 지난 6일 방영한 MBC <무한도전-극한알바> 2편 한 장면

MBC <무한도전> '극한알바'편 중 한 장면ⓒ MBC

 
<무도>도 그에 못지않았다. <무도>는 처음부터 당시에는 다소 낯선 출연진으로 출발했다. 국민 MC로 한창 크고 있던 유재석 외엔 그다지 인지도 있는 인물들이 아니었다. 거기엔 길거리에서 캐스팅했다는 생판 낯선 캐릭터의 노홍철과 하필이면 '안 웃기는' 개그맨으로 설정한 정형돈도 끼어 있었다. 초창기 그들은 숱하게 비난받고 욕을 먹어야 했다. 그래도 그들은 꿋꿋하게 버텼다.

그 결과 그들은 '예능 4대 천왕'으로 거듭났다. 멤버들뿐 아니었다. 이런저런 동료 연예인들을 초대해 아낌없이 키웠다. 재야의 고수였던 가수 정재형이나 드러머 손스타(그룹 '체리필터') 등은 무도 출연 후 공공의 스타로 발돋움 했다. 특히 데프콘(본명 유대준)은 길거리를 헤매던 갱스터 래퍼에서 귀엽고 유머스러운 힙합 비둘기로 거듭나 인간 갱생의 모범 사례로 기록되기도 했다.

세 번째 공통점은 '경쟁'과 '리더십'이다. <개콘>의 결과물은 사람 웃기는 코미디지만 그 내면은 처절한 경쟁과 냉혹한 승부의 산물이다. 사전 테스트로 녹화 참가 코너를 걸러내고 녹화 후에도 관객 반응이 좋지 않으면 여지없이 편집된다. 개그맨들은 머리털이 빠질 정도로 아이디어를 짜내고 혼신을 다 해 연기연습을 한다. 그래야 살아남을 수 있다는 걸 잘 알기 때문이다.
 
 <개그콘서트>의 한 장면

<개그콘서트>의 한 장면ⓒ KBS

 
그런 <개콘>을 이끄는 PD는 개편 때마다 바뀌었지만 처음에 세원 원칙은 바뀌지 않았다. 공정하고 객관적인 룰에 입각한 경쟁과 철저히 결과를 존중하는 자세였다. 조직을 이끄는 리더(PD)도 그에 속한 구성원도 그 변함없는 원칙과 기준을 잘 알고 공감하기에 아무도 불평하지 않았고 모두가 일사분란하게 움직일 수 있었다.

<무도> 역시 만만치 않았다. <무도>는 프로그램 특성 상 타인과의 경쟁보다는 자기 자신과의 경쟁이 극심했다. 대부분의 도전이 몸으로 고난도의 과제를 수행해야 하는 경우가 많았기 때문에 그랬다. 그렇기에 무엇보다 육체적으로 고되고 힘들다. 견디지 못하면 스스로 물러나거나 바로 교체 됐다. 철저한 자기관리는 기본이었다.

특히 <무도>는 멤버들끼리의 대결도 많았다. 초창기 그들의 경쟁은 온갖 야비한 술수와 반칙이 난무하는 난장판에 다름 아니었다. 극단적 이기주의(利己)에 서로를 헐뜯고 깎아 내리기에 바빴다. 그러다가 차츰 멤버들끼리 힘을 합치고 서로를 위해 희생하고 배려하는 모습을 보여 감동을 주기도 했다. 눈 쌓인 스키점프 슬로프를 오를 때 제 몸을 밟고 오르라 절규하던 리더 유재석의 모습은 무도의 주요한 터닝 포인트이자 그만의 리더십을 만방에 과시한 명장면이기도 했다.

본방사수에 필사적으로 노력하게 만든 두 예능 프로그램

너무 칭찬 일색인지 몰라도 적어도 나에겐 그런 의미가 있는 프로그램이었다. 게다가 무엇보다 재미있었다. 다른 프로그램은 범접하지 못할 경지였다. 도무지 볼 게 없었다. 그래서 그 둘은 내가 본방사수를 위해 필사적으로 노력한 유이(唯二)의 프로그램이었다.
 
'MBC 방송연예대상' 다사다난했던 무한도전! '무한도전'의 정준하, 하하, 유재석, 박명수, 정형돈이 29일 오후 서울 상암동 MBC사옥에서 열린 'MBC 방송연예대상' 레드카펫에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아래사진) 위 사진은 2013년 방송연예대상 당시의 무한도전팀.

'무한도전'의 정준하, 하하, 유재석, 박명수, 정형돈 등의 멤버들이 2016년 'MBC 방송연예대상' 레드카펫에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아래사진) 위 사진은 2013년 방송연예대상 당시의 무한도전팀의 모습.ⓒ 이정민

 
그때 나의 주말은 경쾌한 <무한도전> 신디사이저 반주소리로 시작됐고, <개콘> 밴드의 웅장한 락 음악과 함께 한 주를 마감했다. 정말 아무 생각 없이 프로그램에 몰입해 출연자들과 함께 웃고 즐기며 한 주의 고단함을 씻어냈고 다음 한 주의 원기를 채워 넣었다. 나에게 그렇게 소중한 프로그램들이었다. 그런데 하나는 영영 없어져 버렸고, 다른 하나는 부진에 빠졌다. 지난해 봄에 벌어진 참사였다.

그 때문인지 나까지 그즈음을 전후해 극심한 헛헛증을 앓기 시작했다. 황금처럼 소중해야 할 주말이 언제 시작해서 어떻게 지나는 지도 모르는 채 허무하게 끝나버리곤 했다. 쉬어도 쉰 것 같지 않고, 놀아도 논 것 같지 않았다. 도무지 심란하고 허전하기만 했다. 사랑하는 이와 생이별이라도 한 듯 마음속이 허우룩하기 짝이 없었다. 가슴에 돌덩이라도 얹힌 것처럼 답답하기만 했다.

<무한도전>의 생동감을 다시 느낀다면, 과거 <개그 콘서트>의 재기발랄 유머에 다시한번 크게 웃을 수 있다면 싹 나을 성 싶기도 하다. 그래서 할 수만 있다면 청와대에 국민청원이라도 넣고 싶다. <무한도전> 다시 살리고, <개그콘서트>를 온전히 일으켜 달라고. 그래서 사라진 우리 모두의 주말을 제발 되돌려 주십사 하고. 이 험하고 풍진 세월 버티며 기다릴 그 무언가라도 찾게 해 달라고 간절하게 외치고 싶은 심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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